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두 번째 괴물이 들어옴 (4)
얼마 전, 태운에게 졸업선물이랍시고 A급 던전에 끌려갔던 때였다.
―수고했다.
태운은 기어코 하루 만에 강천을 A급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강천은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허억… 허억… 주, 죽을 것 같애……!
몇 번이나 마력이 바닥을 쳤던 강천은 정말 죽을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웬 엄살이래… 겨우 이 정도로 그러면 안 돼 임마. 빨리 S급까지 올라가야지.
강천의 마력이 바닥을 보일 때마다 이상한 가루를 먹이며 강천의 마력을 강제로 채워버렸던 태운은 헉헉대는 강천의 옆에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허억… 허억… 무슨 벌써 S급이야! 나 방금까지 B급이었다고! 그리고 S급이 그렇게 쉬워? 어차피 몇 년간은 알파조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숨 좀 돌리자!
기겁하며 질린 표정을 짓는 강천.
그러나 태운은 그런 강천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몇 년? 네가 버틸 수 있을까? 아마 답답해서 못 견딜걸?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뭐 나중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던 태운.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던 강천이었다.
그러나,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알파조 3인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본 강천은 그제야 태운의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알파조 세 사람은 강했다.
동급의 헌터들보다도 확실히 강한 모습을 보여준 세 사람.
겨우 셋… 아니, 거의 혼자서도 A급 몬스터인 아이스 오거들을 능히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같은 수준의 헌터들에 비해서도 강한 이들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답답하다.’
그마저도 강천에게는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애초에 약간의 태운의 도움을 받았긴 했지만, B급일 때 A급 던전을 거의 홀로 몬스터들을 상대한 강천이었다.
A급 베테랑들, 심지어 A급 최상위에 오른 태성까지 있는 알파조가 아이스 오거들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대단하기보다는 그냥 당연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애초에 놀란 것도 자신과 다른 능력을 지녔기에 그 점이 신기했을 뿐이니까.
‘우수하다는 이 사람들이 이 정도라면… 그럼 다른 A급 헌터들은 얼마나 약한 거야?’
강천은 한 마리의 독수리였다.
창공을 가르며 모든 대지를 발아래에 두는 하늘의 제왕.
그런 독수리에게 무한한 하늘이 말했었다.
―너는 더 위로 올라와야 해.
독수리는 새장에서 살 수 없는 법이었다.
그 새장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하늘보다 넓을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알파조가 강하다고는 해도 강천에게는 결국 커다란 새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뚜둑 ― 뚝 ―
세 사람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만 보던 강천이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직!
“…음?”
아이스 오거 무리 중 한 마리의 갈비뼈를 함몰시킨 태성.
그의 예민한 감각이 뒤쪽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강천의 미세한 움직임을 캐치해냈다.
아무리 동물형 능력자라고는 하지만 실로 어마어마하게 예민한 감각능력이었다.
‘갑자기 몸을 푼다……?’
뭔가를 하려는 듯한 강천의 행동.
‘하긴 몸이 근질거릴 때도 됐지.’
빠르게 눈치를 챈 태성은 뒤로 물러나며 기성과 인하를 불러들였다.
“알파조! 뒤로 빠진다! 신입 테스트할 시간이야!”
퍼억!
“옙!”
방금 막 인하가 던진 아이스 오거의 명치를 뚫어내며 대답하는 기성.
재빨리 저 멀리 비틀거리고 있는 인하에게 접근해 그녀를 등에 들처업었다.
“허억… 허억… 안 그래도 팔 찢어질 뻔했어…….”
인하는 양팔을 문지르며 기성의 등에 업힌 채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를 했다지만 아무래도 거의 힘이 아닌 탄성으로 육중한 거체를 지닌 아이스 오거들을 집어던지다 보니 고무의 능력으로도 한계를 맞이했던 모양이었다.
“허억… 허억… 응?”
잔뜩 지쳐 숨을 헐떡이며 기성의 등에 업혀 물러나던 인하는 기성의 입가에 묻은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다쳤어?”
“아… 아까 공격을 너무 정통으로 맞아서… 뭐 별건 아니야.”
“치료는?”
“어차피 내일 쉬는 날이잖아. 하루 푹 쉬면 낫겠지.”
인하는 살짝 우울해진 표정으로 가만히 자신을 업고 달리는 기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바보야, 다치지 마.”
“하핫! 미안.”
요 근래 몇 번 데이트 좀 하더니 제법 진짜 연인다운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
함께 군락지에서 물러나던 태성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우웩! 염장 작작 질러! 어이 신입! 너 차례다! 뭔가 하려고 했지? 한번 보여줘 봐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태성.
스윽 ―
태성의 외침에 두 사람의 시선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강천에게 향했다.
철컥 ―
“…응?”
강천을 바라본 세 사람은 두 눈을 의심했다.
강천의 두 손이 이상한 형태로 변해있었으니까.
‘저, 저게 뭐야?’
파악!
자리를 박차며 아이스 오거의 군락지로 달려드는 강천.
뒤로 물러나던 알파조 3명과 앞으로 달려드는 강천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겹치며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
그리고 알파조원들은 조금 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강천의 양손이 무엇으로 변해있는지를 말이다.
‘미, 미친!’
‘개사기잖아!’
화륵 ― !
강천의 손끝으로 삐져나온 작은 무언가가 두 줄기의 붉은 잔상을 남기며 앞으로 쭉 나아갔다.
* * *
“쿠어억?”
군락지의 바깥쪽을 바라본 아이스 오거들의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쳐들어온 작은 인간 셋이 군락지 바깥으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또 하나의 인간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쿠어어어어어억!”(우릴 얕보는 것이냐 인간들!)
쾅! 쾅! 쾅! 쾅! 쾅!
성난 아이스 오거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쿠어어어억! 쿠어어어어어억!”(전사들이여! 총공격해라!)
두두두두두 ― !
군락 내 모든 아이스 오거들이 그들의 군락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강천을 향해 마주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10마리가 넘는 동료를 잃은 아이스 오거들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푸쉬이이이익 ― !
이미 머리끝을 넘어 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솟아있었다.
촤아아아악 ― !
얼어붙은 땅 위를 미끄러지듯 멈추며 자세를 잡는 강천.
척 ―
강천의 양팔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스 오거 떼를 향해 뻗어졌다.
키이이이이잉 ― !
[화염방사(火焰放射)]
푸화아아아아아악 ― !
화염방사기로 변한 강천의 양손에서 거대한 화염이 뿜어져나왔다.
화르르르륵 ― !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며 아이스 오거들을 덮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마.
그저 육탄전을 벌일 생각이나 하고 있던 아이스 오거들은 갑자기 그들을 덮치는 거대한 화염에 당황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억!”
쿠당탕탕!
단체로 달려들던 아이스 오거들이 서로 뒤엉킨 채 화마에 삼켜졌다.
순식간에 선두에 서서 달리던 수십 마리의 아이스 오거들이 새카맣게 불타버린 것이다.
“쿠아아아악!”
뒤이어 달려오던 아이스 오거들이 뒤늦게나마 돌진을 멈추며 화마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
입 안에 무언가를 모으는 아이스 오거들.
“쿠학!”
그들이 입을 여는 동시에,
콰아아아아아 ― !
어마어마한 눈폭풍이 휘몰아쳤다.
화륵! 화르륵!
군락 전체를 뒤덮을 기세로 퍼져나가던 거대한 화염이 아이스 오거들이 뿜어내는 눈보라에 막혀 잠식을 멈추었다.
푸화아아아아악 ― !
콰아아아아아아 ― !
피부와 뼈를 녹이는 열기와 피부와 뼛속까지 얼리는 냉기의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이 ― !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나오며 일대를 뿌옇게 뒤덮기 시작했다.
인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수증기의 수천 수만 배는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신입!”
수증기가 일대를 감싸자 시야가 가로막힌 태성이 재빨리 안력을 강화했다.
강천이 당하는 일은 막아야 했으니까.
신입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신입이 당해버리고 마는 불상사는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최대한 마력을 모아 시야를 강화하는 태성.
푸화아아아악 ― !
태성의 두 눈에 뿌연 수증기 속에서 연신 거대한 불길을 방사하고 있는 강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데,
풀썩 ―
갑자기 강천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강천이 힘에 부쳐 주저앉은 거라고 생각한 태성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힘을 보태려는 그 때,
키잉 ―
“어……?”
철커덕 ―
뭔가 이질적인 기계음이 예민한 태성의 청력에 감지되었다.
“……!”
아이스 오거들을 향해 쭉 뻗어져 있는 강천의 두 다리.
양팔과 두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엉덩이로만 균형을 잡고 있는 강천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키이이이이이잉 ― !
그 이후 벌어진 광경은 결코 빈말로도 우습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개틀링건 ― M61 벌컨 ver]
드르르르르르르르륵 ― !
두 개의 거대한 개틀링건으로 변한 채 각각 초당 100발이 넘는 마탄을 쏟아내고 있는 강천의 두 다리.
그야말로 난사이자 폭격과도 다름없는 무자비한 개틀링건의 화력이 강천의 전방을 초토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버버버버버버벅!
단체로 눈보라를 뿜어내며 화염과 대치하고 있던 아이스 오거들의 몸통이 순식간에 벌집으로 변해버렸다.
쿵! 쿵! 쿵! 쿠웅!
빠른 속도로 쓰러지기 시작하는 아이스 오거들.
아이스 오거들이 쓰러지자,
콰아아아아…….
자연스레 눈보라도 약해졌고,
푸화아아아아악 ― !
단번에 승기를 잡은 불길이 순식간에 약해진 눈보라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화르르르륵 ―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 !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불지옥에 삼켜진 채 벌집으로 변해버리는 아이스 오거들.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로부터 10초 정도 지났을까.
키이이이이이잉…….
어마어마한 화력을 쏟아내던 강천의 팔다리가 각각 작동을 멈추고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도 조금은 힘들었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는 강천.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엔,
치이이이익……!
새까맣게 변한 채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아이스 오거의 군락지가 서서히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이 강천이 나선 지 불과 2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쩌억 ―
뒤에서 가만히 이를 지켜보던 기성과 인하의 입이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쩍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주륵 ―
태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만히 속으로 생각했다.
알파조에 실력 좋고 미래가 기대되는 신입이 들어온 게 아니라,
“…이, 이 미친 신입 자식아……!”
미래가 두려운 아직 덜 자란 괴물 한 마리가 들어온 것 같다고.
“터미네이터도 그렇게는 못 한다! 이 괴물 자식!”
훗날 강천의 이명, ‘터미네이터(말살자)’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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