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왕따인데 안 꿇림 (2)
태운은 세계 정상들이 회담을 나누는 내내 김 대통령의 뒤에 서 있었다.
긴장감이 가득하고 날이 선 정상 회담인 만큼 대통령의 밀착 경호를 위한 위치 선정이었다.
또륵 ― 또륵 ―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가면 뒤에서 두 눈을 굴리는 태운.
태운은 남몰래 강력피까지 사용하며 마력의 누출을 완전히 막은 채 안력을 강화해 회담장을 자세히 살폈다.
‘회담장 내부의 인원 배치는 평범하다. 딱히 기습이나 포위를 예비한 인원 배치는 아닌데…….’
회담장 곳곳에 버티고 서서 회담장 자체를 경호하고 있는 헌터들.
그들의 면면은 특별한 게 없었다.
그냥 평범한(?) 각국의 A급 헌터나 S급 헌터들이었으니까.
‘방주들의 얼굴을 모르니… 이거 참…….’
겉모습만으로는 그들의 힘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다못해 상대측에서 약간이라도 마력을 사용하거나 직접 맞부딪쳐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방주는 도명조 하나뿐.’
하지만 도명조의 모습은 회담장 어디에도 없었다.
일본 총리의 뒤에 서 있는 헌터도 도명조가 아닌 다른 S급 헌터.
‘안 온 건가? 분명 방주들이 공격한다고 했는데…….’
방주들로 예상되는 세계급 헌터들마저 회담장 안에는 제이슨 하나뿐이었다.
‘…회담장 밖에 있는 건가?’
그렇게 태운의 머릿속이 각종 추측으로 가득 차며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그때,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종두득두처럼 인과응보이니 권선징악하여 사필귀정토록 하라.”
김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입장 발언 중 마지막 문장이자 가장 핵심 문장을 내뱉었다.
씨익 ―
사실상 태운과 협회가 전 세계를 향해 던지고 싶었던 핵심적인 메시지.
그러나 어려운 사자성어 때문인지 정상들은 그런 김 대통령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어려워서 못 알아들어? 그럼 풀어서 말해줘야지.’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구는 외국의 위선자들에게 어떻게든 한마디 해주고 싶었던 태운은 살짝 허리를 숙여 김 대통령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어려운 말이라 번역이 안 되는 듯한데… 풀어서 말씀해주시죠.”
흠칫!
본인도 찔리는 바가 있어서인지 어깨를 떠는 김 대통령.
그런 김 대통령과 타국의 정상들을 바라보며 태운은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아니, 똥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네.’
그렇게 김 대통령이 사자성어를 풀어 설명하고 난 뒤에 이어지는 적막.
‘하,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었나 보지?’
단번에 반박하지는 않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태운은 그래서 이들이 더 괘씸했다.
본인들의 행동이 잘못된 일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니까.
‘그런 주제에… 일말의 양심까지는 잃고 싶지 않다 이거냐?’
그렇게 비웃음을 흘리는 태운의 시선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제이슨의 시선이 부딪친 그때,
“…우리 모두에게 해주셔야 할 이야기가 있었지요.”
미국의 대통령, 로건이 적막을 깨고 자신을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렇지요? 코드 제로.”
씨익 ―
척 보기에도 위선적이고도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로건.
그 미소가 제이슨의 미소와 닮았음을 눈치챈 태운은 직감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미소.
아마 세계 정상 회담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방주들의 음모를 알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아마 그 중심에는
‘역시 제이슨이 방주 중 하나였군……!’
미국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로건의 가식적인 미소를 시작으로 꽤 많은 정상 인사들의 입가에도 가식적인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
“…이런 외국산 구렁이들 같으니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태운의 입가에 미소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 * *
자신을 죽일 땐 죽이더라도 얻을 건 얻어내겠다는 방주들의 생각을 읽은 태운은 기꺼이 그 장단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놈들의 생각처럼 순순히 죽어줄 생각도 없었거니와,
‘확실히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선 필요한 일이니까.’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자신이 죽지만 않는다면 이 방안을 밝힘으로써 얻는 이익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전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리바이브를 갈구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외통수.
로건과 두 눈을 마주친 태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김정원 대통령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분명 제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요.”
그리고는,
스윽 ―
회담을 찍고 있던 방인성의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저, 저……!”
당황한 정상들이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회담장 내 유일한 카메라맨인 방인성 카메라맨을 바라보니, 태운의 자세가 어느새 회담석에 앉은 총 64개국 정상들을 등지는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명백히 회담에 참여한 국가 정상들을 무시하는 행위.
그중 먼저 말을 꺼냈던 로건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코드 제로… 당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화를 잔뜩 억누른 로건의 물음에 태운은 고개만 살짝 돌려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왕이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곳에 참석하지 못한 국가들도 많으니까요.”
피식 ―
정상들의 귓가에 들릴 정도로 비웃음을 흘리는 태운.
“뭐 문제 있습니까? 궁금하시면 마음껏 엿들으시면 됩니다.”
‘…진짜 미친 형이라니까.’
방인성과 이상희를 지키고 서 있던 강천의 입가에 통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리바이브 출시에 따른 헌터 공급 문제 해결 방안.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세계 정상들을 경악에 빠뜨릴 방안이 태운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꿀꺽 ―
코드 제로를 정면으로 찍고 있는 방인성의 목으로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모두 아시다시피 리바이브는 마력감염증을 치료하는 치료제입니다. 덕분에 마력감염증으로 인한 사망자들을 없앨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마력감염증 환자들로부터 희박한 확률로 탄생하는 헌터의 탄생 자체를 막아버렸다는 부작용이 있었지요.”
마이크를 든 채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는 카메라 화면 속 코드 제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뒤통수를 뚫을 듯한 세계 정상들의 분노에 찬 눈빛에도 그의 몸은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저와 메디스카이는 치료제를 개발한 것과 동시에 곧바로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헌터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을 찾아냈지요.”
‘…두 가지나?’
태운의 말을 들은 정상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걸 어찌 단시간에 두 가지씩이나 찾아냈단 말인가?
헌터 공급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인 강천과 이상희 기자 그리고 방인성 카메라맨도 침을 꿀꺽 삼키며 태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첫 번째, 헌터들의 다산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
“…응?”
이게 무슨 말인가.
헌터들의 다산이라니?
회담장 내 모든 이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고,
씨익 ―
태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흔히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헌터일 경우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도 딱히 헌터의 아이가 보고된 바는 없었고요. 헌터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건 어찌 보면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범위를 조금 크게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태운이 한 손의 검지를 펼쳤다.
“헌터가 아닌 마력 면역자들이 아이를 가지는 사례가 북한의 전생체에서 꽤 빈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북한……?’
가만히 태운의 이야기를 듣던 제이슨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이 사례를 알게 된 저는 메디스카이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어째서 헌터는 아니라고 하지만 같은 마력을 지닌 마력 면역자들에게서는 아이가 태어날 수 있었는가? 의외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태운은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교육을 받은 헌터들과 마력 면역자들은 모두 마력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력에 대한 제어권을 찾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에 마력이 도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지요.”
“그 부위가 바로 정소와 난소입니다. 헌터가 마력에 대한 제어권을 가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곳을 지키려 하는 거죠. 아마 신체 내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이라 대부분 이를 인지 못 하셨을 겁니다.”
“그러다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무의식을 본능이 이기며 남녀는 그 제어를 풀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제어권을 가진 후 생성되었던 마력에 면역이 없는 정자와 난자가 마력으로 인해 괴사하고 마는 것이죠. 퍼엉…….”
태운은 입으로 펑 소리를 내며 두 손을 활짝 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달리 북한의 면역자들은 마력을 가지고 있을 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적더라도 전신에 마력이 항상 퍼져 있는 겁니다. 즉, 그들의 정소와 난소도 마력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죠. 이는 곧 그들이 가진 정자들과 난자들은 그 수는 매우 적을지언정 이미 마력에 적응을 마친 녀석들이라는 겁니다. 둘 다 살아남았다?”
툭 ―
태운의 양손이 서로 부딪쳤다.
“임신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임신이 이루어지더라도 성공적으로 출산하기까지는 어렵습니다. 유산 확률이 무려 80%나 되니까요. 정자와 난자의 생명력 자체가 마력에 적응하느라 이미 상당히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유산의 대부분이 임신 1주차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임신이 되었고, 유산이 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게 됩니다. 적어도 유산으로 인한 슬픔 같은 스트레스는 비교적 거의 겪을 확률이 없다는 거지요.”
태운은 서로 맞잡고 있던 두 손을 천천히 내렸다.
“즉, 헌터들 또한 성관계 전 일정 기간 각자의 정소와 난소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마력 면역자와 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겁니다!”
“와…….”
태운의 말에 놀란 방인성 카메라맨이 입을 쩌억 벌렸고,
“…이 정도면 노벨 생물학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상희 기자도 타이핑하다 말고 입을 살짝 벌린 채 중얼거렸다.
놀란 것은 각국의 세계 정상들도 마찬가지였다.
‘화, 확실히 헌터들이 2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헌터 공급 문제는 해결되긴 해……!’
‘대체 언제 북한의 사례를 연구했단 말인가……!’
세계 정상들 중 현재 한국에게 가장 우호적인 그리스 대통령이 손을 들고 태운에게 질문했다.
“헌터들은 무의식적으로 마력이 정소와 난소에 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헌터들이 자력으로 그 무의식을 이겨낼 수 있는 겁니까?”
태운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좋은 질문이라는 듯 가면 뒤에서 미소를 지었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정소와 난소 부근에 손을 대고 마력을 정기적으로 불어넣으면 그만인 문제니까요.”
“아……!”
웅성웅성.
세계 정상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헌터들이 마력에 적응한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헌터는 차차 키워나가면 되는 문제이니까.
코드 제로가 말한 방안이 꽤 좋은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P6 국가 중 하나, 러시아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여 딴지를 걸었다.
“…낳는다고 쳐도 그 애들을 대체 어느 세월에 키워서 던전 레이드에 써먹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들이 한 해에 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전에 인류는 늘어난 던전에 먹히고 말 겁니다!”
“확실히…….”
“지금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대통령의 딴지는 꽤 타당했다.
아무리 마력 면역자로 태어난 아이라지만, 그 아이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전투원으로 키우는 데에는 최소 15년에서 16년은 걸릴 테니까.
그리고 그 아이들이 모두 전투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헌터들의 다산은 어디까지나 ‘장려’이지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여러모로 불완전한 방안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의 말을 들은 대부분의 세계 정상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시작했으나,
“두 번째.”
태운은 그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보며 두 번째 방안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이게 메인이거든.’
자신의 목소리에 다시 집중하는 정상들의 기척에 태운은 가면 뒤에서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바이브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후의 동아줄, 리바이브에 대한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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