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진해짐 (2)
도명조. 그는 이화연의 남자친구다.
그리고,
“오빠 믿고 조금만 더 참아줄 수 있지?”
“응.”
주작길드의 길드장이자 그 또한 S급 헌터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쪽
두 사람의 입술이 잠시 포개어졌다가 떨어졌다.
방긋 ―
어느새 기분이 풀린 듯한 이화연이 도명조의 허벅지 위에서 일어났다.
“오빠, 쉬는데 미안해. 나 이만 가볼게.”
“…정말 괜찮은 거 맞지? 거기 먹으려고 돈 좀 많이 썼잖아. 그리고 걔들 당해서 ‘동렁’이랑 문제 생기거나 한 건 아니야?”
그의 걱정 섞인 질문에 이화연은 씨익 웃어 보였다.
“에이, 내가 애도 아니고 그렇게 일을 대충했을까 봐? 왕첸이라는 애랑 개인적으로 한 거래니까 뒤탈은 없어. 나랑 손잡았다는 증거도 없고. 기껏해야 돈 좀 날린 정도지.”
“연락 주고받았을 거 아니야?”
“연락책이 따로 있었어.”
도명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처리는?”
“다른 차원으로.”
다른 차원.
즉, 토벌이 끝나 사라지는 던전 안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아예 이 세계 자체에서 없애버리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
씨익 ―
도명조는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서웠어?”
이화연의 물음에 도명조가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중국은 아직 좀 무섭지.”
“히히, 나도 무서워. 그래서 신중하게 했어.”
“잘했어.”
또각 또각 또각 ―
“오빠 다시 좀 자~ 나 갈게!”
이화연이 방 안을 나가고,
흔들흔들.
그녀를 항해 따스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도명조의 표정이,
사아아아 ―
금세 차갑게 변했다.
“…X발.”
끼릭 ―
의자를 뒤로 젖히며 핸드폰을 꺼낸 도명조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의 섬뜩한 눈빛이 핸드폰 속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향해 있었다.
“…특임반장.”
으득 ―
그의 입 안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꾸 신경 쓰이게 하네? 죽여버리고 싶게.”
지금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명분 하나 없이 건들기엔 여론이 너무 몰린 상태.
아직은 기다릴 때였다.
제 것을 무엇 하나라도 뺏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정치인들조차 아직 손을 쓰지 않고 있었으니까.
중얼.
“…그놈의 민심이 뭐라고.”
스윽 ―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바라보는 도명조.
“씨X… 진짜 돌아버리겠네.”
달력을 바라보는 도명조의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우우웅 ―
어딘가에서 미세한 진동 소리가 울렸다.
“…….”
도명조의 핸드폰은 여전히 까만 화면이었다.
스윽 ―
책상 아래쪽에 있던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도명조.
쑤욱 ―
그 안에서 핸드폰이 하나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틱 ―
“뭐야.”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도명조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제안할 게 있어서 말이야.}
전화 너머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 시간 좀 되나?}
사아아아 ―
전화를 받은 도명조의 눈빛이 무겁고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 * *
일명 바가지 머리를 한 남자가 카페에 앉아있었다.
다만 시야를 포기한 듯 두 눈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앞머리.
쪽 ― 쪽 ―
남자는 바깥이 보이는 유리창 앞자리에 앉아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빨고 있었다.
그러다,
호로로로로록 ―
“아.”
아메리카노를 다 먹었는지 공기 반 액체 반 소리가 커피잔 안을 가득 채웠다.
촤르르 ― 촤르르 ―
괜히 빨대로 얼음을 뒤적이는 남자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형! 갑자기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면서? 뜬금없이 무슨 일이래?
―너 마침 잘 왔다. 할 일 없지?
―…어? 무, 무슨 소리야. 나 엄청 바빠. 나 할 거 많아.
―내가 안 불러내면 맨날 집에서 뒹굴거리기 바쁜 녀석이 무슨…….
―그러니까. 뒹굴거리기 바쁘거든.
―재밌네. 한동안 안 봤더니 재밌어졌네. 우리 같이 한번 재밌어져 볼까?
―자, 잠깐만…! 변신하지 마라! 변신하지 말라 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 닭발 같은 발톱을 꺼내? 여기 도시인 거 잊었…….
―길드 전체 방마벽 공사 완공된 지가 언젠데.
―아, 맞다. 그러네? 끄아아아아악!
누군가 여자친구의 꼬집기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다면 그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청룡의 발톱으로 꼬집히는 것보단 낫잖아.’
문득 볼이 얼얼하다고 느껴진 남자가 차가운 얼음잔을 볼에 갖다 대었다.
콰득 ―
―아퍼! 아퍼! 아프다고! 끄아아악!
―호성아, 너 부길드장이야. 내가 자각하라고 몇 번을 말했냐?
―난 유유자적 살고 싶다고… 부길드장도 형이 하라고 해서 한 거잖아!
―대체 S급은 어떻게 된… 하아… 너 이 실장한테 다 말해버린다.
―하겠습니다.
‘약점만 안 잡혔어도…….’
어린아이처럼 뾰로통해져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
그는 바로 S급 헌터 민호성이었다.
대외적으로 나설 땐 언제나 앞머리를 까고 뿔테 안경을 착용했기에 다행히 카페 내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청룡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고 대한민국 최강의 7인 중 하나인 거물 민호성.
현재 그가 맡은 임무는 바로 감시였다.
‘나 같은 고급인력을 이런데다가 써도 되는 거야?’
S급 헌터가 누군가를 감시한다니.
누군가 알았다면 인력 낭비, 재능 낭비라며 노발대발할 정도의 일이었다.
하지만 민호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
“그가 움직인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원체 본성부터가 게을러터진 민호성.
길드장인 김천용의 말도 그냥 말로 해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천애 게으름뱅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게으른 이유가 있었으니,
‘한번 마음먹으면 대충은 못 끝낸단 말이야!’
그가 바로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이다.
* * *
게으른 그가 어떻게 S급 헌터가 되었겠는가?
약속했으니까.
―실장님은 이상형이 뭐예요?
―저요? 음… 밝고 착하고… 강한 남자?
―아쉽다. 길드장님은 밝지가 않네.
―지금 저를 길드장님이랑 엮으려는 건가요? 그분은 연애에 관심이 없으세요.
―에이~ 재미로 하는 거죠!
우연이었다.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 것은.
당시 신입 D급 헌터였던 민호성은 공용휴게실 구석에서 누워 뒹굴고 있다 우연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것도 짝사랑하던 이 실장의 이상형에 대한 정보를.
‘나 정도면 밝고 착하지.’
곧바로 자기 객관화에 들어갔던 민호성.
하지만 한 가지 요소가 빠져있었다.
‘약해.’
그녀는 C급, 자신은 D급.
짝사랑하는 여인보다도 약한 상태였으니까.
‘강하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가 강한 걸까?’
그때 방금 들었던 여직원들의 대화 내용이 민호성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길드장님은 밝지가 않네.
강함의 기준이 김천용이 된 순간, 민호성은 자신과 약속했다.
김천용과 같은 S급 헌터가 되어서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빠르게 S급 헌터가 된 민호성은 김천용과 독대할 수 있었다.
―대단하군. 그 짧은 시간에 D급에서 S급이라… 세계에서도 주목할만한 엄청난 속도의 성장세야. 이러다 세계급까지 올라서는 거 아닌가?
―예? 아니 세계급까지 뭐하러 올라갑니까. S급도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길드 레이드에 용병 레이드까지 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실제로 살이 상당히 많이 빠졌던 민호성.
너무나도 힘들었던 그는 다짐했다.
다시는 함부로 이런 약속을 하지 않겠다고.
일단 약속했으니 지켰다만 정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나날들이었다.
―이유가 뭐였지?
―예?
김천용은 민호성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냐는 말이야.
―아, 그게 이 실장님 이상형이 그렇… 헙!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
―아하… 오호라… 민호성 헌터가 이 실장을……?
김천용의 두 눈에 재밌다는 듯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김천용의 반응에 민호성의 얼굴이 빨개졌다.
―비,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절대 말하시면 안 됩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후룩 ―
태연하게 커피를 홀짝이는 김천용.
하지만 민호성은 뭔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 길드장님! 진짜 말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아직…….
―부길드장 해볼래?
―…예?
민호성은 두 눈을 끔뻑였다.
부길드장? 그걸 왜 나한테?
‘난 뼛속까지 뒹굴고 싶은 사람인데?’
부길드장이라니.
단어만 들어도 바쁠 것 같은 단어였다.
민호성은 당연히 김천용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저는 거절…….
―부길드장을 하면 이 실장과 자주 일도 같이하게 될 거고… 이 실장이 요즘 사내 연애 관련 드라마를 자주 본다던데? 뭐라더라…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하겠습니다.
민호성은 표정을 엄숙하게 굳히며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대답은 민호성 인생의 후회되는 선택 TOP 3중 하나가 되었다.
* * *
궁시렁 궁시렁.
“내가 미쳤지 그때 왜…….”
민호성의 입이 궁시렁거리고 있는 반면,
휙 ― 휘릭 ―
그의 눈동자가 연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앞머리가 가려준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휙 ― 휙 ― 휙 ― 휙 ― 휙 ― 휙 ― 휙 ― !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검은자는 마치 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간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그의 눈이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카페 맞은편에 있는 건물에서 들어가고 나오는 모든 이들을 스캔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민호성이 스캔한 사람의 수가 거의 1,000에 달할 무렵,
‘나왔다!’
그가 찾던 이가 마침내 건물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처컥 ―
차 키를 받아 건물 앞에 대기시킨 검은 승용차에 올라타는 한 남자.
그는 바로 주작길드의 길드장, 도명조였다.
* * *
끼익 ―
검은 승용차가 어느 이름 모를 산자락에 멈춰 섰다.
덜컥 ―
승용차의 앞문이 열리고,
턱 ―
한 남자가 내려섰다.
바로 주작길드장 도명조였다.
“…….”
잠시 뒤.
우웅 ―
소음이 거의 없는 무음 오토바이를 타고 한 사내가 추가로 등장했다.
“빨리 오셨군요?”
“누구지?”
그러자 사내는 오토바이 헬멧도 벗지 않고 도명조에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용의 방주님과 개의 방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대리자를 보낸 건가.”
“몇 마디 전하자고 비행기까지 타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하.”
사내의 언사에 기분이 나빠진 도명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력을 개방했다.
콰아아아아 ― !
화륵 ― ! 화르르륵 ― !
순식간의 짙은 적색의 겁화가 도명조와 사내 주위를 에워쌌다.
“……!”
뚝 뚝…….
곧바로 사내의 헬멧 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인지 더워서 나는 땀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사내는 다소 당황한 듯 다.
“두 번은 안 참는다. 용건만 빨리 전하고 꺼져.”
“…예, 알겠습니다.”
화르르르륵 ― !
금방이라도 산 전체를 태워버릴 것만 같은 불꽃의 원 안에서,
두 남자는 무언가 대화를 짧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
도명조는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도명조의 경계 가득한 물음에,
“그저 모든 것은 그날을 위해.”
쥬르륵 ―
사내는 의미심장한 대답만을 남긴 채 전신이 녹아 사라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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