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폭풍 직전은 평화로운 법임 (1)
한편 아무렇지도 않게 중국 고위 헌터를 처리한 헌터 협회의 최강의 팀, 코스모스.
“후우우우…….”
태연하게 왕펑을 처리한 그들과는 다르게 정작 누군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 거라 보는가?”
협회장, 동석이 10년은 더 늙은 얼굴을 하고 시커멓게 뜬 눈으로 협회장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럼요. 이제 와서 그렇게 걱정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태운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동석을 안심시켰다.
“음… 아무리 그래도 하필 처음 걸린 게 중국이라니…….”
“설령 미국 헌터라 해도 감행하기로 각오하신 일이 아니십니까?”
너무나도 태연한 태운의 반응에 동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솔직히 미국이나 중국은 아니었으면 했거든. 허허허. 이거 참, 역시 나는 소시민이 맞긴 한가 보네. 도통 담이 커지질 않아. 나이가 들어서 더 그런 건가…….”
동석의 푸념에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도 정정하시고 현역으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으신 분이 그런 나약한 소리 하시는 거 아닙니다.”
“허허허허! 고맙네. 뭐 한국 최강자가 그리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동석은 태운의 위로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듯 약간의 긴장을 날려버리고 표정을 진중하게 굳혔다.
“그래서… 특별한 기척이 있었나?”
“…박쥐 한 마리가 날아가더군요.”
태운의 입가에 어려있던 미소가 살짝 비틀렸다.
“서울 도심에서 뜬금없이 박쥐라… 확실히, 왕펑의 비서를 자처하는 헌터가 박쥐 능력자였던 것 같은데.”
“예, 맞습니다. 아마 이미 중국으로 소식을 전하고 중국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왕펑을 처리한 이후 일부러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던 태운과 강천.
이는 사실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지난 두 달간, 국내 헌터 범죄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수사와 처벌을 단행했던 헌터 협회.
강천의 직접적인 원수인 진재훈의 처단을 끝으로, 사실상 도망간 주작과 대붕을 제외한 모든 헌터들에 대한 징치가 끝난 상황이었다.
―내부 정리가 끝났으니, 이젠 놈들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생각해놓은 좋은 수가 있는가?
―…일단은 놈들이 쳐놓은 정보 왜곡망부터 깨야겠죠.
노아즈 아크가 한국 헌터 협회에 관한, 특히 자신에 대한 정보들이 해외로 퍼지는 걸 막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태운이었다.
자신의 활약이 퍼지는 걸 막은 채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노아즈 아크.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답례를 해야지.’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도 더 헌터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바로 헌터들의 치부가 드러나 헌터들의 사회적 입지가 추락하는 것일 터.
‘그러기 위해선 한국의 소식이 해외로 전해져야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통신정보를 왜곡한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과 외국을 오가는 사람들의 기억마저도 왜곡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고.’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대는 신이 아닌 인간.
분명 그 정보 처리량의 한계는 있을 것이라는 게 태운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해외 고위 헌터에 대한 공개 처단이었던 것이다.
한 나라의 병기라고도 볼 수 있는 고위 헌터들은 해외로 나갈 때 보통 누군가를 대동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어쨌든 태운이 짠 계획은 한국을 방문한 고위 헌터가 한국 헌터계의 질서가 변한 것도 모른 채, 평소 버릇처럼 범죄를 저지르면 코스모스가 출동하여 그를 체포하거나 처벌하고 그 헌터를 따라온 수행원은 일부러 놔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의 자연스러운 소통일 때와는 달리 해당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목표를 지닌 수행원이 어떻게든 정보를 자국으로 전하려 할 테고, 상대방은 못 알아듣는 것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게 될 터.
그러면 간접적이든 뭐든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려 애쓸 테고, 그 정보를 파악한 해당 국가에서도 곧 한국에 대한 정보가 퍼질 것이었다.
이후엔 그 국가를 중심으로 해당 소식이 전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고, 방대하게 늘어난 한국 헌터 협회와 태운에 관한 정보량을 다 감당하지 못한 노아즈 아크의 정보 왜곡 수단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게 태운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만약 자네가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진다면… 곧 해외에서도 한국을 주목하겠군.”
“예. 생각대로만 된다면… 아마 전화가 쉬지 않고 빗발칠 겁니다. 그전까지 미리 좀 쉬어두시죠.”
태운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건넨 오싹한 말에 동석은 벌써부터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상상만 해도 피곤하군…. 그나저나 강천 군은 어디 갔는가?”
“강천이요? 뭐, 어디 좋은 데 가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바쁠걸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석.
태운은 어디선가 실실대고 있을 강천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동해 토벌을 서아 씨 혼자 하겠다고요?”
김천용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뜬금없는 서아의 요구 때문이었다.
“어… 네!”
“아무리 실력이 많이 좋아지고 A급이 되었다곤 하지만 혼자선 무리인 거 잘 알지 않습니까? 괜히 부길드장이 다녀오던 게 아니었다고요.”
원래 민호성에 의해 정기적으로 진행되던 동해 토벌.
그러나 그 민호성이 도명조와 싸우다 마력 수치를 상당량 잃고 A급으로 강등당했기에, 청룡길드 측은 자신들의 담당구역인 동해를 민호성이 아닌 다른 헌터를 파견하여 처리해야 했다.
S급이라면 혼자서도 가능하겠지만, 이제 유일한 S급인 김천용은 길드장 신분.
던전 하나 없이 수색으로만 시간을 보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리는 일이었다.
수색 완료 후 던전이 있을 경우, 토벌까지 진행한다면 최대 수개월까지도 걸리는 동해토벌을 길드장인 김천용이 자리를 비우고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청룡길드는 길드 내 B급 이상의 헌터들 중 지원자를 받아 민호성이 S급의 지위를 되찾을 때까지 임시 동해 토벌조를 꾸리려 했는데,
―제가 할게요!
최근 사관학교를 다녀와 뭔가 크게 한 꺼풀을 벗었는지 급속도로 성장해 단숨에 A급이 된 청룡의 영원한 기대주, 최서아가 동해 토벌조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것도… 혼자 하겠다면서.
“어… 음… 그게… 혼자 하긴 하는데 혼자는 아닌…….”
말을 횡설수설하던 서아의 두 볼에 살짝 홍조가 피어올랐다.
‘…뭐지?’
김천용은 그런 서아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뭐야, 사관학교에서 애인이라도 만들어온 거야?
문득 지난번 훈련에서 이혜지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말 실전반에서 애인을 만들어온 건가……?!’
“서아 씨.”
“네, 네!”
김천용의 나지막한 부름에 서아가 긴장한 듯 바짝 허리를 세웠다.
“설마… 아니죠?”
“…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뻘뻘뻘.
서아의 이마에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동해 토벌이 아니라… 동해 데이트 아니에요?”
흠칫!
서아는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갑자기 딴청을 하며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유… 여기 길드장실이 많이 덥네요.”
“최.서.아.씨.”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차가운 목소리로 서아를 부르는 김천용.
그의 목소리엔 약간의 노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동해 토벌이 무슨 장난입니까? 그래, 혼자가 아니라고 치자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걸 둘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서로한테 정신이 팔린 상태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서아 씨 남자친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이제 막 사관학교를 졸업한 D급 초짜……!”
“D, D급 아니에요! 아마 길드장님보다 강할… 헙!”
남자친구가 약할 거라고 말하는 김천용의 말에 발끈하여 순간적으로 욱하여 말을 내뱉고 만 서아.
‘크, 큰일났다.’
남자친구는 정체를 밝혀선 안 되는 존재.
약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들키게 생긴 것이다.
“오호… 저보다도 강하다? 그러면 최소 S급이라는 말인데…….”
눈치 빠른 김천용이 재빨리 후보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에서 저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협회의 코드 제로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코드 제로 씨가 서아 씨랑 사귀기엔 너무 접점이 없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하나인데…….”
웬만한 명탐정보다 더 날카로운 김천용의 눈빛에 서아는 마치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용안에 의해 속내가 완전히 간파당한 기분.
“으으으…….”
‘망했어.’
털썩 ―
서아가 무릎을 꿇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길드장님… 제발, 제발 비밀로 해주세요! 비밀로 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저랑 데이트할 때는 가면도 벗고 다니기로 했는데에… 이거 알려지면 이제 계속…….”
뚝 ― 뚝 ―
서아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세계 최초와 두 번째 유니크형으로 기사가 난 적이 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꽤 지난데다가 첫 번째 유니크형이었던 서아의 실적이 부진하고, 두 번째 유니크형인 강천은 용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려지며 사람들의 관심이 뚝 끊긴 상황.
이젠 전처럼 딱히 두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강천은 일이 아닌 서아를 만날 때에는 가면을 벗고 다니기로 약속했었다.
어차피 적어도 두 사람이 사귄다는 사실이 들키더라도 강천이 코드 원인 것만 모르면 장땡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김천용이 코스모스의 코드 원이 서아의 남자친구인 걸 알아버렸으니, 이젠 김천용에게 코드 원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 망했어!’
기밀 사항이라 김천용에게만 공개하기도 불가능한 상황.
결국 서아는 앞으로 가면을 쓴 강천과 데이트를 하거나 숨어다니며 데이트를 해야 하게 된 것이다.
뚝 ― 뚝 ―
자신이 다 망쳤다는 생각에 서아의 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서아의 모습에,
“서, 서아 씨……?”
오히려 더 당황한 건 김천용이었다.
‘진짜로 코드 원이랑 사귀는 거였어?’
그냥 대충 어림짐작해본 거였는데.
‘아니 근데 사관학교에서 생긴 애인이 아니었나?’
쓸데없이 예리한 김천용의 추리력이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열일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사관학교에 다니던 생도가… 코드 원? 설마……!’
정식 졸업식이 이루어지기 직전 조기 졸업을 했다고 알려진 두 번째 유니크형 생도.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모든 정보가 기밀 처리된 신원 불명의 알파조원.
게다가 알파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코스모스 조로 승급한 그 비밀의 협회 직원까지.
“아……!”
쓸데없이 예리한 김천용의 추리가 딱딱 맞아들어가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코드 원의 정체를 알아내고 말았다.
“두 번째 유니크형 헌터… 유강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김천용의 혼잣말에,
“…깩.”
서아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대뜸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뒤 협회 본부.
지하에 위치한 상담실 안에서,
“…….”
“…….”
“…….”
문제의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