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욕심 부리다 배가 터짐 (5)
“빨리빨리 처리합니다! 이래서 오늘 안에 이 던전 토벌할 수 있겠어?”
하얀 가면을 쓰고 그 위에 빨간 모자를 얹은 태운이 공중에 뜬 채 고함을 쳤다.
헌터가 생겨난 이후 모병제로 바뀐 대한민국.
때문에 직업 군인 외에는 남자들도 군대에 가지 않았다.
“좌로 뛰어! 우로 뛰어! 거기 커플들! 동작이 굼뜨잖아! 멍하니 있다가 독 맞고 쓸데없이 자가 회복으로 마력 수치 낭비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웬만한 남자들도 과거에 있었다던 군대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이거 나 너튜브에서 봤어. 이거 군대 말투 아니야?’
‘아니, 특임반장도 미필 아니었어?’
‘아아아아아악!’
알파조는 특임조교(?)에 의해 뜻밖에 간접 훈련소 체험을 해야 했다.
콰과과과광!
“허억… 허억……!”
알파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알파조 4인은 숨 돌릴 만하면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는 인면지주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인면지주.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기괴한 형태의 거미 몬스터.
곤충형이기도 하지만 키메라형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영물이었으니, 전설형이기도 한 이 몬스터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히 강력한 녀석들이었다.
A급 최상위 던전, ‘인면지주의 숲’.
본래라면 인면지주의 거미줄이 가득한 숲을 헤매며 놈들의 기습에 대비하며 숲을 탐험해야 했지만,
콰광! 콰앙!
네 사람은 어느새 허허벌판이 되어있는 드넓은 평야에서 인면지주들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쉬지 않습니다아아!”
태운 때문(?)이었다.
* * *
불과 30분 전.
[자기장(磁氣場)]
쿠우우우우우우웅 ― !
태운은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던전 전역으로 이상한 무형의 기운을 전개했다.
파악 ― !
[자기부여(磁氣附與)]
[자기흡인(磁氣吸引)]
UFO에 빨려 들어가는 것마냥 던전 하늘 상공 높이 떠오른 태운의 손짓에,
촤좌좌좌좌좌좌좌좍 ― !
“키에에에에엑!”
광활한 숲 여기저기 숨어있던 인면지주 수백 수천 마리가 태운을 향해 날아들기… 아니, 끌려가기 시작했다.
단번에 던전 전역에 있던 몬스터들을 죄다 끌어모은 것이었다.
“쿠에에에에에엑!”
심지어 보스몬스터까지도 끌려왔는지, 다른 인면지주의 10배는 되는 크기의 거대한 녀석도 태운의 곁으로 끌려와 있었다.
‘세, 세상에…….’
‘이, 이 정도라고?’
‘그동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알파조 3인은 단번에 A급 최상위 던전의 몬스터를 한 번에 끌어모은 태운의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르는 걸 넘어 침까지 흘릴 뻔했다.
“기, 기성아… 특임반장님 진짜 S급 맞아…? S급 아닌 것 같은데…….”
“에, 에이… 설마 세, 세계급이려고…….”
“세, 세계급이 아니면, 저게 말이… 돼……?”
“안… 되겠지…….”
그동안 긴가민가 했었던 알파조원들은 이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특임반장이 바로 한국 최초의 EX급 헌터라는 걸 말이다.
사실상 이미 다중 브레이크 때부터 태운의 등급을 예상하고 있던 강천은 멍해진 눈빛으로 인면지주를 끌어모으고 있는 태운을 올려다보았다.
‘멀구나.’
아무리 강천이 빠르게 A급에 올랐어도 태운의 강함은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새삼 확연하게 느껴져 버린 그와의 차이에,
꾸득 ―
강천은 주먹을 꽉 쥐며 의지를 다잡았다.
‘언젠간 따라잡는다!’
사관학교 때처럼 다시 한번 경쟁심을 불태우는 강천.
그러나 그 경쟁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지지지지지직!
차마 경쟁심조차 느낄 수 없는 경외심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다중 브레이크 때와 비슷하게 태운을 중심으로 전 하늘을 물들이는 그의 번개.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파지지직!
이번엔 하늘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지지지직!
매번 형태를 변형시킨 청뢰나 적뢰만 사용했기에 사실상 가장 기본 능력인 금뢰를 거의 쓸 일이 없었던 태운.
이번엔 딱히 청뢰와 적뢰의 특별한 성질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콰르르르르르릉 ― !
오랜만에 기본으로 돌아가 던전을 초토화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슉 ― !
태운의 손이 아래를 향함과 동시에,
[금뢰우(金雷雨)]
콰릉! 콰르르릉!
파지지지지직!
금빛으로 물든 금천 아래로 금빛 번개 줄기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 ! 콰과과광!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울창한 숲.
“어… 어어어……?”
아무리 던전 안이라지만 숲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태운의 모습은,
꽈르르르르릉 ― !
‘아, 악마다!’
‘지구가… 아니, 던전이 멸망한다……!’
순간적으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강림한 악마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겨우 1분 정도 지났을까.
슈우우우우……!
그 짧은 사이에 던전을 가득 뒤덮고 있던 숲이 증발했다.
던전 입구 초입에 있던 알파조 4인의 표정에 경악이 깃들고,
“키에에에에엑……?”
공중으로 끌려 나왔던 인면지주들마저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진 그들의 숲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다시 현재.
슈슈슉!
하늘에서 인면지주들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덩치 큰 코뿔소만 한 거대한 거미들이 쏟아져 내리는 그 광경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푸슈슈슉!
꽁무니에서는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고 고무줄보다 더 질긴 실을 내뿜어내고,
“키에에에에에엑!”
사람의 얼굴을 한 채 입에서 독을 뱉어내는 놈들의 기괴한 모습은 알파조의 전의를 자꾸만 순간적으로 상실케 했다.
“크윽!”
가까스로 독을 피해낸 인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역시 A급 최상위……!’
인면지주들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환경적 이점과 최대 무기인 거미줄 함정을 잃었음에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강함은 단신으로 아이스 오거들을 상대했던 알파조들이 단신으로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알파조 3인이 함께 달려들어야 겨우겨우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
그리고 그건 강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파조 3인이 셋이서 벌써 수 마리째 인면지주를 사냥하고 있는 동안, 강천은 아직까지도 겨우 한 마리에 묶여있는 상태였다.
푸슛 ― !
푸화아악 ― !
화르르르륵 ― !
인면지주가 뿜어낸 질긴 거미줄을 강천이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푸슛! 푸슛! 푸슛!
강천에게 한번 접근했다가 다리 한 짝을 통째로 베인 인면지주는 계속해서 강천과 거리를 유지하며 멀리서 거미줄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강철보다 더 단단하면서도 초강력 접착제만큼이나 끈적이며 고무줄보다 더 질긴 인면지주의 거미줄.
조금이라도 몸에 닿았다간 곧바로 운신에 큰 제약이 생겼기에,
화르르르륵 ― !
혼자인 강천은 마치 그물처럼 넓게 펼쳐지며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거미줄들을 모조리 태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불에 약한지 쉽게 불타는 거미줄.
그래서 겉보기에는 강천과 인면지주가 비등해 보였지만, 그런 식의 대치만이 지속될 뿐이었기에 강천의 마력은 놈에게 이렇다 할 데미지를 주지 못하고 계속해서 줄어들고만 있었다.
‘이대로면 진다… 겨우 한 마리한테!’
던전에 있는 이상 몬스터의 마력은 사실상 무한이나 다름없었다.
던전 속 생물인 몬스터의 던전 안에서의 마력 회복력은 헌터의 수 배를 가뿐히 뛰어넘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강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다른 알파조원에게 도움을 청할 순 없었다.
자신과 달리 저쪽은 3명이 힘을 합쳐도 겨우겨우 잡고 있는 수준이었다.
강천이었기에 혼자서도 비등하게 버티고라도 있는 것이지, 저들은 2명이 되는 순간 곧바로 당할 것이 뻔했다.
‘나 혼자서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
헌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몬스터에게 고전해보는 강천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즈음,
“…….”
강천이 고전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태운이 혀를 찼다.
“저 바보가 뭐하는 거야?”
후읍 ―
답답해진 태운은 상공에 뜬 채 크게 숨을 들이켰다.
“뭐하는 거야! 이것저것 재지 말고 쏟아부어!”
쩌렁쩌렁 ― !
퍼뜩!
홀로 고심하던 강천을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태운의 일침.
‘재지 마라… 그래, 내가 왜 재고 있었지? 뒤는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 지금 여긴 형이 마련해준 성장의 장이니까!’
마력과 체력 분배의 실패로 죽을 염려 따위는 없었다.
태운이 있었으니까.
태운이 겨우 4명뿐인 알파조를 괜히 수준에 맞지도 않는 A급 최상위 던전에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그들의 성장을 위한 일.
‘레이드 부스터 프로그램’의 의의를 다시금 떠올린 강천이 전력으로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력 다 쓰면 또 그 이상한 약이라도 주겠지 뭐!’
키이이이이이잉 ― !
처컥! 처컥!
불을 내뿜던 강천의 양손이 아이스 오거 군락을 휩쓸었던 발칸포로 변했다.
그리고,
쩌억 ―
입을 쩍하고 벌렸다.
화륵 ― !
작은 화염방사기로 변한 강천의 혀가 마치 거북선의 입에 달린 포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르륵 ― !
드르르르르르르르륵 ― !
본인의 몸 앞에 최소한의 불꽃의 벽을 세움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화력을 쏟아부어 버리는 강천.
퍼버버버버버버버벅!
“키에에에에엑……!”
쿠웅!
순식간에 전신이 벌집이 되어버린 인면지주가 입에서 독이 아닌 피를 게워내며 비틀거렸다.
“허억… 허억… 와… 이래도 안 죽어?”
급소를 맞지 않는 이상 절대 죽지 않는 인면지주였다.
슈룩… 슈루룩…….
급소를 제외한 전신이 난자당했음에도 심지어 조금씩 회복을 하고 있는 인면지주의 모습에 강천은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허억… 허억… 후우우우…. 그만 가라, 얼른.”
어느새 권총으로 변한 강천의 손.
처컥 ― !
그의 손이 인면지주의 얼굴을 정조준했다.
“잘 가라.”
[권총(拳銃) ― Desert Eagle ver]
타앙 ― ! 타아앙 ― !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인면지주의 얼굴에 2개의 커다란 총알 구멍이 생기고,
쿵!
마침내 인면지주가 쓰러졌다.
[마력이 2321 올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강천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후아아아아……!”
털썩!
꽤 오래 대치하며 마력이 바닥을 쳤지만, 그래도 상처 하나 없이 잡은 탓에 2,000이 넘는 마력 수치를 온전히 흡수한 강천이 다리에 힘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좀 불공평한데.”
이미 2만이 넘는 마력 수치를 보유했기에 인면지주를 잡아도 겨우 10 안팎의 마력 수치만 오르는 태성이 볼멘소리를 내뱉고,
“미친… 저걸 혼자 잡았어?”
“하늘에도 괴물, 저기도 괴물, 눈앞엔 진짜 괴물… 이거 완전 괴물 천지네.”
마리당 700 정도의 마력 수치를 얻고, 동시에 500 정도의 마력 수치를 자가 회복으로 날리던 기성과 인하는 상처 없이 인면지주를 잡은 강천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태운은,
‘강천, 저놈… 엄청 잔인한 녀석이잖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지주의 얼굴에 권총을 쏜 강천을 보며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숲 전체를 날려버린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슈우우우우…….
던전 곳곳에서는 여전히 금뢰의 잔열이 검은 연기로 화하여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한 시간 뒤.
태운과 알파조는 잠시 휴식을 위해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음?”
띠링 ―
태운은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야? 왜 또 그렇게 불안한 미소를 짓는 거야?”
온몸이 땀범벅이 된 강천이 핸드폰을 보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운을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어느새 태운을 보면 경쟁심보다는 경외와 공포가 먼저 드는 강천이었다.
“응? 아, 별거 아니야. 그보다 나는 먼저 가봐야겠다. 오늘 하다 말았으니까… 내일 다시 하자고.”
“…어? 다시 여기 안 들어간다고? 진짜?”
“저, 정말입니까?”
“오늘 끝인 거죠?”
“역시! 정도를 아시네요! 믿고 있었습니다!”
인면지주와 싸우러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에 다른 알파조 3인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하는 네 사람의 반응에 태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뭐… 마석도 아낄 겸 천천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이들의 바닥난 마력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아공간 속에 남아도는 마석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와 일종의 마력 포션을 만들어왔던 태운이었다.
속성으로 키우려다 보니 발생하게 된 일종의 낭비에 가까운 마석 사용이었기에,
‘그래 뭐. 마석 아끼면 좋지.’
태운도 오히려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이 핑곗거리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핑곗거리를 넘어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감사함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태운의 핸드폰으로 온 문자에는,
[중국에서 온 고위 헌터 하나가 자네를 찾았네. 미리 말을 맞춘대로 분지도로 보냈다네. 늦지 않게 확인하길 바라네.]
협회장, 동석이 보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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