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인생은 배움의 연속임 (5)
“…형, 등신이야?”
“……?”
태운의 갑작스러운 욕설에 동혁은 크게 당황했다.
“왜, 왜? 갑자기 뭐가 문젠데?”
태운이 욕하는 걸 처음 본 동혁은 어지간히도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아니, 형.”
태운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다래 씨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그걸 그냥 데려다주고 말았어?”
“그, 그럼 뭘 어떻게 하냐… 집에는 들어가야 할 거 아냐…….”
“와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난 태운은 가슴을 쿵쿵 두드리기 시작했다.
“형 모솔이지?”
뜨끔.
이쯤 되자 동혁은 슬슬 열받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이 그렇게 진지하게 울고 그러는데! 여기서 모솔 이야기가 왜 나와?!”
동혁이 씩씩거리자 태운은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야. 나 없을 때 이 사람들 안 봐주고 뭐 했냐?”
“……?”
동혁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은 태운의 말.
“…지금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동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태운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
“이거, 이거… 대한이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큰형님도 문제가 있었네. 한석이 형도 이런 건 아니겠지?”
자갈밭에 누워 있던 동혁의 머리 위에서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하이~”
바로 강천이었다.
벌떡!
깜짝 놀란 동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나? 나 태운이 형이랑 같이 나왔는데.”
강천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히죽대고 있었다.
“…다 들었어?”
“응.”
동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머리를 감싸 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것들이 또 쌍으로…….”
그때, 태운이 끼어들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야, 강천! 어쩔 거야? 너 때문에 동혁이 형이 바보가 됐잖아.”
“아니, 이게 왜 내 탓이야? 솔직히 이런 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생물학적 본능에 눈치가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거야?”
쌍룡의 극딜에 동혁은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너희! 지금 진지하게 안 들었지?”
“진지하게 들었으니까 이러는 거지.”
태운이 자갈밭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형이 방금 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어?”
동혁은 가만히 두 눈을 끔뻑였다.
“내가 뭐라고… 했지?”
“다래 씨의 모습이 어때 보였냐고.”
태운의 말에 동혁의 표정은 다시 착 가라앉았다.
“나락이라는 수렁에 완전히 빠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버둥거리는 것 같다고… 그래서 많이 지쳐 보였다고…….”
“그래, 그렇게 늪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이 버둥거리면서 말했잖아. 자기가 늪에 빠졌다고. 힘들다고.”
“…그랬지.”
“아니, 근데 이 형이…? 아직도 모르겠어?”
“……?”
태운의 말에 동혁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휴.”
옆에서는 강천이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운은 냅다 동혁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따악!
“으악!”
“형이 지금 뭐 하고 있는 줄 알아? 늪에 빠진 사람이 자기 버둥거리고 있다고 이야기까지 했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지나온 거잖아.”
“……!”
동혁의 표정이 순간 혼란으로 물들었다.
“어… 난 그럴 생각이…….”
“그럴 생각이었든 아니든! 그렇게까지 힘들다고 울면서 말했는데 그걸 그냥 고시원에 데려다주고 그냥 와? 바보 아니야?”
태운의 신랄한 비난에 동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하, 하지만 도움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잖……!”
“그걸 형이 어떻게 아는데?”
“……!”
태운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동혁을 계속 쏘아붙였다.
“왜? 늪에 빠진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다고 자존심이라도 세울까 봐?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잖아. 형이 내민 손이 거절당하는 게 낫지, 지레짐작으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외면하는 게 더 문제 아니야?”
“음음.”
태운의 말에 강천이 옆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도와주기 좀 그러면 하다못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라도 더 들어주든가. 그렇게까지 울면서 신세 한탄하는 사람을 그냥 데려다주고 온 형도 참 대단하다.”
화악 ― !
동혁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마음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하던 것이 무엇인지.
‘다래 씨한테… 참 못 할 짓을 했구나.’
손을 내밀어줄 용기가 없었다면 적어도 이야기라도 더 들어줄걸.
용기내어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낸 사람을 매정하게 집에만 데려다주고 와버렸다.
그런 자신의 어두운 이야기를 어디서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었겠는가?
아공간 주머니에 물건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이유를 지훈과 민지도 모르고 있던 걸 봐서는 그날 다래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는 가장 친한 그들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순간,
‘아……!’
동혁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과를 할 게 아니라 위로를 해줬어야 했어……!’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동혁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순간,
“사람은…….”
태운이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이 답을 내려주었다.
“꼭 직접 도움을 받지 않아도 돼. 그냥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얻을 수 있으니까.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감정이 뭔 줄 알아?”
“…모르겠어.”
스윽 ―
태운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전구처럼 달려 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빛나는 점과 같은 별들이 각기 다른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달리, 커다란 보름달은 혼자 떨어져 지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바로 지독한 외로움이야. 나의 힘듦을,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미치도록 힘들게 하거든.”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잖아?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줘야 살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인간인 거지.”
강천이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동혁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등을 툭툭 치고 있었다.
“자자! 이제 눈치 좀 깠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견적 다 나온 거 아니야?”
“지, 지금 가라고?”
강천의 등쌀에 동혁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뭐래… 형 지금 운전하면 음주운전이거든? 내일 바로 연락하면 될 거 아니야. 아휴! 답답해.”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떠먹여줘야 해? 이럴 바엔 내 자식을 키우지.”
태운의 한숨 어린 중얼거림에 강천은 순간적으로 타깃을 바꿨다.
“오~ 형! 결혼 계획 잡으려고? 벌써? 키야~ 빠르네~?”
“뭐래, 이 자식이! 아주 틈만 나면 나를 놀리려고!”
“악! 아악! 항복! 항복!”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으로 강천에게 헤드록을 건 태운.
은근히 철이 덜 든(?) 두 사람이 그렇게 자갈밭에서 뒹구는 동안,
‘내일…….’
동혁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아아아…….
며칠간 얹혔던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혁이었다.
* * *
다음 날 오후.
빵빠앙 ― !
노량진 근처 고시원이 모인 고시촌 부근 사거리는 그날도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
주홍색 긴 머리를 쫙 끌어당겨 묶은 한 여인이, 사거리로 나가는 도로 골목 쪽에 서 있었다.
빵!
짧은 경적 소리가 울렸다.
스윽 ―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우웅 ―
회색 SUV 한 대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아니요.”
“얼른 타세요!”
남자, 동혁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네, 네.”
여인, 다래는 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또 밝아진 그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며 얼떨결에 그의 차에 탔다.
“저를… 왜 보자고……?”
차에 타자마자 용건을 묻는 다래.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대뜸 동혁에게서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 시간 돼요? 한번 보시죠.]
목적이나 용건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던 동혁.
예비조원인 다래는 원래 오늘 방마트럭 고속 주행 연습이 있는 날이었지만,
[오늘 저 운전 연습이 있는 날이라서…….]
[아, 그거 오늘 없어요. 제가 이야기해놨거든요.]
[네? 어떻게……?]
[그럼 시간 되는 거죠?]
동혁에 의해 스케줄이 변경되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동혁을 만나러 나온 다래.
그리고 동혁은 그런 그녀의 의문을 곧바로 풀어주었다.
“저 오늘 솔로 레이드 뛸 건데. 같이 가시죠.”
“…네?”
“아 참고로 C급 던전이에요.”
“…네에?”
“들어가는 인원은 저랑 다래 씨, 딱 둘만.”
“…네에에?!”
다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 * *
C급 던전, ‘대지 거북이의 섬’.
헤엄을 못 치고 땅에서만 사는, 커다란 거북이들이 잔뜩 기어 다니는 섬이 바로 오늘의 던전이었다.
“조심하세요. 움직임은 엄청 느린데 방어력이랑 공격력은 엄청나거든요.”
휙 ―
동혁이 경고를 하며 대지 거북이 한 놈에게 주먹만 한 돌을 하나 던졌다.
콰직!
마치 개구리나 카멜레온이 혀를 내밀어 파리를 잡듯이, 대지 거북이는 짧은 고개를 쭉 내밀어 순식간에 날아오는 돌을 입으로 물어 부숴버렸다.
후두둑 ―
무슨 과자처럼 순식간에 부서지는 돌멩이.
놈들의 치악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둘러싸이지 않게 빨리 이동합시다!”
“네, 네!”
얼떨결에 동혁을 따라 C급 던전에 들어온 다래는 잔뜩 긴장한 몸을 삐그덕거리며 움직였다.
그러나,
부르르 ―
과도하게 긴장한 몸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삐끗 ―
동혁의 뒤를 따라 대지 거북이들의 사이로 이동하던 다래의 발목이 살짝 뒤틀리며 그녀가 중심을 잃었다.
“……!”
다래의 신형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대지 거북이의 쪽으로 기울었다.
쑤욱 ―
돌멩이를 부숴버린 것처럼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다래의 옆구리를 향해 목을 뻗는 대지 거북이.
그러나,
“어딜.”
그보다 먼저 동혁의 손에서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촤라락 ― !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휘감는 동혁의 거미줄.
휙 ― !
콰득!
대지 거북이의 아가리가 다래의 몸을 물어뜯기 전에 동혁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착 ―
마치 영화의 한 여주인공처럼 동혁에게 날아와 안기는 다래.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얼떨떨해 보였다.
“괜찮아요?”
“아… 네.”
다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거지.’
이 사람은 왜 예비조원인 자신의 스케줄까지 멋대로 바꿔가며 자신을 만나고자 한 것이며,
F급이나 E급도 아닌 C급에 데려와 나를 무섭게 하는 것인지.
며칠 전에 자신이 울면서 했던 신세 한탄 때문에?
사박 ― 사박 ―
동혁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뒤를 따라 걷는 다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를… 동정하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라도 동정할 테니까.
아마 자신이 누군가의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동정했을 터였다.
문제는 눈앞의 이 사람이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가버렸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뒤늦게 후회해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자신을 데려다주고 그냥 가버렸던 게 마음이 걸려서, 뭔가 해주려고 이러는 가능성이 제일 컸다.
그 수단이 C급 던전에서 버스를 태워주는 거고.
꽈악 ―
순간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다고 생각한 다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동정이라도 상관없어. 이건 기회야.’
B급 헌터가 태워주는 C급 던전 레이드 버스.
이건 정말로 크나큰 기회였다.
B급 헌터인 동혁이 도와준다면 서너 마리, 아니 한두 마리만 잡아도 그녀의 마력 수치는 크게 오를 터.
그렇게 1차 각성을 이룬다면 델타조 승급은 물론, 동물형 능력자인 그녀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빚도…….’
슬쩍 ―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 채 뒤따라오는 다래를 몰래 흘끔거리는 동혁.
“…….”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콰직!
“……?”
다래의 예상과는 달리, 동혁은 던전을 혼자서 토벌해버렸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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