환자를 읽는 한의사 2화
택시에 탄 재마는 여유롭게 차창을 내렸다.
그때, 때마침 휴대전화가 울렸다.
“응. 연아야.”
-오빠 면접 끝났지? 어때?
“아직 모르지.”
-모르기는. 아마 큰 아빠 마음에 쏙 들었을 거야. 지난번에 식사 자리에서 오빠에 대해 슬쩍 물어보시더라고.
재마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세중한의대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다 해도, 학교 밖을 나와서는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요즘은 SNS나 방송으로 얼굴을 알려 유명해질 수도 있었지만 재마가 특별하게 뛰어난 외모가 아닌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1년 전, 소개팅으로 만난 연아가 재마에게는 황금 동아줄이었다.
‘정한 한방병원’ 원장인 박상도 원장의 하나뿐인 조카라는 사실에 재마는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연아도 분명 한의대 수석이라는 자신의 타이틀 하나만 보고 소개팅을 했을 것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고 그녀도 재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무튼, 오빠는 병원 들어가면 최대한 성실하게 진료만 잘 보면 돼. 그게 오빠 장점이니까.
‘묵묵히 튀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
돈도 빽도 없는 재마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한 마디였다.
자의가 아닌 성실함이 연아에게는 그의 장점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연아와의 통화를 끊고, 정한 한방병원에서 택시로도 40분 이상 걸려 원룸에 도착한 재마는 차에서 내려 다 쓰러져 가는 원룸을 바라봤다.
말이 원룸이지 평수가 워낙 작아 고시원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나마 학교에서 가까워 졸업하고서도 남아 있었지만 입사만 확정된다면 지긋지긋한 동네도 떠날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온 재마는 그가 사는 호실 현관문에 번쩍이는 무엇인가가 붙어 있는 걸 확인했다.
“이게. 뭐지?”
그의 원룸 현관문에 꽂혀 있는 반짝거리는 금박 종이봉투를 손에 쥔 재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양 팜플렛인가.”
‘광고사절’이라고 주인아저씨가 원룸 밖에 크게 써놨지만, 재마가 사는 곳은 요즘 원룸에는 다 있다는 보안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누구든 들어와 이렇게 광고지를 꽂아놓기 일쑤였다.
평소 같았다면 그저 광고지라고 생각하며 종이봉투를 열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던져 버렸겠지만, 오늘은 면접도 성공적으로 본 것 같으니 까짓거 광고 한번 봐줄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종이봉투를 열면 번듯한 고층 건물이 올라간 조감도가 있으리라 생각한 재마는 대수롭지 않게 봉투를 펼쳤다.
“으악. 이거 뭐야.”
재마는 생각지도 못한 강한 빛이 눈을 찌르는 느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을 찌푸리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뜬 재마는 자신이 떨어뜨린 금박 종이봉투를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여…… 여기서 나온 빛 맞는데…….”
자신의 방 안에 혼자 있었지만 종이봉투 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선 바람에 겁이 난 재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냥 종이 쪼가리로는 이렇게 강력한 빛이 나올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몇 번 건드려 보아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자 다시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도대체 뭐야? 무섭게.”
다시 금박 종이봉투를 열어 본 재마는 이제 아무 빛도 나지 않는 빳빳한 종이를 꺼냈다.
-귀하의 면접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금일 오후 4시.
해인동 명의 한의원.
딱 세 줄 적힌 메시지를 확인한 재마의 눈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휘어졌다.
“뭐야 이거.”
광고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면접은 무엇이고 날짜도 금일?
해인동 명의 한의원이라니.
광고가 아닌, 한의학과를 졸업한 재마에게 전달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온 메시지가 맞다 해도 도대체 누가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고 이렇게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알 길이 없는 재마는 찜찜했다.
가게 되더라도 가지 않더라도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초대장 같은 알 수 없는 종이봉투를 든 채 재마는 한참을 고심했다.
봉투 안의 종이에 적혀 있는 주소는 재마가 사는 원룸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았다.
“찝찝하지만 내가 간다, 가.”
면접이야 가봐서 이상한 곳이면 안 보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의아한 메시지로 면접을 통보한다는 건 이상한 곳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학과사무실에서 몰래 얻어 낸 개인정보로 보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 김에 앞으로 동의 없이 개인정보로 연락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을 생각이었다.
해인동이라면 당장 뜨고 싶은 이 동네에서 걸어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재마는 걸으며 동네 분위기를 살폈다.
오래된 주택가. 거기에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시장이 있어 유동 연령층이 꽤 높아 보였다.
그가 자라고 어머니가 지금까지도 만두 장사를 하시는 시장 골목의 한의원도 작지만 알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몇 번 하셨었다.
이런 곳이라면 한의원이나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요즘은 통증의학과까지 높은 연령층을 타겟으로 한 병원들이 자리 잡기 좋았다.
역시나 명의 한의원을 찾아가는 길에 눈에 띈 한의원을 포함한 병원들이 다섯 손가락을 넘겼다.
“동네도 좁은 것 같은데 다들 유지가 되나.”
이 한의원 중, 환자가 많은 곳은 한두 곳.
나머지는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출입구로 들락날락하는 손님들이 있는 걸 보면 근근이 유지 정도는 될 정도 같았다.
“유정 엄마. 조합에서 연락 왔었어? 보상은 얼마나 해준대?”
“상가는 조금 더 해준다는데, 모르겠어요. 이 자리에서만 20년을 장사했는데 다른 곳으로 나가라니.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기쁘지만은 않네요.”
동네를 살피며 걷는 재마의 귀에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이 뉴스에서 나오는 해인동 뉴타운인가 보지?’
뉴스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동네라는 사실은 몰랐던 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상권은 이래도 곧 보상받아서 상권 좋은 데로 옮기면 그래도 봐줄 만하겠군.’
재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적혀 있는 주소지를 찾았다.
“뭐야.”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해 번쩍이는 금박 봉투를 보낼 정도의 병원은 번듯한 꼬마 건물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건만, 재마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지나온 한의원 중, 가장 오래되어 보이고 가장 후져 보였다.
“여기는 뭐 조선 시대야?”
딱 봐도 100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은 한옥에 입구에 큰 현판으로 ‘명의 한의원’이라고 한자로 써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대문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았는지 썩고 휘어지기까지 해 있었다.
사극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분위기에 찝찝함까지 더해지니 여기까지 왔지만,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왔음 들어가지 뭐 하누. 안 들어갈 거면 저리 비키고.”
재마가 생각을 하는 사이 그의 뒤에서 허리춤을 지팡이로 툭툭 치는 인기척이 들렸다.
“네.”
“안 들어갈 거냐고”
“아, 예.”
재마는 처음 보는 할머니가 자신을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뭐라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럼 싸게 비켜. 죽을 날 받아놔서 시간 없응께.”
안 들어가겠다는 대답에 더 할 말도 없다는 듯 낯선 할머니는 혀끝을 차가며 손을 휘휘 저었다.
한쪽 손에 짚은 지팡이에 의지하며 다 펴지지도 않는 허리로 앓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정 실장 대기 많당가.”
할머니는 오래된 대문을 제집에 들어서기라도 하는 듯 활짝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대기가 있기는 하나 보네.”
죽을 날을 받아놨다며 마음이 급하시다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꽤나 쩌렁쩌렁 울렸다. 자연스럽게 대기가 많냐고 물어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재마의 귓가를 찔렀다.
아무래도 귀가 잘 들리시지 않아 목을 혹사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다던 할머니는 앓는 소리를 내시면서도 야멸차게 문을 쾅 하고 닫았다.
“그냥 가? 들어가?”
재마는 대문 앞에 서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었다.
“오셨음 들어가유. 여기 이렇게 입구 막지 마시고.”
이번에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어깨에 잔뜩 짐을 얹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는 다 툭툭 치고 난리네.”
가뜩이나 찜찜한데, 자신을 툭툭 치는 사람들이 못마땅한 그였다.
사내가 안에 들어가는 문틈 사이로 재마는 안의 분위기를 살필 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바깥에서 느낀 것과 다를 바 없이 오래된 한옥에 마당 가운데에는 평상이 있었고, 조금 전 들어갔던 할머니는 거기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건지 대화를 하고 계셨다.
그들 옆으로 다가선 개량 한복을 입은 한 사람은 컵에 무엇인가 담아 쟁반에 들고는 이리저리 움직였다.
재마가 좁은 문틈을 유지하고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이.
볼 일을 마친 건지 조금 전 들어갔던 덩치 큰 사내가 문 앞을 막아섰다.
“원장님이 안으로 들어 오시래유.”
“네?”
재마가 자신에게 한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곳에 재마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냐는 듯 그는 턱짓을 했다.
“밖에서 놀러 나온 쥐인 양 안쪽 염탐하지 말고 싸게 들어오시래유.”
사내는 본인 할 말만 하고 다시 한의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재마가 낯선 곳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디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떠들썩하던 평상 위의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할머니들의 시선이 젊은 사내인 재마에게 고스란히 쏠렸다.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개량 한복을 입고, 종이컵에 든 무언가를 할머니들에게 하나씩 건넨 중년 여성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재마에게 이야기했다.
“누구래?”
“몰러. 나도. 츰 보는 디?”
“요새 젊은 사람들도 컴퓨터다 뭐다 해서 안 아픈 곳에 없디야. 문제여. 문제. 벌써부터 한의원을 들락거리면 우째.”
“아까부터 들어올까 말까 기웃거리드만. 결국엔 들어왔구먼.”
할머니들은 두리번거리며 진료실이라고 써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재마의 뒤에 대고 다 들리게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들리지나 않게 말씀들 하시지.’
할머니들의 관심이 오롯이 자신에게 쏠린 것이 재마는 불편할 정도였다.
‘이곳에 온 내 탓이지.’
“들어와.”
재마가 대청마루에 발을 올리기 무섭게, 안쪽에서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진료실 문도 열리지 않아 안쪽에 있는 한의사를 알 턱이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재마는 위압감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드르륵 하고 미닫이문을 연 재마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네놈이냐?”
“네?”
“앉아.”
마치 재마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책상 앞 간이 의자에 눈짓을 했다.
재마가 안으로 들어오자 다짜고짜 ‘네놈’이라고 칭한 노령의 한의사를 빤히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생전 처음 와 본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원장. 구철원.]
원장이라고 써 있는 이름을 아무리 읽어봐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TV에서 얼굴을 알린 유명 원장도 아닌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탐색하는 듯한 재마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지 구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원 안을 두리번거리다 진료실 안으로 억지로 들어오듯 들어온 재마를 구 원장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