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27화 (227/300)

227화. 사신이 등장함 (4)

10월 26일.

일본, 호주, 브라질, 이집트 대통령이 목이 베어진 시체 상태로 수도 한복판에 떨어진 그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음 암살 예고장이 전달되었다.

10월 30일에 암살이 예정된 나라는 똑같이 4개국.

미국, 그리스, 영국, 인도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이에 인도 대통령은 자포자기한 채로 그동안 고마웠다고 대국민 연설을 했고,

미국 대통령과 영국 총리는 자국의 세계급 헌터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유니버스에선 뭐라고 하던가!”

“여전히 레이드 진행 중이시라고 합니다! 빠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그냥 나오라 그래! 지금 다 죽게 생겼다고!”

미국 토마스 대통령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

불과 일주일 전쯤만 해도 다른 대통령들을 상대로 펜타곤 지하 벙커가 안전한지 실험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지하 벙커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일본 등의 대통령들이 잠적해놓고도 죽임을 당하자 결국 믿을 건 미국의 세계급 헌터들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웬걸?

백악관 집무실로 와보니 암살 예고장이 떡하니 와 있었고, 세계급 헌터 2명은 여전히 시베리아 던전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위험하다는 걸 전달하긴 했지만……!”

전 세계 1위 길드이자 미국 최강의 길드, ‘유니버스’의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백악관의 비서실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전달했는데 뭐!”

“자신들은 대통령의 개인 경호원이 아니니 자신들의 할 일을 계속할 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으드드득 ― !

토마스 대통령이 거세게 이를 갈았다.

그러던 그때,

띠리리리 ―

백악관 집무실의 전화가 울렸다.

“후우…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안정시키려는 토마스 대통령.

5초 정도 흘렀을까.

겨우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토마스 대통령이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토마스입니다.”

{각하! 희소식입니다!}

비서관 중 하나의 들뜬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꾸깃 ―

그러나 그런 비서관의 목소리에도 토마스 대통령은 기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미간만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으니까.

그 어떤 희소식이더라도 별로 달갑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무슨 소식입니까.”

토마스 대통령은 불쾌함을 억누른 채 비서관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비서관에게서 희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

그의 표정이 환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 * *

희소식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인도에도 전해졌다.

그 희소식의 정체는 바로,

[암살 예고장을 받은 그리스 대통령, 코드 제로에게 신변 보호 요청.]

[그리스 정부, 한국에게 호소… “부디 단 하루만 지켜줬으면 한다.”]

그리스 대통령, 미할리스가 코드 제로에게 호위를 요청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미할리스 대통령의 신변 보호 요청에 태운은 협회 본부 협회장실에서 협회 주요 인사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리스 대통령이지 않습니까?”

태운은 그리스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리바이브의 수출을 중단했을 당시, 가장 먼저 한국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전하고 헌터법과 모범 마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국가가 바로 그리스였기 때문.

게다가 하와이 전투 이후 벌인 대대적인 수사에 대한 협조도 가장 열심히 임해주었던 나라가 바로 그리스였다.

심지어 그리스 대통령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노아즈 아크와 연줄이 없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대통령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차피 그 사신이라는 놈을 잡아야 끝나는 일이니까요.”

태운은 동석의 물음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동석은 무언가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괜찮겠나…? 자네 말마따나 이 모든 게 노아즈 아크의 계획이라면…….”

동석의 우려 섞인 말에 강천이 나섰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현재 놈들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전 세계 수뇌부들을 모조리 암살하고 자신들이 건재함을 확인시키는 것. 그리고 그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코스모스의 주 활동 영역인 한국과 중국에다가 던전을 무제한으로 풀고 있는 것이고요.”

태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놈들은 계속 저를 주시하고 있겠죠. 결국 제가 한국과 중국 밖으로 떠나지 않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벌써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리스 대통령이 신변 보호 요청까지 해왔는데…….”

현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태운이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죠. 그러니 이를 이용해야겠죠. 공식적으로는 미할리스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할 겁니다. 놈들이 방심할 수 있도록.”

강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대장이 마음만 먹으면 그리스까지 몇 초 만에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놈들이 암살을 결행하는 시간은 지금껏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예고한 날의 새벽이었죠. 결국 대장이 29일 늦은 밤까지 한국이나 중국 어디에선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코드 제로가 그리스 대통령 경호를 포기했다는 걸 놈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신이라는 자가 하루 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럼 아쉽고 마는 거죠. 다음 날 저는 밀린 던전을 처리하느라 아주 죽어나겠지만… 그래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태운은 자신이 경호를 하든 하지 않든 사신이 나타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암살을 예고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며, 잃어버린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노아즈 아크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는 그 암살 예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하나의 ‘믿음’에서 기인하죠. 그런데 그날 나타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노아즈 아크나 사신의 의도는 한순간에 무너질 겁니다. 결국 놈도 코드 제로가 무서워서 나타나지 않았다라든지, 결국 흉수는 진짜 사신이나 그림 리퍼가 아닌 한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일뿐이라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테니까요.”

“…….”

태운의 확신에 찬 말에 강천을 제외한 헌터 협회 협회장과 부협회장인 동석, 현주는 더 이상 딱히 이렇다 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야 코드 제로의 판단이 여태껏 거의 대부분 들어맞았으며, 그는 무엇이든 거의 완벽하게 해결해온 전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뭔가 불안한데.’

‘뭐지… 이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은?’

코스모스 두 사람을 제외한 두 부부는 알 수 없는 위화감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동석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느낌일 뿐이니까.

또한 이런 불안감은 한중 전쟁 때도, 하와이 정상회담 때도 느낀 바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무색하게도 태운은 그 위기들을 모조리 타파해왔고.

다만, 마지막 남은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동석이 마지막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만약… 이 모든 게 자네를 잡기 위한 커다란 함정이라면… 그땐 어찌할 텐가?”

코드 제로를 잡기 위한 함정.

그 말에 하와이 전투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강천은 몸을 흠칫거리며 태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중간에 던전 속으로 몸을 피하긴 했지만, 중간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인 태운의 모습을 봤던 강천이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났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던전 안으로 들어온 태운의 모습이 꽤나 넝마가 되어 있던 것도 보았었고.

‘도명조가 살아 있으니… 아마 함정이라면 그때 모였던 방주들 이상의 전력이라는 거겠지.’

솔직히 강천으로서는 태운이 누군가에게 패배하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를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일 때도 승리만을 따내던 그였으니까.

헌터가 되고 이제는 세계급이자 EX급으로 올라선 강천 자신조차 여전히 태운의 강함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그런 그가 패배한다?

‘…상상이 안 돼.’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도명조를 비롯한 방주들의 전력을 눈으로 본 적이 있기에 태운이 절대 패배할 리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협회장님.”

태운은 강천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했다.

씨익 ―

가면 뒤에서 미소를 짓는 태운의 표정에는 자신이 당할 것이라는 일말의 우려조차 없어 보였다.

“그 함정, 제가 한두 번 당해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태운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밝게 미소 지었다.

“까짓거, 부수면 그만입니다.”

* * *

30일 이른 아침.

시곗바늘이 어느새 오전 8시 5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30일이 되기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이제 곧 가야겠네?”

유린은 집 안 소파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응. 가야지. 그리스까지 가는 건 금방 간다 치더라도… 그리스 대통령의 관저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

“풋. 그게 뭐야. 어떻게 대륙 건너는 것보다 집 들어서는 시간이 더 걸려?”

“하하. 그렇다고 집 안에 짠! 하고 나타날 순 없잖아. 그래도 예의가 있지.”

그리스행이 결정된 태운은 그리스로 떠나기 몇 시간 전, 잠시 유린의 집에 와 있었다.

던전 처리로 인해 둘 다 너무 바빴던 터라 개천절 이후 또 몇 주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

다행히 30일 하루는 유린이 비번이었고, 전날도 하루 종일 던전 처리로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태운은 그리스 이동 몇 시간 전인 새벽이 되어서야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번인 그날 집에서 하루를 쉬며 보내려던 유린은 새벽녘에 갑자기 찾아온 태운을 잠결에도 반갑게 맞아주었고,

뒹굴 ―

태운은 잠시간이나마 유린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심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왜 우린 매번 큰일 벌어지기 전에만 만날 수 있는 것 같지?”

유린은 자신의 무릎에 누운 태운을 내려다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어? 아니, 저번에 떡볶이 사 들고 왔을 때는…….”

유린의 기습 공격에 당황한 태운의 두 눈이 누운 자세 그대로 동공만 흔들렸다.

“겨우 그거 한 번?”

“…미안.”

진짜 미안해하는 듯한 태운의 표정에 유린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라고 그가 바빴는지 왜 몰랐겠는가?

그냥 오랜만에 만난 그가 반가운 마음에 괜히 장난쳐본 것이었다.

“장난이야. 오빠가 왜 미안해? 많이 힘들지?”

스륵 ―

유린의 살짝 차가운 손가락 끝이 태운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와아아… 힐링 된다. 이 맛에 연애하지.”

태운은 그런 유린의 손길을 느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래. 변태야?”

“좋은 걸 어떻게 해? 몰라. 방금 그거 더 해줘.”

“푸훗.”

유린은 대형견처럼 앙탈(?)을 부리는 태운을 내려다보며 그의 소원대로 계속해서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이제 가야겠다.”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이제 끝을 맺어야 했다.

스윽 ―

자리에서 일어나는 태운.

유린은 태운을 따라 일어나며 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정말 괜찮은 거지?”

유린의 사슴 같은 눈망울이 걱정스러운 듯 태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괜찮다니까.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건 뭐 같은 거라고?”

“…운동회?”

유린의 대답에 태운이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래, 맞아. 운동회. 이번 거는… 원정 운동회인 거지. 저번 거는 홈그라운드 운동회였고.”

“하여간… 말은 잘해요.”

유린은 자신의 집을 나서려는 태운의 품에 폭 안겼다.

“…조심히 다녀와.”

“응. 금방 갔다 올게. 너도 내일 조심히 일하고.”

“응.”

뚝 ―

잠시 불이 꺼진 현관.

현관의 불마저 꺼지자 암막 커튼이 쳐진 집 안은 한밤중인 것처럼 깜깜했다.

두 사람의 입술이 그 아늑한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포개어졌다.

어둠 속에서도 절로 느껴지는 절절하고 애틋한 두 사람의 입맞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절절하고 애틋했던 입맞춤이,

“…어?”

이번 생의 마지막이 될 줄은 말이다.

태운이 그리스로 떠난 30일, 이른 아침.

콰아아아아앙!

한국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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