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오늘도 수고했음 (4)
쉬시식!
재희의 신형이 주변의 지형지물과 위치를 바꿔가며 섬광처럼 번쩍였다.
‘어디 있는 거야……!’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창훈에게는 거칠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욱더 초조한 건 그녀였다.
그야 여기 들어온 사람 중 하나가 베타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안지영이었으니까.
유린도 마찬가지였다.
초고속으로 베타조까지 승급한 유린은 조금 딱딱한 면이 있어 재미는 없었지만 하는 짓이 엉뚱해 그런대로 귀여운 신입이었다.
나이도 어려 팀의 막내로 귀여움받던 유린과 그런 유린보다 더 막내같이 해맑은 지영.
두 사람 다 재희가 아끼는 동생들이었다.
쉬식 ― ! 쉬식 ― !
곳곳에 놓인 바위들과 위치를 바꿔가며 마치 순간이동 하듯이 이동하던 재희.
주변을 얼마나 이 잡듯이 뒤졌을까.
투우웅… 투우웅……!
어디선가 깊은 공간에서 울리는 듯한 공기의 파열음이 재희의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린이의 척력!’
재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린이 사용하는 척력파가 공기를 순간적으로 밀어내며 나는 그 특유의 소리를 말이다.
슈아아아악!
흥분한 재희가 전속력으로 마력을 전개하며 질주했다.
* * *
던전 중심부 부근.
전체적으로 얕은 물에 잠겨 있던 던전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후우우우우 ―
구덩이가 어찌나 큰지 약간의 바람이 이는 것만으로도 귀곡성 소리가 들려올 정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구덩이가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구덩이 벽면에는 얼기설기 엮인 그물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는데,
“키익! 키이익!”
“끼익…….”
그 그물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 가재들이 걸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재들 사이에서,
“으윽……!”
유린이 가재들처럼 구덩이 벽면 그물에 엉켜 매달린 채 계속해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지영 씨! 지영 씨! 정신 차려요!”
“…….”
유린이 지영을 불렀지만 지영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내는 섬뜩한 소리에 사고가 마비되어 정신이 나가버린 탓이었다.
뚝 ―
그물에 걸려 힘없이 늘어진 채 의식을 잃은 그녀의 입가에서는 침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그물에 엉켜 구덩이 벽면에 붙어 있던 유린이 입술을 깨물며 위를 바라보았다.
‘얼른 빠져나가야 하는데……!’
보스 몬스터에게 꼼짝없이 당했다고 생각했던 수 시간 전.
놈은 커다란 손이 아닌 어디선가 가져온 그물로 유린과 지영을 붙잡았다.
그 그물이 어찌나 질기던지 부분강화로 잔뜩 증폭시킨 두 B급 헌터의 근력으로도 풀리지 않을 정도.
게다가 그 그물 안에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던전 전역에 퍼져 있던 가재 수십 마리도 이미 같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괴물 가재들과 함께 끌려온 구덩이.
놈은 가재와 자신들을 붙잡은 그물을 구덩이 벽면에 붙여두더니,
“우우우우우웅!”
섬뜩한 울음소리를 계속 흘려대며 그물 안에 매달려 있던 가재 몇 마리를 꺼내 으적으적 간식처럼 씹어먹기 시작했다.
“……!”
보스 몬스터가 어째서 두 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고 붙잡아왔는지 눈치챈 유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식량 보관……!’
던전의 보스가 같은 던전의 몬스터들을 잡아먹다니?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이형 던전인 것도 놀라운 와중에 이런 특이 케이스라니.
정말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대체 녀석의 정체는 뭐지?’
유린은 방금 전까지 이곳에 누워 괴물 가재들의 다리를 조금씩 오독오독 씹어먹던 보스 몬스터, 일명 ‘블루맨’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 있다간 괴물 가재들처럼 먹이가 되고 말 거야. 놈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탈출해야 해!’
“우우웅?”
바깥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돌연 구덩이 바깥으로 나가던 블루맨.
놈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절호의 찬스였다.
키이잉 ― !
마력을 끌어모으는 유린.
터어어어엉!
전신을 속박하고 있는 그물을 떨쳐내기 위해 전방위로 척력을 전개했다.
그러나,
꽈아아악 ― !
기기기기긱 ―
“끄으으윽!”
주위의 그물이 밀려나며 유린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그물이 더 거세게 죄어들었다.
순간 그물에 감겨 몸이 절단되는 줄로만 알았던 유린은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끄하악…! 하아… 하아……!”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일까.
힘으로도 끊을 수 없고, 척력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이 그물.
탈출하기 위해선 지영의 힘이 필요했다.
아마 마력 유형화로 만든 지영의 검이라면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영 씨… 지영 씨……!”
조금 떨어진 곳에 묶여 있는 지영을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
지영은 하염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이익……!”
유린은 최후의 수단으로 마력 수치를 대량으로 잃는 것마저 각오하고 그물에 묶인 팔다리를 끊어낼 기세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찌직……!
주르륵 ―
양 팔다리가 그물에 거세게 죄이며 피부가 찢어지고 핏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끄흐으으으윽……!”
너무 아픈 나머지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절로 주륵주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끄허어억! 허억… 허억……!”
너무나 큰 고통에 결국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는 유린.
아무 의미 없이 팔다리에서 새어 나온 핏물에,
“키이익! 키익!”
애먼 가재들만이 피 냄새에 흥분하여 딱딱한 껍질과 집게를 자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딱! 딱!
딱딱하고 날카로운 괴물 가재들의 집게로도 잘리지 않는 그물.
아무래도 그물을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그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유린은 고개를 흔들어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털어버리며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하루는 확실히 넘었어. 그러면 아마 바깥에서 대기하던 델타조분들이 조사 지원을 요청했을 거고, 베타조장인 내가 실종된 문제이니 아마 최소 알파조가 와줬을 거야…! 알파조 중 누가 왔든 간에 아마 그들이라면 이미 이 근처에 왔을 수도 있어!’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된 채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유린.
과연 최단기간 만에 베타조장까지 승급한 재원다웠다.
침착하고 신속하게 판단을 마친 유린은 곧바로 자신이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흐읍……!”
투웅…! 투웅…! 투웅……!
미약하게나마 주위의 공기를 튕겨내기 시작하는 유린.
그 진동과 음파가 파문처럼 퍼지며 구덩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누군가가 블루맨보다 먼저 이 음파를 듣기를 바라면서 공기를 퍼트리는 유린의 표정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탁!
“유린아! 지영아!”
쑤욱 ―
구덩이 바깥에서 재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희 언…니……!”
재희의 얼굴을 확인하고 긴장이 풀린 유린의 고개가,
툭 ―
아래로 떨구어졌다.
* * *
콰직! 콰직! 콰아아앙!
창훈의 주먹과 발이 연신 보스, ‘블루맨’의 몸뚱이에 꽂히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오싹! 오싹!
그의 공격에 맞은 녀석이 울부짖을 때마다 창훈은 피부와 등골이 절로 오싹해짐을 느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자식… 완전히 양학 특화형 몬스터네. 자기보다 강한 대상한테까지 소름이 돋게 만들어?”
쿠우웅!
블루맨이 넘어지고,
“이제 그만 죽어라.”
슈욱 ― !
콰아아앙!
부분강화를 전개한 창훈의 주먹이 바닥에 쓰러진 블루맨의 얼굴에 정통으로 내리꽂히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푸확!
그와 동시에 블루맨의 머리가 터지며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피.
투두둑 ―
쩌억… 쩌억…….
대체 어찌 되먹은 몸뚱이인지 블루맨의 피는 마치 끈적이처럼 쩍쩍 달라붙었다.
“뭐야, 이거 진짜…….”
온통 푸른색 끈적이 범벅이 된 창훈이 으― 하는 표정으로 어떻게든 바닥을 가득 메운 얕은 물로 씻어내려 했다.
그러나,
끼긱 ―
“…어?”
오히려 형태가 선명해지며 마치 그물처럼 질겨졌다.
“어어어?”
기우뚱 ―
철퍽!
어쩌다 보니 파란 그물에 엉켜버린 꼴이 되어버린 창훈의 몸뚱이가 바닥에 엎어졌다.
버둥버둥.
어찌나 질긴지 A급 헌터인 그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
“끄으으으으… 으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잉 ― !
뚜두두둑!
전력으로 근력을 강화해 겨우겨우 피 그물을 뜯어내는 데에 성공한 창훈은 그물에서 겨우 벗어나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창훈이 겨우 그물을 벗어나 바닥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때,
“…뭐 해?”
머리 위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허억… 응?”
머리를 들어 보니 재희가 양 옆구리에 두 여인을 매달고 서 있었다.
“구했구나… 다행이다아…….”
철퍽!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바닥에 드러눕는 창훈.
그런 창훈을 내려다보며 재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 어려운 상대였어?”
“아니… 어렵지는 않았는데 저놈 피가…….”
“피?”
재희는 옆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꺽다리를 바라보았다.
놈의 얼굴에서는 딱 봐도 엄청 끈적해 보이는 푸른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피가 물에 닿으니까 엄청 질겨지더라고. 무슨 그물처럼… 나도 겨우 빠져나왔다니까?”
창훈의 말에 재희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A급 헌터도 겨우 빠져나올 정도의 그물이라고……?’
유린과 지영이 붙잡혀 있던 곳에서 재희는 보았다.
커다란 구덩이 벽면에 가득 붙어 있는 푸른 그물들을 말이다.
‘그게 보스의 피로 만들어진 거였군?’
원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엄청나게 질기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반짝!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순간 재희의 두 눈이 반짝였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봐. 얘네 여기 눕혀둘 테니까 잘 지켜.”
“허억… 어? 어디 가는데?”
“5분! 아니, 3분이면 돼!”
피빗 ― !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재희.
재희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창훈의 두 눈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 어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될 창훈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날 재희가 무엇을 위해 자리를 비웠었는지 말이다.
“…히힛.”
훗날 그녀의 취향을 알게 된 창훈은,
“…그때 잡았어야 했어.”
“아, 왜~!”
이날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어쨌든 이날 유린과 지영은 창훈과 재희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
참고로 보스 몬스터, 블루맨이 죽은 뒤 해당 던전의 마력 파장 수치는 3,000대까지 떨어지며 F급 던전으로 등급이 변경되었고,
“이런 사례는 사상 처음입니다!”
이형 던전을 넘어선 기형 던전으로 헌터학계에 보고되며 작은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 *
여러 소란이 있었던 그 다음 날 저녁.
터벅 터벅 ―
기절한 채 병원으로 옮겨졌던 유린이 퇴원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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