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30화 (130/300)

130화. 나비효과가 엄청남 (1)

“뭐? 이런 씨X……!”

목포항 근처 중국집에서 식사하던 왕펑은 브로커의 전화를 받고 욕설을 내뱉었다.

브로커도 밀항을 의뢰했던 진재훈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안 된다는 말만 하면 다냐? 전화가 안 되면 찾아야 할 거 아니야? 네 이름 뭐라고 했지?”

{어, 얼른 찾아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왕펑 님.”

그때, 가게 안 TV의 뉴스를 보던 진타오가 가만히 왕펑을 불렀다.

“딱 1시간 준다. 그놈 찾아서 연락해. 안 그러면 네놈부터 죽… 왜!”

허탕을 치게 되어 잔뜩 화가 난 상태인 왕펑이 전화로 신경질을 부리다 그 감정선 그대로 진타오의 부름에 대답했다.

“저기…….”

진타오가 시선으로 TV를 가리켰다.

“……?”

진타오의 시선에 왕펑은 표정을 잔뜩 구긴 채 고개를 돌려 TV를 바라보았다.

뭐라 뭐라 뉴스가 나오고 있는 TV.

“뭐, 나 한국말 몰라. 뭐라고 나오고 있는데? 야, 너는 일단 끊어.”

{네, 네! 들어가십쇼!}

툭 ―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왕펑.

스윽 ―

마력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 하는 외국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왕펑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 뉴스 앵커를 잠시 째려보았다.

“…….”

진타오는 한쪽 귀에 자동번역기를 낀 채 뉴스 앵커의 말을 잠시 더 경청했다.

“…미친.”

뉴스 앵커의 말을 듣던 진타오의 입에서 참 드물게도 욕설이 흘러나왔다.

“……!”

말수도 거의 없고 애초에 불필요한 말을 잘 하지 않는 진타오의 성격을 알고 있던 왕펑은 그런 진타오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설명해봐. 뭔데.”

파르르 ―

진타오는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듯 턱을 살짝 떨며 천천히 왕펑에게 뉴스 내용을 전달했다.

“…헌터 협회가… 범죄 전력이 있는 모든 헌터들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오늘 목포항 근처에서 잡은 ‘진재훈’이라는 헌터를 마지막으로…….”

“……!”

진타오의 말을 들은 왕펑의 두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무, 무슨 개소리야 그게… 헌터 협회? 헌터 협회라고? 걔들이 뭔 수로 헌터들을 정리해? 그럼 길드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

순간, 왕펑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어제의 기억.

―{경찰 협회의 해바라기라는 환경시민단체입니다! 환경오염방지 방범대라고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정말입니다! 감찰 부서의 유니버스가 저를 쫓고 있단 말입니다!}

왕펑은 어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던 진재훈의 전화 내용을 떠올렸다.

“…경찰 협회와 감찰 부서라는 게 헌터 협회를 말하는 거였나?”

부르르 ―

젓가락을 쥔 주먹을 잘게 떠는 왕펑.

“…아무래도 한국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타오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군. 아무래도 류하오가 한국 헌터 협회에게 붙잡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어.”

“……!”

왕펑의 추측에 진타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헌터 협회에게 류하오가 순순히 붙잡혔을 리가……!”

믿을 수 없다는 진타오의 말에 왕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헌터 협회가 헌터들을 정리한 건 말이 되고?”

“……!”

왕펑의 말에 진타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야 그 또한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헌터 협회가 어떤 곳이던가?

만국 공통적으로 낙오자들이나 무의미한 정의감에 심취한 이들이 모인 기관으로, 결국 길드 헌터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조직이 아니던가?

그런 조직기관에게 한국의 헌터들이 정리당했다는 것과 류하오가 잡혔다는 것.

어제 중국에서 들었다면 둘 다 말이 되지 않는 개소리로 치부하고 넘겼을 일이었다.

“…하지만 저 뉴스가 거짓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한국의 헌터 협회가 헌터 범죄자들의 정리를 마쳤다는 건, 이미 그 정리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는 의미입니다. 정리를 시작한 것 자체로도 엄청난 뉴스인데 이런 뉴스가 해외로 하나도 퍼지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어제 전화 내용은 너도 들었을 테지.”

“…….”

더 이상은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도 똑똑히 들었으니까.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말을 계속하던 진재훈의 통화 내용을 말이다.

“…왜곡의 주체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진타오의 질문에 왕펑은 팔짱을 낀 채 눈가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정부… 아니, 정부가 그럴 리 없지. 차라리 협회에 그런 능력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게 더 가능성이 높으려나.”

“한국 헌터 협회가 해외로 정보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끄덕 ―

왕펑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해킹 능력자가 아닐까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외와의 통화를 중개하는 기지국이나 인공위성을 해킹해서 특정 키워드가 전달되지 못하게 막은 게 아닐까?”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겠군요. 적어도 한국에 들어와서 들은 뉴스 내용은 정확히 들렸으니까요.”

드륵 ―

대충 추측을 마친 왕펑이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항 건은 없던 걸로 치더라도… 이대로 정확한 정보 하나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지. 한국 헌터 협회 본부로 가보자. 그 근처라면 뭐라도 얻을 수 있겠지.”

“…차 편을 예매해두겠습니다.”

“그래… 아, 나 한국 돈 없는데. 진 비서 있나?”

“네, 미리 환전해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좋아. 쓴 돈은 돌아가서 나한테 한 번에 청구해. 2배로 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딸랑 ―

계산은 진타오에게 맡기고 중국집을 먼저 나서는 왕펑.

까득 ―

계산대에 있던 누룽지 사탕 하나를 씹어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더럽게 좋네.”

구름 몇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왕펑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빤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왕펑.

새삼스럽지만,

“…….”

왕펑은 하늘이 참 넓고 깊다고 느꼈다.

후우우우우우 ―

심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광활한 우주를 가리고 있는 얇고 옅은 푸른색 포장지 한 장.

그 포장지 한 장이 찢어지며,

찌직…….

파르르 ―

그 너머가 드러날까 싶어 갑자기 두려워지는 왕펑이었다.

* * *

서울역으로 향하는 KTX 안.

“말씀 좀 묻겠습니다.”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던 왕펑과 진타오는 옆자리의 승객에게 가만히 말을 걸었다.

“…뭡니까?”

꽤나 지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중년인의 승객은 진타오가 내민 자동번역기를 귀에 끼며 살짝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외국말을 하는 외국인이다 보니 껄끄러워졌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저희가 외국에서 와서 그런데, 혹시 지금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헌터에 관해서요.”

“…뭐가 궁금하신데?”

아는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있는 지식이든 없는 지식이든 뭐든 뽐내기 좋아하는 중년인은 진타오의 질문에 살짝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무료한 서울행이었다.

할 일이 없어 핸드폰 좀 보다가 그냥 자려고 했는데, 이게 웬 소일거리란 말인가?

평소에 무식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지적인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아내 말을 따라 동그란 안경을 쓴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외국인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다니!

살짝 신이 난 듯한 중년인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진타오는 차분하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헌터 범죄자들이 정리되었다고 하던데…….”

진타오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

“그건 또 내가 잘 알지~”

한국 아재의 특성, 주먹구구식 TMI 설명이 시작되었다.

뉴스를 거의 안 봐서 솔직히 잘 몰랐지만 헌터에 관해서라면 아내가 몇 번 했던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 아재였다.

그 몇 안 되는 정보에 어떻게든 살을 붙여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아재.

그러다 보니 한참을 떠들어댄 것에 비해 그닥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었다.

“…헌터 범죄자들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냐고! 초인이다 뭐다 하고 떠받들어주니까, 아주 그냥 미쳐 가지고 그렇게 많은 짓들을 암암리에 저질러왔다니… 어휴! 열불이 뻗쳐서 못 참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번에 또 헌피연에 기부를 했지! 크흠!”

대충 아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짜깁기하는 아재.

사실 이 중년인 아재는 헌피연이 뭐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뭐의 줄임말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유~ 당신 이번에 헌피연 사람들 우는 영상 봤어? 내가 마음이 아파서 정말…….

딱히 검색해보지도 않은 채 대충 우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다길래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

하지만 허풍을 위해 일단은 떠들어보고 보는 아재였다.

주륵 ―

예상치 못한 한국 아재의 영양가 없는 TMI 설명에 진타오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아재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저… 정말 그 헌터 범죄자들을 협회가 정리했습니까?”

씰룩 ―

진타오의 물음에 아재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셔? 당연히 4대 길드랑 경찰이 했지!”

일단 예전에 알던 상식을 바탕으로 뱉고 보는 아재.

아재의 머릿속에 순간 아내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청룡, 백호, 현무는 범죄자가 아예 없거나 거의 없대. 역시 4대 길드지?

―대단하네.

―그래서 협회랑 경찰이랑 공조해서 범죄자들 수사에 도움을 주는 모양이더라.

“아, 아니지… 협회도 수사에 참여하긴 했네. 음음.”

반짝!

진타오의 두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원하는 정보가 아재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헌터 협회가 그렇게 강합니까?”

하지만 뉴스를 안 보는 아재의 협회에 대한 최신 정보는 3년 전 협회의 모습.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무슨 소리야? 협회는 그냥 겸상한 거지! 4대 길드가 메인이고 경찰이 서포트고! 4대 길드가 먼저 내부 정리를 하고 밑에 길드들 단속하는 거 아녀~”

대충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식에 맞추어 말을 만들어내는 아재.

“역시나… 하긴, 그럴 리가 없겠지. 그 뉴스는 그냥 협회의 권위를 조금이나마 살려주기 위한 구색이었나.”

진타오의 옆에서 자동번역기를 낀 채 아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펑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펑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진타오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혹시… 류하오라는 헌터에 대해 아십니까? 혹시 한국에서 소식을 들어본 적은?”

“류하오? 류하오라…….”

다시금 기억을 더듬는 아재.

이번엔 아내와 아들이 했던 대화가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류요, 와가 테키오 쿠라에에에에!

―방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몇 번 말해! 너 또 게임 하니?

―이, 일본어 공부한 거야! 어, 엄마? 그거 내려놓고 이야기하자! 아임 쏘리! 스미마셍!

‘그래, 그 류 뭐시기가 일본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너무나도 흐릿한 기억이라 아재는 이번엔 살짝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 뭐라더라… 일본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은데…….”

“……!”

아재의 말에 동시에 동그랗게 떠지는 왕펑과 진타오.

“일본…? 일본에 갈 일이 있나?”

“또 모르는 일이지요. 일본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 않습니까?”

“이 미친놈이… 동북아 지역 차이나타운은 자기가 다 먹으려는 속셈이었군?”

“…일본행 비행기는 내일 첫 비행기로 예약해두겠습니다. 엔화도 환전을 해둬야겠군요.”

왕펑과 진타오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그때,

[이번 역은 우리 기차의 종착역인 서울, 서울역입니다.]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 안내 방송에 왕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덜댔다.

“…그럼 서울은 괜히 왔군.”

“어차피 바로 옆에 인천국제공항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헌터 호텔을 예약해둘 테니 이왕 오신 거 편히 쉬다 가시죠.”

“음, 그래. 그러자고.”

진타오는 투덜거리며 KTX를 빠져나가는 왕펑을 먼저 내보내고 중년 아재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덕분에 좋은 정보 많이 알아갑니다. 그 자동번역기는 답례이자 선물이니 잘 쓰십쇼.”

“아… 아? 고, 고맙수다.”

얼떨결에 자동번역기를 선물로 받게 된 아재는 멍한 표정으로 먼저 KTX에서 내리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이나타운? 내일 바로 일본행? 뭐 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나 잠깐의 의문을 품었을 뿐, 몇 분 뒤 곧바로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아재.

아재는 이 순간에도, 그리고 훗날 눈 감는 그 날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날 자신이 별생각 없이 떠벌린 허풍이,

“으그그그극! 뻐근하구만……!”

전 세계를 뒤엎을 만한 사건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살랑 ―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태풍을 만든 나비의 날갯짓이 그렇게 서울행 KTX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