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외전 ― 호랑이들이 친구 먹음 (2)
꼴꼴꼴 ―
창 ―
두 술잔이 맞부딪쳤다.
“크으…….”
“크하…….”
어쩌다 보니 2차로 횟집을 오게 된 두 사내, 호백과 태성이 각자 소주를 털어 넣고 있었다.
소주잔을 비운 태성은 눈앞의 회를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휴가를 온 거라고?”
“그래.”
꼴꼴꼴 ―
호백은 자신의 술잔을 스스로 채우며 대답했다.
“정태 놈이 하도 닦달해서 말이지.”
쭈욱 ―
한 번 더 홀로 술을 들이켜는 호백을 바라보며 태성도 스스로 술잔을 채웠다.
“그래도 착한 부하직원이네. 길드장 휴가도 챙겨주고.”
“…그냥 부하직원이 아니야. 정태는 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다.”
호백의 말에 태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친동생은 무슨… 진짜 친동생이면 서로 못 갈궈서 안달이 나야 친동생이지.”
“…친동생이 있나?”
호백은 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나 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있었지. 지금은 죽었지만.”
“…그러냐.”
호백은 구태여 그 뒷사정을 묻지 않았다.
헌터들의 가족사는 웬만하면 서로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까.
애초에 거의 사정이 다 비슷하기도 했고 말이다.
호백은 회 한 점을 우물거리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너는 뭐 하러 왔는데?”
“뭐긴 뭐야. 나도 휴가지.”
“며칠인데?”
“5박 6일.”
태성의 대답에 호백은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왜 웃어?”
“그냥 불쌍해서 말이야. 나는 13박 14일이다.”
찌릿 ―
태성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하며 호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거, 더럽게 유치하네.”
“응~ 다음 5박 6일~”
빠직 ―
태성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나 술 마셨다… 엉?”
“너만 술 마셨냐? 나도 술 마셨어~”
크르릉……!
커다란 호랑이 두 마리가 회를 먹다 말고 갑자기 또 싸움을 일으키려는 그때,
“꺄하핫! 꺄르륵!”
횟집 밖에서 부모님과 함께 놀러 나온 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
“…….”
그 웃음소리를 듣고 돌연 숙연해지는 두 사람.
툭 ―
두 사람은 살짝 들어 올렸던 엉덩이를 가만히 다시 의자에 붙였다.
쭈욱 ―
어느새 또 술을 따랐는지 호백은 소주잔을 재차 비워냈다.
“그나저나 너도 알지?”
“…뭐.”
“김천용 그 새끼… 딸 낳은 거.”
몇 년 전, 결국 협회 직원과 결혼하여 딸을 낳은 천용.
한국을 대표하는 그의 득녀 소식에 한국이 한차례 술렁인 적이 있었다.
“…잘 알지. 아내분이 내 직장 동료인데 왜 모르겠어. 옹알이 동영상이랑 걸음마 동영상 전부 다 봤다.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쭈욱 ―
태성도 소주잔을 단번에 비워내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
그런 태성을 잠시 바라보던 호백은 자신의 소주잔을 채우며 물었다.
“…너, 여자친구는 있냐?”
“이 자식이… 지금 놀리냐? 너는 있어?”
태성이 발끈하자 호백은 고개를 숙인 채 킥킥댔다.
“큭큭큭… 있으면 내가 여기 혼자 왔겠냐?”
“쯧… 싱겁기는.”
혀를 차며 술을 들이켜는 태성을 바라보며 호백이 물었다.
“큰일이구만 큰일이야. 너나 나나 둘 다 이제 삼십 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결혼은 안 할 거냐.”
피식 ―
호백의 질문에 태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아이고… 내가 이 먼 곳까지 휴가를 와서도 결혼 잔소리를 들어야 하냐. 잔소리꾼이 여수까지 따라올 줄은 정말 몰랐네.”
태성의 얼굴에 귀찮다는 기색이 깃들었다.
“후우, 자꾸 스트레스 받는 말 하지 말고, 좀 닥치고 먹으면 안 되냐?”
“큭큭큭! 하긴 그렇지. 미안하다.”
우물우물.
홀짝.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서로 말없이 회를 씹고 소주를 들이켜는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피식 ―
피식 ―
전의 살벌했던 분위기와는 다른 훈훈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 * *
“끄읏차……!”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신 두 사람은 횟집에서 나와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초인이어서 그런 것일까.
소주를 각각 3병이나 먹었는데도 두 사람은 얼굴이 조금 붉어졌을 뿐 딱히 취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부터 뭐 하냐?”
호백의 물음에 태성은 몸을 이리저리 돌려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했다.
“끄응… 글쎄, 딱히 계획 없이 온 거라서. 그냥 여수 바다가 좋다는 말만 듣고 왔어.”
태성은 정말 기분 전환만 하러 온 듯 무계획으로 여수까지 온 것 같았다.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며 피곤한 기색을 띠고 있는 태성.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호백이 넌지시 말했다.
“…할 거 없으면 내일 낚시 고?”
“……?”
태성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후볐다.
“…낚시? 지금 나보고 하는 말이냐? 너랑? 내가 왜?”
“…….”
두 남자 사이에 적막이 감돌았다.
처얼썩 ―
검은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만히 밤바다를 바라보던 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낚시 재밌냐?”
* * *
다음 날.
각자 숙소에서 자고서 느지막하게 나온 두 사내는 근처 해장국 집에서 해장을 마치고 어디론가 향했다.
“…여기서 정말 낚시해도 되는 거 맞아?”
“된다니까. 다들 여기서 해.”
“…아무도 없는데……?”
사람이 거의 없는 어느 부두.
어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조용한 부두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호백이 가져온 낚시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혼자 오면서 무슨 낚싯대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쯧. 전부 용도가 다르단다. 하긴 낚린이가 뭘 알겠어.”
호백은 자연스럽게 의자를 세팅하고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운 뒤 바다로 찌를 던졌다.
찌이이이이익 ― 퐁당.
저 멀리 떨어진 호백의 낚시찌.
호백은 낚싯대를 미리 설치해둔 받침대에 올려놓고 준비해둔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멍을 때리고 있는 태성을 바라보았다.
“뭐 해? 얼른 던져.”
“…나 낚시 처음이라고.”
“어쩌라는 거야. 내가 하는 거 봤잖아. S급이 그것도 못 따라 해?”
울컥 ―
호백의 핀잔에 울컥한 태성은 최대한 호백을 따라 하며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고는 있는 힘껏 찌를 던졌다.
찌이익 ― 퐁당.
약간 타이밍이 맞지 않아 호백만큼은 멀리 날아가지 못한 낚시찌.
그래도 근력 덕에 꽤 멀리 날아간 것이 웬만한 베테랑 아마추어만큼이나 찌를 날린 태성이었다.
“크흥.”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친 호백은 간이의자에 거의 드러누우며 모자를 본인 얼굴 위에 덮었다.
“…뭐야? 이러고 끝이야?”
“낚시는 인내심이다 아해야~”
마치 경지에 이른 도사 같은 말을 내뱉는 호백.
‘…성질은 지가 제일 급하면서.’
태성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자신도 의자에 드러누워 모자를 얼굴 위에 덮었다.
“…….”
그 상태로 눈을 감자 몸이 의자 밑으로 쑤욱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나른해지는 것이 자칫하면 순식간에 잠이 들 것 같았다.
“…근데 이러다 잠들면 어떻게 하냐?”
“잠들면 어때. 인마. 어차피 고기 잡히면 낚싯대에서 알아서 줄 돌아가는 소리 들려~”
“…….”
호백의 말에 태성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화들짝!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태성은 괜히 혼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야, 깼네?”
슥슥 ―
어느새 호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서 났는지 물고기 한 마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보글보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휴대용 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 물.
“뭐, 뭐야?”
“뭐긴 뭐야. 매운탕 끓일 거지.”
퐁당.
어느덧 손질이 다 되었는지 호백은 손질한 물고기와 각종 양념을 끓고 있는 냄비 안에 집어넣었다.
잠시 뒤.
“야, 맛 한번 봐라.”
호백이 태성에게 일회용 숟가락을 내밀었다.
못 미더운 표정을 지으며 매운탕 국물을 한 술 떠먹어보는 태성.
그런데,
“…오?”
의외로 맛있는 듯 태성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너 요리도 잘했냐?”
“흥! 혼자 살면 다 이래 된다.”
“…….”
똑같이 혼자 살지만 매번 외식만 하는 태성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그나저나 언제 잡은 거야. 내 미끼는 언제 무냐.”
“이거 네 미끼로 잡은 건데? 소식은 내게 없지.”
“…응?”
호백의 말에 태성은 받침대 위에 놓인 두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호백의 것은 그대로 있고 태성의 것은 어느덧 바닥에 내려놓아져 있었다.
“뭐, 뭐야! 나 왜 안 깨웠어!”
“지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자놓고 무슨.”
호백은 코웃음을 치며 가방에서 라면 사리를 꺼내 매운탕에 넣었다.
“야, 헛소리 그만하고 먹기나 해.”
“…쳇.”
첫 손맛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태성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매운탕을 자신의 그릇에 펐다.
“잘 먹겠다.”
“…뭔 인사가 그따위냐?”
두 사람이 그렇게 조금은 이른 저녁 식사를 하려던 그때,
그그극 ―
허공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지이잉 ―
갑자기 두 사람의 눈앞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너무나도 뜬금없이 말이다.
* * *
“아니 시X…….”
“…매운탕 먹다가 이게 무슨 일이래.”
돌연 눈앞에 나타난 던전에 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삐릭 ―
휴대용 던전 파장 측정기로 게이트의 파장 수치를 측정하는 태성.
삐리릭 ―
측정 단말기에 ERROR라는 표시가 뜨며 해당 던전이 측정 불능급 던전임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측정 불능이라… 에휴, 진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게 하는구만.”
티딕 ―
수치를 확인한 태성은 한숨을 쉬며 본부로 연락을 취하려 했다.
그때,
텁 ―
호백이 협회 본부로 연락을 취하려는 태성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태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야, 설마 협회 본부로 연락하려고?”
“그럼 당연하지. 조치는 취해야 할 것 아니야?”
태성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측정 불능급 던전이었다.
최소 S급 던전, 운이 나쁘다면 EX급 던전.
만약 운이 좋아 단순한 S급 던전이더라도 두 사람만으로는 토벌하기 힘들 터였다.
본부에 연락해서 다른 S급들이나 코스모스들을 불러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호백의 생각은 달랐다.
“야, 이태성. 생각 똑바로 해. 이거 기회야.”
“뭐? 뭔 기회?”
태성은 자꾸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이 미친… 너 설마……?”
호백의 생각을 알아챈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쩍하고 벌렸다.
“맞아.”
호백은 태성의 추측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우리 둘이 먹자.”
보글보글.
치이이익 ―
두 사람 사이에서 끓고 있던 매운탕이 빠르게 졸아들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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