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코스모스가 피어남 (3)
팀 코스모스의 발족, 그것은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태운이 심어놓은 변화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발아하고 개화를 시작했다는 신호탄.
특수임무전담반의 특임반장에서 코스모스의 코드 제로가 된 태운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자수한 헌터들에 대한 세부 및 심층 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가중 처벌을 피하고자 자수한 헌터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것이었다.
“저, 저 자수했는데요?”
“자수한 게 인정되어서 이 정도입니다.”
다행히 조사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처벌을 하지 않았을 뿐, 사건에 대한 웬만한 기록들이 대체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입법 예고를 한 7일 동안 자수한 헌터 408명 중 382명이 일반 형량의 1.5배로 가중처벌을 받게 되었다.
“씨, 씨X! 말도 안 돼! 이건 음모야! 음모라고! 난 자수했는데 왜……!”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1조 2항. 폭력이나 위협 등의 무력이 관여된 범죄에 관해서는 그 대상이 일반인일 경우에만 통상적인 형량의 2배로 가중 처벌한다. 단, 사유에 따라 처벌 내용은 변할 수 있다.”
보라색 글씨로 0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쓴 태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친히 법 조항을 읊어주었다.
“됐습니까? 당신은 헌터의 신분을 이용해 반항하지 못하는 일반인을 폭행했어. 헌터라는 신분을 내세워 마력으로 위협했으니 특수폭행죄로 간주되고… 통상 형량 징역 5년에 2배 가중 처벌해서 원래는 징역 10년인데 자수해서 7년 6개월 받았잖아. 만족하라고.”
“아, 아무리 그래도 사람 하나 팼다고 7년 6개월은 너무하잖아! 나, 나 자수 안 해! 당장 이거 풀어……!”
콰악!
태운의 억센 손이 단숨에 헌터 범죄자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3조 1항.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해 헌터를 제압해야 할 경우, 대헌터진압특수부대의 소속인 자는 헌터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제압할 수 있다. 단!”
태운은 하얀 가면을 쓴 채 헌터 범죄자의 면전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당방위나 사고로 인한 사망은 책임을 묻지 않. 는. 다.”
“……!”
태운의 말을 들은 헌터 범죄자의 안색이 태운의 가면만큼이나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얌전히 벌 받아라. 어?”
홱 ― !
태운의 시선이 다른 헌터 범죄자들을 향했다.
“불만 있는 사람, 더 있나?”
“…….”
불만 많던 헌터 범죄자들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가만히 있자.’
‘그래 징역이 어디냐…….’
‘…마력 안 써서 다행이다.’
그들에게 하얀 가면을 쓴 코드 제로라는 남자는 공포 그 자체였다.
법 조항을 술술 말하며 구체적으로 설명까지 해주는 그의 명분과 논리는 이길 도리가 없었을뿐더러, 반항했다간 제압을 핑계로 그의 손에 처단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씨X새X야아아아아아!}
{난 헌터야! 헌터라고! 헌터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이 개X끼들아!!!!}
{씨X 이거 풀어! 안 풀어? 으아아아아아악!}
408명 중 382명을 제외한 26명의 헌터들이 사형수가 되어 먼저 교도소로 끌려가는 걸 봤던 것이 컸다.
그들 모두가 마력을 사용해 고의적으로 시민들을 감염시킨 이들.
본래 한 명이 더 있긴 했지만, 해당 헌터에 의해 감염되었던 시민은 기적적으로 살아나 각성했으므로 살인미수죄가 적용되어 사형이 아닌 징역 가중처벌을 받게 되었다.
임인범이 차지할 수도 있었던 헌터 최초의 사형수라는 타이틀을 꿰차게 된 26명의 헌터들.
게다가 자수로 가중처벌을 피하려다 무더기로 잡혀 들어가는 수백 명의 다른 헌터 범죄자들까지.
당연히 언론들은 신나게 연일 특보와 속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헌터 역사상 최초의 사형수 탄생… 헌터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결국 일낸 코스모스… 헌터계는 지금 청소 중.]
[前 특임반장이자 現 코스모스의 수장인 코드 제로 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헌터 협회 신조직 코스모스, 그가 헌터계에 던지는 메시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뿌리까지 곪아 썩어들어가던 대한민국의 헌터계가 마침내 등장한 거대한 청소부에 의해 본격적인 대청소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 *
자수한 헌터들을 빠르게 처리한 태운과 협회는 곧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자수하지 않은 헌터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헌터들에 대한 전반적인 확인 조사는 다른 협회 직원들에게 맡긴 태운.
“혹시나 제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 불러주세요.”
““네!””
한동안 꽤나 한가했던 협회 직원들은 행정부서와 전투부서 할 것 없이 오랜만에 태운이 들어오기 전처럼 격무에 파묻혔다.
아니, 솔직히 본래 일에 더해 국내 모든 헌터를 대상으로 벌인 일이었으니 그 이상이었지만,
활활활!
직원들의 두 눈은 열정과 의지로 그 어느 때보다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들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지금껏 여기서 버텨온 것이 아니던가?
태운 덕분에 마침내 꿈꾸던 바를 실현할 수 있게 된 직원들은 쏟아지는 격무에도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한편, 새롭게 만들어진 협회 상담실로 걸음을 옮기는 태운의 가면 뒤의 두 눈에서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부터 태운이 하게 될 일.
태운 또한 그동안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원준……!’
바로 어머니와 자신의 원수, 정원준에 대한 단독 조사에 착수하려는 것이었으니까.
태운은 정원준에 대한 자료들을 사전에 경찰에 부탁해놓은 뒤 지금 상담실에서 자료를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경찰에게 가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 후우…….”
상담실로 걸음을 옮기는 태운의 숨이 가빠졌다 잠잠해졌다를 반복했다.
‘침착해라… 침착해라, 권태운……!’
진작에 쳐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굳이 이 순간까지 기다려 온 것이었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어이없게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될 일.
‘반드시… 너는 내 손에 죽는다……!’
“스읍… 후우…….”
걸음을 옮기며 심호흡을 하는 태운의 호흡이 조금씩 차분해져 갔다.
척 ―
어느새 상담실 앞까지 도달한 태운.
그 사이 태운의 호흡은 완전히 안정적으로 변해있었다.
* * *
끼익 ―
“아, 안녕하십니까! 특임반… 아니, 아니죠. 이제 코드 제로 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되게 어색하네요.”
상담실 안에 먼저 앉아있던 경찰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운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냥 제로라고 부르셔도 되긴 합니다. 코드는 말 그대로 코드니까요.”
“그,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하하하…….”
왕십리 포장마차 사건 당시 태운과 만난 적이 있었던 박 순경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이젠 박 순경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특별 승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대단한 공을 세우셨다고요? 이젠 박 경장님이라 불러드려야겠군요.”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 정말 영광입니다!”
볼리베어 바디캠 영상을 본 뒤 태운의 열렬한 팬이 되었던 박 순경… 아니, 박 경장.
태운에 대한 그 팬심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 닮고 싶은 워너비로 이어졌고, 박 경장은 그동안 틈날 때마다 태운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단련하여 대단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최근 사회가 혼란했던 틈을 타 크게 몸집을 불린 인천 부평구의 거대 일진회를 단독 진압하는 성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근무지와 달리 집이 인천이었던 박 경장은 휴일 중에 밤 산책을 하던 도중 인천 일진회가 한 공원에서 회동하는 장면을 보았고, 불량 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셔틀들을 하나씩 데려와 돈을 수금하는 걸 목격했다.
―너희 뭐 하는 거야!
―…아저씨는 뭐야? 갈 길 가시죠?
그들의 행동을 보고도 어른들 모두가 고개를 돌리며 피해 갔던 인천 일진회였다.
수십 명… 아니,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 양아치 무리들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태운을 동경했던 박 경장은 그때 생각했다.
―‘특임반장님도 마력 없이 놈들을 상대하셨다. 게다가 쟤들은 학생이고 무기도 없어!’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했던 생각.
하지만 당시 박 경장의 생각은 진심이었고, 게다가 경찰로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띡 ― 띠딕 ―
근처 경찰서에 지원 요청을 보낸 박 경장은 수십 명이나 되는 일진들에 홀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하필 휴일이었던 터라 그 흔한 삼단봉 하나 챙기지 않은 맨몸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허억… 허억… 쿨럭……!
놀랍게도 박 경장의 승리였다.
물론 박 경장의 전신도 완전한 피투성이로 변해있었지만 말이다.
“일진 수십 명을 홀로 상대하셨다라… 마력만 없으면 웬만한 헌터들은 박 경장님 상대도 안 되겠는데요?”
“과, 과찬이십니다! 혼자 흉기까지 든 장기매매 조직을 진압한 특임… 아니, 제로 님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정말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그렇게까지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 경장님은 격투에 분명한 재능이 있으신 거니까요. 그거 반년 따라 했다고 일진 수십 명을 이길 수 있는 게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그, 그렇습니까? 하, 하하하… 아하하하핫!”
태운의 칭찬을 듣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박 경장.
싱긋 ―
그런 박 경장을 바라보는 태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의 팬인 경찰이 대단한 재능과 능력까지 갖춘데다가 그 지위마저 높아지고 있었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태운은 이번 정원준에 대한 자료 조사도 박 경장이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직접 모으고 가져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운은 그가 참 고마웠다.
“그럼… 실례지만 이제 슬슬 자료를 받아볼 수 있겠습니까?”
사담이 길어진 듯하자 태운은 적절히 대화를 끊어내며 본 목적으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안타깝지만 태운도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 여기 있습니다.”
팔락 ―
박 경장이 내민 자료를 받아드는 태운.
박 경장은 태운에게 자료를 건네주며 답도 없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 하필 제일 먼저 정원준 헌터를 꼭 집어 조사를 하시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대로 보시긴 한 것 같습니다. 이 새끼 이거 엄청난 악질입니다. 어찌 보면… 얼마 전 재판 직전 죽어버린 임인범 만큼이나 말입니다.”
파락 ―
“……!”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태운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다 못해 차갑게 얼어붙어 가기 시작했다.
자료에 적힌 정원준의 행적들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했으니까.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정원준이 그간 벌여온 일들 중 일부에 불과할 터였지만,
“…이게 정말 다 사실이란 말입니까……?”
그 일부만으로도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정원준의 과거는 태운의 표정을 경악과 분노로 가득 물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까드드득 ― !
‘정원준 이 미친 새끼……!’
어느새 자료를 바라보는 가면 너머 태운의 이마에는,
꾸득 ―
어마어마한 양의 핏줄이 잔뜩 솟아올라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