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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83화 (283/300)

283화. 영웅은 죽지 않음 (1)

꿈을 꾸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 속에 한없이 갇혀 있는 꿈을.

‘여긴……?’

빛도 어둠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그곳에 그것은 홀로 존재했다.

움찔.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

그것에게는 팔이 없었다.

그것은 크게 놀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무.

그것은 ‘무(無)’ 그 자체였다.

팔다리가 없었고 몸통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얼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희뿌연 덩어리였을 뿐.

‘아…….’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하는 사람… 아니, 애초에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불분명했다.

가족은 누구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까지.

생각해보려 해도 희뿌연 안개가 기억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만 잔뜩 들 뿐이었다.

‘아…….’

그것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소리만 의식 속에서 계속 내뱉었다.

불안했으니까.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정말 모든 걸 잊을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했다.

울컥 ―

희뿌연 덩어리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이미 모든 걸 잊었지만 왠지 모를 커다란 그리움이 영혼 전체를 감싼 것이다.

찌잉 ―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 그것의 의식 속에서 떠올랐다.

‘…싶어.’

간신히 기억해낸 말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말을 완성시키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찌잉 ―

‘…보고 싶어……!’

겨우 4글자만으로 완성된 그것의 감정이 완성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는 데에 성공하자,

주륵 ―

희뿌연 덩어리 어딘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두 개의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울컥 울컥 ―

속에서부터 마구 치솟아 오르는 무언가.

그것은 곧 그것이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임을 알아챘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그것은 간신히 생각해낸 4글자를 연거푸 뱉어냈다.

말을 뱉어낼수록,

‘보고 싶어!’

울컥 ―

주르륵 ―

그것의 감정이 점점 진해졌다.

그렇게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이나 같은 말을 뱉어낸 어느 순간,

찌잉 ―

커다란 통증과 함께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

마침내 그리움의 원인을 찾아낸 그것.

그것은 온 힘을 다해 저절로 떠오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태운… 오빠……!’

누군가의 모습이 조금 선명해졌다.

그것은 그를 좀 더 선명히 보기 위해 자신의 존재조차도 여전히 기억해내지 못한 채로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짖었다.

‘오빠… 태운 오빠…! 태운 오빠아아아……!’

점차 그것의 눈앞으로 선명히 다가오는 그의 모습.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사락 ―

희뿌연 덩어리 형태의 그것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래, 유린아. 오빠 왔어.”

가슴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그것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화아악 ― !

그것의 세상이 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 * *

“으흐흐흑!”

“…….”

헌터 협회 본부.

엄청난 슬픔이 본부 건물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선후배를, 누군가는 친한 친구를 그리고 누군가는 가족을.

저마다의 슬픔이 모든 협회 직원 한 명, 한 명을 크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덜덜덜……!

전장의 모든 상황을 지켜봤던 장지희 헌터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륵 ― 주르륵 ―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고,

“어… 어… 꺼억……!”

얼굴에서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눈물과 콧물,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성적인 사고회로가 완전히 막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울음조차 내뱉지 못한 채 숨이 턱턱 막혀가고 있는 장지희.

하지만,

“으아아아아!!!”

그 누구도 그녀를 챙길 상태가 아니었다.

쾅! 쾅! 쾅! 쾅!

오래전 딸을 잃었던 현숙이 철민의 사망 소식을 듣고 미쳐 날뛰었다.

쾅! 쾅! 쾅!

손에서 핏물이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두드리던 키보드를 책상 위에 마구 내리쳤다.

콰앙!

헌터인 그녀의 발작에 키보드를 올려놓던 탁자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헌터 본부 안에 있는 모든 헌터들이,

“흐아아아아아아!”

“으흐흐흑!”

슬픔과 절망에 완전히 잠식되어 울부짖거나 바닥에 쓰러져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리고,

“…….”

부협회장, 현주는 주위에서 그런 난리가 일어남에도 가만히 있었다.

아니, 멍하니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

그녀의 두 눈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이미 초점이 사라진 눈.

그녀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얼마나 강한데……?’

한국 헌터 협회장인 남편 동석, 차기 알파조장을 맡아놓은 아들 기성.

그리고 최단기간 베타조장의 자리에 오른 딸 유린까지.

셋 다 나약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이들이었다.

덜덜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어 올리는 현주의 두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터업 ―

간신히 입을 틀어막은 현주.

“끄윽……!”

두 손에 의해 틀어막힌 그녀의 입과 목구멍에서 진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주르륵 ― 뚝뚝…….

초점이 나가버린 두 눈에서 맑디맑은 눈물들이 닭똥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절레절레 ―

현주의 고개가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따위 그려본 적조차 없었으니까.

상상 속에서도, 꿈속에서조차 떠올려본 적 없는 이 낯선 현실.

그래,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

‘죽는 게 나아.’

우우웅 ―

이성을 상실한 현주의 손에 푸른 마력의 빛이 일렁였다.

뾰족하게 날을 세운 손.

마력으로 강화한 현주의 손이 그녀의 목을 향해 겨누어졌다.

“나도… 나도 금방 따라갈게.”

주르륵 ―

두 눈을 감은 현주의 볼을 따라 눈물이 유성처럼 흘러내렸다.

후욱 ― !

그렇게 현주의 손이 그녀의 목을 꿰뚫으려는 그 순간,

치직!

슬픔과 절규로 가득하던 헌터 협회 본부에 잡음이 울렸다.

칙! 치직!

“……!”

협회 본부가 한순간에 침묵으로 물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협회 지휘 본부 중앙에 위치한 긴급 무전 수신기.

현장에 나가 있는 이가 본부 전체에 긴급하게 알릴 사항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무전 수신기였다.

치직!

‘저, 저게 왜 울려?’

‘현장 헌터들은 모두 죽은 거 아니었어……?’

휘둥그레진 직원들의 눈동자가 긴급 무전 수신기와 장지희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뭐, 뭐야…….”

당혹스러운 것은 장지희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확인했으니까.

현장에 있던 모두가 전멸하는 모습을 말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악마들에게 학살당하는 장면이 아직도 그녀의 눈앞에 선명했다.

치직!

몇 차례 잡음을 더 토해낸 긴급 무전 수신기.

그 너머에서 익숙한 그리고 그토록 그리웠던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들리십니까?}

“……!”

왈칵 ―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직원들의 두 눈에 또다시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번 전쟁 내내 조금이라도 빨리 나타나길 간절히 바랐던 존재.

한국과 헌터 협회의 영웅, 코드 제로와 마침내 연락이 닿은 것이다.

텁!

현주는 재빨리 자신의 무전기 주파수를 긴급 무전 수신기에 맞췄다.

덜덜덜……!

“코, 코드 제로…….”

무전기를 든 그녀의 손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덜덜 떨렸다.

{예, 부협회장님.}

그녀의 부름에 평소와 같이 차분한 코드 제로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협회 내부에 울려 퍼졌다.

울컥 ―

직원들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전멸한 한국의 헌터들.

그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전해야 좋단 말인가.

덜덜덜……!

코드 제로와 무전을 하는 현주를 바라보는 현숙의 사지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미, 미안해…….”

현주의 입에서 서글픈 사과가 흘러나왔다.

가족을 잃은 건 자신인데 왜 그녀가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현주는 사과해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니까.

태운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가 일으켜 세운 한국이 무너져버렸으니까.

“흐윽……!”

그러나 절망과 죄책감에 절여진 그녀의 입에서 서글픈 울음이 토해지려는 그 순간,

{…제가 더 죄송하지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치직!

무전기 너머에서 그가 숨을 고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도 알았을 것이다.

한국의 헌터들이 전멸했다는 걸.

그 대단한 코드 제로가 아니던가?

구태여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

현주는 뭐라고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멍하니 무전기만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치직!

{…^@%@#}

무전기 너머에서 그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말이다.

{…와아아아아!}

동시에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의 환호성 소리.

“……!”

그 소리를 들은 협회 본부 직원들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이, 이거……?”

“헌터들 목소리……?”

마찬가지로 크게 당황한 현주는 재빨리 무전기를 잡고 태운에게 물었다.

“코, 코드 제로!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치직!

{아, 저 지금 동두천시에 있습니다.}

“그, 그럼 지금 목소리는……?”

현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태운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전쟁은 한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한국 측 피해는 전무하며 사망자는 제로입니다. 이로써 노아즈 아크의 남침으로 인한 전쟁의 종전을 선언합니다.}

“…….”

태운의 보고를 들은 현주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대체 코드 제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피해가 전무하다고?

사망자가 제로라고?

그럼 여태껏 받은 보고들은 무엇이며, 비명과 함께 끊겼던 연락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울컥 ―

아무리 코드 제로더라도 농담할 때가 있고 안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순간 태운이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현주의 목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코드 제로. 지금 이게 뭐 하는 짓……!”

현주가 코드 제로를 질책하려는 그 순간,

치직!

{엄마.}

그리운 목소리가 무전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

현주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던 목소리.

이제는 저승에나 가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목소리가,

{엄마… 들려?}

왈칵 ―

무전 너머에서 선명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 유린이니?”

그렇게 무전 너머에서 다시 한번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응… 나야. 엄마 딸……!}

후두둑 ―

현주는 자신의 무릎 위로 눈물을 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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