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한국이 승승장구함 (2)
“두 번째, 일반 국민분들의 헌터 적성검사 장려를 위한 지원 정책입니다.”
김 대통령은 살짝 카메라와 눈을 맞춘 뒤 재차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헌터 적성검사는 목숨이 보장되는 안전한 검사이지만, 그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중도 포기자들을 줄이기 위한 지원 정책임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헌터 적성검사에 지원하여 마력 적응 과정을 시작하신 분들께는 시간당 5만 원을 지급해드립니다. 즉, 만 하루를 버티면 120만 원을 받아 가실 수 있으며 최소 각성 기간이라고 여겨지는 만 7일을 버티실 경우 총 840만 원을 지급해드립니다.”
“둘째, 헌터가 탄생할 수 있는 구간인 만 7일 이후부터는 시간당 10만 원을 지급해드립니다. 만 7일을 채우고 8일째까지 버티시는 지원자는 840만 원에 240만 원을 더해 총 1,080만 원을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셋째, 가장 많은 헌터들이 탄생하는 구간이자 마지노선인 11일 차부터 13일까지는 시간당 20만 원을 지급해드립니다. 만 10일까지 버틸 경우 총 1,560만 원이 지급되는데 그 이후인 11일 차부터는 시간당 20만 원씩 계산되기에, 각성 불가 판정을 받는 만 13일까지 버티신다면 총 3,000만 원의 장려금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장려금은 비과세로 그 자리에서 즉시 지급되며, 헌터로 각성하셔도 똑같이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만 13일을 채운 뒤에도 각성하지 못하신 분들은 적성검사에 재지원이 불가능하며, 중도 포기자 분들 또한 향후 5년간 재지원이 불가합니다.”
“지원자들의 안전을 위해 적성검사는 헌터 협회의 주관 아래 일괄적으로 진행되며, 매주 그룹별로 묶어 검사를 진행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적성검사는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파격적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각성에 실패하더라도 13일 만에 최대 3,000만 원을 벌어갈 수 있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
비록 많이 괴롭긴 하겠지만 목숨만큼은 보장되는 것이 아닌가?
통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뿐, 중도 포기 시 신체에 남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거의 없다고 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ㄴ 나 무조건 한다.
ㄴ 와씨! 목돈 땡기자!
ㄴ 눈 딱 감고 하루만 버텨도 한 달 알바비다 ㄷㄷㄴ 아니, 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저렇게 퍼줌?
ㄴ 24시간 내내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라는데 안 힘들겠냐.
ㄴ 그래도 시간당 5만 원? 11일부터는 시간당 무려 20만 원? 이건 못 참지.
ㄴ 아니 근데 24시간 내내면 잠은 잘 수 있는 건가.
ㄴ 수면제 놔주지 않을까? 전신마취 해주면 안 되나?
ㄴ 협회 홈페이지 설명 보고 옴. 전신의 모든 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에 뇌까지 공격당해서 마취제는 의미가 없다고 함. 뇌를 마취할 수는 없으니까.
ㄴ 수면제는 뇌 자체를 둔화시키는 거라 잘 시간 되면 수면제는 놔준대. 근데 전신 통증을 못 느낄 정도로 깊게 재워야 해서 다량 투여하는 거라 하루 종일 재워줄 순 없고, 기껏해야 3~4시간 잘 수 있을 거라는데?
ㄴ 얘들아, 삼천이다. 2주 만에 3천이라고.
ㄴ 쌉인정. 2주 죽었다 생각하고 잠 안 자면 그만. 근데 3~4시간 재워주기까지 한다고? 개꿀이지.
ㄴ 다 필요 없고, 헌터 각성하면 대박 아님?
ㄴ 응. 5%임.
ㄴ 20명 중 한 명이다. 너는 19명이고.
ㄴ 나쁜 새끼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정부의 정책 발표가 있은 후 바로 다음 날부터 1차 적성검사 인원 모집이 시작되었다.
매주 월요일, 최대 500명씩 진행되는 적성검사.
헌터 적성검사는 무려 20,000 대 1이라는 경이로운 경쟁률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그 시작점을 끊어냈고,
“끄아아아아아아악!”
적성검사가 시작된 첫날.
“그만! 그마아아아안!”
130여 명의 중도 포기자가 나왔다.
그렇게 2주 뒤,
“축하드립니다.”
한국은 리바이브 개발 이후 처음으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18명의 각성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
* * *
헌터계의 선두 주자이자 최강국인 한국이 리바이브를 이용해 헌터 수를 채워가기 시작하자, 노아즈 아크의 잔당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다른 나라들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노아즈 아크의 잔당을 정리하는 가운데에도 헌터 발생 중단 문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헌터 각성에 필요한 ‘리바이브’는 한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
헌터 2세의 탄생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그들이 자라나는 데까지의 공백을 기다릴 수 없었던 각국은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리바이브를 구매하기 위해 한국, 그중에서도 코드 제로에게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코드 제로를 위시한 한국 헌터 협회가 내건 모든 조건들을 수용하며, 기존의 가격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주고 월 30,000개의 리바이브를 구매하기 시작한 전 세계의 국가들.
그나마 한중 전쟁 이전에 맨 처음 고개를 숙였던 그리스는 한국보다는 비싸지만 다른 국가들보다는 훨씬 저렴한 값에 리바이브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바이브를 구한 국가들은 곧바로 헌터 공급과 관련된 한국의 정책을 차용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 30,000개의 리바이브를 가지고 한국처럼 매주 500명씩 적성검사를 실시하기는 요원했다.
여전히 실시간으로 전국에서 발생하는 마력감염증 환자들을 위해 비축분을 준비해두어야 하기도 했고, 적성검사를 위한 소량의 리바이브와 중도 포기자들이나 각성 실패자들에게 투여해야 하는 수량도 따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국처럼 매주 500명이 아닌 매주 50명, 혹은 한 달에 500명 등 그 수의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동안 각성자를 만들어내는(?) 숫자마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몇 배가 되어버린 한국.
전 세계 2위, 강대국이었던 중국을 상대로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고 미국의 최강 헌터를 잡아낸 데다 전 세계 모든 헌터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한국은,
[OECD, 올해 韓 경제성장률 전망 2.1%에서 29%로 대폭 상향 조정… 더 오를 가능성도 있어.]
[한국, OECD 세계 국가 영향력 순위 1위 등극]
[한국, OECD 헌터력 순위 1위 등극]
[한국, OECD 세계 치안 순위 1위 유지… 지표는 작년보다 훨씬 더 압도적.]
[한국, 각종 OECD 긍정적 지표 급상승… 1등만 수십 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되었다.
* * *
“…회장님.”
“예?”
“회장님은 뭐 하러 돈을 많이 버셨습니까?”
“뭐 하러냐니… 당연히 많으면 좋으니까요?”
“많으면 왜 좋죠?”
“쓸 수 있는 돈이 많다는 건 구매력이 엄청나게 오른 거고, 여유 있게 사고 싶은 걸 마음껏 살 수 있으니까?”
“아직도 사고 싶으신 게 남으셨나요?”
“사실 이제 없긴 하죠.”
“그럼 이젠 그 돈으로 뭐 하세요?”
“허허허. 뭐 하긴요. 가족들 먹여 살리고, 애 키우고, 취미 생활도 좀 하고… 뭐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허준석 회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별안간 이상한 질문을 던진 태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태운을 허준석 회장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설마… 돈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신 겁니까?”
“…예.”
탁 ―
허준석 회장은 이마를 탁 쳤다.
세상에 돈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니.
확실히 현재 태운의 월 수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협회 월급과 던전 토벌 수익, 거기다 리바이브 판매 수익과 각종 자산에서 창출되는 수익까지…….
이미 메디스카이의 월 매출액을 뛰어넘어버린 태운의 재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물론 지금까지 태운이 해온 일을 생각하면 그가 돈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고민까지……?’
돈이 많다고 해서 고민까지 할 일인가 싶은 허준석 회장이었다.
“왜 그리 고민이 많으십니까? 마음껏 쓰시면서 사십쇼. 코드 제로 님은 충분히 그러셔도 되는 분이십니다.”
“쓸 데가 없는데요.”
삐질.
허준석 회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집을 더 크게 지으시면…….”
“헌터 전용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애초에 외박하는 날이 더 많기도 하고… 별 필요가 없는데요.”
“차는……?”
“SUV 하나 있습니다. 잘 타지도 않아서 팔아버릴까 생각 중입니다만.”
“으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민에 허 회장은 침음을 흘렸다.
“건물을 사시는 것은……?”
“이미 8채가 있습니다. 지금 임대수익이나 월세만 해도 너무 많아요.”
“땅은……?”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땅은 뭐 하러 삽니까? 그리고 이미 무인도 몇 개도 소유 중입니다.”
“크흠… 그럼 전처럼 기부하심이……?”
“아직도 하루에 수억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사회에 돈을 너무 한 번에 풀면 물가가 올라서 안 돼요.”
“주식이나 코인을……?”
“그거,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돈을 쓰려고 하는 건데…….”
“크흐흠!”
허 회장은 난감한지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그러면 모르겠군요. 어차피 코드 제로 님은 아마 죽을 때까지 리바이브 판매 수익 때문이라도 돈이 마를 날이 없으실 겁니다. 어차피 마르지 않을 거, 그냥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고! 하시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시며 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진 자의 여유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너무 바빠서 돈 쓸 시간이 없어요.”
“크흐흐흠!”
허 회장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러면… 외국에 기부처라도 알아보심이…….”
“이왕이면 한국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툭 ―
허 회장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코드 제로 님.”
“네?”
“그렇게 돈 쓰기가 힘드시면 저 주십쇼. 제가 잘 써드리겠습니다.”
“…제 돈인데요?”
빠직 ―
처음으로 허 회장은 태운에게 짜증을 느꼈다.
“후후후. 코드 제로 님. 세상엔 생각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코드 제로 님보다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 앞에서는 이런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이…….”
“네. 그래서 회장님한테만 해요. 다른 사람들한텐 한 적 없어요.”
“으윽……!”
차마 코드 제로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던 허 회장이 뒷목을 잡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돈이 많다는 이유로, 재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허 회장이었다.
“그럼 그냥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세요. 물가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어차피 시중에 돈이 많다고 생각되면 한국은행이 알아서 각종 재정정책으로 흡수하니까……!”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뱉은 허 회장.
하지만 의외로,
“…오? 하긴 그렇겠군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구 내뱉은 말이 먹힌 듯했다.
“좋은 생각이 났어요. 일명! 조퇴시키기!”
“…조퇴요?”
“조기 퇴근을 말하는 겁니다.”
태운이 가면 뒤에서 히죽 웃었다.
“던전 때문에라도 전국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길거리 장사하시는 분들 많더라고요? 손님 없는 곳에 가서! 그분들 거 전부 사서! 근처에서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무료 나눔하는 거죠.”
“…그거, 그래봐야 얼마 안 될 겁니다. 길거리 장사하시는 분들이 뭐 재료를 그렇게까지 많이 가지고 다니시는 것도 아닌데…….”
“뭐, 취미죠.”
후룩 ―
태운이 후식으로 나온 숭늉 차를 홀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취미가 생겼네요.”
‘…그게 취미……?’
허 회장은 문득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이후,
ㄴ 오늘 우리 동사무소에 코드 제로 왔다 감. 갑자기 와서 붕어빵 돌리고 갔음 ㅠㅠ 제느님ㅠㅠㅠㅠㄴ 우리 오빠 소방관인데 갑자기 제느님 와서 떡볶이랑 순대 같은 거 잔뜩 주고 갔대 ㄷㄷ 너무 많이 줘서 다음 근무자들까지 먹었다고ㅋㅋㅋㅋㅋ 나도 한번 보고 싶다…….
ㄴ 나 보육원에서 봉사하는데 갑자기 하얀 가면 쓴 사람이 와서 계란빵 잔뜩 돌리고 감.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했는데 알고 보니 코드 제로였음! 그때의 나야, 왜 사진 한 방도 찍자고 못 했던 거니ㅠㅠㅠ
전국 각지의 SNS에 기습방문하여 먹거리를 돌리는 코드 제로의 선행(?) 목격담이 마구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ㄴ 어이어이,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거냐고……!
국내 이미지만 본다면 수호신을 넘어 진짜 절대신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태운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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