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협회가 출사표를 던짐 (2)
협회장실 겸 대회의실.
그 자리에 태운과 동석, 현주를 비롯해 10명의 행정부서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지원 감사드립니다.”
먼저 태운이 대회의실에 찾아온 행정부서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지요. 시키실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세요!”
범인을 잡기 위해 시간 외 근무를 더 하게 된 직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그만큼 수고비를 받기로 했으니까.
던전을 돌며 별도의 수입원이 생긴 전투부서 직원들과 달리, 행정부서 직원들은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이런 태운의 지원 요청이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지원으로 인해 인력이 빠져버린 행정부서의 각 팀에도 소량의 수고비가 지급된다 하니,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괜찮겠나? 이번에야말로 피할 수가 없을 것이네. 저번 같은 과실치사도 아니고 연쇄 강간에 연쇄 살인이야. 특별법은 아직이지만, 일반 법률로도 충분히 사형이 나올만한 사안이지.”
동석이 뭔가 걱정스러운 듯 태운에게 말했다.
헌터의 사형.
이거야말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도화선의 불을 붙이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러나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원래 길게 보며 올해까지는 천천히 대중들의 지지를 쌓으려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뛰어보니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도 훨씬 많이 있었고… 어쩔 수 없지요. 부딪히는 수밖에. 그리고 오히려 저는 이번 사건이 앞으로 있을 우리의 행보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태운의 말에 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범인이 그만한 사람이니까. 그놈 정도의 네임벨류라면 여론을 뒤흔들다 못해 아예 뒤집는 것까지도 가능할 거야.”
가만히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행정부서 직원 중 하나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희는 아직 이번 사건에 대해 잘 몰라서요. 범인이 누구길래 그런가요?”
직원의 질문에 태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회의실 벽면에 자리한 스크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삑 ―
태운이 리모컨을 누르자 전환되는 화면.
그 스크린 화면 속에는,
“헉……!”
한 남자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10대 길드인 베놈길드.”
태운은 어느새 짙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화면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범인은 그 베놈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A급 헌터인 임인범입니다.”
직원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 * *
전라북도 익산.
현무길드의 권역인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사실상 그들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는 못하는 지역.
그런 그곳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길드가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베놈길드였다.
비록 S급 헌터는 없었지만, A급 헌터만 무려 10명을 보유한 베놈길드.
4대 길드를 제외한 길드들의 순위는 사실상 A급 헌터의 수로 갈린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베놈길드는 10대 길드에 들어가기 충분한 수의 A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런 베놈길드의 마스터, 임인범은 길드 사무실 한쪽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스터, 뭐 좋은 일 있으십니까? 가끔 보면 혼자 뭐 맛있는 거라도 드시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걸 핸드폰으로 드시겠냐? 내가 봤을 땐, 마스터가 코인 하는 것 같다.”
“엑! 혹시 존버하다가 떡상하신 케이스?”
“개인적인 취미 생활이다, 취미 생활. 신경 끄고 일하자~”
““옙.””
너무나도 티나게 웃는 바람에 길드원들이 잠시 관심을 가졌지만, 길드 내에서 막강한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임인범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길드원은 없었다.
끼익 ―
탁 ―
길드원들의 시선을 피해 길드 내 화장실로 장소를 옮긴 임인범.
{하아… 하아… 아아아악……!}
이어폰을 낀 채 눈을 부릅뜨고 핸드폰 속 영상을 시청하는 임인범의 한쪽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윽!”
짤막한 신음 소리를 내는 임인범.
“…역시 내가 주인공인 게 더 재밌다니까.”
그러고는 화장실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로 손을 슥슥 닦아냈다.
툭 ―
스윽스윽 ―
재차 핸드폰 화면을 넘기는 임인범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촤르르르 ―
임인범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여러 개의 영상목록이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총 99개의 영상.
화면 한쪽 구석의 적혀 있는 영상의 개수를 표시한 숫자를 본 임인범이 씨익 이를 드러냈다.
‘한 명만 더 하면 100명이다!’
촤르르르 ―
임인범의 핸드폰 속 100여 개의 달하는 영상들.
그중 한 영상 썸네일엔,
“크흐흐흐흐!”
발가벗겨진 채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희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 * *
―피해자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임인범의 범행 주기는 일주일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최소 주 1회에서 최대 2회까지 일을 벌였죠. 그래서 우리는 다음 범행 전까지 그동안 벌인 범행들의 증거를 확보한 뒤, 범행 현장을 검거할 겁니다. 벌써 범행을 벌인 지 4일이 지났으니 곧 또다시 범행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나요?
―그거야 간단하지요. 저는 임인범의 자택에 잠입하여 증거물을 찾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께서는 임인범의 행선을 파악해주세요. 증거물을 찾으면 파악된 행선을 따라 그때 함정수사를 실시할 겁니다.
―함정수사… 그거 불법 아닌가요?
―안 걸리면 그만 아닙니까? 상대는 칼을 들었는데 우리라고 해서 나무 막대기 하나 들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띠리릭 ―
태운은 임인범의 자택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번호키 도어락 정도야 전기와 자기장으로 손쉽게 딸 수 있었으니까.
사사삭 ―
임인범의 집을 뒤지는 태운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 안의 서랍, 장롱, 부엌, 하다못해 화장실까지.
그렇게 한참을 모조리 샅샅이 뒤졌지만,
‘없어…? 하나도……?’
증거가 될만한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태운의 표정에 낭패의 기색이 역력해졌다.
빠르게 증거를 찾아내고 빠르게 임인범을 현장 검거하여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했으니까.
으득 ―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해자들의 불안과 공포가 커지게 될 것임을 알았기에 태운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대체 어디 둔 거냐……!’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범행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임인범.
가장 최근의 피해자와 현재의 피해자를 연결시켜주고 숫자를 세는 등 엽기적인 행태를 보이는 놈이었으니, 분명 어딘가에 기록을 남겨두었을 것이었다.
보통 연쇄범들이 거의 그런 행태를 보이니까.
놈들은 자신의 범행을 자신의 업적으로 생각하는 악질들이었다.
자신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어딘가 분명 증거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때,
삐빅 ―
태운이 차고 있던 이어마이크가 살짝 울렸다.
임인범의 행선을 조사하던 직원 중 하나가 연락을 보낸 것이었다.
툭 ―
태운이 귀를 만지자 연결되는 이어마이크.
베놈길드 근처에서 잠복 중이던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임인범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임인범 발견. 방금 베놈길드에서 나와 검은색 승합차 탑승. 자택 방향으로 이동 중.}
‘검은색 승합차……! 그래!’
이도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분명 범행은 검은색 승합차 안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범행의 증거들도 차 안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삐빅 ―
태운은 곧바로 이어마이크를 한 번 더 건드려 음성 마이크를 켰다.
“잠복팀은 따라가지 말고 그 자리에 대기하세요. 각자 맡은 구역에서만 감시합니다. 임인범이 눈치챌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아무리 악질이더라도 임인범은 실력이 뛰어난 A급 헌터였다.
일반인에 비해 감각이 훨씬 뛰어날 것이 분명하니, 겨우 E급에서 D급 정도의 행정부서 직원들이 어설프게 미행했다간 금방 들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임인범이 자택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태운은 얼른 집 내부를 다시 원래대로 정리한 뒤, 도어락까지 정상화시켜 두고 자택을 빠져나왔다.
“후우…….”
임인범의 자택 근처에 세워두었던 자신의 차로 돌아온 태운이 얼굴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눈에 띌까 싶어 직원들과 헤어지자마자 오랜만에 흰 가면을 벗고 행동했더니 뭔가 어색했던 태운이었다.
‘자… 그럼 이제 어찌한다?’
집 안에 없었으니 이제 경우의 수는 단 2가지였다.
차 안에 있거나, 혹은 항상 가지고 다니거나.
게다가 임인범의 승합차의 경우, 워낙 구식 승합차라 전기와 자기장으로는 열 수 없는 일반 열쇠형 차량이었다.
가장 구식이었지만,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태운에게는 가장 열기 힘든 유형의 키 형식.
차량을 훼손하여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 키를 훔치거나 임인범이 스스로 차 문을 열게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차 키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법.
A급 헌터인 그의 감각을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에 전자의 방법은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열게 만들어야 해.’
임인범이 차 문을 스스로 열게 만들면서 협회 소속이라는 걸 들키지 않고 차 내부를 수색할 수 있는 방법.
곧 손쉽게 그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을 떠올린 태운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진짜 이렇게까지… 아, 아니지. 이렇게라도 해야…….’
덜덜덜.
이어마이크로 손을 올리는 태운이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삐빅 ―
“다들… 잠시 제가 오라는 장소로 와주시겠습니까. 이번 사건… 단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
묘하게 떨리고 있는 태운의 목소리를 들은 직원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아…….”
연락을 마친 태운은 힘없이 핸드폰을 들어 올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
그리고 곧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특임반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 너머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 남자의 정체는,
“…도움이 좀 필요해서 말입니다.”
베타조장, 안창훈이었다.
* * *
그날 밤.
태운의 예상대로 임인범은 또다시 행동에 나섰다.
100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가 코앞에 다가오자 도저히 오래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흐흐흐… 오늘까지 하면 딱 100명!’
100개의 컬렉션을 채울 생각에 흥분한 임인범이 푹 눌러쓴 모자 밑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부우우웅 ―
임인범을 태운 검은 승합차가 익산을 빠져나와 목적지 없이 무작정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여기가 좋겠군.”
끼익 ―
익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송천동이라는 곳에 도착한 임인범은 CCTV가 없는 자리를 찾아 갓길에 차를 세웠다.
탁 ―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뒤 차량에서 내린 임인범.
곧 차량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찾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이 너무 없군.’
워낙 시 외곽 쪽인데다가 CCTV도 없어 사람이 너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가끔씩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들뿐.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뿌득 ―
평소와 달리 100이라는 숫자 때문인지 조바심이 생긴 임인범이 마스크 뒤에서 이를 갈았다.
‘아무나… 아무나 좀 나타나라!’
본래 자신의 취향인 여자들만을 건드렸던 임인범.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대충 어떤 여자든 젊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10분을 더 배회하던 그때,
또각 ―
“……!”
바라고 바라던 여인의 걸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다만 들려온 소리가 자신의 뒤쪽이라는 게 문제였을 뿐.
슬쩍 ―
임인범은 거의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차량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 그리고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어떤 여인의 위치를 재빨리 확인했다.
저벅…….
‘흐흐흐흐……!’
임인범은 천천히 자신의 걸음을 늦추었다.
자신의 위치와 차량의 위치, 그리고 여인의 위치가 일치하는 순간 그녀를 끌어당기기 위해서.
저벅… 저벅… 저벅…….
임인범의 걷는 속도가 한껏 느려졌다.
그러나,
또각 ― 또각 ― 또각 ―
여인의 걸음걸이는 일정했다.
또각 ― 또각 ― 또각 ―
점점 그녀와 임인범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저벅… 저벅… 저벅…….
승합차와 임인범의 거리도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십수 초 뒤,
저벅…
또각 ―
검은색 승합차 앞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홱 ― !
임인범은 재빨리 자신의 옆을 막 지나쳐가려는 여인의 손을 낚아챘다.
드르륵 ―
휙 ― !
여인을 자신의 차량 안으로 던져넣는 임인범.
“……!”
여인은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차 안으로 내던져졌다.
드르륵 ―
탁 ― !
재빨리 차량 문을 닫고 차에 탑승하는 임인범.
“크흐흐흐흐흐!”
그는 두 눈이 어느새 시뻘겋게 충혈된 채 잔뜩 흥분해있었다.
임인범의 거친 손이 그녀의 옷을 쥐어뜯으려는 그때,
“새X야, 여자를 그렇게 집어던지면 어떡하냐?”
“……?”
갑작스런 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퍽 ―
임인범의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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