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치료제를 만들어버림 (4)
―뭐, 뭘 개발해?
―마력감염증 치료제요.
―…자네 농담이 늘었구만?
―아뇨, 진짠데.
부우웅 ―
메디스카이 본사로 향하는 차 안.
뒷좌석에 탄 동석은 뒷목을 잡은 채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 기사.”
“예?”
“지금 세상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약이 있다면 뭐일 것 같다고 생각하나?”
“음…….”
갑작스런 동석의 질문에 김 기사는 앞을 주시하며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아마 탈모 치료제가 아닐까요.”
“…탈모 치료제?”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동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탈모 예방이나 탈모 증상 완화제 같은 건 있어도 완전히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아직 없지 않습니까. 발모제가 있긴 하지만 효과를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요. 여러 시술은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근본적인 치료도 아니고 말입니다. 탈모는 정말…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아픔과 고통을 모를 겁니다.”
“…자네 요즘 탈모약 먹나?”
뜨끔!
동석의 물음에 김 기사의 어깨가 한순간 움찔거렸다.
“…예전에 먹었었죠.”
헌터는 포기했지만, 마력 면역자인 김 기사.
얼마 안 되는 마력이지만 그 마력으로 자가 회복을 하여 다행히 탈모 완치에 성공한 바 있었다.
“…근데 탈모는 솔직히 그렇게 심각한 병은…….”
“…탈모가 심각하지 않다고요? 협회장님… 죄송하지만, 어디 가서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쇼. 기껏 좋아진 협회 이미지 다시 나락 갑니다.”
동석의 말에 다소 흥분한 듯한 김 기사가 조금 씩씩거리며 말투가 약간 거칠어졌다.
탈모 때문에 어지간히도 마음고생을 했던 듯했다.
“…미안하네. 그래, 어쨌든 그럼 만약 탈모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어떨 것 같나?”
“그러면… 와, 대박 아닙니까? 아마 전 세계의 돈이란 돈은 다 쓸어모을 겁니다. 탈모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은 노벨의학상, 노벨평화상, 노벨과학상, 노벨영웅상 다 줘도 모자랍니다!”
동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흥분한 김 기사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노벨영웅상 같은 게 어딨어?’
뭔가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생각한 동석은 더 이상의 질문을 그만두고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김 기사가 질문을 던졌다.
“서, 설마… 지금 메디스카이로 가시는 게 탈모 치료제가 개발되어서 가시는 겁니까? 정말로?”
“…아닐세.”
동석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자네는 기적 같은 사람일세.’
던전이 나타나고 10년이 넘는 연구에도 일말의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아 모두가 백기를 들었던 마력감염증 치료제.
갑자기 메디스카이 회장과 마력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말을 하더니 몇 달 지나지도 않아서 백신도 아니고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젠 무력을 넘어 그냥 인간적으로 너무 뛰어나서 무서울 지경.
동석은 최근 가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돌연 태운이 사라지고 협회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악몽.
십수 년간 협회 직원들과 함께 외롭게 분투해온 그에게 다시 예전의 협회로 돌아가는 것만큼의 악몽은 없었다.
―허억……!
그런 꿈을 꿀 때면 매번 전신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깨어났던 동석.
그렇게 악몽까지 꿀 만큼,
‘…하늘이시여. 그를 보전하소서.’
동석은 너무나도 뛰어난 태운을 하늘이 금방 데려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종종 있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던 치료제를 단 몇 달 만에 개발해냈다.
지금까지 해낸 일만 하더라도 한 사람이 해낸 일이라고 보기엔 과도했던 상황.
거기에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또 하나 추가했으니,
꽈악 ―
동석의 마음이 불안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후우…….”
동석은 긴장을 낮추기 위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 기사는 그런 동석의 눈치를 살피며 제 나름대로 한 번 더 유추해보았다.
“설마… 노화를 멈추는 약?”
“김 기사.”
“예?”
“입 다물게.”
“…예.”
부우웅 ―
메디스카이로 향하는 차 안.
김 기사는 운전에 집중했다.
* * *
똑똑 ―
“네.”
“회장님, 헌터 협회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요.”
끼익 ―
허준석 회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뚜벅 ―
곰 같은 체구의 중년인이 메디스카이 본사 회장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각 분야에서 수좌를 차지한 두 단체의 수장들.
최근 헌터계를 완전히 장악한 헌터 협회의 수장 한동석 협회장과 이미 오랫동안 의약계 정상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메디스카이의 수장 허준석 회장의 만남은,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특종 기삿거리였다.
“오셨습니까.”
허준석 회장 뒤에 서 있던 태운이 가면을 쓴 채 목례를 했다.
“…자네 때문에 내 요즘 제 명에 못 살까 봐 무섭다네.”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태운에게 농담으로 던진 말을 오해한 허준석 회장.
금방이라도 메디스카이의 생산라인을 털어 어떤 약이든 대령할 기세의 진지한 허준석 회장의 반응에 동석은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농담입니다. 코드 제로가 하도 놀랄만한 일들을 많이 벌여서 말이지요.”
“아… 하긴! 그렇습니다. 저희도 정말 깜짝 놀랐죠. 이번 일도 그렇고…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반짝반짝!
갑자기 졸지에 두 거물 중년인에게서 경외 어린 시선을 받게 된 태운은 이 불편한 상황을 재빨리 무마시키기 위해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서 앉으시지요. 처리할 일이 많습니다.”
“거참 사람이 여유롭지 못하다니까.”
“이런 부지런함이 지금의 코드 제로 님을 있게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인간미가 없지 않습니까.”
“진짜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저는 솔직히 코드 제로 님이 가끔 신처럼 느껴집니다. 하하핫!”
“인외종이라는 사실엔 저도 동의합니다. 허허허허!”
“크, 크흠……!”
낯이 부끄러워진 태운은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태운의 나이의 2배가 넘는 아저씨들이 저렇게 대놓고 자꾸 금칠을 해대니 버티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태운이 곤란해하고 있음을 알아챈 동석은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그럼 설명 좀 해주겠나? 마력감염증 치료제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그 원리나 제작 과정 정도는 알아야 나도 같이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 말일세.”
“그건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메디스카이 측에서 했던 실험 결과들과 태운과 함께했던 실험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쭉 설명해나가는 허 회장.
일반인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허 회장의 말솜씨는 웬만한 교수를 넘어 인기 스타 강사들에 버금가는 솜씨였다.
그렇게 10분 정도에 걸쳐 모든 설명을 마친 허 회장.
그리고 그 설명을 모두 들은 협회장은,
쩌억 ―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 아니… 그럼 결국…….”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동석을 대신해 허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장을 완성해주었다.
“네. 사실상 코드 제로 님께서 다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희는 뭐… 설비를 조금 지원해준 정도밖에 안 되죠.”
덜덜덜.
흔들리는 동공으로 태운을 바라보는 동석.
가만히 옆에서 허 회장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던 태운은 동석과 눈을 마주치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한번 계약을 진행해보실까요?”
마력감염증 치료제 개발자이자 유일한 제작 가능자가 된 태운.
어쩌다 보니 전 세계적인 돈을 쓸어모으게 생겼다.
* * *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협회와 메디스카이는 지원과 보조적인 역할이었고, 메인은 태운 한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태운의 신원을 밝힐 수는 없었기에 특허는 메디스카이의 이름으로 신청하기로 했다.
“협회는 제마액을 만들어 메디스카이에 독점 공급, 대용량 탱크에 저장해두면 코드 제로가 마력감염증 치료제를 제작, 그러면 그 유통과 판매는 메디스카이가 담당한다라…….”
계약 비율은 9:1.
태운이 9, 그리고 메디스카이가 1이었다.
“…회장님은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동석은 허 회장을 바라보며 정말 이걸로 충분하냐는 듯 물었다.
그러나 허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사실 제마액 제작 권한이 있는 유일한 곳인 협회와 유일하게 마력감염증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코드 제로 님에 비하면 유통과 판매는 대체할 수 있는 곳이 많은 일 아닙니까? 더군다나 저희는 한 것도 없는데 1할이나 떼어주신다니 그저 감지덕지지요. 이거 은혜를 갚겠다고 코드 제로 님께 갔다가 오히려 은혜를 또 입은 것 같아 면목이 없습니다.”
허 회장은 태운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지요. 은혜를 2번이나 입었으니 앞으로 생각나시는 것이 있다면 그냥 아무 때나 저희를 의지해주십시오. 저희 능력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허 회장의 말에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없으니 추후에 생각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네 언제든지요! 새벽에 전화하셔도 됩니다!”
미소를 지으며 허 회장과 약속하는 태운을 바라보며 동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 자네는 완전 돈방석… 아니, 다이아 방석에 앉았구만.”
“그건 협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태운은 동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려 마력감염증 치료제 원액의 독점 공급이었다.
제조원가를 고려하더라도 웬만한 기업체도 울고 갈만한 수입이 발생할 터.
동석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사비 터느라 수고했네. 표현은 많이 못 했어도 모든 직원들을 비롯해 나 또한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어. 앞으로 각종 명절 수당이라든지 보너스는 협회 자체에서 충당할 것이네. 뭐, 사실상 이것도 자네가 벌어준 돈이긴 하지만 말이야.”
사회를 뒤집어엎으면서도 협회 직원들의 봉급에 대해서는 건들지 않았던 태운과 의인당.
그 이유는 협회 직원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공무원으로 취급받기 싫습니다. 그냥 ‘협회 직원’으로 남고 싶어요.
―어차피 협회 직원들은 돈을 보고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혹시나 급여가 늘어서 돈을 보고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협회 자체에서 비공식적으로 챙겨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뜻.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올라가는 방식의 단순 경력지향적 봉급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많이 참여할수록 벌 수 있는 성과지향적 봉급제를 더 마음에 들어하는 협회 직원들이었다.
행정부서 직원들은 지금도 추가 근무 수당을 쏠쏠하게 받고 있었고, 전투 부서 직원들은 길드 헌터들만큼은 아니지만 던전 토벌 수익도 짭짤하게 올리고 있었으니, 이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던전 토벌 수익 외에 협회 직원들이 받아 가는 돈 대부분이 태운의 사비에서 충당되고 있었다는 게 큰 흠이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개인적인 토벌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 모든 것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단했기에 태운은 기꺼이 그 희생을 감당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이제서야 자네에게 맡겼던 짐 하나를 도로 가져갈 수 있겠어.”
협회에게도 자금줄이 생긴 것이다.
큰 짐을 하나 덜어내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미소를 짓는 동석을 보며 태운은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큰일 났네요. 이제 돈 나갈 데가 없어요. 세계 경제가 안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그 정도인가? 크허허허허!”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허 회장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러고 보니 말입니다. 코드 제로 님.”
“네?”
“저희 아직 이 마력감염증 치료제 명칭을 안 정하지 않았습니까? 똑같이 제마액이라고 유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코드 제로 님께서 명칭을 정해주시지요.”
“치료제 이름이라…….”
옆에서 동석이 참 고민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추천해줄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뭐, 간단히 하죠.”
태운은 간단하게 가기로 했다.
“리바이브(Revive).”
“……!”
실로 간단하고 명쾌한 그의 작명 센스에,
“리바이브로 가시죠.”
두 중년인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