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한국이 난리남 (3)
“…조금 이르지만 어쩔 수 없지.”
포천시로 내려온 노아즈 아크 병력을 이끄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남자의 정체는 주작 길드의 전 4인자이자 이제는 노아즈 아크의 행동대장 중 하나가 된 박기훈.
그는 포천시 건물 중 가장 높은 빌딩 옥상에 숨어 전황을 지켜보다가 결단을 내렸다.
“좀 더 내려가서 사용하고 싶었다만…….”
철원처럼 단숨에 포천도 밀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철원처럼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같이 남하했던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철원에서 맞닥뜨린 적호 길드와 백룡 길드에게 당하는 바람에 병력이 줄어든 탓이 큰 듯했다.
게다가 저쪽은 중소 길드라지만 계속해서 지원 병력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중이었고 그 무엇보다,
콰아아아앙!
저 코스모스의 코드 투의 존재가 압도적이었다.
“디에고 자식… 그딴 식으로 뒤지면 어쩌자는 거야?”
박기훈이 이끄는 병력 중 S급은 디에고가 유일했다.
워낙 독고다이인 성격에다가 꼴리는 대로만 행동해서 그 덕에 A급 최상위에 불과한 박기훈이 행동대장을 맡긴 했지만, 그가 이 무리의 최대 전력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고작 A급 하나를 상대로 독을 주입하면서 놀다가 코드 투에게 통째로 씹혀서 절명이라니.
‘멍청한 새끼…….’
박기훈은 속으로 혀를 쯧 차며 옆에 있던 다른 조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다음 작전 준비해.”
“예.”
박기훈의 오더를 받은 조직원은 도심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특정 조직원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 !
마치 커다란 새가 울부짖는 듯한 휘슬 소리가 포천시 전역에 퍼졌다.
그러자,
스슥 ―
도시 곳곳에서 여러 명의 조직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휙 ― 휘릭 ―
무언가를 공중에 흩뿌리기 시작하는 조직원들.
마치 어떤 식물의 씨앗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가루를 한 알씩 던지는 조직원들의 모습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툭 ―
“…뭐야?”
고새 A급 조직원 두 사람을 더 처단한 태성은 어디선가 작은 돌가루 같은 것이 코앞에 떨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박씨처럼 생겼지만 갈색빛을 띠고 있는 것이 겉보기에는 그저 하찮아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하찮다고 볼 수 없었다.
부르르 ―
씨앗이 돌연 살아 있는 듯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키긱 ― 찌직……!
씨앗의 표면에 잔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은 씨앗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
‘마력……?’
그 엄청난 기운에 놀란 태성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파아아아앗 ― !
너무나도 작은 크기의 그 씨앗은 그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거대한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폭사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태성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 * *
“허억… 허억……!”
한석의 입 안에서 단내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현재 감마조의 남은 생존자 총 9명.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중 하나가 된 한석은 조직원들의 공세를 받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하하핫!”
콰가각 ― !
조직원이 휘두른 마력창에 부딪힌 한석의 마력 검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쳤다.
“우욱……!”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한석은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무너지면 다른 동료들이 위험해질 테니까.
C급 9명이 모인다고 해서 A급에 육박하는 이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아아앗!”
어쨌든 지금은 한 명, 한 명의 힘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콰각 ― !
한석은 어떻게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적의 창을 쳐냈다.
우우우웅 ― 우우우웅 ― !
그러나 곧 마력 검을 이룬 마력이 크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파가각……!
마치 공명음에 흔들린 유리잔처럼 어이없이 부서져버렸다.
“쿠웨에에에엑!”
그 반동으로 인해 속이 뒤집힌 한석이 피를 한 사발이나 게워냈다.
“한석아!”
감마조장, 이주호가 재빨리 바닥에 쓰러진 한석의 앞을 막아섰다.
콰각 ― !
“호오… 나름 대장이라 이거냐?”
다시금 마력창을 내지른 조직원이 비웃음을 흘려댔다.
“끄으으윽……!”
마력창을 정면으로 막지 않고 사슬검으로 묶어서 막아낸 이주호는 곧바로 능력을 전개했다.
초자연형 고유 능력, ‘평균화(平均化).’
키이이이잉 ― !
그의 능력이 전개되며 일시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마력 수준이 평균을 이루었다.
비틀 ―
“…허억?”
단번에 마력 수치가 A급에서 B급 수준으로 떨어진 조직원이 탈력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순간 비틀거렸고,
‘기회!’
C급에서 B급으로 단숨에 마력 수치가 상승한 이주호는 사슬검으로 놈의 마력창을 잡아 끌어당겼다.
평균화를 이룬 둘의 힘을 비등했지만 한쪽은 탈력감, 한쪽은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어엇……!”
균형은 단숨에 무너졌다.
휘익 ― !
조직원이 힘없이 이주호의 힘에 끌어당겨졌다.
촤라라락 ― !
이주호의 사슬검이 마력창을 그의 손에 양도하고 조직원의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북! 콰직!
여전히 탈력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조직원은 날아들던 자세 그대로 사슬검을 피하지 못하고 미간이 뚫려버렸다.
쿵 ― !
“허억… 허억……!”
순식간에 A급 조직원을 제거하는 쾌거를 이룬 이주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며 한석의 상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이 새끼 이거, 능력 위험하네……?”
곧바로 덤벼드는 다른 B급 조직원에게 막혀 그럴 수가 없었다.
촤악! 촤악!
조직원의 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흩뿌려졌다.
“윽! 뭐, 뭐야?”
이주호는 물론이고 원형의 진을 형성하고 있던 다른 감마조원들도 무언가를 맞았는지 표정을 찡그렸다.
주륵 ―
이주호는 자신의 몸에 잔뜩 튄 무언가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미끌.
‘…기름?’
찐득 ―
게다가 어느새 감마조원들이 서 있는 바닥도 미끌미끌한 무언가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이주호가 자신도 모르게 벙쪄 있던 그때,
“잘 가~!”
일대에 기름을 잔뜩 흩뿌린 조직원이 몇 발 뒤로 물러서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치익 ― !
라이터와 폭죽.
조직원이 라이터와 폭죽을 꺼내 듦과 동시에 다른 감마조원들과 싸우던 다른 조직원들이 모두 저만치 물러났다.
“허억… 허억… 갑자기 왜……!”
잔뜩 지친 감마조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물러나는 조직원들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조직원들의 행동을 보고 놈의 의도를 가장 먼저 깨달은 이주호가 재빨리 외치려 했다.
“흐, 흩어……!”
그러나,
“응~ 늦었어~”
조직원의 행동은 그보다 더 빨랐다.
파바바바바바박 ― !
마치 개틀링건이라도 된 듯 마구 불꽃을 쏘아대는 폭죽.
그 폭죽의 불꽃은 곧 이주호와 다른 감마조원들의 몸에 묻은 기름과 바닥 일대에 닿았고,
화르르르륵 ― !
순식간에 감마조원들이 있던 자리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9명의 감마조원 생존자들이 일시에 불길에 휩싸였다.
“끄아아아아아악!”
피를 게워내다 간신히 정신을 되찾나 싶었던 한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이이이이익 ― !
옷과 머리는 금방 불에 타버렸고, 피부가 벌겋게 익다 못해 녹아내리고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신체강화로 몸을 보호하는 감마조원들은 하나도 없었다.
치이이이이익……!
자가회복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도 바쁜 와중에 그런 여유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버, 벗어나아아아아아!”
간신히 성대를 회복한 이주호가 불길 속에서 다른 감마조원들을 향해 외쳤다.
타다다닥 ― !
온몸이 불에 휩싸인 9개의 불덩어리가 힘겹게 불바다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척 ―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보다도 더 지독한 노아즈 아크의 잔당들이었다.
“그 잘난 한국 헌터 협회 직원들도 별거 없네~?”
기름을 흩뿌린 B급 조직원이 간신히 마력을 방출해 불을 꺼뜨린 한석의 목에 기다란 칼을 겨누었다.
스릉 ―
상당한 예기를 자랑하는 칼날이 목덜미에 겨누어지자, 그 예기만으로도 몸이 차게 식는 듯한 감각이 한석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한석은 끝을 예감했다.
주마등처럼 그동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걔네한테 좀 더 잘해줄 걸 그랬네…….’
얼마 전 대한과 민아를 쥐어박으며 혼냈던 것을 크게 후회하며,
‘태운아… 뒤를 부탁한다…….’
한석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 * *
그 시각 협회 본부.
흠칫!
협회 총지휘본부의 한쪽에 앉아 있던 한 직원이 무언가에 놀란 듯 몸을 떨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지희.
행정부서 직원이었지만 비상사태 시에는 항상 현장이나 일선에 투입되는 직원이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능력 ‘천리안’ 덕분.
원래 E급에 불과해 주위 반경 20km 정도만 볼 수 있었던 장지희는 천리안을 가졌다는 그녀의 정보를 확인한 태운에 의해 키워진 또 하나의 ‘비밀병기’였다.
―지희 씨.
―네, 네?
―지희 씨의 능력은 엄청난 능력이에요. 또 언제 어디서 어떤 대규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니 좀 더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 싸움을 못 하는…….
―지희 씨는 앞에 나설 필요 없습니다. 지희 씨는 지금 이 순간부터 협회의 ‘맵핵’이 되는 겁니다.
―…맵핵이요?
맵핵(Map hack).
게임 용어 중 하나로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전장의 모든 지도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을 말했다.
그녀의 능력 또한 마찬가지.
앉은 자리에서 반경 최대 천 리(약 400km)까지 볼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인간 맵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다 드세요.
―헉……!
태운이 그녀에게 내민 것은 대량의 마석.
덕분에 지희는 E급에서 단숨에 A급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강해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마력이 늘어나면서 능력의 상한이 늘어났을 뿐.
태운 덕에 지희는 현재 반경 약 250km를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왜, 왜 그래요?”
타다다다다다 ―
바로 옆에서 고유 능력 ‘병렬 사고’를 사용 중인 현숙이 곳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기록하다가 흠칫 몸을 떠는 지희의 행동에 반응했다.
병렬 사고를 사용 중이었기에 현숙은 지희를 신경 쓰면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애초에 지희는 본부에 앉아 현재 남하 중인 노아즈 아크를 상대하는 수도권부터 강원도까지의 모든 전장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현장을 직접 보고 있는 지희의 보고를 기록하기 위해 현숙은 애초부터 지희를 전담하는 의식을 하나 따로 설정해둔 상태였다.
덜덜덜……!
현장의 세부 상황을 관찰하던 지희의 몸이 흠칫 떨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더, 던전이 생겨나고 있……!”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리던 지희는 순간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고 상황을 정리해 다시 또박또박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포천에서 감마조 전멸, 기타 지원 갔던 중소 길드 병력도 전멸했습니다. 코드 투는 의식 불명.”
“……!”
멈칫 ―
그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소식에 기록을 이어 나가던 현숙의 모든 병렬 의식들이 잠깐이지만 올 스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득 ― !
타다다다다다 ―
현숙은 이를 악물며 다시 기록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청호 길드장이 의식을 잃은 코드 투를 업고 도주 중. 포천, 함락되었습니다.”
타다다다다 ―
현숙이 타이핑한 내용을 대형 스크린으로 확인한 현주가 깜짝 놀라 지희 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지희는 침착하게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를 이어 나갔다.
“변수 발생, 노아즈 아크 측에서 알 수 없는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 씨앗들은 폭발과 함께 대량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중.”
주륵 ―
보고를 이어 나가던 지희는 또 무언가를 본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모, 모든 전선에서… 다중 브레이크 발생.”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마쳤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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