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목소리가 닿지 못함 (1)
“봉투 필요하세요?”
“그럼 이걸 들고 갈까?”
“아… 그 봉투 하시면 50원 추가되세요.”
“그냥 좀 주지, 거 얼마나 한다고.”
“죄송해요. 저도 알바라서…….”
“쯧. 결제해.”
“네, 네…….”
삐릭 ―
카드기가 울리며 잔액 부족이라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소, 손님? 죄송한데 잔액 부족이라고 뜨는데요…….”
“…뭐? 에이씨! 잠만 기다려봐.”
손님은 잔뜩 인상을 쓰며 자신의 지갑을 마구 뒤적거렸다.
“아씨… 현금 조금 부족한데. 좀 깎아주면 안 되나?”
“네? 손님, 죄송한데 여긴 편의점이라서요. 네고는 안 되세요.”
“아니, 내가 여기 팔아준 게 얼만데! 그것도 네고를 못 해줘?”
“죄송합니다아…….”
“에이씨! 다음에 다시 올게.”
“네, 네… 안녕히 가세요……!”
딸랑 ―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놓은 물건들을 계산대에 그대로 두고 편의점을 나가버리는 손님.
그런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한 남자, 아니 한 소년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
상당히 앳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나이는 한 15살에서 16살쯤 되었을까.
하지만 얼굴은 상당히 동안인 반면, 소년의 큰 키는 그가 결코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주섬주섬.
올해로 18세가 된 소년, 호진은 손님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다시 도로 가져다 놓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애매하게 변성기가 찾아온 소년의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팍 ― !
괜히 진열대에 놓여 있던 과자 봉지 하나를 주먹으로 치며 분풀이하는 호진.
까드득 ― !
그의 잇새로 이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호진.
올해 나이 18세.
그는 불과 작년 초만 해도 사관학교 내에서 귀여움받던 한 소년이었다.
올해로 2학년, 즉 졸업반이 되어 사관학교에 있어야 할 그였다.
그런데 왜 지금 사회에 나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가?
그것도 사관학교가 아니라면 적어도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18세라는 나이에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하아아아…….”
모두 그가 저지른 업보 때문이었다.
* * *
2096년 하반기.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
호진은 당황했다.
여느 날처럼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발견하고 만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그의 몸 곳곳에서 거뭇거뭇한 털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오오……!”
호진은 거울을 보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껏 나이에 비해 훨씬 어린 자신의 몸을 무기로 즐겨왔던 호진.
하지만 사실 호진은 또래에 비해 어린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했다.
창피함, 열등감, 수치심.
또래 친구들을 볼 때면 괜히 그의 머리를 꽉꽉 채우던 감정들.
그래서였을까.
호진은 더욱더 어려 보이는 자신의 처지를 무기로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터, 털이다……!”
이제 그런 감정들과는 당당하게 안녕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 해왔던 누나들에게 안기기는 하지 못하겠지만 호진은 전혀 아쉬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이젠…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겠지!’
곧 나이에 맞게 또래 여자들과 당당하게 교제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호진은 털이 자라남과 동시에 체격 또한 쑥쑥 자라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주의 그와 이번 주의 그의 키가 확연하게 달라 보일 만큼 말이다.
그렇게 마치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던 호진.
불과 몇 개월 만에 20cm 가까이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그 기쁨도 잠시,
“너… 대체 몇 살이야?”
나이를 의심받기 시작했다.
* * *
시작은 자신을 귀여워해주던 누나 중 한 명이었다.
“호진이 말이야… 너무 많이 크지 않았어?”
“그러게. 원래 초등학생이 저렇게까지 클 수 있나?”
처음엔 그저 성장기가 빨리 온 초등학생 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요즘 애들은 빠르더라, 요즘 애들은 뭐 어떻다더라 하면서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 프레임에 덧씌워져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호진.
그러나,
“호진아… 너… 수염 났어.”
옷 바깥으로도 털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호진의 나이에 대한 생도들의 의심이 가속화되었다.
“아무리 키가 빨리 커도 그렇지… 보통 초등학생 때 수염이 나?”
“그러게. 호진이, 학교로 따지면 이제 초등학교 3학년 아니야?”
“응? 호진이 11살 아니었어?”
“어? 10살 아니야?”
“엥? 난 12살인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호진이 나이를 정확히 모르네…….”
의문을 품기 시작한 여자 생도들이 호진에게 다가와 나이를 묻기 시작했다.
“호진아, 근데 너… 대체 몇 살이야? 누나들이 우리 호진이 나이를 모르고 있었네.”
호진은 당황했다.
지금껏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예전처럼 어린아이인 척하기엔 이제 몸이 너무 자라버린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들키면 죽는다!’
지금 나이를 들키면 여태까지 했던 짓들이 모조리 되돌아올 것이었다.
“저, 저 열…둘이요…….”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그 딴에는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정말 열둘 맞아? 그러기엔 우리 호진이, 너무 키가 큰데~?”
평소 가장 많이 안아주고 재밌게 놀아주던 누나 하나가 장난스레 호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 정말 열두 살인데요?!”
호진의 등 뒤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넘어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나는 끈질겼다.
아니, 끈질기다 못해 집요했다.
“그래? 그럼 교관님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 다들 입학할 때 신원 확인 같은 거 다 하고 들어왔으니까 전산 데이터에 있을 거 아니야? 나는 열넷에 한 표!”
“너무하다 너~ 난 호진이 믿어! 나는 열둘!”
“나는 열셋!”
급기야 내기를 시작하는 누나들.
호진의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
눈앞이 새하얘졌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어떤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고,
“가보자!”
교무실로 달려가는 누나들을 차마 붙잡을 수도 없었다.
누나들이 교실을 나가 교무실로 향하고 5분 뒤,
저벅 ― 저벅 ― 저벅 ―
교실로 돌아온 누나들이 호진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사아아아아아 ―
한겨울의 칼바람보다도 훨씬 더 차갑게 변해 있었다.
* * *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 걔 17살이라는데?”
“어? 누가?”
“아니, 걔 있잖아. 이호진이라는 애. 맨날 여자들한테 앵겨 있던!”
“어? 미친… 잠시만… 진짜로?”
“진짜로! 아니, 그 새끼 요즘 갑자기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것 같더라니… 2차 성징이 뒤늦게 온 거였어. 푸크큭!”
“와, 개소름. 여자들은 더 소름이겠다.”
“뭘 소름이냐. 자기들도 좋다고 안으면서 인형처럼 흔들고 난리더만.”
우선 가장 먼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건 남자 생도들의 비웃음이었다.
“어쨌든 저 새끼도 참 미친놈이다. 어떻게 어린애인 척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었냐.”
“근데 어려 보이긴 했어. 나도 초딩인 줄.”
“초딩인 줄 알았는데 알맹이는 사실 17살이라니… 푸핫! 여자들 소름 끼쳐 하고 있을 거 생각하니까 괜히 다 꼬시네.”
“뭐래, 병신이. 맨날 이호진 부럽다고 중얼거릴 땐 언제고.”
“시X 내가 언제 그랬어… 목소리 안 낮춰?”
남자 생도들이 여기저기서 떠드는 말이 모두 선명하게 호진의 귀로 들어왔다.
푹! 푸북!
그들이 뭐라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을 때마다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애초에 남자 생도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던 호진이었으니까.
그를 더욱더 힘들게 한 것은,
사아아아아 ―
한순간에 차가워진 여자 생도들의 태도였다.
저벅 ― 저벅 ―
“아……!”
학교 내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 인사라도 하려 하면,
스윽 ―
그녀들은 그를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다.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가끔 눈이 마주치는 때도 있었지만,
싸늘 ―
그럴 때면 폐부가 아릴 정도로 싸늘한 눈빛만이 호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그녀들이 그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약 호진이 적극적으로 그녀들에게 들이댔었다면 아마 구타를 당했을 수도 있었을 상황.
다행히 호진이 한 것이라곤 그저 약간의 애교를 부리고 시치미를 뗐던 것뿐, 웬만한 스킨십은 거의 누나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되었든 사관학교 내에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버린 호진.
여자 생도들에게는 경멸의 대상, 남자 생도들에게는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하면서 호진은 사관학교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결국 호진은 헌터가 되기를 포기하며 조기졸업을 신청했고,
부스럭 ―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한 채 검정고시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후우우…….”
출렁 ―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호진이 방 안 침대 위로 엎어졌다.
‘공부해야 하는데…….’
침대 위에 엎드린 호진의 눈이 금방이라도 잠들 듯 느릿느릿하게 끔뻑였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 공부하다가 밤에는 용돈을 벌 생각으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호진.
그러나 주말마다 이리 녹초가 되어 다음 날까지 공부를 하지 못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냥 적당한 독서실 알바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독서실 알바의 자격 요건은 최소 성인.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도 미성년자는 잘 채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인 데다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용돈을 탈 수 없었던 호진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뭔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야간 시간이 널널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검정고시… 그까짓 거 뭐… 일주일에 3~4일만 해도 붙을 수 있겠지…….’
나름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반 5등 안을 넘나들었던 호진.
그는 검정고시를 물로 보며 흐릿해진 눈으로 히죽 미소를 지었다.
침대 위에 엎어져 비몽사몽한 얼굴로 사색에 잠겨 있던 호진은,
“몇 시간만 자다가 일어나서… 으음… 음냐…….”
결국 잠이 들었다.
“쿠우우우…….”
그가 잠이 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웅 ―
그의 몸에서 마력이 살짝 요동쳤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로 한 줄기 봄바람이 분 것처럼 미세한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키이잉 ―
극악한 확률성 초자연형 능력이었던 호진의 고유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콰과과광!
“으윽…….”
잠이 든 채로 고유 능력을 발현한 호진은 여전히 괴로운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마치 무언가 차마 보기 힘든 것을 보는 것처럼.
호진의 고유 능력은 바로,
“으윽…….”
미래를 보는 힘, ‘예지몽’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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