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70화 (70/300)

70화. 거대한 위험이 예정됨

쿠마리의 표정이 심각해졌던 그날 밤.

“네놈 미쳤어?”

온종일 한마디 말없이 한없이 신성하고 인자한 표정만을 짓고 있던 쿠마리가 거친 말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니가 감히!”

쿠마리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씩씩댔다.

도저히 살아있는 여신인 쿠마리라고는 보기 힘든 모습.

하지만 쿠마리의 방은 방음 처리가 완벽히 되어있고, 완전히 폐쇄적인 공간이었기에 아무도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단 한 남자만 빼고.

“쉬이이이이…….”

쿠마리가 너무 흥분하자 남자는 가만히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여신인 쿠마리와 같은 방 안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녀를 건드리는 것까지?

하지만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쿠마리와의 접촉이 허용된 이였다.

땅을 딛고 걸어서는 안 되는 여신인 쿠마리가 이동할 때면 언제나 그녀를 들고 옮기며 발이 되어주는 사람.

그는 푸르바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쿠마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명백히 선을 넘은 것이었지만,

“후우우우…….”

푸르바의 쓰다듬음과 푸르바가 낸 백색소음 덕에 쿠마리는 천천히 진정할 수 있었다.

끄덕 ―

푸르바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쿠마리가 다시 전화를 이어나갔다.

“소…. 네가 진정 단단히 미쳤구나. 어쩌다 운 좋게 한번 성과 잘 내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하하하하! 그래서? 못하겠다는 건가?}

소라고 불린 남자가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못해! 내가 왜 그 녀석을 처리해야 하는데? 한국이면 네놈 관할…….”

{던전 배분권.}

멈칫 ―

거세게 따지고 들던 쿠마리의 입이 순간 멈추었다.

“뭐……?”

{잊은 건 아니겠지? 신께서 우리에게 내린 권한을 말이야.}

전화기 너머 소가 음흉한 웃음을 흘려댔다.

{아시아의 뿌릴 던전 씨앗의 배분권이 나에게 있다. 즉, 그 씨앗 전체를 내가 가질 수도 있고, 너희들이 하기에 따라 조금 나눠줄 수도 있다는 거지.}

부들부들.

쿠마리가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떨었다.

여린 그녀의 손이 핏기 없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너… 신께서 이런 식으로 악용하라고 배분권을 주신 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

{이게 왜 악용이지?}

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권한이기에 자유롭게 다룰 뿐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내 권한을 넘어선 것인가?}

소의 말에 쿠마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아니지만…….”

{되도 않는 개소리로 상황을 무마시키려 하지 말고 선택해. 할 거냐, 말 거냐?}

“…….”

쿠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륵 ―

그녀의 턱을 타고 흐르는 피.

스윽 ―

행여 핏방울이 옷에 떨어질까 푸르바는 재빨리 그녀의 옆에서 얼른 피를 닦아냈다.

“…생각할 시간을 줘.”

{딱 하루다. 내일 이 시간에 또 연락하지.}

툭 ―

소의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흐윽…….”

쿠마리는 푸르바의 품에 안겨 밤새 눈물을 흘렸다.

* * *

아무도 없는 사원.

새벽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입술은 치료했어?”

“아.”

푸르바의 말에 쿠마리는 곧바로 자가 회복을 사용했다.

우웅 ―

치이이익!

“다 됐어.”

“그럼 이제 얼른 자야지.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포옥 ―

쿠마리가 푸르바의 품에 쏘옥 안겼다.

“사람들이 보면…….”

“어차피 안에는 아무도 안 들어오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

푸르바는 자신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쿠마리를 잠시 바라보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헤…….”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어떻게 하려고?”

푸르바가 묻자,

“해야겠지. 어쩔 수 없잖아.”

쿠마리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나는 왜 쿠마리가 된 걸까.”

자신의 이름을 잊은 쿠마리가 비스듬히 열린 창문 밖으로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쿠마리가 되었다고 좋아했던 나도 멍청하고, 어린 여자애를 여신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멍청해. 전부 다 멍청하기가 짝이 없어.”

쿠마리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다리였다.

하지만,

“달이 지면 다시 꼬챙이처럼 흉해지겠지.”

그녀의 다리가 정상일 수 있는 건 오직 달이 뜬 밤뿐이었다.

30년간이나 걷기는커녕 땅을 딛고 서지도 않았던 그녀의 다리 근육은 완전히 퇴화한 지 오래였으니까.

헌터의 자가 회복 능력도 그녀의 다리엔 소용이 없었다.

자가 회복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지, 퇴화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다리는 사용하지 않아 퇴화했을 뿐 부상이 아니라고 몸이 판단한 것이다.

“달의 권능이 회수되면 밤에도 꼬챙이가 되어버릴 거야.”

쿠마리가 슬픈 눈으로 푸르바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 좋아해 줄 거야?”

푸르바가 안쓰러운 눈으로 쿠마리를 꼭 껴안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네 다리가 어떻든 너는 너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거야.”

푸르바의 말에 쿠마리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같이 피곤한 애 사랑하지 말고 다른 여자한테 가라니까.”

보통 살아있는 여신인 쿠마리는 평생을 홀로 살아가다 늙어 죽는다.

왜냐하면 쿠마리나 쿠마리였던 여자와 사랑하거나 결혼하면 그 남자는 불행하게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딴 속설 안 믿어.”

푸르바는 그 불안함을 이겨내고 대범하게도 현직 쿠마리와 사랑하고 있었다.

“헤헤헤헤헤…….”

쿠마리가 기분이 좋은 듯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쿠마리.

쿠마리가 30년이라는 외로운 쿠마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거의 9할 이상이 푸르바 덕분이었다.

쿠마리가 3살에 쿠마리가 되고 12살이 되었을 때, 원래 그녀를 옮기던 이가 사고로 죽은 뒤, 3살 연상이었던 15살의 푸르바가 그녀의 발이 되어주기 시작했으니까.

“…그 활동… 그만두면 안 돼?”

푸르바가 여전히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쿠마리는 웃음을 뚝 멈추고 정색했다.

“안 돼. 내가 뭘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

푸르바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푸르바를 바라보는 쿠마리의 표정엔 안타까움과 동시에 약간의 광기가 어리고 있었다.

스윽 ―

쿠마리가 푸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다려, 푸르바. 이 세상 전부 깨끗이 청소해버릴 거니까. 멍청한 인간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똑똑한 인간들만 남겨놓을 거야. 신께서 꼭 그렇게 이뤄주실 거야. 그날을 맞이하는 데에 쿠마리인 나도 당연히 기여해야겠지.”

쿠마리는 무언가 결심한 듯 곧바로 핸드폰을 켰다.

뚜르르르 ―

{여보세요.}

시차로 인해 꼭두새벽 같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상대방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기다렸나 보네?”

{난 원래 아침형 인간이거든.}

피식 ―

쿠마리가 비웃음을 흘렸다.

“밤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어. 내가 맡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들어는 보지.}

전화기 너머 소의 방주는 조건을 거는 쿠마리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 늦게 대답했다.

“첫 번째, 이번 일 들어주면 최소 네가 가져갈 던전 씨앗에 9할을 보장해줘.”

{뭐? 그게 무슨……!}

“아니면 안 해. 내 관할 구역 일도 아닌데다가 위험한 일이잖아? 각종 수당이 붙었다고 생각하면 돼. 싫으면 말고.”

쿠마리의 으름장에 소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알았다. 9할…. 그래, 보장해주지.}

결국 그녀의 조건을 들어주는 소.

그러나 그녀의 조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실행에 옮기는 날은 내가 정해.”

{불가.}

소가 딱 잘라 거절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네 개인 사정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다.}

“개인 사정을 말하는 게 아니야. 성공률이 가장 높은 날에 간다는 거지. 알잖아? 내 능력.”

쿠마리의 고유 능력 ‘점술’.

물만 있으면 자신의 피를 떨어뜨려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초자연형 고유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소는,

{뭐야, 그런 거였나. 그거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한 달 이상 걸리는 건 곤란해. 적어도 11월이 되기 전에는 처리해야 한다. 그건 가능하겠지?}

지금은 9월 말.

즉 10월 한 달 이내에 일을 끝내라는 말이었다.

“10월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날에 가면 되는 거네. 알았어.”

{좋아, 그럼 이제 조건은 끝인가?}

소의 물음에 쿠마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후우… 조건 참 많군. 말해봐.}

스윽 ―

자신의 뒤에서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해하고 있는 푸르바를 돌아보는 쿠마리.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

싱긋 ―

쿠마리는 그런 푸르바를 바라보며 아프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내가 잘못되면… 푸르바가 대신 방주가 될 수 있게 힘을 써줘.”

“……!”

쿠마리의 말에 놀란 푸르바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덜덜덜.

푸르바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푸르바라… 너를 옮겨주는 그 하인 말인가?}

“하인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남의 애인 그렇게 매도하지 마. 내가 너희 부길드장 보고 하녀라고 말하면 좋아?”

뜨끔.

쿠마리의 일침에 전화기 너머 소, 도명조가 이화연을 떠올리며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발언은 사과하지. 어쨌든 좋아. 하긴, 권능을 받으면 너보다도 강할 수도 있겠어.}

도명조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 * *

“…어쨌든 이번 일 너에게 맡기겠다. 부디 애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않게 제대로 준비하라고.”

{…재수 없는 놈.}

툭 ―

쿠마리가 통화를 먼저 끊어버렸다.

피식 ―

끊어진 전화를 내려놓으며 자택의 창가에 선 도명조가 두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뭐, 아무리 세계급이더라도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지.”

째짹! 짹!

아직 한밤중인 네팔과 달리 이제 막 새벽 동이 트며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 한국의 아침을 참새들이 날아다니며 깨우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겠다, 토끼.”

반짝!

뭐라고 중얼거리는 도명조의 두 눈은 어느새 산등성이 너머에서 빼꼼하게 모습을 드러낸 태양빛을 받아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10월이 되었다.

헌터사관학교 대강당.

웅성웅성.

올해 초에 들어온 1학년들과 내년 초에 졸업을 앞둔 2학년들이 모두 모여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매년 10월 초에 열리는 협회의 홍보설명회를 들으러 온 것이었다.

“작년이랑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네…….”

졸업반이자 실전반인 이대한이 혀를 내두르며 대강당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년엔 어땠는데?”

실전반 사이에 끼어있는 강천이 대한에게 물었다.

“아, 강천이 너는 작년에 없었지. 작년엔 뭐 그야말로 숙면실이었어. 다들 관심이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졸업반인 민아가 대한의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나마 예의상 들어주는 사람들이 한 대여섯 명?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지! 얘는 그냥 처음부터 퍼질러 자더라니까?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민아의 디스에 대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내, 내가 언제!”

“그러니까… 대한이 너무하네. 협회가 좀 바뀌었다고 태세 전환 제대로 하네.”

“와, 박쥐다.”

동혁과 한석도 디스에 동참했다.

“…갑자기 이렇게 잘 나갈 줄 알았나…….”

대한은 얼굴이 시뻘게져 고개를 푹 숙였다.

단순히 이 셋의 디스만 있었다면 그냥 무시하고 넘겼겠지만,

“와… 그랬단 말이야?”

지금은 바로 옆에 처음부터 협회를 지망했던 강천이 있었으니까.

얼굴이 시뻘게진 대한은 재빨리 목소리를 낮춘 채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강천, 태운이 형은 요즘 뭐 한다 그랬지? 일단 조기졸업 그 사유는 뻥이잖아.”

갑자기 사라진 쌍룡 중 일인.

사관학교 내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었다.

너무 뛰어난 나머지 배울 게 없어서 빨리 나갔다, 갑자기 현타가 와서 그냥 헌터를 포기한 거다, 특별히 말 못 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만둔 거다, 등등.

결국 철민의 어이없는 설명으로 소문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대부분 태운이 쌍룡 중 1인이고 체력장 1등이라는 것만 알지, 태운에 대해 자세히는 잘 몰랐기에 철민의 어이없는 설명을 믿고 있었다.

“아니 그 괴물 같은 양반이 던전 토벌하다가 몬스터 보고 PTSD 걸려서 포기했다는 게 말이 되는 설명이냐고. 교관님도 그걸 사유라고 만들어낸 건지. 그럴 또 믿는 애들도 웃기다니까.”

“그건 그래, 킥킥.”

대한의 말에 민아가 작게 킥킥댔다.

“그래서? 요즘 뭐 한대? 지금 등급은 어디까지 올라갔대?”

평소에 조용한 동혁마저 태운의 소식이 궁금한지 강천에게 질문 세례를 던졌다.

태운과 연락하고 있는 사람은 강천이 유일했으니까.

―너만 알고 있어. 누가 물어보면 그냥 용병 뛰고 있다고 대충 둘러대.

그러나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인 태운의 부탁을 받은 강천의 입에서 진실된 소식이 나올 리는 없었다.

“뭐라더라? 그냥 자유 용병 생활하고 있다던데. 등급은…….”

실전반 4인이 강천의 입에 집중했다.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일부러 농담을 던지며 정보를 숨기는 강천.

“…그건 좀.”

“에이, 아무리 너라도 태운이 형한테 비비겠냐.”

“낙담하지 마.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법이니까.”

“어……?”

예상치 못한 실전반 멤버들의 반응에 강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강천의 반응을 보며 실전반 멤버들이 킥킥대는 그때,

터벅터벅 ―

대강당 무대 위로 정장을 입은 어떤 남자가 올라왔다.

삐익 ― !

한 차례 울리는 마이크의 잡음 소리.

그 소리에 웅성대던 대강당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씨익 ―

미소를 짓는 정장을 입은 남자.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홍보설명회를 맡은 헌터 협회 직원입니다.”

알파조의 한기성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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