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라이벌은 성장에 좋음 (5)
헌터는 잘 죽지 않는다.
자가회복이라는 비장의 수단이 있으니까.
하지만 헌터가 전투 중에 죽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4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마력 수치가 다해 더 이상 자가회복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지만 웬만한 B급, C급 헌터만 되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부상에서 십수 차례는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이 부족하다 싶을 때 도주하면 그만이었다.
결국 첫 번째 경우는 거의 없고, 헌터가 죽는 경우는 거의 다른 경우에 한했다.
헌터가 죽는 경우의 수, 두 번째.
기절한 상태에서 공격받았을 때였다.
기절한 상태에서는 자가회복을 할 수 없으니까.
보통 머리에 커다란 충격을 받거나 할 때 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혹시나 기절하여 무방비하게 공격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헌터들이 여럿이서 파티를 이루는 것이었다.
헌터가 죽는 경우의 수, 세 번째.
즉사할 정도의 공격을 받는 경우였다.
가끔 존재했다.
몬스터의 공격에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거나 심장이 뜯어져 나가는 일들이 말이다.
헌터는 아주 희미한 의식만이 남아 있어도 자가회복을 할 수 있지만, 즉사 수준의 공격을 받으면 회복을 할 수 없기에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헌터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경우의 수인 네 번째.
바로,
“크허어어어어어엉!”
몬스터 떼에 둘러싸여 자가회복으로도 버텨낼 수 없는 수준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 !
숲속 너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다!”
긴장한 기색의 정태가 마력 유형화로 전신에 갑주를 만들어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어마어마한 기척이 몰려오고 있는 숲속 너머를 바라보는 박대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S급 헌터이자 현무 길드의 전 마스터였던 그가 울릉도 던전에서 죽은 이유.
그건 바로 이와 같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려서였다.
―크아아아악!
―젠장! 대상아! 다른 사람들 데리고 일단 튀어라!
―마, 마스터!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뭐긴 뭐야! 누군가는 어그로를 끌어야 살 것 아니냐!
―스승니이이이이임!!!
웬만해서는 일제히 달려드는 경우가 잘 없었다.
던전이 워낙 넓기도 하고 딱히 전투가 아니라도 던전 내부에는 여러 가지 소음들이 섞여 있기 때문.
애초에 몬스터들끼리도 가끔 싸우기 때문에 헌터들과 일부 몬스터들이 전투를 벌인다고 해서 먼 곳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본래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이거나,
“커허어어어어어어엉!”
몬스터 개체 자체가 지닌 기감 자체가 지나치게 뛰어난 경우였다.
이 던전의 경우엔 명백한 후자였다.
콰직! 콰직! 쿠구구구구궁 ― !
숲속 저편의 나무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으스러져 가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렇게 쓰러지는 나무들의 향연은 어느새 그들이 있는 곳 근처까지 와 있었다.
꾸드드득……!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던 박대상이 두 주먹을 거세게 말아쥐었다.
“…후퇴해야 한다! 다행히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야 해!”
울릉도 던전에서 당시 파티가 빠르게 도주하지 못했던 이유.
몬스터 웨이브가 던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을 때 발생했기 때문.
아마 이도천의 어그로가 아니었다면 그날 함께 들어갔던 S급 헌터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팍 ― !
박대상이 옆에 있던 호백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후퇴해야 한다고!”
그러나,
“…….”
호백은 뭔가 멍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뭘……?”
박대상의 시선이 호백의 시선을 따라 돌아가고,
“……!”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발견한 박대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쿠궁……!
거대했다.
방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그들 쪽에,
쿠구구구……!
일반적인 포대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거대한 포대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쯧, 원래 소환 잘 안 하는데…….”
강천이 혀를 차며 거대한 포대를 숲속 너머로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유 능력 ‘무기’.
본래 신체 변형을 위주로 전투하던 강천의 능력은 몸을 무기로 변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환도 가능했다.
하지만 소환하는 순간 일체감이 옅어져 다루기가 힘들어졌기에,
“끄응…….”
더 큰 신경을 써야 하는 무기 소환은 웬만하면 잘 하지 않아 왔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 !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 막대한 기운이 포대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룡 길드장님! 시간 좀 벌어줘요!”
박대상의 의견처럼 일행들과 던전 밖으로 대피하기 위해 변신을 풀고 내려오려던 천용이 강천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거대하긴 했지만 조금은 희한하게 생긴 포대였다.
그러나 무기 전문가나 밀리터리 덕후가 아닌 이상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는, 조금 생소한 형태의 거대한 무기.
하지만 천용은 강천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코드 제로가 가장 신임하는 이가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쿠르릉 ― 콰르릉 ―
거대한 청룡의 전신이 하얀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기다란 몸통 전체에서 튀어 오르기 시작하는 백뢰.
전신이 하얗게 물들다 못해 청룡의 금빛 용안마저 하얗게 물드는 순간,
[백룡화(白龍化)]
[백천백뢰(白天百雷)]
꽈르르르르르릉!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하늘이 잠시 하얗게 물들었다.
마치 코드 제로가 선보였던 붉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콰지지지직! 파지지지직!
콰르르릉! 콰르르릉!
일백 개의 새하얀 줄기가 숲속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가려진 두룡미사 떼의 가장자리 부분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마치 일백 개의 하얀 창살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옥이 숲 위를 둘러싸자,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엉!”
“샤아아아아아아!”
깜짝 놀란 두룡미사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공중에 떠 있는 하얀 용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
두룡미사들의 공격적인 음파가 천용의 내부를 뒤흔들고 있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대충 어림잡아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두룡미사들의 집중 포효에,
울컥……!
내부가 진탕된 하얀 용의 입가로 붉은 피 한 줄기가 흘러나왔다.
“아직 멀었습니까……!”
백룡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하늘에서 흘러내리고,
“…고생했습니다!”
‘인간병기’의 목소리가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처컥 ―
키이이이이이이잉……!
천용이 벌어준 시간 내내 모여들던 막대한 마력의 응집 소리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
듣는 이로 하여금 간담이 절로 서늘케 하는 정적이 짧게 이어진 뒤,
“…덕분에 먼저 올라갑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강천의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포대가 발사되었다.
[초대형전자가속포(超大型電子加速砲)]
[레일건(RAILGUN) ― 최대출력 ver]
지지지직……!
콰후우우우우우웅 ― !
어마어마한 듯 어마어마하지 않은 묵직한 굉음과 함께 한 줄기의 붉은 선이 강천의 전방에 그어졌다.
―――――!
다시 한번 순간적인 정적이 흐른 뒤,
쿠와아아아아아아아 ― !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후폭풍이 몰려들었다.
“미, 미친……!”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란 호백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덜덜덜……!
정태는 두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
박대상은 두 눈을 부릅떴고,
“어우야…….”
호성은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역시……!”
두룡미사들의 거친 음파를 온몸으로 견뎌내던 천용은 하늘 위에서 강천이 만들어낸 광경을 내려다보며 역시! 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후두둑 ―
레일건의 전자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초고열일 텐데도 희미한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공격반경 가장자리에 살아 있는 나무들은 전자포와 접촉한 부분이 까맣게 그슬렸을 뿐.
단지 직격당한 부분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을 뿐이었다.
“크르르르르르……!”
운 좋게 전자포의 반경 밖에 있던 두룡미사들이 멍하니 서서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달려들던 것은 분명 자신들 쪽이었는데,
“샤아아아아……?”
무언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동료 수십 마리가 사라졌으니까.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매캐한 탄내와 신체의 일부 조각들만이, 동료들이 흔적도 없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커허어어어어어엉!”
“크허어어어어엉!”
쿵! 쿵! 쿵!
운 좋게 살아남은 두룡미사들이 S급 헌터 일행에게 달려들던 방향의 반대쪽… 아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산산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저 알 수 없는 공격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하려면,
“크허어어어어엉!”
“샤아아아아아!”
최대한 흩어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말이다.
“도, 도망간다……?”
사라진 숲 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하는 두룡미사들을 보며 박대상이 중얼거렸다.
‘S급 몬스터들이… 도망가……?’
울릉도 던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때 도망쳤던 것은 헌터 쪽이었으니까.
몬스터 떼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들은 던전 밖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들어갔다.
던전 외곽을 전전하며 던전 내 몬스터 수를 조금씩 갉아먹는 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반대였다.
알아서 흩어져 사라져준 몬스터들.
외곽을 전전할 필요 없이 이제 그냥 가서 잡으면 되는 문제였다.
물론 한 마리씩 잡더라도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니,
‘저자… 아니, 코스모스는 대체……!’
이미 대량의 두룡미사들을 일격에 처리한 코드 원이 함께라면 쉬울 것이 분명했다.
협회의 간판, 코스모스.
코스모스의 간판, 코드 제로.
코드 제로도 아닌 코드 원이 이 정도다.
그렇다면 코드 제로는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하긴… 그러니까 중국을 홀로 박살내고, 방주들을 홀로 몰살시킬 수 있었겠지……!’
박대상이 그렇게 혀를 내두르는 사이,
“…코드 원, 괜찮아?”
강천의 뒤에서 대기하던 태성이 가만히 얼어붙은 듯 서 있는 강천에게 말을 걸었다.
강천의 강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태성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헌터 짬밥이 있지, 아직 강천을 한편으로는 신입이라 생각하고 있는 태성으로선 선배로서 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
하지만 강천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그냥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미동조차 없었다.
“…응?”
태성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가면 속 강천의 표정을 살폈다.
“……!”
‘…기, 기절했잖아?’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쏟아부은 강천.
S급에 달하는 마력을 한 번에 죄다 쏟아부은 엄청난 탈력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순간 선 자세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풀썩 ―
태성은 강천을 풀밭에 고이 눕혀주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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