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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07화 (207/300)

207화. 라이벌은 성장에 좋음 (1)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한 횟집.

그 횟집에서,

“크으!”

두 명의 남자가 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시원하게 목구멍으로 때려 넣고 있었다.

“크으~ 좋구만. 아주 좋아! 이게 얼마 만의 술자리인지 원……!”

하얀 백발의 거한, 정호백이 소주를 때려 넣은 뒤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며 소주의 쓴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하긴… 수고가 많았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청장발의 사내, 김천용은 살짝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정호백의 술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고생했지! 아암! 드럽게 고생 많이 했지.”

합 ―

정호백은 광어회 한 점을 초장에 푹 찍어 먹으며 잠시 눈을 감은 채 회와 초장의 맛을 음미했다.

“길드가 던전 조사라니… 말 다 했지. 그동안의 손해가 아주 막심하다고. 그 시간 동안 레이드를 했으면… 후우…….”

한국의 전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여러모로 갈 길이 먼 다른 나라들을 돕기 위해 전 세계의 인력을 지원했던 한국 헌터 협회.

협회의 최중요 전력인 코스모스가 거의 항상 해외를 쏘다니게 되었을뿐더러, 알파조마저 한 달의 반 이상을 해외 지원을 위해 출국하자 자연스레 한국 내 던전 조사 일에는 다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솔직히 할 일 없으시죠?

―…네?

―어차피 3대 길드는 돈 많잖아요. 몇 달만 좀 도와주세요.

이에 던전 관리 공백과 협회 직원들의 과로나 번 아웃을 우려한 태운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3대 길드장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청룡과 백호 그리고 현무는 협회의 해외 원조가 끝날 때까지 던전 레이드를 하지 말고 던전 조사만 해달라 요청했다.

길드 수입의 원천인 던전 레이드를 하지 말라는 부탁은 솔직히 무리에 가까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해외와 국내를 전전하는 코드 제로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길드장들이었다.

무엇보다 길드장들을 비롯한 모든 한국인은 코드 제로에게 커다란 빚이 있었기에,

―…알겠습니다.

―후우…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돕도록 하죠.

3대 길드는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 던전 조사 작업에만 힘을 쏟아부었다.

이에 신이 난 건 3대 길드가 아닌 다른 길드들.

3대 길드가 선점하던 대량의 고위 던전들이 시장에 풀리자,

―이게 얼마 만의 A급 던전이냐!

―B급 물량 대박!

10대 길드들을 비롯한 중소 길드들도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며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비록 3~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몇 달 전에 비해 대한민국 길드 헌터들의 전력이 1.4배나 상승했다는 보고 자료가 있을 정도.

물론 다른 길드들과 3대 길드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밑의 길드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며 초조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10대 길드에선 A급이 최소 한 명씩 늘어난 건 알고 있냐? 이러다 진짜로 따라잡히는 거 아닌지 몰라…….”

“다른 10대 길드들과 3대 길드의 A급 헌터 수는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뭐 한두 명 가지고 그래.”

“조금이나마 따라잡혔다는 게 중요한 거다! 이 태평한 자식!”

호백의 성질에 천용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가서 따지지 그러나? 왜 협회가 할 일을 우리한테 떠넘기냐고 말이야. 그 사람은 아주 깨어 있는 사람이라 그 정도 불평은 들어줄지도 모르지.”

“에엥?”

호백은 천용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깨어 있다고? 참나, 내 대가리가 안 깨지면 다행이지. 그리고 인간적으로 누가 봐도 세상 그 누구보다 빡빡하게 사는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럼 그냥 도의적인 일, 잠깐 했다 생각하고 참아. 고작 몇 달 협회 일 좀 도운 것 가지고 뭘 그래?”

“에이씨… 불평도 못 하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쭈욱 ―

호백은 혀를 차며 다시 소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어쨌든 끝났다, 끝났어! 커으~”

소주를 털어 넣은 호백은 횟집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어차피 횟집을 전세 내고 먹고 있는 데다가 마루형 횟집이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질겅질겅…….

천장을 보고 드러누운 자세로, 별도로 시킨 마른오징어 하나를 입에 넣고 씹는 호백.

그의 표정이 조금은 나른해 보였다.

“후우… 뭔가 요즘 현타가 많이 온단 말이지. 뭘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고… 돈이야 썩어나도록 많지만 딱히 쓸 데도 없고 말이야.”

“…그럼 연애라도 해라. 결혼은 안 할 거야?”

천용의 말에 호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주제에 무슨 결혼이냐. 내가 결혼하면 아마 내 마누라는 속 터져 죽을 거다. 이놈의 자식은 나이 먹고 왜 이리 철이 안 드냐면서 말이지.”

“하긴 그래.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되어 있는걸?”

찌릿 ―

호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술을 홀짝이는 천용을 노려보았다.

“자기도 여자친구 없는 주제에…….”

“…나 있는데.”

“……!”

호백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벌떡!

어찌나 놀랐는지 튀어 오르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호백.

백발의 거한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마치 설인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친! 언제! 누구랑! 개자식아!”

“…물어볼 거면 물어보고, 욕을 하려면 욕을 해라. 인마.”

천용은 연어 회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그의 여자친구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확인한 호백은,

“…어?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

너무나도 낯이 익은 얼굴에 말을 더듬었다.

“당연히 많이 봤겠지. 협회 던전 접수처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흐억!”

놀란 호백이 자신도 모르게 천용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파앗 ― !

전 대한민국 최강자답게 회 접시 위로 떨어지려는 핸드폰을 가볍게 낚아채는 천용.

찌릿 ―

천용은 회 위로 떨어질 뻔한 여자친구의 사진을 구해내며 호백을 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이고 나발이고! 야! 너 대체 언제부터……!”

“한… 두 달 정도 됐지.”

“두, 두 달?”

천용의 말을 들은 호백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두 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 설마… 몇 달 전에 던전 조사 보고서 핑계로 번호 딴 거, 그거 수작이었냐?”

“크, 크흠.”

천용은 민망한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던전 조사가 처음이라는 핑계로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있으니 직원 중 아무나 번호를 달라고 하던 천용.

그중에서 굳이 접수처 직원의 번호를 받아 가더니…….

“이 늑대 새끼가!”

“늑대라니? 난 용이다.”

“닥쳐! 이 뱀 같이 요망한 녀석아!”

그게 그때부터 시작된 수작질이었을 줄이야.

―오, 그럼 난 너 통해서 물어본다? 귀찮았는데 잘됐네. 큭큭.

별 대수롭지 않게 그런 천용을 보며 오히려 어색하게 협회 직원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좋아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괜히 한심하게 느껴지는 호백이었다.

“이 나쁜 자식! 너는 끝까지 나랑 같이 솔로부대일 줄 알았는데!”

“…그거, 뭔가 기분 나쁜데?”

풀썩 ―

다시 횟집 바닥에 드러누워버리는 호백.

그의 얼굴엔 한없이 커다랗고 깊은 현타가 찾아와 있었다.

“인생사 무념무상… 공수래공수거라 했다… 벌거벗은 채 태어났으니 벌거벗은 채 가련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전 재산부터 기부나 해라.”

빠직 ―

천용의 태클에 열받은 호백은 이에 맞받아치려다,

“에휴……!”

힘이 탁 풀렸는지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짜식이… 연애를 시작했는데 베프한테 말도 안 해주고 말이야…….”

“네가 안 물어봤잖아.”

“저저, 말하는 거 봐라. 참 이쁘게도 말한다. 이 새끼야.”

호백은 혀를 차며 가만히 회를 먹고 있는 천용을 흘겨보았다.

“에잇, 커플들… 다 지옥에나 가버려라.”

“…라고 솔로가 말했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네… 야, 너 호성이도 이렇게 기만하냐?”

호백의 입에서 민호성의 이름이 언급되자 천용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호성이는 아직 모른다. 최근까지 엄청나게 바빴거든. 청룡 길드에 없었어.”

“…응? 어디 갔었는데?”

쪼르르 ―

천용은 자작으로 소주잔을 채우며 대답했다.

“잠시 청룡에서 퇴출시켜서 용병 생활을 했다.”

“…어엉? 왜?”

“그야, 청룡은 레이드를 할 수 없으니까.”

“아…….”

호백은 그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S급이었던 녀석이 계속 A급에 머물러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겠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천용은 씨익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전에 청룡으로 돌아왔다. 다시 S급이 되어서 말이지.”

“키야~ 그거참 난 놈이란 말이지! S급을 무슨 밥 먹듯이 달성한다니깐?”

호성의 희소식에 호백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나저나 너도 소식 들었지? 이번에 이태성이 S급 되면서 코스모스로 올라간 거. 이젠 코드 투라던데?”

아무래도 코드 제로가 나타나기 전, 협회의 최대 전력이었던 이태성과 꽤 부딪친 적이 있었던 호백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한평생 A급 최상위에 머무르다 갈 줄 알았더니… 기어코 올라오네. 짜식… 많이 컸어.”

“…그럼 넌 큰일 아니냐?”

“으엉? 그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왜 큰일 나?”

천용의 물음에 호백이 두 눈을 끔뻑끔뻑 깜빡였다.

“둘 다 S급이잖아.”

“…그런데?”

“거기다 둘 다 호랭이지. 캐릭터 겹치잖아?”

“야이씨!”

둘 다 호랭이라는 말에 호백은 두 눈을 부라렸다.

“그놈은 그냥 천지삐까리에 널린 보통의 일반 호랑이고! 나는 백호고! 종자부터가 다르다고 몇 번을 말하냐!”

“종자가 다르긴 무슨… 신수도 아니고, 그냥 알비노 걸린 호랑이면서.”

“캬아아아악!”

알비노 걸린 호랑이란 말에 호백이 발작을 일으켰다.

“너 이 새끼… 한판 해보자는 거냐?”

“괜히 뚜드려 맞고서 울지 말고 그냥 앉아라. 내가 미안하다.”

벌러덩 ―

호백은 바닥에 또 드러누웠다.

계속 배를 까뒤집으며 드러눕는 것이 마치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라도 된 듯했다.

“서럽다 서러워… 협회는 점점 강해지면서 3대 길드의 입지가 예전만 못해진 것도 서러운데, 친구 놈은 말없이 혼자 여자친구나 만들고… 이젠 캐릭터 겹치는 놈까지 나타나고…….”

“네 성격 하나는 독보적이니까 안심해라.”

호백의 신세 한탄에도 천용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딜을 때려 박았다.

“진짜 말이나 못 하면…….”

완전히 토라진(?) 호백이 등을 돌리며 바닥에 누웠다.

“나도 세계급이 되면 뭔가 좀 달라지려나…….”

“…세계급인가.”

호백의 중얼거림에 천용은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세계급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확실히… 나도 S급 최상위라는 타이틀을 단 지 오래되긴 했네.”

천용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천용의 씁쓸한 미소에,

벌떡!

호백은 살짝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야.”

“…응?”

호백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 S급 던전 함 갈까?”

S급 던전을 무슨 술집 가듯이 가자는 호백의 말에,

“…미쳤냐, 너?”

천용은 그의 면전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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