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내부 정리가 먼저임 (2)
지난 한 달.
태운과 협회 직원들은 본래의 업무와 동시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들을 수사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평소 업무량의 족히 몇 배나 되는 살인적인 업무량.
그러나 협회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이 묻어나올지언정, 결코 귀찮음이나 짜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순간만을 위해 열악한 환경의 협회에서 버티고 버텨왔던 것이었으니까.
‘이 개 같은 새끼들!’
‘모조리 집어 처넣어주마! 아니! 죽여주마!’
협회의 공격적이고도 철저한 수사 덕에 주말조차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최소 10명이 넘는 헌터들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이 징역형을 받았으며, 매일 한두 명의 헌터들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 나온 헌터 사형수… 벌써 13일 연속.]
[이렇게까지 썩어있을 줄은 몰랐다… A 대학 헌터학 교수 曰, “말기 암 환자에게서 종양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상황… 앞으로 계속 나올 것.”]
언론은 연일 속이 썩을 대로 썩어있던 헌터계를 향해 탄식을 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B 대학 헌터학 교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코스모스와 협회에게 감사드리고 싶어… 헌터학 교수진들의 이어지는 기부금, “헌터 범죄 피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
[코스모스의 코드 제로는 누구인가? 갑자기 나타난 현실판 구원자.]
[끝까지 버텨낸 협회… 결국 ‘존버’는 승리했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그가 이매탈에서부터 코드 제로가 되기까지.]
[JBS 간판 PD 나석영 曰, “코드 제로 님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해보고 싶어… 오늘 제작 승인받았다.”]
이토록 열악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버텨낸 협회와 그 직원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가장 결정적이고 커다란 역할을 한 코드 제로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까지 힘입으며 태운을 비롯한 협회 직원들은 수사와 처벌에 전력을 다했지만,
“후우… 이제 얼마나 남았죠?”
“…이제 24% 했는데요?”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헌터 부유국인 줄은 처음 알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만으로는 사실상 인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때 도움을 주겠다며 나선 길드들이 있었으니,
“저희도 돕겠습니다.”
“뭘 하면 됩니까?”
바로 청룡과 백호였다.
태운의 사전 언질 덕에 애초에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진작에 일말의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을 전부 쳐냈던 두 길드.
협회의 전수조사를 받았음에도 단 한 사람도 처벌받은 헌터가 없는 두 길드였기에 두 길드의 이미지는 추락하는 다른 여타 길드들과 달리 전보다 더 크게 좋은 쪽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우리도 돕겠습니다.”
한편, 의외로 평소엔 가만히 있던 현무 측에서도 먼저 도움을 주겠다며 협회로 연락을 해왔다.
총 2명의 길드원이 협회 조사를 통해 적발되어 처벌받기는 한 현무.
그러나 대형 길드도 아닌 다른 길드들에서도 보통 9명에서 10명 정도의 헌터 범죄자가 나온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굉장히 적은 수였다.
청룡과 백호처럼 원래부터 행실이 심히 불량한 이들을 쳐내고 있던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청룡과 백호처럼 미리 태운에게 언질을 받지는 못했지만, 도명조와의 대화 이후 길드 내부 정리를 단행했었기에 미처 도려내지 못한 이들만이 협회의 수사망에 적발된 것이었다.
어쨌든 4대 길드 중 도망간 주작을 제외한 3개의 길드가 팔을 걷어붙이고 협회를 돕기 시작하니,
척 ― 척 ― 척 ―
수사와 처벌은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일명, ‘코스모스 필터링’이라 불리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에 대한 솎아내기 작업.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인 협회 직원들과 그들을 돕는 3개의 대형 길드 덕에,
“거의 다 왔습니다! 힘냅시다!”
불과 한 달 만에 99% 이상의 헌터들에 대한 수사가 완료되었다.
* * *
헌터 협회 본부 10층, 협회장실이자 대회의실.
태운은 그동안 알아낸 노아즈 아크에 대한 정보를 헌터계에서 믿을 수 있는 주요 인사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협회 관계자들만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던 이곳에,
“이런 미…친…….”
꽈아악 ―
오늘은 협회 사람이 아닌 조금 새로운 얼굴들도 와있었다.
“진정하게.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
동석과 현주, 그리고 태운이 한쪽에 자리해 있었고,
“…아니요.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도명조에게 져버리는 바람에…….”
“…꼭 이놈 탓만은 아닙니다. 저도 같이 싸웠음에도 졌으니까요.”
푸욱 ―
청장발의 남자 김천용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옆에 앉아있던 백발의 거한 정호백도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이를 갈았다.
“…….”
그리고 그 옆에서는 정호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근육질의 거한 박대상이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는 두 분을 믿고 청룡과 백호에게 주작길드를 맡겼었지요. 같은 4대 길드이니 두 길드가 힘을 합친다면 주작을 비롯한 그 산하 길드들까지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면 그 전부를 철저히 관리하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바로 한꺼번에 날리려 했었는데… 제일 큰 주작과 대붕을 둘 다 놓쳐버렸군요.”
딱딱하게 굳은 태운의 두 눈빛이 두 사람을 향했다.
“…….”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천용과 정호백.
잠시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던 태운은 짧게 한숨을 쉬며 표정을 풀었다.
“고개 드시지요. 도명조가 그렇게까지 강할 줄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요.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두 분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압도했을 줄은…….”
“…그가 소의 방주라고 했지? 분지도에서 자네가 맞닥뜨린 토끼의 방주라는 여자와 동격의 위치라면 그런 강함도 이해가 되는군.”
“그렇습니다. 저도 도명조가 그런 위치라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확실히 도명조는 어마어마한 힘을 숨기고 있었어요. 아마 그날의 전투에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테죠.”
“어찌 보면… 두 분이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이 아닐까 싶네요. 코드 제로가 맞붙었던 그 여자의 절반만 된다고 가정해도 충분히 세계급 전력인걸요.”
움찔.
현주의 말을 들은 두 길드장의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세계급.
그 단어가 주는 충격과 압도적인 차이가 두 사람의 멘탈을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도명조가 세계급…….’
‘그 개자식이 세계급이라고……?’
으드득 ―
두 사람은 전신을 휘어 감는 분함과 패배감에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동석은 태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셈인가? 한국 내의 헌터들에 대한 조사는 거진 다 끝났어. 이제는 잠적해버린 1% 미만의 몇몇 악질들을 추적하는 일만이 남았는데… 이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 사실 전반적인 수사 자체는 끝났다고 볼 수 있네.”
동석의 이야기를 들은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숨은 사람을 찾는 일은 사실 우리보다 경찰이 더 전문이니까요. 추적은 그들에게 맡기고 제압할 일이 생겼을 때만 협회가 나서면 되겠죠,”
“…그러면 이제 일본으로 도망간 주작을 쫓는 겁니까?”
박대상의 물음에 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건 좋지 않은 선택지입니다. 우리가 건너간다 한들 지금 일본의 헌터계가 우리를 반겨주겠습니까?”
태운의 말에 현주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강한 헌터도 훨씬 많으니까. 한국의 4대 길드도 일본으로 건너가면 20대 길드에도 겨우 속할 정도이니…….”
일본.
한국을 둘러싼 4대 열강들 중 하나.
공식적으로 전 세계 10명뿐인 세계급 헌터 중 하나를 보유한데다가 한국에서도 7명 밖에 없다고 알려진 S급 헌터를 수십 명이나 보유한 헌터 강대국이었다.
“아마 일본에서 수사하려면 여태까지 한국에서 겪었던 것 이상의 벽을 만나게 될 거야.”
스윽 ―
현주의 고개가 태운 쪽으로 돌아갔다.
“…물론 코드 제로가 나선다면 별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그러자 태운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일단 지금 나서기 힘듭니다.”
“…왜?”
“저는 협회 직원이니까요.”
“…아!”
협회 직원.
말이 직원이지, 사실상 국가기관의 공무원 신분이었다.
한 나라의 공무원이 타국에서 그 나라의 허락 없이 공무를 수행하는 일은 국제법 위반.
자칫하면 국제적인 문제로 번져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직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이런 헌터들의 실상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겁니다. 말씀드렸죠? 정보의 왜곡. 한국에서의 지금 이러한 일련의 소식들이 전 세계에 하나도 퍼지지 않은 상태라면, 일본에서 수사를 진행해봤자 수사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국제적인 적대를 받게 되겠지요. 과격한 헌터들의 성정을 생각해보았을 때… 자칫하면 전 세계적인 협공을 받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석은 침음성을 흘리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국제적인 문제로 번지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해. 자칫하면 국민들의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성질 급한 정호백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실책이 포함된 문제라서 그런지 더욱 조급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요.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남아있잖아요?”
“할 일이라 하심은……?”
김천용의 물음에 태운은 김천용과 정호백을 눈으로 가리켰다.
“두 분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주작의 산하 길드들.”
“……!”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주작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입니다. 우린 아직 그들에 대한 처분을 내리지 않았어요.”
사실 대붕을 제외한 주작 산하 길드원들에 대한 조사도 끝나긴 했다.
다만 그들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은 보류한 상황.
보류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총인원 606명. 그들 죄질은 전원이 사형감입니다. 헌터법 제 2조 2항에 해당하거든요. 그들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이 일반 범죄자가 아닌 노아즈 아크라는 극단적인 광신도 조직이라는 겁니다.”
다른 길드와는 달리 길드 전원이 사형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는 것.
아무리 썩어빠진 길드라도 주작 산하 길드처럼 전원이 사형당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
노아즈 아크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공개할지 말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작 산하 길드 606명을 모두 사형시키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의심이 생기게 만들 것이었다.
“노아즈 아크의 존재를 밝히는 건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광신도 조직이 전 세계에 퍼졌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리 없죠. 오히려 음모론을 조장한다며 협회의 입지만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운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렸다.
“두 번째 문제는 역시 주작의 도명조입니다. 놈은 노아즈 아크를 이끄는 방주 중 하나. 자신이 만들어둔 한국의 조직원들이 모조리 죽어버리면 언제 어떻게 다시 한국에 조직원을 심으려 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아있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기반으로 다시금 일을 도모하려 할 테죠. 언젠가 도명조를 끌어들일 미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전부 계속해서 관리하는 건 힘듭니다.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청룡과 백호에게도 인력적 한계는 존재합니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가둬두고 관리하고 있지만, 말씀대로 처벌할 것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그렇게 가둬둔 채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천용의 말은 타당한 말이었다.
처벌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을 계속 가둬둔 채 둘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애초에 도명조가 미끼로 활용하려면 그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을 해줘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헌터법이 통과되고 헌터를 처단하는 코스모스가 발족했다고는 하지만, 노아즈 아크의 조직원인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짓을 벌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600명이 넘는 인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해서 청룡과 백호에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음…….”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에 대한 처분을 고민하는 태운의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그렇게 잠시간 침묵에 잠기는 회의실.
몇 초나 지났을까.
똑똑 ―
갑자기 누군가 조심스레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끼익 ―
문 가까이에 있던 태운이 문을 열자,
“아… 저기 아직 회의 중이시죠……?”
한 협회 직원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거의 다 끝나가던 참이니까요.”
그녀를 안심시키는 태운의 말에 협회 직원은 살짝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아까 1시간 전부터 코드 제로 님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오늘이 아니면 다음 주에나 시간이 되신다고 누가 찾아왔다는 기별이라도 한번 넣어달라고 하셔서…….”
“…누구시길래요?”
태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었으니까.
과거의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은인들이라 하면 대부분 이미 의인당 쪽으로 연결이 되어 서민우 의원 측을 통해서 연락이 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말을 듣는 그 순간,
“그… 제약회사 ‘메디스카이’의 회장님이십니다.”
“……!”
가면 뒤 태운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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