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인생은 배움의 연속임 (6)
C급 던전 ‘대지 거북이의 섬’을 홀로 토벌한 동혁.
그 많은 대지 거북이들을 잡으면서 그는 다래에게 단 한 마리도 양보하지 않았다.
“아직 무리예요. 물러나 있으세요.”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이라고는 오직 물러나 있으라는 말뿐.
간간이 멍하니 서 있다 대지 거북이에게 당할 것 같으면,
휘리릭 ― !
동혁은 순식간에 거미줄로 그녀를 구해주었다.
“쿠어어어어!”
콰드득!
거미줄을 마치 그물, 아니 수족처럼 다루며 순식간에 보스를 뒤집어버리는 동혁.
그의 신들린 거미줄 다루는 솜씨는 신화 속 아라크네도 울고 갈 지경이었다.
콰드드득!
웬만한 거암보다도 더 큰 보스 대지 거북이를 뒤집어 배면을 뚫어버리는 동혁.
“쿠어어어어!”
버둥버둥.
몸체가 뒤집혀버린 보스 대지 거북이는 그저 네 다리를 버둥거리기만 하다가 몸통이 뚫려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탁 ―
“후우우우…….”
아무리 C급이라지만 그래도 혼자 토벌하느라 조금 지쳤는지 동혁은 보스의 몸통에서 내려와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
가만히 그런 동혁을 바라보던 다래는 그녀의 만능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다래가 준 수건으로 얼굴과 목의 땀을 닦아내는 동혁.
어느새 땀을 모두 닦아낸 동혁은 수건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이거, 빨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아직도 파악이 덜 된 다래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갈까요?”
“…네.”
C급 던전에서 B급 헌터가 태워주는 버스를 탈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회를 노렸던 다래.
그녀는 그 어떤 마력 수치의 변동 하나 없이,
사박 ― 사박 ―
던전을 나서야 했다.
* * *
던전을 모두 토벌하고 나오니 날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부우웅 ―
조수석에 앉은 다래는 하루 종일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밀려오는 피곤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엄청나게 작은 초소형 던전이었는데 반나절이나 걸렸네요. 역시 혼자 해서 그런가.”
동혁은 홀로 이야기했고, 다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뭐야, 이 사람 대체…….’
온몸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염산 불개미 여왕에게 죽을 뻔했던 날보다 더 맥이 빠지는 기분.
“벌써 10월이네요. 올해도 얼마 안 남았네. 시간 참 빠르지 않아요?”
다래는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제 할 말만 해대는 동혁이 괜히 미워졌다.
결국,
“선배님.”
“네?”
“오늘 저를 왜 부르신 거죠?”
다래는 잔뜩 퉁명스러워진 목소리로 동혁에게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으음…….”
동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도로를 보며 묵묵히 운전할 뿐.
그렇게 한 30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을까.
마침내 동혁이 입을 열었다.
“…술 한잔하실래요?”
“…네?”
다래는 순간 졸음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 * *
24시간 순댓국집에 들어선 두 사람.
“자, 잘 먹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야식이긴 했지만 평소 협회 식당에서 제공하는 점심 외에는 편의점 음식으로만 대충 때우던 다래에게는 놓칠 수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후룩 ―
“하아아…….”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가며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주었다.
까득 ―
어느새 소주 하나를 시킨 동혁.
꼴꼴꼴…….
그는 말없이 다래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짠.”
“짠.”
창!
동혁이 내민 소주잔에 잔을 부딪치는 다래.
꿀꺽 ―
동혁이 연상인 데다가 상급자였기에 다래는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술은 잘해요?”
어느새 한 잔을 다 비운 동혁의 물음에 다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두 병 정도.”
“오, 꽤 잘 마시시네. 저는 1병 반.”
씨익 ―
동혁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딱 한 병씩만 마시죠. 취하면 안 되니까.”
“네.”
꼴꼴꼴…….
동혁은 다시 다래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제, 제가…….”
“아, 고마워요.”
다래는 스스로 잔을 채우려는 동혁에게서 소주병을 받아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스윽 ―
곧바로 마시려는 듯 술잔을 드는 다래.
동혁은 그런 다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바로 드시려고요? 템포가 너무 빠른데…….”
“아, 바로 드시려는 줄 알고…….”
다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시려던 술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까 차 안에서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지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양이 앞에 생쥐가 된 것처럼 정신이 없는 다래였다.
순댓국집에 들어서자마자 왠지 모르게 동혁의 분위기가 상당히 진지해 보인 탓도 한몫 거들었다.
“…후룩.”
다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순댓국을 떠먹었다.
“…….”
동혁은 그런 다래를 빤히 쳐다보다,
“내가 다래 씨를 오늘 왜 불렀는지 궁금하죠?”
마침내 다래가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네.”
다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곧바로 그 흐름을 캐치하여 잘 대답했다.
그러자 동혁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단… 미안해요.”
“…네?”
“저번 고깃집에서 그렇게 말한 거… 그리고 그날 이야기를 듣고도 다래 씨 혼자 보낸 거.”
“…….”
다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뭔가 울컥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슬픈 것 같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가슴 속을 휘젓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생각을 좀 많이 했어요.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자니 뭔가 죄스럽고, 그렇다고 뭔가를 해드리자니 또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동혁의 말에 다래가 살살 고개를 저었다.
“…뭔가를 바라고 이야기했던 건 아니에요.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어쩌다 보니 속에 있던 게 나온 거라…….”
다래는 앞머리를 내리며 살짝 붉어진 자신의 눈시울을 감추었다.
순간 아픈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 탓이었다.
그런 다래의 모습을 보며 동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놓았다.
“그렇게 홀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는 동생들이 그러더군요. 형은 등신이라고.”
“…네?”
동혁의 말에 다래는 어느새 자신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도 모르고 고개를 들었다.
또르르 ―
그녀의 볼 위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늪에 빠진 사람을 보면 일단 손부터 내밀어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자존심 같은 거 신경 쓰다 사람 죽으면 그게 더 멍청하고 나쁜 행동 아니냐. 뭐, 그러더라고요.”
“…….”
다래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래의 눈을 동혁은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리고 또 말하더라고요.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곁에서 편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꿀꺽 ―
동혁은 앞에 있던 술잔을 다래와 부딪치지도 않고 곧바로 목으로 털어버렸다.
탁 ―
탁자 위에 소리나게 술잔을 내려놓는 동혁에게 다래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참 성숙한 동생들이네요.”
“맞아요. 성숙하죠. 대단하기도 하고.”
동혁은 씨익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결정했어요. 다래 씨 옆에 있어 주려고요.”
“…네, 네?!”
다래의 볼이 살짝 빨개졌다.
이게 뭔 이야기인가 싶은 것이다.
“이게 다 뭔 소린가 싶죠? 제가 사실 남에게 빚지는 것도 싫어하지만 누가 저한테 빚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이거예요.”
꼴꼴골…….
어느새 자신의 소주잔에 소주를 채운 동혁은 테이블 위로 소주잔을 내밀었다.
“곁에 있어 주는 정도는 서로 부담 없잖아요? 밥이나 술 정도는 진짜 아무 부담 없이 맨날 사줄 수도 있고요… 그냥…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피식 ―
동혁의 이야기를 듣던 다래는 결국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앞의 이 남자가 뭘 돌려서 말하는 건 줄 대충 알았으니까.
창!
술잔을 마주 부딪치며 다래가 물었다.
“…그래서, 던전에는 왜 데려간 건데요?”
“제가 이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믿고 의지해보라고……?”
그리고 동혁의 어이없는 대답에,
“크흡.”
결국 소리내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선배님이 강한 건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도 직접 보는 거랑 아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그럴 거였으면 좀 날랜 몬스터들 나오는 던전을 고르시지 그랬어요. 그렇게 굼뜬 애들 등딱지 깨부수는 것보단 좀 더 잘나 보였을 텐데.”
“에이, 그렇다고 그런 던전 골랐다가 다래 씨 다치면 안 되잖아요.”
멈칫 ―
동혁의 말에 다래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잔 속의 술을 한 번에 목으로 털어 넣었다.
“크으… 선배님.”
“네?”
“솔직히 말해봐요. 저 좋아하죠?”
“푸웃!”
다래의 돌직구에 자신도 모르게 마시던 술을 뿜어버리는 동혁.
그 탓에,
“…….”
뭔가 데자뷰 같은 장면이 연출되며 다래의 얼굴이 술로 젖어버렸다.
뚝… 뚝…….
그녀의 얼굴과 머리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술 방울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동혁은 상당히 당황해하며 연신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러려던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하아…….”
다래는 식탁 위에 있던 휴지로 톡톡 얼굴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요즘 다들 왜 나만 보면 입안에 있던 걸 뿜을까요.”
스윽 ―
품속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휴대용 드라이기를 꺼냈다.
“꽃을 보면 물을 주고 싶은… 뭐 그런 건가?”
후우우웅 ― !
전원을 켜자 작동하기 시작하는 휴대용 미니 드라이기.
드라이기가 뿜어낸 따뜻한 바람에,
사라락 ― 사락 ―
그녀의 주홍색 긴 생머리가 날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 !
살짝 눈을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에 묻은 술을 말리던 다래.
술이라 금방 말라버리자 곧 드라이기를 끄고 눈을 떴다.
그리고,
“…응?”
눈앞에 입을 살짝 벌린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동혁의 얼굴을 발견했다.
‘…진짜 좋아하나 본데?’
피식 ―
다래는 자신도 모르게 또 한 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배님.”
“…예, 예?”
“입 너무 벌리셨다.”
“……!”
재빨리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뒤로 물러나는 동혁.
그러나 다래의 일침은 끝나지 않았다.
“귀도 너무 빨개지셨는데?”
“예? 예? 아… 더, 더워서! 술 먹었더니 더워서!”
“겨우 두 잔 마셨는데요?”
“세, 세 잔이죠! 세 잔이면 소주 반병! 더, 더울 만하네!”
“한 잔은 저한테 뿜었잖아요.”
“어… 으윽……!”
말문이 막힌 동혁은 양쪽 귀가 빨개지다 못해 얼굴 전체가 빨개지기 시작했다.
텁 ―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누른 동혁은 시야를 포기했다.
“아… 어, 어지럽네에…….”
“흐하핫! 뭐 하시는 거예요? 흐하핫!”
그런 동혁의 모습에 다래는 꽤나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빨개진 동혁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웃음을 터뜨리는 다래.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이구… 청춘이네. 청춘이야.”
순댓국집 사장 할머니는 클클대며 주방에서 웃음을 흘렸다.
둥글던 보름달이 하현달이 되어 기울어가던 그날 밤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서로가 뿜어낸 거미줄처럼 더욱더 끈끈해져 갔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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