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외전 ― 호랑이들이 친구 먹음 (1)
부우우웅 ―
하얀 지프차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
지프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 덩치 큰 사내.
휘이이이 ―
운전석 옆 창문을 열어둔 탓에 그의 하얀 백발이 연신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꾸욱 ―
백발의 사내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한 탓이었다.
“에이씨… 왜 평일에 고속도로가 막히고 지랄이야…….”
남자, 호백은 운전대를 잡은 채 투덜댔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걸…….”
호백은 운전대 창문에 왼팔을 걸친 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며칠 전, 평소와 같이 레이드를 준비하던 호백에게 갑자기 정태가 다가와 말했다.
―형님, 이번 레이드 끝나면 뒷마무리는 제가 하겠소.
―뭐? 갑자기 뭔 소리야?
―이참에 어디 휴가라도 다녀오시라는 거요.
―…갑자기 휴가?
갑작스러운 정태의 말에 호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정태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맨날 그렇게 일하면서 씨X, 씨X 하지 말고 바람 좀 쐬라 이 말이요!
―내, 내가 언제 씨X, 씨X거렸다고…….
―형님이 맨날 신세 한탄하고 다니는 거 모르는 길드원들이 없소. 아니, 그렇게 외로우면 뭐 소개팅이라도 하시든가!
뜨끔.
―맨날 레이드 갔다가 일, 레이드 갔다가 일만 반복하는데 뭐 여자가 생기겠소? 하다못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쇼!
―여행은 무슨 여행…….
―그저께 취해서 나한테 전화했던 건 벌써 다 잊었소?
정태의 정곡에 호백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그건 내가 좀…….
―맨날 혼자 궁상맞게 술 마시고 취해서 여기저기 전화하지 말고, 기분 전환 좀 하시란 말이오. 형님.
―괜찮…….
―아! 그냥 다녀오라고!
그렇게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호백의 휴가.
그렇게 무려 2주라는 첫 장기휴가를 맞아 호백은 여행을 위해 차를 타고서 어디론가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은 무슨…….”
왼팔로 턱을 괸 호백의 콧구멍으로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힐끔.
호백의 시선이 뒷좌석으로 향했다.
“…….”
뒷자리에 가득한 각종 낚시도구.
두근두근.
그래도 오랜만에 낚시할 생각을 하니 묘하게 설레는 호백이었다.
“…훗.”
뒷좌석을 보며 괜히 한번 미소를 지은 호백.
그때,
빠앙 ― !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차와의 거리가 어느새 조금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걸 안 기다리고 빵을 친다고?”
호백은 이를 잘근거리며 조금 전진했다.
사람 걸음으로 겨우 10걸음 정도 되는 짧은 거리.
부웅 ― 끽.
“야이 개X끼야! 빨리 빨리 안가?!”
호백의 뒤차는 겨우 그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어지간히 성질이 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씨구. 지랄났네.”
콰앙!
씩씩대며 차에서 내리는 뒤차의 운전자를 백미러로 확인한 호백이 코웃음을 쳤다.
씨익 ― 씨익 ―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슈퍼카에서 내리는 한 거한.
그의 목과 팔목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으로 된 액세서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몸 곳곳에는,
크릉 ―
커다란 호랑이 같은 맹수 문신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아니, 왜 빨리빨리 안 움직이는 거야? 진짜 운전 X같이 하네!”
거한은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차 앞에 있는 하얀 지프차의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쿵쿵쿵 ―
“어이! 내려봐! 내려보라고, 이 새끼야!”
거한의 커다란 주먹이 호백의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잉 ―
지프차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문이 내려가자 거한은 기세를 제압하기 위해 대뜸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운전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야, 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안 차리……!”
곧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저, 저, 정호백?”
아니, 정호백이 왜 여기서 나와? 라는 듯한 눈빛으로 천천히 손에서 힘을 푸는 거한.
호백은 그런 거한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야.”
“…나, 아니… 저요?”
“그래. 너.”
스산한 호백의 눈빛이 마치 금방이라도 거한을 잡아먹을 듯이 스캔했다.
“앉아.”
“…예?”
“왜? 혼자서 못 앉겠냐? 두 다리를 부러뜨려주랴?”
“……!”
섬뜩한 호백의 말에 거한은 홀린 듯이 바닥에 냅다 주저앉았다.
“일어서.”
벌떡!
“앉아.”
훅 ―
“일어서.”
벌떡!
지프차 운전석의 옆에서 수십 번이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거한.
그의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엎드려뻗쳐.”
착 ―
호백은 운전석 창틀에 팔을 괸 채 거한을 내려다보며 무료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너는 이 교통 정체가 풀릴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한다. 알았어?”
“저… 제 차는…….”
거한이 뒤를 슬쩍 바라보며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앞으로 가면 당연히 네 차도 전진해야지. 전진시키고 다시 와서 엎드려. 알았어?”
“……!”
“어쭈? 대답.”
“예, 예!”
거한은 생각했다.
진짜 주옥 됐다고.
‘젠장! 하필 걸려도 재수 없게……!’
별것도 아닌 일에 오버해서 흥분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재수 없음을 한탄하기 시작하는 거한.
그런 거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 가는 동안 심심하진 않겠네.’
호백은 그저 장난감이 생긴 것에 만족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전남 여수.
“끄으으으으……!”
차로 4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를 무려 7시간 만에 온 호백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 기지개를 켰다.
“끄흐으으으… 죽는 줄 알았네 진짜…….”
장난감이었던 거한 놈은 중간에 경로가 달라지는 바람에 보내준 호백.
정체된 도로 속에서 지루함에 홀로 몇 시간 동안이나 몸을 뒤틀던 호백은 연신 기지개를 쭉쭉 켜며 잔뜩 굳어버린 뼈마디와 근육들을 깨워주었다.
역시 장시간의 운전은 초인이라 불리는 헌터, 그것도 S급 헌터에게도 힘든 일인 듯했다.
“에이씨! 이게 뭐야 진짜…….”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호백이 구시렁거렸다.
분명 아점을 먹고 출발했는데 벌써 저녁때라니.
꼬르륵 ―
호백의 정확한 배꼽시계가 뱃속을 울리며 그에게 저녁 식사를 할 때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휴가 2주 중에 겨우 첫날일 뿐이니까.
‘뭐 먹지?’
호백은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꼬르륵 ―
그래도 곧 뭔가를 먹을 생각에 또 기분이 좋아지는 호백이었다.
* * *
호백이 핸드폰으로 여수 맛집을 검색해 찾아간 곳은 어느 게장 백반집.
딸랑 ―
“어서 오씨요~(어서 오세요~)”
게장 백반집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 할머니가 푸근한 여수 사투리로 그를 맞아주었다.
“혼자?”
“…예.”
“이리 오이다.(이리 오세요.)”
할머니는 호백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를 그냥 평범한 손님처럼 대했다.
“뭐 드릭까?(뭐 드릴까?)”
“게장 백반 정식 하나 주세요.”
“쪼께 기다리씨요~(조금만 기다리세요~)”
알아들을 듯 못 알아들을 듯 아슬아슬한 사투리로 말하는 주인 할머니.
호백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그래도 나름 한산한 식당.
널따란 식당 안에는 관광객들보다는 현지 주민들, 그것도 어르신 몇 분만이 따로 떨어져 앉아 식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 나쁘지 않네.’
묘하게 여유로운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호백은 다리를 쭉 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딸랑 ―
식당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주방 안으로 주문을 넣으러 갔던 할머니가 주방 커튼을 젖히며 나오셨다.
“어서 오씨요~(어서 오세요~)”
“여기 한 명이요.”
“편한 데 앉으씨요~(편한 데 앉으세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셨는지 할머니는 이번엔 자리를 안내해주지 못하고 손님에게 편한 데 앉으라는 말만 남긴 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저벅 저벅 ―
뒤이어 들어온 남자가 앉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남자의 발소리가 호백의 옆을 지나치려는 그 순간,
“어……?”
남자가 호백의 근처에서 멈칫하며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씨…….’
목소리가 꽤 젊은 것이 그 남자가 자신을 알아본 시민이라 생각한 호백은 속으로 귀찮음과 짜증을 삭이며 슬며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두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정호백?”
“…이태성?”
대한민국 거의 최남단에 위치한 여수의 어느 게장 백반집.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호랑이가 서로를 맞닥뜨렸다.
* * *
“맛있게 드씨요~(맛있게 드세요~)”
주인 할머니가 반찬과 요리들을 테이블 위에 모두 세팅한 뒤 떠나셨다.
“…….”
“…….”
어쩌다 보니 합석하게 된 두 사람.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양의 요리를 앞에 두고도 누구 하나 먼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여긴 어쩐 일이지? 코스모스 요원들은 엄청 바쁘게 지낸다고 최근 기사도 났던데.”
호백의 말에 태성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너야말로 여긴 무슨 일이지? 3대 길드 마스터가 혼자 여기까지 올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닐 텐데.”
치직!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불꽃을 일으켰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이글이글……!
예전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두 사람.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푸짐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럴 거면 왜 내 앞에 앉았지? 사람 불편하게 말이야.”
“내가 뭐 앉고 싶어서 앉았나? 할머니가 갑자기 앉으라니까 어쩔 수 없이…….”
슬쩍 ―
태성은 식당 입구 옆 카운터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살짝 목소리를 낮추었다.
“흥! 천하의 코스모스가 등 떠밀려 행동해? 이거 완전 해외 토픽감이군.”
“흥, 천하의 백호 길드장이 궁상맞게 혼밥 하러 온 것도 괜찮은 토픽감 아닐까?”
“…뭐, 이 새끼야? 지도 혼자 와놓고는……!”
“나는 원래 혼밥을 즐기는 스타일이라서 말이지.”
코앞의 음식들이 다 식어가도록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그러던 그때,
꼬르르르륵 ―
두 사람의 배 속에서 동시에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
“…….”
둘 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일단 먹을까.”
“…그래.”
갑자기 말다툼을 멈추고는 눈앞의 음식들을 입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와구와구.
우걱우걱.
서로 경쟁하듯, 게 눈 감추듯이 식사를 이어가는 두 장정.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거참, 조베기 없이 먹네.(거참, 예의 없이 먹네.)”
주인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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