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나비효과가 엄청남 (2)
―저는 그럼 미리 엔화 환전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너도 얼른 하고 쉬어라. 내일 아침 몇 시 비행기랬지?
―아침 9시 반 비행기입니다. 여기 호텔에서 8시쯤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환전하고 나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잠시 자유시간 좀 가져. 그래도 모처럼 해외잖아?
―하지만…….
―잔말 말고. 확 해고해버린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 8시에 연락하자고.
―예, 편히 쉬십쇼.
진타오를 떼어내고 혼자가 된 왕펑.
홀짝 ―
헌터 호텔방에서 홀로 샴페인을 홀짝이던 왕펑은 가만히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 한없이 푸르기만 하늘과 그 하늘 밑에 평범한 도시.
그 풍경을 내려다보던 왕펑은 눈 주위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군.”
차이나타운의 이권.
사실 왕펑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돈이야 이미 평생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정도로 많이 벌고 있으니까.
하지만,
‘류하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자신이 놓친 것은 남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지 않는가?
게다가 적어도 라이벌인 수룡 길드, 그것도 자신보다도 밑인 3인자 나부랭이 류하오에게 뺏긴다는 것은 왕펑의 자존심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천을 먹은 건지, 아닌 건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알아보려 하지 않더라도 아마 놈을 만나면 전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인천을 먹었다면 뺏어버리고, 먹지 않았다면 그만 나대라고 패버리면 그만.’
류하오를 패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찜해둔 곳을 먼저 노린 것은 류하오 쪽이니까.
라이벌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길드 서열도 목룡이 수룡보다 한 단계 위이기에, 명분만 충분하다면 조금 손 봐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후우…….”
문득 답답함을 느낀 왕펑은 호텔방을 나와 로비로 내려갔다.
멋들어지게 꾸며진 헌터 전용 호텔 1층 로비.
따라라~ 따라다라~
제목을 알 수 없는 클래식 음악이 내부를 가득히 채우며 로비를 조금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다.
‘흥, 꼴에 호텔이라고 소국 주제에 잘도 꾸며놓긴 했군.’
풀썩 ―
왕펑은 로비 한쪽에 놓인 고급 소파 위에 앉아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핸드폰을 켰다.
“오늘은 무슨 게임을 할까나……?”
왕펑은 자신만의 특유의 룰을 가지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게임을 하는데, 뭐든지 그 게임에 맞는 환경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저번처럼 레이싱게임은 무조건 차도 위나 차 안에서 해야 한다던지, 간단한 동물 키우기 게임도 근처 펫샵이나 동물원에서 해야 한다는 등의 룰.
뭐든지 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왕펑이 승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자신만의 법칙이었다.
“어디 가기는 귀찮고… 호텔이니까… 그래, 호텔 서바이벌이다.”
호텔 서바이벌.
호텔 최상층 방에 머물던 마피아 보스가 잠든 사이 다른 마피아의 공격을 받아 점거된 호텔을 홀로 탈출하는 게임이었다.
스테이지가 높아질수록 고층 호텔에서 시작하는데 왕펑은 벌써 고수의 기준점인 30층을 돌파해있었다.
“32층… 좋아, 마피아 하면 또 담배 아니겠어?”
평소 버릇처럼 품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담배를 꺼내는 왕펑.
치익!
그렇게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그때,
“저기 고객님? 실례지만 호텔 로비에선 흡연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한 호텔 직원이 다가와 왕펑을 제지했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사거리 한복판까지 막고 게임을 하던 왕펑.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제지하는 직원의 행동에,
퍼어어어어엉 ― !
분노가 폭발했다.
* * *
삐용 ― 삐용 ―
서울의 한 헌터 전용 호텔이 위치한 대로변.
그 대로변을 요란한 사이렌 소리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삐이익 ― ! 삐이익 ― !
헌터 호텔 주위 반경 100m 정도를 빙 둘러싼 협회 직원들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복잡한 도로를 통제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마력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평소처럼 도로를 이용하려던 차들이 하나둘 협회 직원들과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유턴하여 빠져나가고,
“뒤로 가세요! 오지 마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왔던 사람들이 협회 직원들의 진지한 경고에 아쉬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며 슬슬 뒤로 물러났다.
“뭔 일인데 그래?”
“헌터 호텔에서 외국인 헌터 하나가 난동을 피우고 있대.”
“헐… 얼른 여기서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마력감염증에 걸릴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
호텔을 빙 둘러, 진을 치고 있는 협회 직원들을 믿고 있는 듯했다.
자리를 뜨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목을 쏙 빼고 두리번거리는 것이 다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좀 아쉬운데… 곧 그 사람들 올 수도 있잖아?”
“그 협회 소속 특수부대 말이지? 나도 한번 보고 싶다. 영상으로밖에 못 봤는데.”
“그 사람들이 오면 뭐 금방 해결되지 않을까?”
“어차피 여기 협회 직원들 계시잖아. 막아주시겠지! 보고 가자!”
“그래!”
예전이었다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을 사람들이 진을 친 협회 직원들 주위를 서성이며 떠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믿어주시게 된 건 감사하지만… 이런 건 좀 곤란하군.’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협회 직원들로 하여금 복잡한 기분이 들게 하고 있었다.
* * *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호텔 로비를 가득 채웠다.
“막아!”
우우웅 ―
마침 본부 근처라 빠르게 출동할 수 있었던 델타조 몇 명과 잠시 볼 일이 있어 본부에 들렀던 태성이 필사적으로 로비를 빙 둘러싼 채, 호텔 밖으로 새어나가려는 마력을 막아냈다.
다행히 소란이 벌어진 장소는 헌터 전용 호텔 로비.
헌터 전용 호텔이다 보니 이용자와 직원들 모두가 면역자였고, 호텔 벽 자체에도 방마 처리가 되어 있어 생각보다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처음 기파가 터진 순간 열린 문 사이로 새어 나간 마력이 행인 하나를 감염시킨 걸 제외하곤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크으윽!”
왕펑이 뿜어낸 어마어마한 위력의 기파에 델타조들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출동한 델타조 수가 그리 많지도 않은 데 호텔 바깥까지 통제하다 보니 호텔 내 인력이 부족했고, 거기다가 워낙 근거리에서 막고 있다 보니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서 태성이 왕펑을 상대하기 위해 마력 바리케이트에서 이탈하는 순간, 속절없이 마력이 새어나가게 될 터.
이미 호텔 문이 반쯤 부서진 상태라, 바리케이트마저 무너진다면 외부 행인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게 된 상황이 되어버린 태성은 입술을 깨물며 재빨리 무전을 쳤다.
“여기는 알파! 대체 본부에서 추가 지원은 언제……!”
태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원을 독촉하려는 그때,
콕콕 ―
누군가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찔렀다.
홱 ―
고개를 돌리는 태성.
그리고 잔뜩 구겨져 있던 태성의 얼굴은 자신의 등을 찌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의 등 뒤엔 보라색 1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으니까.
“강… 아니 코드 원! 뭐 하다 이제 와? 코스모스가 이렇게 늦어도 돼?”
코드 원이라 불린 사내, 강천은 태성의 반가움이 섞인 가벼운 질타에 억울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저 연락 받고 5분도 안 걸렸는데…? 이거 좀 억울하네요.”
콰아아아아앙!
“약소국 주제에 감히 대국의 국보 헌터인 나를!”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난리를 피우고 있는 소란의 원흉, 왕펑.
우웅 ―
강천은 태성의 옆에서 한 손을 거들며 태성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저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건데요?”
강천의 물음에 태성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담배.”
“…예?”
강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한 듯 다시 되물었다.
“호텔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길래 호텔 직원이 실내 흡연 금지라니까 개X랄을 했댄다. 직원이 협회에 신고한다니까 감히 자기를 협박하는 거냐고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고.”
“흐음~”
강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난리가 난 앞을 바라보았다.
바닥은 모조리 갈려 나가고 사방의 벽이 죄다 금이 가버린 호텔 로비.
그리고 그 중심에,
“으윽…….”
호텔 직원 하나가 외국인 헌터 손에 멱살을 잡힌 채 공중에 들려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이미 몇 대를 맞은 듯 얼굴은 새빨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저 직원이군요? 용감하네. 그래도 S급 헌터가 상대인데.”
태평한 강천의 말에 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에 너는 그게 할 말이냐? 저 사람이 괜히 그랬겠어? 너희 대장을 믿으니까 그랬을 거 아니야? 근데 정작 너희 대장님은 어디 가시고 너만 왔어?”
“이미 왔어요.”
“엉?”
이미 왔다는 강천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는 태성.
“뭐, 뭐? 어디?”
“저기요.”
강천이 손가락을 쭉 뻗었다.
태성과 강천의 반대편 쪽,
저벅 저벅 ―
주위를 둘러싼 델타조 직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 * *
“내가 담배를 피우겠다는데 네까짓 게 뭔데 자꾸 지랄이냐고!”
“커헉……!”
피투성이가 된 호텔 직원이 멱살을 잡힌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실내 흡연은 금지라고… 몇 번을 말해 이 짱깨 새끼야……!”
국제 자동번역기를 낀 두 사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욕설을 주고받았다.
콰아아아앙!
짱깨라는 욕설을 알아들은 왕펑의 몸에서 거센 마력의 기파가 재차 터져 나왔다.
주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몰두한 왕펑.
투둑 ― 툭 ―
직원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 핏줄이 하나둘 올라오며 눈 주위로 잔뜩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짱깨…? 너 진짜 나 누군지 모르냐…? 헌터 호텔 직원이면서……?”
헌터 호텔 직원은 고객 응대를 위해 신입 시절부터 세계 모든 헌터, 특히 고위 헌터들에 대한 신상을 외워야 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호텔 직원들의 필수 교육.
이 직원도 당연히 왕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실내 흡연 금지는 실내 흡연 금지인 법.
헌터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사회가 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왕펑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게다가 흡연을 제지했다고 다짜고짜 폭력이라니?
직원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놈의 미래를 점쳐보았다.
“네가 시X… 짱깨지… 누구겠냐……!”
덜덜덜.
호텔 직원은 오른팔을 덜덜 떨며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쥔 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허억… 허억… 이거나 먹어 새꺄. 넌 X됐어, 이제.”
빠직 ―
왕펑의 이마에 붉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오냐, 그래. 단숨에 죽여주마.”
사아아아아 ―
왕펑의 고유능력인 ‘모래’가 발현되며 순식간에 거대한 모래 낫이 그의 손아귀에 생성되었다.
슈욱 ― !
‘모래 사신’ 왕펑.
그의 이명만큼이나 섬뜩하고 날카로운 모래 낫이 천장 높이 들어 올려졌다.
“죽어라.”
높이 솟아올랐던 거대한 모래 낫이 휘둘러지려는 그때,
“멈춰.”
저벅 저벅 ―
주위를 둘러싼 채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던 헌터 협회 직원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검은 정장을 입고 보라색 숫자 0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내였다.
“지금부터 너를 연행하겠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사내의 말에 왕펑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넌 또 뭔데?”
“나?”
사내는 친절히 왕펑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협회 직원.”
가면 뒤 태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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