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욕심 부리다 배가 터짐 (7)
“너… 뭘 믿고 이래?”
씨익 ―
태운의 도발에 류하오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기 아무도 없는 무인도야. 던전 토벌하느라 힘도 꽤나 빼셨을 텐데 괜찮겠어?”
피식 ―
류하오의 말에 비웃음을 흘리는 태운.
그 비웃음에,
빠직 ―
류하오의 이마에 힘줄이 잔뜩 솟아올랐다.
“웃어…? 고작 협회 직원 따위가 내 앞에서……!”
“야.”
태운은 류하오의 말을 끊어내며 다시 한번 질문했다.
“너 누구냐고 내가 물었잖아. 귀먹었냐? 하여간 짱깨 놈들은 자기 말만 하지 남의 말을 듣지를 않아요.”
울컥 ―
태운이 도발하고 있음을 알아챈 류하오는 가까스로 화를 참아내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다. 너희같이 변두리에 위치한 코딱지만 한 나라의 사람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그냥 귀가 나간 건 아니고? 중국말이 워낙 시끄러워야 말이지. 너희는 성인 되기 전에 전부 귀가 먹는다던데… 진짜냐? 아니 좀 조용히 말해. 그렇게 맨날 빽빽대니까 사람들 귀가 죄다 먹어서 점점 목소리만 커지고 남의 말은 안 들리는 거야.”
쿠구구구구궁 ― !
태운의 원초적이면서도 신랄한 비난과 모욕에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류하오가 마력을 개방했다.
“본국의 속국 인민 따위가……!”
“응 너희 고구려 때 우리 밥이었어~”
“고구려는 우리의 역……!”
“삼국지 위촉오가 사실 한국 역사라고? 에이, 줘도 안 가져. 우리도 삼국사기랑 삼국유사 있거든? 너네 많이 해라.”
“크아아아아아악!”
결국 태운의 도발을 견디지 못한 류하오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광 ― !
그의 몸에서 뻗어져 나간 기파가 금방이라도 분지도의 숲과 바다를 부술 듯이 뒤흔들기 시작했다.
류하오(流湖).
중국의 S급 헌터이자, 팔대 길드 중 하나인 수룡 길드의 3인자.
그의 고유 능력, ‘범고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끼이이이이이이익 ― !
어느새 하관이 범고래의 그것으로 변한 류하오가 고막을 멍하게 만드는 초고음을 토해냈다.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고주파의 울음소리가 섬 전체를 넘어 하늘과 바다 끝까지 뻗어나갔다.
“……!”
태운은 몸을 마력으로 강화한 채 자신의 몸에 부딪힌 후 튕겨져 되돌아가는 미세한 음파의 움직임을 느꼈다.
범고래의 음파 인식 능력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교하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음파를 통해 대상의 신체 형태와 육체적 능력을 인식할 수 있는 범고래의 능력이 발현된 것이었다.
“……!”
음파 인식을 통해 태운의 신체 능력을 파악한 류하오의 표정에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게 인간의 신체라고?’
류하오의 음파 인식은 헌터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마력을 제외한 순수 신체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온 음파로 파악해본 태운의 신체 능력은,
“미친…! 너, 너 인간이 맞는 거냐?!”
짐승,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나한테 인간이냐고 물으면 기분이 좀 이상한데?”
스팟 ― !
태운의 옆구리가 틀어지며 그의 발이 높게 뻗어졌다.
콰아아앙!
단순한 하이킥임에도 터져 나오는 굉음.
중력과 자가 회복으로 꾸준히 트레이닝 해온 태운의 신체는 그 순수한 피지컬만으로도 웬만한 일반형 능력자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갖춘 인간병기 그 자체였다.
거기에 마력으로 강화까지 했으니,
“크으으으윽!”
아무리 S급 헌터라도 멀쩡히 버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촤좌좌좌좌좍 ― !
가까스로 강화한 두 팔을 들어 막은 류하오의 신형이 바닥에 두 개의 긴 고랑을 파내며 힘없이 밀려났다.
그의 표정엔 감출 수 없는 경악감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S급인 내가 밀려……?’
류하오의 동공이 세찬 지진을 일으켰다.
덜덜덜.
욱신욱신!
벌써 감당할 수 없는 데미지가 쌓였는지 마찬가지로 지진이라도 난 듯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두 팔.
‘이게 정녕 헌터 협회 직원의 힘이라고?’
류하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태운에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대체 무슨 동호회를 하고 있는 거냐!”
긁적.
태운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상한 말을 내뱉고 있는 류하오를 조금 측은하게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정보의 왜곡 탓에 이상하게 인식되었는지 자꾸만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동호회 동호회거리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던 탓이다.
“…특수임무 동호회다.”
태운은 살짝이나마 진실을 알려주었다.
* * *
슈욱 ― !
콰아아앙!
순식간에 접근한 태운의 정권이 류하오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어느새 가슴팍을 범고래의 튼튼한 가슴으로 부분 변신시킨 류하오였지만,
“쿠에에에엑!”
태운의 주먹은 인간의 몸이든 거대 짐승의 몸이든 상관없이 모두 파괴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너 같은 놈은 신체강화로도 충분해.”
고유 능력 하나 사용하지 않고 신체 강화만을 사용해 류하오를 순식간에 다운시킨 태운이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해내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웃…기지 마! 나는 바로 중국 8대 길드! 수룡 길드의 류하오다!”
반짝!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허장성세를 부리는 류하오 덕에 그의 정보를 캐낸 태운이 눈빛을 반짝였다.
“중국 8대 길드? 그 정도 되는 녀석이 한국 정부의 개라니… 우리나라 정부가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데?”
류하오의 자존심을 살살 긁으며 그를 떠보는 태운.
아니나 다를까,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후욱 ― !
콰아아앙 ― !
순식간에 두 다리를 범고래의 거대한 꼬리로 변형시킨 류하오가 자가 회복으로 회복한 두 팔로 땅을 짚으며 거대한 꼬리를 망치처럼 휘둘렀다.
“이딴 속국 정부의 개 따위 된 적 없어! 부탁을 한 건 너희 정부야!”
자존심이 너무 강한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건지 순순히 정보를 불어대는 류하오.
휘릭!
가볍게 류하오의 공격을 피해낸 태운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 없잖아. 아무리 썩어빠졌어도 자국 협회 직원을 죽이겠다고 외국 헌터를 부른다고? 그것도 S급 헌터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수룡길드가 한국 정부의 개라는 게 더 신빙성 있다.”
“닥쳐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앙!
드높은 자존심은 인간의 마음을 굳건히 세우는 튼튼한 지지대가 되기도 하지만,
“감히 수룡 길드를 모욕해? 한국의 약소국 길드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 수룡길드이거늘! 오히려 반대다! 너희 정부가 우리에게 굽신거리는…….”
“지금 한낱 협회 동호회장한테 발리고 있으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콰아아아아앙!
때로는 일을 망치게 만드는 딱딱한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우웨에에엑!”
속이 진탕이 되어버린 류하오는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피를 잔뜩 게워냈다.
“마, 말도 안 돼…! 나는 수룡의 류하오……!”
두들겨 맞아 망가진 몸보다 정신적 충격이 훨씬 더 컸는지 자꾸만 뭐라고 중얼거리는 류하오였다.
S급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그였기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범고래는 강력한 동물이었지만, 육지에서는 전력을 낼 수 없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콰앙!
류하오를 발로 밟아 강제로 드러눕힌 채 류하오의 상의를 뒤지는 태운.
쑤욱 ―
류하오의 상의를 뒤지던 태운의 손에는 류하오의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뭐야? 속국이니 뭐니 하더니 결국 폰은 한국 제품 쓰네.”
“아, 안……!”
눈 깜짝할 사이에 핸드폰을 빼앗긴 류하오가 발버둥쳐 보았지만,
파지지지지지직!
“으그그그그그극!”
태운의 발을 타고 흘러 들어간 황금색 뇌전이 류하오의 전신을 순식간에 감전시켜버렸다.
파지지지지직!
황금색 뇌전에 의해 전신이 마비된 류하오.
치지직!
순식간에 뇌까지 침투한 번개에 의해,
툭 ―
자가 회복할 새도 없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간 보여온 위엄과 무게에 비하면 실로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욕심을 부리다 배가 터지고 만 꼴이었다.
톡 토독 ―
류하오의 죽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태연하게 핸드폰을 뒤지는 태운.
전부 중국어로 쓰여 있어 알아볼 수 없었던 태운은 AI를 불러 글자를 변경했다.
“하이 빅스비.”
{是(네).}
“Change the language to Korean(언어를 한국어로 바꿔줘).”
{是. 为 您 更换(shì. wèi nín gēnghuàn)(네. 바꿔드릴게요).}
띠링 ―
순식간에 핸드폰 내의 모든 언어가 전부 한국어로 변경되었다.
“역시 기술이 참 편하다니까.”
태운은 곧바로 류하오의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얼씨구?”
보물과도 같은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
한남동의 어느 한 자택.
한 중년인이 소파에 몸을 맡긴 채 편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
정적으로 고요한 집안.
그리고 그 정적을,
달달달달달…….
중년인이 다리를 떨며 스치는 옷 소리만이 간혹가다 깨뜨리고 있었다.
“오늘 입국했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야……!”
까득 ― 까드득 ― !
중년인은 어지간히도 초조했는지 다리를 떠는 것도 모자라 나이에 맞지 않게 손톱까지 물어뜯기 시작했다.
까똑! 까똑! 까똑!
[강 의원! 연락 왔나요?]
[연락 오면 바로 연락 줘요!]
[아니, 근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닙니까?]
계속해서 오는 연락이라곤 대통령의 독촉 연락뿐.
“끄으으응……!”
극에 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부서질 듯한 두통을 느낀 강동국 의원은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후두둑 ―
“으헉……!”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긁던 강동국 의원은 소중한 모발 몇 개가 떨어지자 그제서야 놀라 손을 머리에서 떼어냈다.
“…….”
안 그래도 초조해 죽겠는데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보고 있자니 심사가 불편해진 강동국 의원.
“하아…….”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우우웅 ―
그의 핸드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
재빨리 전화를 집어 드는 강동국 의원.
발신자 표시를 확인해보니,
[발신자 : 류하오]
그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류하오의 전화였다.
틱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너무 연락이 없으셔서 혹시나 일이 틀어진 줄로만 알았……!”
{안녕하세요?}
멈칫 ―
반색을 하며 말을 잇던 강동국 의원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류하오가 아니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귀에 착용한 자동번역기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도 선명하고 분명한 한국어였다.
“너… 너… 너 누구야……?”
덜덜덜.
강동국 의원의 손발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
침묵을 유지하는 상대방.
그의 전신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어느새 강동국 의원의 전신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음…….}
흠칫!
상대방의 단순한 흐음 소리에도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신경이 잔뜩 예민하게 곤두선 강동석 의원.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그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누, 누구냐고! 너 누구야! 누군데 지금 류하오 헌터의 핸드폰을……!”
{강.동.국 의원님 맞으시죠?}
꿀꺽 ―
그제야 말을 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강동국 의원의 목 뒤로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그, 그래.”
그리고 뒤이어 흘러나온 상대방의 말에,
{통화는 처음이죠? 특임반장입니다.}
그의 두 눈도 마른침과 함께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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