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달토끼가 조금 강함 (4)
쿠르르르릉! 콰르르르릉!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악!
하늘이 울리고 바다가 흔들렸다.
그 과정에서 바다 밑으로 잠겼던 모래사장은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춰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치지직!
그런 하늘과 바다 사이에 떠 있던 태운은 자줏빛 번개를 두른 채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씨익 ―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입가엔 선명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력이 103,800 올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문구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으니까.
‘100만 이상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네.’
태운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일전에 잡았던 펜릴의 마력도 80만 정도에 불과했었으니까.
아니, 불과했다고 표현하기엔 80만도 너무 많았다.
헌터 쪽은 마력 수치가 50,000 이상만 되어도 세계급 헌터니, 10대 헌터니 하며 인정받는데 몬스터의 마력 수치는 수십만에서 백만 이상?
명백한 밸런스 붕괴였다.
‘…역시 전설형 몬스터.’
과거 한 차례 독일에 나타났었던 전설형 몬스터 케르베로스.
솔로 레이드를 자신했던 독일의 세계급 헌터인 루카스는 두 번이나 빈사 상태까지 몰린 뒤에서야 뒤늦게 레이드 팀을 꾸린 바 있었다.
‘EX급이 6명이나 투입되었었지.’
역대급으로 강력한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꾸려진 역대급 레이드 팀.
그나마 천운으로 6명의 EX급 헌터만으로도 케르베로스를 토벌할 수 있었다.
‘EX급 헌터라…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11번째 비공식 세계급 헌터인 태운.
현재 세상엔 태운 외에 총 10명의 세계급 헌터 선배들이 있었다.
한명 한명이 한 국가의 군대의 총력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괴물들.
하지만 태운은 전혀 긴장되질 않았다.
그야,
‘…저 여자보다 강할 리가 없으니까.’
저 멀리 느껴지는 여인의 기운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찌릿찌릿!
암흑룡의 혼마저 흡수한 쿠마리의 힘은 조금 전보다도 훨씬 더 커져있었다.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힘이었다.
‘암흑룡이 100만 언저리였으니… 지금의 저 여자는 암흑룡의 거의 2배에 달하겠군.’
약 200만.
씨익 ―
그 어마어마한 숫자와 대치한 태운의 입가에 묘한 흥분이 어려있었다.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는 여인 쪽 방향을 바라보던 태운.
그러던 그때,
반짝!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별?’
별이 아니었다.
슈우우욱 ―
마석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석.
거대한 바위만 한 마석 하나가,
슈우우우욱!
여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 * *
‘미안해, 흑비.’
번뜩!
암흑룡의 힘을 갈무리한 쿠마리가 안광을 번뜩이며 두 눈을 떴다.
역시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힘.
암흑룡의 혼을 흡수하긴 했지만 암흑룡의 마력은 흡수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게 다 저 특임반장이라는 놈의 빌어먹을 번개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번개인지, 맞는 족족
대상의 마력을 모조리 없애 버렸으니까.
까득 ― !
이를 갈며 특임반장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쿠마리.
그 순간,
“음?”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반짝!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반짝이는 무언가와 하얀 누군가.
‘흑비……!’
쿠마리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흑비가 남긴 마석과 그 마석을 가지기 위해 날아오는 특임반장.
흑비를 죽인 것도 모자라 마석까지 갈취하려는 특임반장의 행동에 쿠마리는 크게 분노를 토해냈다.
“감히……!”
끼릭… 끼리릭……!
전보다 더 강한 힘이 담긴 화살 여러 개가 쿠마리의 활시위에 걸렸다.
터어어어엉 ― !
쐐애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가공할만한 힘이 담긴 3발의 은화살이 한 번에 쏘아졌다.
타닷!
그와 동시에 내딛어지는 그녀의 발.
달의 권능을 힘입은 그녀의 화신체가 자연스럽게 허공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죽어!!!”
쿠우우우우우 ― !
촤좌좌좌좌좌좌작!
빠른 속도로 허공을 달리며 쏟아붓는 은화살이 은빛 비가 되어 태운의 위를 뒤덮었다.
치지직!
자뢰 한 줄기로 막아내기엔 너무 많은 화살들.
하지만 태운은 굳이 힘을 추가로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야 그의 등 뒤에는,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암흑룡의 막대한 마력을 먹고 태어난 수천 개의 자뢰 줄기들이 있었으니까.
“가라.”
키잉 ― !
파지지지직!
태운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전방의 화살을 막을 단 세 줄기의 번개를 제외한 나머지 자줏빛 번개들이 자주색 선을 그리며 하늘 위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색의 화살비와 하늘로 솟구치는 자주색 번개 다발.
타락한 화신과 정의로운 초인의 대결.
신과 초월자의 힘이 격돌하며 세상을 단 두 가지 빛으로 물들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솟구쳐 오르는 자줏빛 죽음을 막아내기 위해 쿠마리는 연신 은빛 신력을 쏟아냈다.
터더더더더더더더덩!
눈 깜짝하는 순간에 쏘아지는 수백 수천 개의 은빛 화살.
화살 화살 하나하나가 바다를 뒤집고 산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힘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파지지지직!
콰앙! 콰앙! 콰아앙!
어떻게 된 것인지 저 특임반장이라는 남자의 자줏빛 번개는 그런 자신의 화살들을 쳐내고도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두 사람 사이에 은빛과 자줏빛이 섞인 진한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호각지세.
그러나,
“…….”
태운은 자줏빛 번개를 한 차례 쏘아 보낸 뒤에 가만히 있는 반면,
“으아아아아아아아!”
쿠마리는 계속해서 은빛 화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뚜둑 ― 뚝 ―
자줏빛 번개와 부딪힌 신의 화살들이 힘을 잃고 계속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지고 있었으니까.
새로운 화살을 쏘아 보내지 않으면 한순간에 전선이 밀리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연신 화살을 쏟아붓는 쿠마리의 두 눈에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신의 권능을 받은 데다가 반쪽짜리라고는 하지만 이무기들과 암흑룡의 힘마저 흡수한 자신이었다.
단순한 마력 수치로는 세상에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
그런데 저 특임반장이라는 자는 그런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힘들이지 않고 상대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터더더더더더더덩!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기는 쿠마리의 두 눈에 붉은 핏줄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진 마력의 양을 떠나서 그녀 자체가 무리하고 있었으니까.
짧은 순간에 수만을 넘어 수십만 발의 화살을 쏘아낸 그녀의 움직임은 아무리 화신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든 일이었던 듯했다.
치이이이익 ― !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막대한 마력으로 단숨에 그 내상을 치유해내는 쿠마리.
어차피 남아도는 것이 마력이었으니 그녀의 체력은 거의 무한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쿠마리는 자신의 마력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끝까지 태운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누가 이기나 한번 끝까지 해보……!”
은빛 화살을 쏟아내며 태운을 향해 악을 내지르던 쿠마리의 입이 순간, 멈추었다.
어느새 태운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았으니까.
그건 바로,
반짝!
암흑룡, 흑비의 마석이었다.
* * *
반짝이는 마석 하나가 태운의 손에 들려있었다.
아니, 사실 들려있다고 하기엔 표현이 적절치 않았다.
그야 암흑룡의 마석은,
쿠우우우 ―
태운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바위만 한 크기였으니까.
“…….”
쿠마리가 태운이 쏘아 올린 자뢰들과 싸우는 동안 자기력으로 마석을 끌어당긴 태운은 자신의 손바닥에 붙은 거대한 마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로 3개째인가.’
태운은 가만히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태운이 가지고 있는 마석은 총 3개.
첫 번째는 펜릴의 마석.
천안 브레이크 당시에 얻은 바 있었다.
펜릴의 마석도 거의 암흑룡의 마석과 비슷한 크기였다.
두 번째는 백록담 던전의 마석이었다.
물고기와 말이 섞인 듯한 괴어마들의 보스는 고래와 코끼리가 섞인 듯한 기괴한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도 수박 서너 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커다란 마석을 뱉어낸 바 있었다.
그 두 마석들은 현재 모두 태운의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는 상태.
어차피 마석으로부터 마력을 얻어낼 수는 없는 태운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뭔가 처분하기가 아까워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어마어마한 크기의 암흑룡의 마석까지 얻었으니, 사실상 태운은 대한민국보다도 더 커다란 질량의 마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A급에서 나오는 마석은 아무리 커봐야 볼링공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S급 이상부터는 거의 무조건 나오는 느낌이네.’
3년 전 울릉도 던전에서도 나왔었다는 마석.
그 마석도 거의 대형 트럭의 타이어만 한 크기였다고 했다.
하긴 애초에 S급 던전 자체가 엄청나게 드물고 토벌하기도 어려웠으니, 사실상 마석을 얻을 수 있는 전체적인 확률은 여전히 극악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마석들을 이용하면…….’
순간 마석을 바라보던 태운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협회의 전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알파조부터는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베타, 감마, 델타조원들의 전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석을 쪼개서 사용하더라도 마석의 양은 한정적이기에 모두에게 주는 건 어려울 터.
‘하지만 가능성이 큰 이들이나… 누구보다 노력하는 이들에게 준다면 효과는 배가 될 테지.’
스윽 ―
태운은 고개를 들어 여전히 자뢰와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쿠마리를 올려다보았다.
‘어디에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협회가 만들어가려는 변화를 싫어하는 모종의 세력이 정계 말고도 더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이들도 더 강해질 필요가 있긴 하니까.’
태운의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뭔지 모를 정보 차단이 해제되어 소식이 퍼지면… 앞으로는 외국 놈들도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테니까 말이지.’
모든 걸 태운이 해결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태운은 혼자.
번개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할 수는 있지만,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을 태운이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었다.
사건 자체는 처리하더라도 때를 놓쳐 피해자라도 생기게 된다면 결국 무용지물인 셈이니까.
“…좋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대강이나마 정한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마석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쑤우욱 ― !
입구가 작았는데도 어떻게 생겨 먹은 원리인지 주머니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거대한 마석 덩어리.
“그 마석 당장 내놔아아!!!”
여전히 은빛 화살 세례를 쏟아내고 있던 쿠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 !
여전히 선명한 은자줏빛 경계선.
파지지지직! 치지지직!
수천 줄기의 자뢰들은 여전히 멀쩡한 자태를 뽐내며 막대한 마력이 담긴 은빛 화살들을 따라다니며 모조리 부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벌써 수 분째 자가 회복을 반복하며 활시위를 튕기는 쿠마리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암흑룡조차 단 한줄기의 자뢰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수천 줄기의 자뢰들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태운은 그런 쿠마리를 잠시 바라보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문득 뭔가 생각난 듯 태운은 손가락을 쿠마리 쪽으로 뻗었다.
“너 뭔데 계속 내 위에 있냐?”
[중력장(重力場)]
기이이잉 ―
태운의 몸에서 뻗어나간 무형의 기운이 은자주빛 경계선을 포함해 쿠마리가 있는 곳까지 집어삼켰다.
“……!”
화살 세례를 퍼붓다 자신을 감싸는 무형의 기운을 느낀 쿠마리의 눈빛이 흔들리는 그 순간,
“내려와.”
[중력 조작 ― 1,000G]
그그그그긍 ― !
덜컥 ― !
슈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악!”
허공을 밟고 서 있던 쿠마리의 신형이 마치 끈 떨어진 인형처럼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검은 해수면을 크게 뒤흔들며 바닷속으로 처박히고 마는 쿠마리.
“자 그럼… 네년의 정체가 뭔지 좀 알아내 볼까?”
쿠마리가 처박힌 바다를 내려다보는 태운의 주위엔,
치지지직! 파지지지직!
어느새 은빛 화살들을 모조리 부수고 돌아온 수천 줄기의 자뢰들이 수천 개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자주색 결계를 치고 있는 듯한 모습.
치지지직!
그런 태운의 두 눈 또한 어느새 자줏빛 안광으로 가득 물들어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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