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달토끼가 조금 강함 (5)
1,000배에 달하는 중력에 의해 바닷속으로 처박힌 쿠마리는 한참을 발버둥 치다 결국 숨이 막혀 가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화신체라고 한들, 숨이 막히면 죽는 건 똑같았으니까.
촤아아악!
그리고 태운은 그런 쿠마리를 꺼내 그녀를 깨웠다.
짜악! 짜악! 짜악!
태운의 손바닥이 거침없이 그녀의 뺨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짜악!
촤악……!
그의 손바닥이 쿠마리의 뺨을 칠 때마다 그녀의 고운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커헉……!”
양쪽의 뺨이 거의 짓뭉개지다시피 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쿠마리는 겨우 바닷물과 함께 거친 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죽다 살아난 쿠마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척 ―
태운은 그런 그녀의 목에 자줏빛 대검을 들이밀었다.
수천 줄기의 자뢰가 모여 만들어진 자뢰검이었다.
치지지직!
치이이이이 ― !
조금 가까이 가져다 댄 것만으로도 쿠마리의 피부가 벌겋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청뢰검 이상의 초고열을 자랑하는 자뢰검의 위력이었다.
그나마 쿠마리의 신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달의 권능으로 변한 화신체였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생물이었다면 진작에 전신이 불타버렸을 정도의 엄청난 고열이었다.
“끄으으으으윽!”
치이이이이이!
쿠마리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정신을 겨우겨우 붙잡으며 전신이 익어가는 걸 막기 위해 자가 회복을 시전했다.
태운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쿠마리에게서 자뢰검을 거두지 않고 여전히 겨눈 채로 질문을 시작했다.
“자, 문답을 시작해볼까? 너는 누구지?”
“…내가 말할 것 같……!”
치이이이이이익!
쿠마리가 반항하자 태운은 자뢰검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끅… 꺄아아아아악!”
쿠마리의 자가 회복 속도가 피부가 익어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
다시 자뢰검을 조금 떨어뜨려 놓는 태운.
태운은 날선 목소리로 쿠마리에게 경고했다.
“어차피 너는 죽어. 하지만 선택권은 있다. 편히 죽을지 고통스럽게 죽을지. 모든 건 네 대답 여하에 달려있어.”
“큭… 크크큭!”
쿠마리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배를 잡고 큭큭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구하는 특임반장이 이런 무자비한 미친놈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치이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자뢰검을 들이민 태운의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개소리 그만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너는 누구냐. 누가 사주했지?”
“꺄아아아아아악! 마, 말할게, 말한다고! 흐아아아악!”
한평생 무언가를 참는 데에는 이골이 난 쿠마리였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정신적인 부분에 한한 것.
살면서 거의 다쳐본 적이 없었기에 육체적 고통에는 매우 취약했던 쿠마리는 결국 눈물과 콧물, 거기에 침까지 질질 흘려대며 항복을 선언했다.
치이이이이 ― !
자뢰검이 떨어지자 다시 쿠마리의 피부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나는… 네팔의 쿠마리야…. 사주는 소의 방주가…….”
“…소의 방주?”
쿠마리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태운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 * *
쿠마리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같이 충격적인 내용들뿐이었다.
노아즈 아크(Noah’s ark).
한국말로는 ‘노아의 방주’를 의미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노아즈 아크는 세계를 구원하려는 집단이었다.
여기서 구원이란?
마력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 속에 섞여 있는 헌터들을 하루빨리 각성시켜, 선택받은 헌터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헌터들은 일반인들과는 달리 선택받고 우수한 인간들이기에 선별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선민사상이었다.
그런 노아즈 아크를 이끄는 12명의 방주가 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
또한 조금 전 언급한 소의 방주도 그 12명의 방주 중 한 명이라고 했다.
“허억… 허억… 나는 토끼의 방주야. 소의 방주에게 약점을 잡혀서… 어쩔 수 없이 너를 죽이러 온 거라고… 허억…….”
“십이지신을 모토로 한 건가… 그래서 소의 방주가 누군데?”
“그건… 말할 수 없어.”
치직!
태운이 다시 자뢰검을 들이밀려고 하자,
“안 한다는 게 아니야! 진짜로 말을 할 수가 없단 말이야!”
쿠마리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기겁하며 얼른 말을 내뱉었다.
“십이방주들은 모두 서로의 정체에 대해 말할 수 없도록 금제가 걸려있어.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 자체가 불가능해. 기껏해야 내가 언급할 수 있는 건… 소의 방주가 담당하는 구역이 한반도와 일본이라는 거야.”
“…노아즈 아크라고 했지. 그 집단의 소속인 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태운의 물음에 쿠마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작게 말을 내뱉었다.
“…노아즈 아크의 일원들은 모두 자신의 서, 성기에 방주 모양의 심볼을 새겨.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표식을 남겨두는 거지.”
“…추잡하군. 부끄러운 건 아는 건가.”
태운의 한심스럽다는 듯한 비난에,
“부끄럽다니!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치의 부끄럼도……!”
쿠마리는 발끈하며 고개를 치켜들려고 했다.
하지만,
치지직!
다시금 눈앞에서 튀어 오르는 자줏빛 번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노아즈 아크에 소속된 사람들은 총 몇 명이냐.”
“…알 수 없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모든 방주는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 내에 있는 노아즈 아크 일원만 알고 있어.”
“네가 담당하는 구역이 어디지?”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총 39개국이야.”
“…소보다 훨씬 많군.”
“한국과 일본은 치안이 좋아서 전 세계에서도 공략이 어려운 국가로 꼽히니까. 방주의 능력에 따라 배정되긴 하지만 국가별 난이도에 따라 나름 비슷하게 배정돼.”
“…그래서 네 구역에 있는 노아즈 아크 소속원 수는?
“1만 1,005명.”
“……!”
생각보다 더 많은 수에 태운은 속으로 살짝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주로 무얼 하지?”
쿠마리는 살살 태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반 헌터들을 포섭하거나… 음지에서 사람들을 조금씩 마력감염증에 걸리게 만들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다시 노아크 아크로 끌어들이지.”
“…굳이 전국적으로 마력을 대량 방출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면 일이 훨씬 쉬울 텐데 말이야.”
“우리는 ‘선별’을 원하는 것이지 ‘혼란’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너무 광범위하고 작위적인 행위는 노아즈 아크를 적대하는 세력을 만들 수 있으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건 최대한 자연스러운 선별 과정의 가속이야.”
태운은 쿠마리에게서 노아즈 아크에 대해 들을수록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순적이고… 미쳤어.’
선별을 위해 마력감염증으로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러면서도 혼란은 원하지 않는다.
명백히 작위적으로 일부러 마력에 감염시켜놓고 말로는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역겨웠다.
말과 행동이 모조리 모순으로 뒤덮인 이 미친 자들이.
그 미친 자들을 이끄는 이들 중 하나인 눈앞의 이 여자가.
당장 손에 든 이 자뢰검으로 불태워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다중브레이크 사건… 그거 너희가 한 거냐?”
“…나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다른 방주들이 벌인 짓인 건 맞아.”
쿠우우우우웅 ― !
태운의 몸속에서 한 차례 거대한 기파가 폭발했다.
끓어오르는 살의를 채 감당하지 못한 태운이 몸속에서라도 그 충동을 폭발시킨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태운이 중력으로 끌어모아 쌓아 올린 모래더미 주위에 바다가 그 기파에 밀려 멀리 물러났다.
덜덜덜……!
단순한 기파만으로도 그 강력함을 느낄 수 있었던 쿠마리가 전신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며? 그건 혼란이 아니었나? 그것만큼 혼란스러운 일이 인류사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분노가 짙게 묻은 태운의 목소리가 쿠마리의 심장을 거세게 옥죄었다.
“우, 우리가 말하는 혼란은… 우리를 인식함으로써 벌어지는 혼란이야…. 그 다중 브레이크는 명백한 자연 현상으로 치부되었으니 우리 입장에선 전혀 혼란으로 볼 수 없는……!”
흠칫!
슬쩍 태운의 얼굴을 올려다보려던 쿠마리가 급히 눈을 깔았다.
하얀 가면 뒤에서 번쩍이는 자줏빛 귀안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으니까.
덜덜덜……!
그녀의 몸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거였나? 무슨 짓이 일어나도 대중들이 인식만 못 하면 된다는 것이? 그렇다면 전 세계의 헌터들의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너희 짓이겠군?”
끄덕 ―
쿠마리는 차마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상했어. 아무리 윗선에서 언론을 통제한다고는 해도 전 세계가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는 없는 법이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거니까. 대체 어떻게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지지지직!
자뢰검 위로 자줏빛 번개가 살벌하게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노아즈 아크, 너희가 바로 하늘을 가린 먹구름이었구나.”
후욱 ― !
치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직!
태운이 머리 위로 거대한 자뢰검을 들어올렸다.
“…남길 말은?”
“다, 다 말했으니 약속대로 편하게 죽여줘……!”
“거절한다.”
태운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피비비비비비빗 ― !
자줏빛 섬광이 일대를 가득 물들였다.
* * *
콰아아앙!
주작길드의 길드장실 문이 터져나갔다.
“뭣……!”
길드장실 안에 있던 도명조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전,
콰악!
문을 부수고 들어온 한 남자가 그의 멱살을 거세게 틀어쥐었다.
“너, 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도명조의 두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뚝 ― 뚝 ―
자신의 멱살을 틀어쥔 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남자.
남자의 정체는 바로,
“이… 개X끼야……!”
네팔의 푸르바였다.
“네가 어떻게 여길… 아니, 왜 혼자 있는 거지?”
“네놈이 니마를… 니마는 네놈이 죽인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푸르바의 말.
잠시 뒤,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있던 도명조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니마…? 그게 토끼의 본명이었나?”
모두가 잊고 있던 그녀의 이름.
심지어 그녀 본인조차도 잊고 말았던 그녀의 이름을,
“너 때문에 니마가 죽었다고!!!”
푸르바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탁!
도명조는 자신의 멱살을 틀어쥔 푸르바의 손을 쳐냈다.
“…토끼가 당한 건가…. 승률을 7할이나 잡아놓고서는 3할의 확률로 당했다고? 멍청하긴……!”
토끼의 죽음은 도명조로서도 굉장히 곤란한 일이었다.
하루빨리 특임반장을 제거해야 하는 도명조에게 토끼는 사실상 마지막 패이기도 했으니까.
토끼까지 당한 마당에 자신이 직접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고, 그렇다고 토끼의 방주에게 한 것처럼 그가 가진 권한을 인질로 다른 방주를 협박하기에는…….
꿀꺽 ―
불가능했다.
도명조가 일전의 얻은 권한은 아시아 대륙의 던전 씨앗 배분권.
토끼가 없는 아시아를 담당하는 방주는 자신을 제외하고 단 하나, 십이방주 중 최강의 일각인 범의 방주였으니까.
‘놈에게 부탁했다간 그 즉시 나를 쳐죽이러 오겠지.’
스윽 ―
도명조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푸르바를 향했다.
‘…차라리 이 녀석을 얼른 방주직에 올려 권능을 받게 한 다음 이용하는 게 낫겠어.’
쿠마리의 연인 푸르바.
그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쿠마리에게 마석을 먹여가며 A급까지 성장시킨 네팔의 숨겨진 비밀병기였다.
비공식 S급 헌터, 푸르바.
쿠마리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그녀가 방주직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 전투 능력만 놓고 본다면 푸르바 쪽이 압도적이었다.
그가 가진 고유능력도 무려 공간계 능력인 ‘순간이동’이었으니까.
그의 시야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의 움직임은 십이방주들마저도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차라리 이놈을 끌어들이는 게 낫겠어.’
권능을 하사받은 푸르바의 강함을 짐작해본 도명조는 입가에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장착했다.
토닥 ― 토닥 ―
푸르바의 어깨를 토닥이는 도명조.
푸르바는 그런 도명조를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진정하라고, 친구. 연인이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어. 하지만 말이야. 네 연인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특임반장이잖아. 번지수가 잘못되었다고?”
“그건 네가 니마에게 시켰으니까……!”
“아니, 나는 시키지 않았어. 거래를 했지. 나는 노아신께서 내린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설마 너 노아신의 결정에 토를 다는 건 아니겠지?”
흠칫!
도명조의 입에서 언급된 노아신이라는 존재.
그 존재를 떠올린 푸르바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씨익 ―
그리고 도명조는 그런 푸르바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걱정 말라고, 친구. 쿠마리와의 약속대로 너를 토끼의 방주로 추대할 테니까. 어떤가? 권능을 받고 나와 함께 특임반장에게 복수하는 건?”
스윽 ―
한쪽 손으로는 푸르바의 어깨를 붙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악수를 청하는 도명조.
“…….”
잠시 도명조가 내민 손을 바라보던 푸르바는,
덥석 ―
뭔가 결심했는지 도명조의 손을 맞잡았다.
“…일단은 특임반장이라는 놈부터. 하지만 그다음은 바로 너야. 특임반장의 목을 따고 나면 내가 직접 네 목을 따러 오겠다.”
살벌한 푸르바의 말에도 불구하고 도명조는 더욱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그래! 마음대로 해! 하지만 일단은 특임반장을 잡아야 하니까. 그때까지 우리, 손잡은 거다?”
“…….”
기분이 더럽다는 듯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도명조를 쳐다보던 푸르바.
홱 ―
푸르바는 도명조의 손을 뿌리치고 길드장실 창문을 열었다.
“…방주직 약속이나 지켜라.”
슉!
푸르바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
그리고 길드장실에 홀로 남겨진 도명조는,
뿌드드드드득 ― !
“이 병X 같은 년이……!”
그제서야 겨우 참아냈던 본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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