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인생은 배움의 연속임 (2)
“푸하아……!”
아공간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인 예비조원, 천다래가 시원한 숨을 토해냈다.
“나 물 다 마셨는데… 혹시 남는 물 있어?”
그런 그녀에게 예비조원 동료, 김지훈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씨, 그러니까 내가 진작 체크 좀 하고 다니랬잖아.”
쑤욱 ―
잔뜩 투덜거리면서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새로운 물병을 꺼내 김지훈에게 건네는 천다래.
“어… 혹시 하나 더 있어? 히히…….”
그러자 또 다른 예비조원 장민지도 혀를 살짝 내민 채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너희 뭐냐? 아주 나한테 빌붙기로 작정을 했구나?”
천다래는 또다시 투덜대면서도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물병을 꺼내주었다.
천다래가 준 물병으로 목을 축이며, 마치 도라에몽 같은 그녀의 아공간 주머니를 바라본 김지훈은 살짝 혀를 내둘렀다.
“…대체 그 아공간 주머니 안에는 뭐가 얼마나 들어 있는 거야?”
“얼마나 들어 있긴, 뭐가 얼마나 들어 있어? 당연히 두 달 치 생존 품목들이지!”
“두, 두 달……?”
천다래의 대답에 질문을 던진 김지훈은 물론이고,
“푸웃!”
물을 마시던 장민지도 놀랐는지 마시던 물을 뿜어냈다.
어쩌다 보니 천다래에게 물을 뿜게 된 장민지.
뚝뚝…….
장민지의 미스트 세례에 맞은 천다래의 머리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
놀란 김지훈이 입을 틀어막았고,
“미, 미, 미, 미, 미안해……!!!”
마찬가지로 당황한 장민지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아이씨……!”
물을 달라고 해서 물까지 줬는데 자신한테 물을 뿜었다?
누가 당했더라도 화가 날 상황이었다.
꾸깃 ―
천다래도 상당히 화가 났는지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이런……!’
몇 발자국 떨어져 쉬면서 그들을 지켜보던 오늘의 예비조 지원 교관, 동혁은 혹시나 싸움으로 번질까 싶어 금방 움직일 자세를 취했다.
스윽 ―
천다래의 손이 그녀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녀의 허리춤에 메어져 있는 검을 빼 들려는 모양새.
멈칫.
재빨리 세 사람의 사이로 파고들려던 동혁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야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은혜를 아주 원수로 갚는구나?”
검이 아닌 드라이기였으니까.
아공간 주머니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든 것이었다.
후우우웅 ― !
그녀가 전원을 켜자 작동하기 시작하는 휴대용 미니 드라이기.
드라이기가 뿜어낸 따뜻한 바람에,
사라락 ― 사락 ―
그녀의 주홍색 긴 생머리가 날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화가 날 상황임에도 짜증을 내지 않고 묵묵히 젖은 머리를 말리는 그녀.
사라락 ―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화끈 ― !
어느새 동혁의 양쪽 귀는 본인도 모르게 새빨개져 있었다.
* * *
예비조의 보스 레이드는 잡몹들보다 오히려 쉬웠다.
곤충형 몬스터들 중에서도 개미류 몬스터는 특히나 보스가 쉬운 유형이었으니까.
군집 생활을 하는 개미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어마어마한 수였는데, 잡몹들을 모두 처리하고 홀로 남은 보스인 여왕개미들은 혼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퓨뷰븃 ― !
혹여나 예비조원들의 부상을 염려한 동혁이 염산 불개미 여왕의 꽁무니를 거미줄로 틀어 막아주었기에, 예비조원들은 힘만 세고 굼뜬 여왕의 턱만 조심하면 되었다.
촤악!
천다래와 김지훈의 칼날이 염산 불개미 여왕의 등판을 베어냈다.
“키이이이익!”
등판에서 불그스름하지만 투명한 진물을 흘려대는 염산 불개미.
보스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등판이 쉽게 노출된 것이다.
잡몹들이 소형견 크기인 반면 여왕은 거의 사자나 호랑이 같은 대형 맹수만 한 크기임을 감안하면 보스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촤악! 촤악!
“키이이이익!”
오히려 예비조원들에게는 너무 작은 잡몹들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편한 크기였다.
가장 큰 무기이자 비장의 패인 염산을 쏠 수단이 막혀버린 상황.
결국 시종일관 예비조원들에게 몸을 베이며 밀리던 염산 불개미 여왕은 동귀어진을 택했다.
파바박 ― !
턱을 휘두르며 서서히 뒤로 물러나던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자,
“허업!”
쿠당!
공격을 위해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천다래가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캉! 캉!
거대한 가위 같은 놈의 큰 턱이 딱딱 부딪치며 천다래의 안면을 향해 쇄도했다.
“천다래!”
“다래야!”
깜짝 놀란 김지훈과 장민지가 얼른 그녀를 구하려 했지만,
파바박 ― !
훨씬 더 가까이 있던 염산 불개미 여왕보다 먼저 그녀에게 도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헌터가 잘 죽지 않는다지만 머리, 특히 뇌를 공격당하면 쉽게 죽기도 한다.
뇌를 다치면 자가회복을 쓰기가 어려우니까.
때문에 헌터들은 항상 머리 쪽에 어느 정도 강화를 하며 신경을 쓰고 전투에 임하지만, 그런 사고는 은근히 종종 일어났다.
“꺄악!”
바로 이렇게 겁을 먹고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풀리는 초보자의 경우에 말이다.
쉬이이이익!
질끈!
자신의 미간을 향해 정면으로 파고들어오는 여왕의 칼날 같은 큰 턱에 놀란 천다래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아버렸다.
부분강화로 머리를 보호할 생각 같은 건 들지도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어서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단 충동만이 온통 가득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덜덜덜……!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마비된 이성은 그녀의 사고 회로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키이이이이익!”
여왕의 큰 턱에 그녀의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
“으아아악!”
“꺄아아악!”
달려가던 두 사람마저 차마 그 장면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감아버렸다.
애초에 실전반이 아닌 강화반에서 사관학교를 졸업한 세 사람이었다.
아무리 예비조에 몇 년이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전반에서 매일 던전을 돌며 졸업한 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실전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니 자주 나오는 실수.
그들이 부족한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쉬익 ― !
바로 교관의 존재였다.
슈칵!
바람처럼 날아든 동혁의 강화된 손날이 여왕의 목을 단번에 베어냈다.
툭 ―
데구르르…….
몸을 덜덜 떨며 주저앉아 있는 천다래의 앞으로 떨어져 굴러간 여왕의 커다란 머리.
여왕의 턱 끝이 그녀의 무릎에 살짝 닿자,
흠칫!
부들부들 떨던 그녀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경련을 일으켰다.
죽을 뻔한 천다래와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할 뻔한 다른 두 사람.
그렇게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아이고… 이건 또 어떻게 케어하냐.’
동혁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 * *
예비조 레이드를 마친 그날 저녁.
동혁은 놀란 세 사람의 심신을 위로하고 달래주기 위해 그들을 소고기 집으로 데려갔다.
A++등급 한우가 불판 위에 올려지자,
치이이이이 ― !
듣기만 해도 군침이 고이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우며 맛있는 냄새가 꽃향기처럼 퍼져 나갔다.
“와아아…….”
“하, 한우…….”
아직 수입이 적은 예비조 세 사람은 실로 오랜만… 아니, 거의 처음 보는 A++등급의 한우를 보며 군침을 뚝뚝 흘렸다.
세 사람 다 아직 표정이 약간 굳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던전에서의 일 때문인지, 임시 교관인 자신과의 자리가 어색해서인지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에,
‘괜히 걱정했나?’
동혁은 다행이라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자, 어떻게 구워줄까요? 다들 뭐 좋아해요? 레어? 미디움? 웰던?”
“미디움이요!”
“저도 미디움!”
“…저는 레어요.”
미디움을 좋아한다는 김지훈과 장민지와는 달리 홀로 레어 취향인 천다래.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동혁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와, 나도 레어 좋아하는데.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하는 건가?”
그런 동혁의 말에 지훈과 민지가 맞장구를 쳤다.
“대박! 거미 능력자들은 다 레어를 좋아하나 봐요.”
“레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미 능력자가 되는 거 아니야?”
“…그게 그거 아닌가?”
“…엥, 조금 다르지 않나?”
동혁과 다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둘 다 거미 능력자라는 것.
동혁의 고유 능력은 ‘타란툴라’였고, 다래의 고유 능력은 ‘무당거미’였다.
세 사람이 혹시나 아직 긴장하고 있을까 싶어 농담을 던져본 동혁은 오늘 큰 위기를 겪었던 다래의 표정을 살폈다.
“…그게 뭐야.”
피식 ―
다행히 갑분싸 급의 농담은 아니었던 듯 다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도 풀어진 다래의 표정을 보며 내심 안심한 듯 조금 더 표정이 편안해졌다.
어느 정도 분위기를 풀었다 싶은 동혁은 마음을 한시름 놓으며 열심히 고기를 구워주었다.
치이이이이 ― !
헌터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얌얌.”
“하압.”
“냠냠.”
세 사람의 입 속으로 한우가 끝없이 들어갔다.
동혁은 고기를 굽느라 거의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A++등급 한우를 10인분이나 해치운 세 사람.
흘끔.
슬슬 눈치가 보이는지 지훈이 동혁에게 말을 걸었다.
“저… 선배님… 이제 제가 굽겠습니다. 선배님은 드시지도 못하고…….”
지훈의 말에,
우뚝 ―
홀린 듯이 한우를 흡입하던 다래와 민지의 젓가락질이 얼어붙은 듯 멈추었다.
누가 봐도 상황 자체가 조금 실례인 듯했으니까.
“제, 제가 구울게요!”
“아, 아니! 제가 할게요! 선배님은 많이 드시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서로 고기를 굽겠다고 나서는 세 사람.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동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니에요. 더 먹어요. 저는 천천히 먹으면 되니까. 어차피 다들 아직 배 안 찬 거 아니에요?”
흠칫!
동혁의 말에 세 사람의 몸이 살짝 떨렸다.
너무 많이 먹어서 미안한 것이다.
“그… 저는 괜찮아요.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서…….”
다래가 뭔가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 저도 괜찮아요!”
“저, 저도요!”
지훈과 민지도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배를 두드렸다.
그러나,
툭 ― 툭 ―
여전히 텅 빈 듯한 그들의 뱃소리가, 그들이 아직 덜 먹었음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푸핫!”
그 모습에 동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었다.
“여기요! 갈빗살로 4인분 추가요!”
“네~!”
한우집 사장님은 매상을 톡톡히 올려주는 동혁 일행의 테이블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들 부족한 거 아니까 많이들 먹어요.”
“하, 하지만… 선배님께 너무 부담이…….”
다래가 어떻게든 거절하려 했지만,
“아니, 이분들이 베타조의 재력을 뭐로 보고?! 이 정도 여유는 있어요.”
동혁은 정말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뒤이은 그의 한마디에,
“그리고 자꾸 선배님, 선배님 하시는데 따지고 보면 여러분이 제 선배님인데요? 저 아직 사관학교 졸업한 지 1년도 안 됐…….”
사아아아 ―
세 사람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앗……!’
순간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동혁이 재빨리 입을 닫았지만,
““…….””
이미 세 사람의 고개는 푹 떨구어진 뒤였다.
‘아… 망했네.’
동혁은 자신의 입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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