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외전 ― 오작교보단 청룡교임 (1)
청룡길드 휴게실.
“…….”
한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커다란 통유리창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꺄르륵!”
유리창 바깥, 그러니까 건물 아래에서는 한 남자가 한 여인과 한 꼬마 숙녀와 함께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런두런.
하하하.
호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 세 사람의 모습.
특히 청장발… 아니, 이제는 짧게 친 청색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의 저 해맑은 모습은,
하하하.
유리창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는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와… 저 형이 저런 미소도 지을 줄 알았나……?”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휴게실 안의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남자, 호성의 한숨이 땅이 꺼져라 새어 나오며 아무도 없는 휴게실을 가득 메웠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호성.
그의 두 눈에 아련함과 답답함이 가득 깃들었다.
톡 토독 ―
호성은 문득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핸드폰 사진첩 속 청룡길드원 단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스윽 ― 스윽 ―
호성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 단체 사진 속 어느 한 부분을 크게 확대시켜 보았다.
“하아아…….”
사진 속에서 밝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
호성의 폰 안에서 청룡길드의 실장, 이혜지의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아아…….”
그의 입에서 한숨이 떠나갈 줄을 몰랐다.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그의 짝사랑.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호성과 혜지의 관계는 좀처럼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 적극적이지 못한 호성의 태도와 연관이 있었다.
“다들 떠나가는데…….”
호성은 무릎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가정을 꾸리며 솔로를 탈출하고 있었다.
저것 좀 보라.
그 무뚝뚝하던 김천용이 아내와 딸 사이에서 저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천용만큼은 자신보다 늦게 결혼할 거라 확신했던 호성이었기에 천용의 결혼 소식은 아직도 충격적이었다.
아니, 사실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아으… 서아도 결혼하는데에에에……!”
파바박!
호성은 머릿속이 복잡한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청룡길드의 공식 막내나 다름없던 서아.
물론 이제는 막내가 아니지만 막내로 오랜 시간 있어서인지 막내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그런 서아가,
―저 결혼해요!
대뜸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반지를 자랑할 때의 충격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심지어 상대가 코드 원…….”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있는 두 사람.
반면 그 둘이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부러워하던 호성은 여전히 결혼은커녕 연애… 아니, 마음조차 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각목처럼 뻣뻣해지는 본인의 몸을 주체할 수가 없는 호성이었다.
“어이구, 이 등신아…….”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스스로를 탓하는 호성.
그의 깊은 한숨이 휴게실을 점점 더 무겁게 채워 나가고 있었다.
* * *
똑똑 ―
“들어오세요.”
청룡길드의 길드장실 앞.
끼익 ―
천용의 부름을 받은 호성이 길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흘깃 ―
업무를 보고 있던 천용이 슬쩍 호성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다시 업무 자료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 잠깐만 앉아 있어라.”
“응.”
풀썩 ―
길드장실에 놓인 소파에 주저앉는 호성.
“…….”
소파 등받이에 등과 목을 한껏 기댄 호성은 나른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 없이 길드장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스슥 ― 스스슥 ―
그런 그의 귓가로 뭔가를 쓰는 듯 천용 쪽에서 들려오는 펜 소리.
그 소리가 마치 백색소음과 같아서,
“드릉… 헉!”
호성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잠들 뻔했다.
“잘한다. 잘해. 그걸 못 참고 잠드냐? 너 어제도 휴게실에서 내내 퍼질러 자지 않았냐?”
순간적으로 졸았던 것이 아니라 고새 잠들었었는지 천용은 어느새 업무를 마치고 자신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뭔가 엄청나게 개운한 느낌에 호성은 멋쩍은 듯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와… ASMR 효과 좋네.”
“…뭔 소리야?”
천용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뭐야, 이건?”
천용에게서 종이를 받아 든 호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긴 뭐야. 헌터가 던전 일 말고 받을 게 더 있어?”
천용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호성을 향해 눈을 흘겼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매사에 뭐든지 적극적이지 못한 호성이 답답하다는 눈빛이었다.
“에휴… 하긴, 그래. 내 팔자가 이렇지 뭐.”
호성은 크게 한숨을 쉬며 천용이 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삼척 부근에 생긴 A급 던전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다.
“청룡 2조 애들 데리고 가서 토벌하고 와. 별일 없는 이상 채굴까지 2주 안에 끝내. 알았지?”
“네이~ 네이~”
호성은 지루하다는 얼굴로 건성건성 대답했다.
평소와 같은 듯했지만,
“후우…….”
그 안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우울함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천용은 호성의 그 우울한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왜 그래?”
“응? 뭐가.”
천용의 물음에 호성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평소랑 묘하게 다른데. 조금 처진 느낌도 들고… 뭔 일 있어?”
뜨끔.
어제 휴게실에서 홀로 한탄했던 일을 떠올린 호성은 심장이 뜨끔거리는 걸 참아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었다.
“뭔 소리야? 내가 뭔 일이 있겠어. 맨날 똑같은 일상인데.”
“…그래?”
천용은 날카로운 눈으로 잠시 호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식 ―
호성은 그런 천용을 보며 살짝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바쁘거나 일이 많아도,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천용의 세심함이 새삼 놀라웠던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여자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낳았겠지.’
크게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모든 일에 의욕이 나지 않는 호성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천용.
호성은 갑자기 가슴 속 저 깊은 어딘가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과 부러움이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형.”
“왜?”
“결혼하면 행복해?”
“……?”
뜬금없는 호성의 물음에 천용의 눈썹이 잠깐 씰룩였다.
“…갑자기?”
“응.”
뭔가 진지한 듯한 호성의 표정에 천용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행복하지. 엄청 행복하지.”
“…남들은 결혼은 지옥이다, 육아는 더 지옥이다 뭐 이런 말도 하던데.”
호성의 말에 천용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냥 서로 예의를 안 지켜서 그런 거지.”
“…예의?”
천용의 말에 호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꽤 많은 기혼자의 이야기를 들어봤어도 예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천용이 처음이었던 탓이었다.
“그래. 예의. 부부 사이에도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잖아.”
“…예를 들면?”
호성의 물음에 천용은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뭐… 서로 험한 말 사용하지 않기, 서로 할 일 미루지 않기, 네 일 내 일 미루지 않기, 서로 간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기 등등…? 뭐 특별할 게 있냐. 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들이야. 별거 없어.”
천용의 대답에 호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 무슨 부부 사이에 그런 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다고…….”
“얘가 뭘 모르네.”
호성의 태평한 말에 천용이 혀를 쯧쯧 찼다.
“원래 너무 편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와 멀어지게 되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거지. 너, 어렸을 때 부모님께 험한 말 한 적 없어? 부모님이 집안일하고 용돈 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 적 없어? 부모님 속이고 딴짓한 적 없어?”
뜨끔.
천용의 일침에 호성은 아까보다 심장이 더 뜨끔해지는 걸 느꼈다.
워낙에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그, 그거야… 어릴 때니까……!”
“사람은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 다 그렇게 행동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부모님은 자식에게 아무리 상처를 입고,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도 무한한 사랑으로 보듬어주신다지만 부부는 그게 아니지. 서로의 배우자에게 상처를 입으면 믿음이 깨지고 각자의 태도에도 날이 선단 말이야. 이 모든 게 가정불화의 시작…….”
천용은 말을 잇다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아니다. 내가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어? 뭔 소리야?”
호성의 반문에 천용은 혀를 쯧쯧 찼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하고 있는 애한테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하냐고. 이 한심한 놈아.”
“…칫.”
천용의 매서운 지적에 호성은 풀이 죽었다.
그리고 천용은 그 모습에서 호성에게 느껴지던 알 수 없는 우울함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해냈다.
“아직도 포기 못 했냐?”
“…….”
침묵은 곧 긍정.
호성의 고민을 확신한 천용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무슨 짝사랑이나 하고 앉아 있고…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형이 짝사랑을 해봤어?”
호성이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나,
“아니? 안 해봤는데. 난 일단 마음 생기면 돌진하거든.”
천용은 가볍게 그런 눈빛을 방어해냈다.
그리고 그런 천용의 당당한 대답이 호성으로서는 부럽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건 형처럼 용기 있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나 가능한 거고…….”
호성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천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휴… 그래. 그러니까 네가 30 중반이 넘어가도록 짝사랑이나 하고 있는 거야.”
울컥 ―
천용의 말에 호성은 울컥하여 뭐라고 반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천용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야. 쓸데없는 고민은 집어치우고, 가서 레이드 준비나 해.”
“아니……!”
“그런 고민은 뭔가 실행에 옮길 생각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너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는 전혀 어울리는 고민이 아니거든? 시끄럽고! 얼른 가! 가, 인마!”
호성을 거의 길드장실에서 내쫓다시피 하는 천용.
그의 등을 문밖까지 떠민 천용은 호성의 등 뒤에 대고 마지막을 한마디를 남겼다.
“그렇게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다가는 다른 놈이 채간다.”
“뭐……!”
호성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쿵 ―
길드장실 문이 닫혔다.
멈칫 ―
다시 문을 열려던 호성의 손이 문고리 앞에서 멈추었다.
“…….”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거둬들이며 그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호성.
아무도 없는 길드장실로 향하는 복도의 끝에서,
“하아…….”
한 남자의 깊은 한숨이 힘없이 새어 나왔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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