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코스모스가 피어남 (2)
본래 입법 예고의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최소 40일 이상,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일부 개정법률안의 경우에만 최대 10일까지 그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반면 하이퍼트랙이 적용된 입법 내용의 예고 기간은 총 7일.
하지만 이번 입법 예고만큼은 최근 전 국민의 관심을 가지게 된 사안에 관한 것인데다가 대대적인 기자회견까지 벌여가며 예고한 사안이었기에,
“와… 개쩌는데?”
짧은 예고 기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입법 예고안보다도 많은 이들이 입법 예고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무리는,
“…우리 X된 것 같은데?”
“시X, 좋은 날 다 갔구나.”
“아아아아아악! 나 헌터 된 지 겨우 2년 됐다고!”
“…이제 그냥 몸 사려야겠다.”
단연 헌터들이었다.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일명 ‘헌터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1조
1. 폭력이나 위협 등의 무력이 관여되지 않은 범죄에 관해서는 일반 법률을 적용한다.
2. 폭력이나 위협 등의 무력이 관여된 범죄에 관해서는 그 대상이 일반인일 경우에만 통상적인 형량의 2배로 가중 처벌한다. 단, 사유에 따라 처벌 내용은 변할 수 있다.
제 2조
1. 던전 토벌 혹은 브레이크 진압 상황이 아닌 그 외적인 상황에서 마력을 사용하여 선량한 일반인이 휘말렸을 경우, 피해자가 마력감염증으로 인해 사망할 시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단, 던전 토벌 혹은 브레이크 진압 시 과잉 대응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같은 형량에 처한다.
2. 고의적으로 선량한 일반인을 마력에 휘말리게 했을 경우,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
3. 2항에 관한 사안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된 자가 재판이나 법률 집행을 거부 및 도주할 경우, 헌터 협회 소속 대헌터진압특수부대의 장 혹은 그 대리자가 즉결처분할 수 있다.
제 3조
1.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해 헌터를 제압해야 할 경우, 대헌터진압특수부대의 소속인 자는 헌터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제압할 수 있다. 단, 정당방위나 사고로 인한 사망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
헌터법의 요지는 간단했다.
일반인에게 마력에 관한 피해를 입히지 말고, 무력을 사용하지 마라.
실로 간단한 규칙.
그러나 그 간단한 규칙을 그 무엇보다 엄격하게 규제해놓았기 때문에 헌터들은 왠지 숨통이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아니,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이건 또 뭐야? X나 무섭잖아, 이거!”
“협회 홈페이지 안 들어가 봤냐? 특임반 명칭 바뀌었잖아.”
“…뭐? 진짜로?”
국회 홈페이지에 입법 예고안이 게재된 그 날, 헌터 홈페이지에도 한 가지 공지사항이 있었으니,
“특수임무전담반에서 대헌터진압특수부대로 정식 명칭을 변경… 협회 전투부서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와 같이 공식 코드네임은 ‘코스모스’……?”
바로 특임반 명칭의 변경이었다.
* * *
코스모스(COSMOS).
그리스어로는 ‘질서’를 뜻하며, 영어로는 ‘우주’를 뜻하기도 하는 단어.
그야말로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태운의 포부가 담겨있는 이름이었다.
어쨌든 결국 대헌터진압특수부대라는 말은 전 특임반의 유일한 구성원인 태운을 지칭하는 말.
그랬기에 헌터법 제 2조 3항과 제 3조의 내용을 본 헌터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제 범죄를 저지른 헌터는 합법적으로 태운에 의해 처분당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아니, 사실 이것뿐이라면 앞으로 조심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입법예고에 올라온 것이 이 ‘헌터법’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이게 뭐야……?”
입법 예고된 법률안들을 살펴보던 일부 헌터들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헌터가 아닌 대중들의 가장 큰 지지를 얻은 입법 예고안.
그건 바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모든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였다.
특히 입법예고안에 기재된 제안이유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갖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모든 범죄가 제때에 해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나, 그렇다고 하여 뒤늦게 발견된 범죄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수사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 정의에 반한다고 봄. 특히 일반 경범죄가 아닌 강력범죄는 사회 질서를 위해서라도 필히 처벌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인바, 국가는 범죄 근절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판단함. 그리고…….]
항상 찬반이 대립하는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였던 공소시효 문제.
평소였다면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반대 입장의 시민들이 들고일어났겠지만,
“잘했다!”
“국회 일 좀 했네!”
“진작 이랬어야지!”
“…….”
최근 각종 범죄로 인해 어수선해진 사회 분위기 덕분(?)인지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반대론자들도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던전이 발생하며 불가피하게 생기긴 했지만,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던 하이퍼트랙마저 개정한다 하니,
“의인당 미쳤다!”
“이거 협회랑 같이 만든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오. 협회, 일 잘하네.”
ㄴ 찬성합니다.
ㄴ 찬성합니다.
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ㄴ 드디어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건가요.
입법예고안에 달린 댓글들을 포함해 전국민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사회적 이미지 실추로 인해 발언권을 잃은 헌터들 중 눈치가 빠른 이들은,
“이, 이거 시행이 언제야! 빨리 경찰서로 가자!”
“뭐, 뭐야. 너 왜 그래?”
“뭐 하고 있어, X신아! 너도 빨리 와! 이 법 적용되고 나서 처벌받으면 끝장이야! 그냥 지금 법에 처벌되는 게 훨씬 낫지! 가중처벌 당하고 싶냐? 너 일반인 때린 적 있잖아!”
“헉!”
가중처벌 혹은 그 이상의 처분을 피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법이 예고된 이후 7일간,
“뭐, 뭡니까?”
“자수하겠습니다! 저 좀 빨리 처벌해주십시오!”
전국의 경찰서로 자수를 하려는 헌터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도,
씨익 ―
태운이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 * *
“총 몇 명이랍니까?”
“…408명이네.”
동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태운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정말 인간인가?”
“…협회장님, 자꾸 그렇게 금칠하지 마세요.”
“아니… 이게 믿겨져야 말이지…….”
전국 곳곳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헌터들이 자꾸만 자수하겠다며 경찰서를 찾아온다고.
하지만 이미 태운은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였다.
{자수한 모든 헌터들에게 제마액 주사 완료했습니다.}
이미 감마조에게 전국의 경찰서를 방문하여 유치장에 임시 구금된 헌터들에게 제마액을 주사해놓으라고 부탁해놓았던 태운.
“…어딜 감히 가중처벌을 피하려고…….”
협회 건물 옥상에서 동석과 함께 바람을 쐬던 태운은 비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태운을,
반짝반짝!
동석이 존경심을 담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아직도 20대라는 젊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군!’
자신과 만날 때면 항상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오는 태운이었다.
외국에서 헌터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도 모자라, 여당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 특별법과 기타 법률과 제도의 개정까지도 이룰 수 있게 만든 태운.
그것도 모자라 굳이 입법예고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새롭게 제정된 특별법과 개정된 법률이 적용되기 전이라면 가중처벌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까지 심어주며 일일이 수사하기 힘든 수많은 헌터들의 자수까지도 이끌어 냈다.
게다가,
“입법예고가 끝나면 3일 안에 모든 절차가 끝나고 즉시 시행될 겁니다. 그 전에 자수한 헌터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을 리가 없죠.”
“…하이퍼트랙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군.”
“하하하! 괜히 하이퍼라고 이름이 붙은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새삼 그 위력을 느끼는 중입니다.”
“자네 덕에 마지막 순간에라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쓰이게 되었구만.”
하이퍼트랙을 이용해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수한 헌터들의 의도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하이퍼트랙이라는 극단적인 신속 절차를 없애버림과 동시에 말이다.
(하이퍼트랙은 이번 입법 예고안에서 한 단계 완화된 ‘슈퍼트랙’으로 개정될 예정이다.)
“…그나저나 발족식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조용하게 홈페이지에만 새롭게 기재했던 특임반 때와는 달리 조금은 거창하게 발족식을 갖기로 한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코스모스’.
새로운 헌터 사회의 질서를 담당하게 될 코스모스이기에 이번 발족식은 생략할 수 없다는 게 협회 직원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허허허! 그건 걱정 말게나. 아주 제대로 준비하고 있으니.”
그 발족식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찬성했었던 동석.
그는 요즘 발족식 준비하는 데에 맛이 들려 평소보다도 활기찬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태운은 이번에도 그냥 기사만 내고 조용히 가고 싶었지만,
“하아…….”
다른 직원들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적당히, 적당히만 해주세요. 제발.”
이번에도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태운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일명 ‘헌터법’ 시행 시작, 앞으로의 헌터계의 전망은?]
[강력범죄 공소시효 폐지… 검찰 고위 관계자 曰, “대대적인 수사 준비 중”]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는 ‘하이퍼트랙’… 이젠 개정된 ‘슈퍼트랙’과 함께.]
[특임반도 사라진다… 헌터 협회 관계자 曰, “오늘 밤 8시,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코스모스’ 발족식 생중계 예정, 많은 관심 부탁한다.”]
새롭게 혁신된 법체계의 시행과 함께 ‘코스모스’의 발족식이 거행되기 시작했다.
* * *
협회 본부 9층, 협회장실 바로 밑에 위치한 대강당.
웬만하면 거의 잘 쓸 일이 없는 그 공간에서,
“…에 대단하고 화려한 공연 아주 잘 봤습니다.”
헌터계의 새로운 질서의 중심이 될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코스모스’의 공개 발족식이 이루어졌다.
국내외에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이 한참 동안이나 이어진 뒤,
“다음은 협회장님 축사가 있겠습니다.”
협회장 축사를 가지는 순서가 다가왔다.
짝짝짝짝짝짝!
맨 앞줄에 앉아있던 협회장, 동석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쏟아지는 박수갈채.
그 때, 발족식을 중계하고 있는 카메라 중 하나가 박수갈채를 쏟아내고 있는 관객석을 촬영했다.
강당 의자에는 거의 대부분 협회 직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사이사이에는,
ㄴ 헐, 김천용도 왔네?
ㄴ 정호백도 있음…….
ㄴ 미친 현무 길드 박대상도 왔는데?
ㄴ 4대 길드 중 3대 길드 마스터가 다 왔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국내 주요 길드의 쟁쟁한 헌터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당연히 길드 헌터들은 이번 발족식을 모두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ㄴ 코스모스가 생기든 말든 자신들은 당당하다 이거 아님?
ㄴ 지렸다. 역시 천용이 형님 간지는 어디 가지 않는구나.
ㄴ 천드래곤? 나도 어디서 꿇리지 않아~ㄴ 그거 언제적 노래야;;
ㄴ 와 거의 100년 전 노래 ㄷㄷ
ㄴ 얘들아 타이거백 형님도 있다니까?
ㄴ 두둥! 둥 두두둥! 다 발라버려~
ㄴ 왜 자꾸 옛날 노래만 나오냐 ㅋㅋㅋ
가장 주목받는 얼굴들로는 이 세 사람이 있었지만, 그 밖에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도 몇몇 참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들의 뇌리에는 당연히 자연스레 이번 발족식에 모습을 드러낸 길드장들은 적어도 헌터 범죄에 있어서 당당한 입장이라는 이미지가 박히게 되었다.
“…함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발족식에 참석한 면면들을 보는 와중에 나름 밤새 준비한 동석의 축사가 끝이 났다.
“크흠!”
관객석에 자리한 헌터들을 보며 열광하던 댓글들의 반응을 보지 못했던 동석은 그저 자신의 축사가 좀 멋졌다고 생각했는지 목에 살짝 힘을 준 채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
“다음 순서는… 바로 오늘 발족식의 메인 파트군요.”
사회자를 맡은 부협회장 현주가 관객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발족식의 주인공을 한번 모셔보겠습니다.”
술렁술렁.
현주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관객석.
술렁이는 관객석을 살피던 현주의 시선이 관객석이 아닌 대기실과 이어진 무대 옆 공간을 향했다.
그 어둠 속 공간에서,
뚜벅 ―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천안 브레이크를 종결지은 전 이매탈이자.”
““……!””
남자의 등장과 함께 그를 소개하는 현주의 말에 관객석은 물론이고 댓글창마저 얼어붙었다
이매탈과 특임반장이 동일 인물임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순간이었으니까.
뚜벅 ―
“어제까지는 특수임무전담반의 반장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온 협회와 국민들의 영웅.”
뚜벅 ―
누구보다도 건장한 체격에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천천히 걸어 나와 무대 중앙에 놓인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그동안의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면이……!”
“바뀌었어……?”
그저 아무런 무늬 하나 없이 눈처럼 하얀색이던 가면 위에,
‘숫자 0……?’
숫자 0이 보라색으로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코스모스’의 현 유일한 구성원이자 대장을 맡게 된 오늘의 주인공!”
촤악 ― !
현주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팔을 펼치며 외쳤다.
“코드네임 제로를 소개합니다!”
현주의 소개가 끝남과 동시에,
텁 ―
사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코스모스 팀의 대장을 맡게 된 코드 제로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ㄴ 코드 제로오오오오오!!!!
ㄴ 우아아아아아ㅏㅏㅏㅏ
ㄴ 개간지 미쳐따아아아아!!!!
훗날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질서를 선도하게 될 특수조직, ‘팀 코스모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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