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될 놈은 됨 (2)
회담이 열리는 6월 4일까지 몇 시간 남지 않은 6월 3일의 저녁.
“스읍… 후우… 스읍… 후우…….”
태운은 회담 전 최종 점검을 마치고 최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한 A급 던전에 들어가 마력 호흡을 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바깥에서 하더라도 한 시간이면 10의 마력 수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경지가 된 태운.
하지만 지구보다 마력이 훨씬 풍부한 던전에서는 그 효율이 몇 배나 상승한다는 걸 몇 달 전에서야 깨달은 태운이었다.
다른 헌터들도 그럴까 싶어 강천에게 시켜봤지만,
―뭐 2배 정도 올랐네. 그래도 안 할 듯.
―그럼 단위 시간이 1시간 반이라는 거지? 그럼 할 만하지 않나?
―…차라리 그 시간에 쉬고, 레이드 한 탕 더 뛰는 게 이득이지 형.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다른 헌터들도 효율이 오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여전히 극악한 효율이라 선호하지 않는 듯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
태운은 완전 노다지를 캔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스읍… 후우…….”
겨우 한 시간 만에 마력 수치를 100 가까이 올린 태운.
평소처럼 중간중간 연락을 확인하기 위해 던전을 잠시 나섰다.
그리고,
[혹시 바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린의 문자를 확인했다.
* * *
“…….”
“…….”
어느 산기슭에서 만난 태운과 유린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유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고,
“…….”
태운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슬쩍슬쩍 유린을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죽겠네.’
전쟁이 끝나고 처음 보는 두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많이 쏟아지는 연락과 각종 사안 그리고 바쁜 정상 회담 준비 때문에 먼저 연락 한번 해주지 못했던 태운은 유린에게 커다란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전쟁이 끝나면 그때 가서 할게.
한중 전쟁이 일어나기 전, 유린에게 했던 말까지 있어서 더욱 유린을 제대로 마주할 낯이 없는 태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생중계 영상이 어디까지 찍혔는지는 이미 확인했다.
자신의 팔이 망가질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
온몸에서 피를 흘릴 때는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혼자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는가?
태운은 전쟁이 끝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는데도 연락 한번 해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속으로 후회했다.
“…….”
정적이 계속 이어졌다.
태운은 죄인이라도 된 듯한 심정이라 먼저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어서 빨리 유린이 아무 말이라도 꺼내주길 바랐지만,
“…….”
유린은 그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먼저 사과하자.’
아무리 바빴다고는 하지만 아무렴 문자 한 통 남길 시간이 없었을까.
자신의 세심함과 배려가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한 태운은 그렇게 용기를 내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 미…….”
“이 근처에.”
태운이 입을 떼려는 순간, 유린이 고개를 들며 선수를 쳤다.
“…어?”
“이 근처에 던전 하나가 있어.”
덥석!
유린은 갑자기 뜬금없이 근처에 던전이 하나 있다고 하더니 태운의 손목을 붙잡았다.
“같이 가자.”
“…어? 어어?”
사박 사박 사박 ―
태운의 손목을 붙잡은 채 앞서 걷는 유린의 풀을 밟는 소리가 꽤 거칠었다.
꽈악 ―
태운의 손목을 붙잡은 유린의 악력 또한 만만치 않았고 말이다.
태운은 그렇게 얼떨결에 화가 난 듯한 유린에게 끌려가며,
‘설마… 사람 안 보는 데서 패려고?’
이상한 상상을 했다.
* * *
휘이이이이이잉 ― !
던전에 들어서자 커다란 바위산 하나가 나타났다.
D급 던전, ‘바위 늑대의 산.’
“…이 던전, 알고 있지?”
“알지. 토벌 기록도 있으니까.”
발생하는 던전들이 모두 다른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지형의 같은 몬스터들이 겹치는 일은 다반사였으니까.
‘바위 늑대의 산’ 던전도 그중 하나였다.
깎아지르는 절벽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험난한 산세에도 그 절벽을 자유로이 타고 다니는 바위 늑대들의 기동성은 헌터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다못해, 실수를 유발하여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높은 절벽에서 떨어진 헌터는 신체 강화를 하더라도 그 충격을 인해 기절하기 일쑤였고, 그 기절한 헌터들을 잡아먹는 방식이 바로 바위 늑대들의 사냥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바위산을 오르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놈들은 웬만하면 바위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꼭 자신들이 유리한 무대에서만 싸우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보스인 왕바위 늑대도 바위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던전을 토벌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바위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던전이었기에 태운은 군말 없이 유린을 따라 바위산을 오르려 했다.
하지만,
척 ―
유린은 바위산을 오르지 않고 태운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
자신을 향해 전투 태세를 갖추는 유린의 모습에 태운은 살짝 당황했다.
“유, 유린아?”
“…내 고유 능력 알지?”
“…어? 다, 당연히 알지.”
유린의 고유 능력, 척력.
모든 물질을 밀어내는 자연형 능력이었다.
공방에 있어서 모두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 완전형 능력.
공방일체의 병기라 불리는 친오빠 기성처럼 그녀 또한 델타조에서는 두 번째 공방일체의 병기라고 여겨지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지금부터 오빠를 밀어낼 거야.”
“…어?”
아직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된 태운이 여전히 당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니까.”
쿠우우우 ― !
유린의 전신에서 거센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한테 닿아봐.”
퍼어어어어엉 ― !
그녀를 중심으로 밀려난 바람이 돌풍이 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빠르게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유린은 아직 겨우 D급.
반면, 태운은 세계급 중에서도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어른과 아이?
아니, 다 큰 코끼리와 갓난아이 사이의 차이보다도 커다란 격차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고오오오오 ― !
유린은 상당히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진심으로 임하는 상대에게는 진심으로 상대해주는 것이 예의.
승부의 예의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태운은 아무리 큰 격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유린을 제대로 상대해줄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기색을 빠르게 다스린 태운이 힘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닿아보라고 했지.’
다행히 유린이 내건 조건은 그녀를 쓰러뜨릴 것이 아닌 그녀에게 닿아볼 것.
태운은 최대한 유린이 크게 다치지 않을 만한 선에서 힘을 전개했다.
[자기장(磁氣場)]
지이이이잉 ―
두 사람이 있는 일대가 무형의 기운으로 둘러싸였다.
“……!”
그 기운을 느낀 유린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스윽 ―
태운은 그런 유린에게 손을 뻗었다.
[자화(磁化)]
기깅……!
유린의 몸이 순식간에 자성을 띠게 되었고,
[자기흡인(磁氣吸引)]
키이이잉 ― !
태운의 손을 향해 유린의 몸이 끌어당겨지기 시작했다.
팍!
“…윽!”
순식간에 끌어당겨지는 유린의 신형.
‘…번개가 아니라 전자기력이었구나!’
태운이 지금 자기력을 다루고 있다는 걸 깨달은 유린은 단번에 태운의 힘의 일부인 전자기력의 정체를 눈치챘다.
유린은 태운의 전투 영상을 보며 느꼈던 의문을 그제서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중력을 다루는 듯 S급 헌터들을 짓눌러 처리했던 그 장면은 사실 자기력의 인력을 이용해 바닥으로 강하게 끌어당겼거나, 허공에서 발생시킨 기준점으로부터 자기력의 척력을 이용해 짓눌렀던 것이라고.
멋대로 착각한 유린은 새삼 태운의 고유 능력 활용 기술에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이대로 끌려갈 순 없지!’
자신의 힘은 인력의 대척점에 있는 척력 그 자체였다.
자기력으로부터 파생된 인력에 끌려가서야 척력 그 자체를 다루는 자연형 헌터로서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끼기기기기긱……!
속수무책으로 힘없이 끌려가던 유린의 신형이 서서히 멈춰 섰다.
“……!”
태운은 손바닥에서 거센 반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으으으윽……!”
부들부들……!
유린이 두 손을 뻗은 채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을 향해 척력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휘이이이…….
주위에 휘몰아치던 돌풍도 어느새 잠잠해진 상황.
끼기기기기긱……!
유린의 밀어내는 힘이 오로지 태운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덜덜덜……!
유린의 두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유린의 척력의 전력을 약간 상회한 태운의 인력이 계속해서 일정한 크기의 힘으로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었으니까.
지직…….
지면에 닿은 유린의 두 발이 점점 태운에게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지직…….
10m.
지직…….
9m.
지지직…….
7m.
……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져 갔고,
지지지직…….
어느새 서로 뻗은 두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두 사람은 각자 팔을 뻗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덜덜덜덜덜……!
최선을 다해 버텨내던 유린의 전신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샤샥 ― !
유린의 척력이 작용하는 방향을 피해 순식간에 유린의 뒤를 점하는 태운.
퍼어어어엉 ― !
그러자 방금 전까지 태운이 있던 자리의 공기가 밀리며 거센 돌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꼬옥 ―
태운은 재빨리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유린을 뒤에서 안아주었다.
“허억… 허억… 허억……!”
다리의 힘이 풀린 채 태운의 품에 안겨 있는 유린.
얼마나 힘을 썼는지 팔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닿았어.”
“허억… 허억… 으응…….”
그렇게 유린의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서로에게 몸을 맡기는 두 사람.
잠시 후 유린의 호흡이 돌아오자,
“…대체 이게 뭐야.”
태운은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기고 싶었어.”
“…응? 뭐라고?”
예민한 태운의 청력에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유린.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태운은 그녀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숙여 귀를 가까이 댔다.
유린의 양쪽 귀는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안기고 싶었다고.”
“…….”
유린의 말을 알아들은 태운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풋!”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갑자기 엔돌핀과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 각종 호르몬이 전신에서 쏟아져나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그냥 안기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었을 것을.
얼마나 부끄러웠길래 이렇게까지 돌려서 표현해야 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안기고 싶었기에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빙글 ―
태운은 유린의 몸을 돌려 정면에서 안아주었다.
이 여자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화난 거 아니었어?”
태운은 조심스레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자신만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왜 화나?”
그건 태운의 기우였던 듯했다.
“내가 연락 안 했잖아.”
“바빠서 못 한 거잖아.”
“그래도.”
“그것도 이해 못 해줄 거였으면 좋아하지도 않았어.”
어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리도 예쁠까.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팍에 묻었던 유린을 살짝 떼어냈다.
“…….”
“…….”
어느새 자연스레 양손을 서로 붙잡은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순간,
“크르르릉!”
바위산을 오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두 사람을 직접 사냥하기 위해 던전의 보스, 왕바위 늑대가 늑대들을 이끌고 바위산에서 내려와 두 사람을 덮쳤다.
치직……!
한 손으로 유린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긴 태운.
그의 남은 한 손이 바위산 쪽을 향했고,
파지지지지지직 ― !
퍼어어어어어어엉 ― !
붉은빛이 한 차례 번쩍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불꽃과 함께 바위산이 통째로 폭발했다.
콰르르르르릉 ― !
쿠우우우우우……!
바위산이 사라지며 마치 하트 모양으로 피어오른 연기가,
치지지직……!
아직 기세를 잃지 않은 적뢰에 의해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폭발음과 빛무리 아래에서,
폭 ―
두 사람의 입술이 살포시 겹쳐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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