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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10화 (110/300)

110화. 코스모스가 피어남 (1)

{아주 깜찍한 짓을 하셨더군요?}

덜덜덜.

강동국 의원의 턱이 경기를 일으키듯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당신이 류하오 헌터의 핸드폰을……!”

전화 너머의 남자의 정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강동국 의원.

새빨갛게 충혈되었던 그의 두 눈은 어느새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뭘 굳이 그런 걸 묻고 그러십니까? 아마추어도 아니시고… 뭐,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방금 전까지 웬 중국인 하나가 까불더라고요? 간단히 손봐주었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좀 더 착하게 살 수 있겠죠?}

“……!”

지금 특임반장의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강동국 의원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류하오가 죽었어……?’

중국 8대 길드의 고위 헌터인 류하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헌터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는 사안.

새삼 다시 일의 심각성을 느낀 강동국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태운에게 따지고 들었다.

“어, 어쩌려고 그런…! 류하오 헌터는 팔룡 길드의 고위 간부야……! 네놈 때문에 한국이 피해를 보게 될……!”

{말은 바로 하셔야죠?}

흠칫!

겉으로 예의는 차렸지만, 살얼음보다 더 차가운 태운의 목소리에 강동국 의원의 어깨가 재차 경련을 일으켰다.

{한 나라의 헌터 협회 사람을 먼저 죽이려 한 건 요 중국인 놈이고, 그걸 부탁한 건 당신 아닙니까? 저는 완전 정당방위였습니다. 어휴, 중국의 S급 헌터라서 그런지 역시 강하더라고요? 죽이지 않고서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하핫!}

덜덜덜.

{그나저나 이거 증거가 너무 깔끔하게 남아서 약점 잡기에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 핸드폰, 증거물로 제출하면 당신네 여당도 XX당 꼴로 만들어주는 건 진짜 시간문제인데…….}

덜덜덜……!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강동국 의원의 얼굴은 어느새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다 못해 무색투명해지고 있었다.

두려운 것이다.

그동안 누려왔던 힘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심지어 이번 일을 빌미로 끌어 내려진다면,

‘…최소 사형……!’

살인을 교사했으니 살인죄나 다름이 없는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는 현재 국민 정서나 여론의 흐름상 사형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질 터.

줏대를 잃고 여론의 눈치를 보는 현 사법부라면 여론의 흐름을 따라 사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아, 안 돼……!’

털썩.

강동국 의원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트, 특임반장님.”

구차하게 빌기 시작했다.

“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목숨만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하지만 상대는 XX당 의원들을 단번에 파멸시킨 무자비한 처단자.

결코 쉽게 응해줄 리가 없었다.

{왜 이러십니까? 그동안 많은 걸 손쉽게 누려오셨으면 쉽게 내려오실 줄도 알아야지요. 남들의 몇배… 아니, 수십, 수백 배나 누리고 살았으면 이미 충분히 다 이루신 거 아닙니까? 그만 가실 때가…….}

“트, 특임반장님!”

덜덜덜……!

오만하고 거만했던 강동국 의원의 고개가 연신 땅으로 떨궈지기 시작했다.

영상통화가 아닌 단순 전화통화라 보일 리가 만무했음에도 강동국 의원은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 그래! 저희를 그냥 이용하십시오! 이렇게 된 거 어차피 현 여당은 사실상 끝난 거 아니겠습니까? 특임반장님께서 이용하실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시고! 단물만 쏙 빼먹고 나중에 처리해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 마,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흐음……?}

강동석 의원의 말을 들은 태운은 구미가 당긴다는 듯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 * *

사실, 애초부터 지금 당장 여당을 어찌해볼 생각은 없었던 태운이었다.

‘XX당 의원들이 대거 날아가면서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있었다. 이대로 여당마저 사라진다면 신생 정당인 의인당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기엔 미숙한 점이 많을 테지. 의인당 의원들 중에는 정치가 처음인 자들도 꽤 있으니까.’

적어도 이번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는 여당을 내버려 둘 생각이었던 태운.

이 모든 것은 과도한 사회의 혼란을 피하고 의인당에게 국정 운영일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너무 과할 정도로 단번에 정권을 휘어잡으면 반발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정치는 단순히 정당들 간의 물고 물리는 싸움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따르는 지지자들의 생각도 해야 하는 법.

적어도 여당의 자리는 한때나마 국민 중 가장 많은 비율의 지지를 받아야 오를 수 있는 위치였다.

국민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현 여당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쪽이 더 좋기도 한 것이다.

‘어차피 처벌은 시간문제. 이번 여당의 집권 기간이 끝나는 순간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면 될 일이니까.’

태운은 강동국 의원의 말을 들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신다면 저도 생각을 한번 해보지요. 혹시 또 압니까? 이번 남은 임기 동안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시느냐에 따라 제가 생각을 다르게 할지도…….”

태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살짝 걸쳐졌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강동국 의원의 말대로 여당에게서 단물만을 쪽쪽 빨아먹기로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저희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관계가 역전이 되어버린 두 사람.

그렇게 류하오를 통한 특임반장에 대한 암살 미수는,

“일단은 말입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바꿀만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 * *

뭐든지 시작이 어려운 법.

앞길에 놓여 있던 장애물들을 치우는 것도 모자라 손수 신호탄까지 쏘아 올려준 태운 덕분에,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및 기타 법률과 제도 개정안입니다.”

의인당은 너무나도 순조롭게 일 처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정된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줄임말로 ‘헌터법’의 입법 절차는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처리되었다.

본래 아무리 빨리 진행되어도 수개월은 걸리는 입법 제정 절차.

하지만 의인당에게는,

“해당 발의 안건들에 대해 하이퍼트랙 적용을 요청하겠습니다.”

“……!”

‘하이퍼트랙’이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초 긴급 신속 안건 처리 제도, 통칭 하이퍼트랙(HYPER TRACK).

긴급하고 중요한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킨 제도였다.

하이퍼트랙은 최대 수년까지도 길어지는 입법 과정 절차를 최대 반년으로 줄여버린 패스트트랙을 훨씬 상회했다.

하이퍼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아무리 늦어진다 해도, 최대 한 달 이내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하는 기형적으로 과하게 신속한 제도였으니까.

일단 하이퍼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이 생긴다면 국회는 그 어떤 일보다도 하이퍼트랙으로 지정된 법안 처리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괴상한 하이퍼트랙이 왜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던전 때문이었다.

본래 하이퍼트랙은 갑자기 나타난 던전과 헌터들에 관한 제도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졌던 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본질이 흐려져 기득권들이 협회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헌터 협회가 뭐라도 기득권의 심기를 건드리면 곧바로 하이퍼트랙을 발동해 협회를 옭아매는 규제들을 통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여태껏 협회의 숨통을 조여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하이퍼트랙은 이제 협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수단으로 다시 사용되고 있었다.

“…하이퍼트랙 적용, 승인하겠습니다.”

협회를 지지하며 민심을 휘어잡은 의인당과 그런 의인당과 뜻을 같이하는 소수당.

그리고 특임반장에게 목숨줄을 내어주게 되어 굴복당한 여당까지.

그야말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딱 5일이 지나고,

“이번 하이퍼트랙 적용 안건인 헌터법 및 기타 법률과 제도 개정에 대해 입법을 예고하겠습니다.”

국회 홈페이지에 법령안들이 게재되었다.

* * *

“이 대리. 이거 봤어?”

“아, 김 부장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울에 위치한 한 회사.

회사 옥상 난간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김 부장이 커피 2개를 뽑아온 이 대리에게 물었다.

“아니, 그거 있잖아. 이번에 국회에서 대대적으로 입법예고한 거.”

“아아~ 그 ‘헌터법’ 말씀이시죠?”

“응, 어때? 이 대리가 보기엔 괜찮은 거 같아?”

김 부장의 말에 이 대리는 실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요. 아주 그냥 속이 시원하던데요? 아니, 한국 법 같지가 않다니까요? 의인당이 일을 아주 잘해요! 아무래도 그 특임반장의 입김이 어느 정도 들어가서 그런 거겠죠?”

“그렇겠지. 사실 겉으로는 협회를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누가봐도 특임반장이라는 사람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왜 있잖아. 의인당 최고의원. 그… 누구더라? 서 뭐였는데.”

“아, 서민우 국회의원이요?”

이 대리의 말에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맞아. 그 서민우 국회의원이 저거래. 163빌딩 화재 사고 생존자. 특임반장이 생명의 은인인데 뭐든 해주고 싶지 않겠어?”

“하긴, 저라도 그럴 거 같네요.”

후룩 ―

김 부장은 옥상 난간에 기대어 커피를 홀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다만… 나는 뭔가 지금 제일 대세인 거대 정당이 한 사람을 너무 과하게 지지하는 느낌이 좀 그렇긴 하다.”

김 부장의 걱정 섞인 말에,

“에이~ 부장님. 걱정도 팔자십니다.”

이 대리는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과한 걱정인 것 같아?”

“그럼요. 아무리 의인당이 특임반장을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특임반장이 딱히 정치적 발언을 한 적은 없잖아요? 애초에 그 사람이 관심 있는 건 헌터 규제뿐이니까요. 그거 보셨어요? 헌피연 홈페이지에 자료 하나 올라와 있던데.”

“헌피연? 아… 몰라. 안 봤는데.”

아직 안 봤다는 김 부장의 말에 이 대리는 살짝 흥분했는지 말이 조금 빨라졌다.

“아니, 한 해에 발생하는 마력 감염증 환자 중 절반이 헌터에 의해 발생한대요. 실제로 지금 사관학교에 있는 사관생도들 중 49%가 헌터 피해자라고 하던데요?”

“…말이 돼? 그렇게 헌터 피해자가 많은데 여태까지 소문 하나 안 퍼진 게…….”

김 부장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이 대리는 더욱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피해자들은 거의 다 죽었으니까요! 게다가 살아남아 헌터가 된 생존자들도 그중 절반은 헌터의 특권에 물들어서 입을 닫는대요. 나머지 절반은 다른 헌터들에 의해 입막음을 당하고요.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입을 열면 그 헌터는 헌터들 사이에서 감시를 당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파티에서도 안 끼워준대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마력감염증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는데 굶어 죽지 않으려면 입을 닫는 수밖에.”

“아무리 그래도… 헌터가 되는 걸 포기한, 그냥 일반 면역자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은…….”

김 부장의 말에 이 대리는 답답했는지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헌터를 포기한 그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막말로 그 사람들은 E급 말단 헌터만 와도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데? 헌터계는 강자존인 거 모르세요? 그리고 마력 면역자들의 일자리도 결국 전부 헌터나 던전이랑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헌터들의 감시망을 피해갈 수 없죠.”

이 대리의 열띤 강연(?)에 김 부장은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이 대리, 굉장히 잘 알고 있네. 이 대리가 이렇게 헌터계 일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아… 아하하하! 제가 특임반장 팬이라서…. 그 사람이랑 관련된 거 이것저것 서칭 좀 하다가 좀 많이 알게 되긴 했어요.”

후룩 ―

한창 목소리를 높였던 이 대리는 갈증이 났는지 커피를 홀짝이며 옥상 난간에 팔을 기댔다.

“솔직히 이번 입법예고 내용만 보셔도 저절로 팬심이 생기지 않으세요? 입법예고안에 헌터법만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맞아. 그렇긴 해. 사실 얼떨결에 온 국민들의 숙원까지도 이뤄진 느낌이라 좀 어안이 벙벙하긴 하더라고.”

스윽 ―

김 부장은 다시 한번 국회 홈페이지에 접속되어있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들어올린 김 부장의 핸드폰 화면 안에는,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하이퍼트랙(HYPER TRACK) 일부개정안]

……

의인당에서 발의한 입법예고 내용들이 주르륵 올라와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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