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성장통이 너무 아픔 (7)
총사상자 7,500여 명. 그중 사망자는 500여 명 정도.
많다면 많은 수였다.
하지만 당시 화재의 규모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수이기도 했다.
[여의도 163빌딩 화재로 인한 사상자 7,500여 명… 다행히 사망자는 500여 명에 그쳐.]
[최악의 참사는 면했다… 1만 5천 명 중 절반은 멀쩡.]
수천, 수만 개의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어느 지점에 초점을 맞춰도 무방할 정도로 화제 사안이 많았던 이번 사고.
하지만 역시 단연코 가장 커다란 화젯거리는 바로 특임반장의 존재감이었다.
[돌연 현장에 나타난 백면의 특임반장… 단숨에 화재 진압.]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초대형 불꽃 잠재운 특임반장의 힘.]
[헌터가 어떻게? 미지에 둘러싸인 특임반장의 정체.]
[마력감염증 환자 발생 제로… ‘마력을 쓰긴 했는데요, 안 썼습니다.’]
하얀 가면을 쓴 특임반장이 나타나 불을 끄는 모습이 담긴 생중계 현장 영상은 그 부분만이 편집되어 너튜브에 업로드되었다.
기자들이 중계하던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각도로 찍힌 현장의 모습.
뉴스 채널에 올라온 영상임에도 해당 영상들은 하나같이 몇 시간 만에 수천만 뷰를 훌쩍 뛰어넘었다.
ㄴ 아니 무슨 예수냐? ㅈㄴ 경건하네
ㄴ ㅇㅈ ㅋㅋㅋ 떠오르는 거 개간지임ㄴ 근데 불 대체 어떻게 끈 거임? 그냥 몇 초 만에 뚝딱이네ㄴ 그니까 ㅇㅇ 건물이 갑자기 뿌옇게 변했다가 연기가 압력밥솥마냥 뿜어져 나오는 거 말고는 알 수가 없음ㄴ 압력밥솥ㅋㅋㅋㅋㅋ 아 쌀밥 땡기네ㄴ 건물 전체를 진공상태로 만든 듯… 밥솥처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건 다시 기압 차를 되돌리느라 그런거고ㄴ 건물 전체를 진공상태로 만들었다고? 그럼 안에 있는 사람도 다 죽는 거 아님?
ㄴ 사람은 공기 없어도 3분은 살 수 있음. 두유 노우 333법칙?
ㄴ 아니 진공상태면 사람 몸 터지는 거 아님? 우주에 맨몸으로 나가는 거랑 똑같잖아ㄴ 진공상태에서 사람 몸 터진다는 건 낭설이고, 실제론 장기들이 조금 팽창되고 피가 끓으면서 혈관이 터져서 죽음
ㄴ 어쨌든 뒤진다는 건 팩트잖아
ㄴ 그렇게 뒤질라면 최소 1분은 걸림. 근데 여기선 길어야 10초 정도였잖아.
네티즌들은 의지와 집념의 한국인답게 기어코 특임반장이 불을 끌 수 있었던 원리까지 추측해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특임반장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추측해낼 수 없었다.
ㄴ 진공상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똑똑하네ㄴ 그럼 능력이 뭐냐? 바람임?
ㄴ 그렇다기엔 UFO에 끌려가는 사람마냥 너무 두둥실 떠오르는데?
ㄴ 바람으로 못 떠오름?
ㄴ 사람이 바람으로 뜨려면 바람이 얼마나 세야 하는지 아냐;;
ㄴ 오 뻘뻘좌임? ㅎㅇ 오랜만
ㄴ 아니 공기 다루는 능력이 아니면 애초에 진공상태 만드는 게 가능하냐고ㄴ 아 잠만… 염력 아님? 염력이면 가능할지도
ㄴ 오오오오오오
ㄴ 22222222
갑자기 유력해지는 특임반장의 염력 능력자 설.
두둥실 떠오르는 모습과 건물 전체에 마력의 막을 씌워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장면만 보면 실로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존재가 언급되며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바로 이매탈이었다.
ㄴ 특임반장 이 사람 이매탈 아니었음? 가면만 바꾼 거고… 근데 염력이라고?
ㄴ 엥 그렇네. 이매탈은 번개 쓰잖아
ㄴ ㅁㅊ 뭐임 모르겠다 머리 아파
ㄴ 엌ㅋㅋㅋㅋ 그러네 나도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ㄴ 뭐야 다른 사람이야?
ㄴ 이매탈이 둘 다 가지고 있을 확률은?
ㄴ 뭐 김천용처럼? 근데 번개랑 염력을 같이 쓸 수 있는 능력에 뭐가 있냐 적어도 공통적인 교집합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ㄴ 유니크형인가?
ㄴ 그럼 각성했을 때나 사관학교 졸업할 때 진작에 기사 떴겠지ㄴ ㅅㅂ ㅋㅋㅋ 그럼 한국에만 유니크형 3명임 이 정도면 밸붕 ㅋㅋㅋㄴ 무슨 밸붕이야 유니크형 각성한 최서아 아직도 B급인거 모르냐… 능력 좋다고 다 강한 것도 아님ㄴ 만약에 다른 사람이면 협회 개지리는데? 이매탈이랑 특임반장 둘 다 있는 거잖아ㄴ 협회 떡상 가나요?
ㄴ 5252 믿고 있었다고?
ㄴ 존버한 보람이 있다!
ㄴ 팩트) 협회 코인 샀던 놈 하나도 없음
ㄴ ㅆ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
특임반장과 이매탈이 같은 사람이냐 다른 사람이냐 하며 벌어진 논란.
다행인 점은 어떤 쪽이 사실이든 간에 협회가 가진 능력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임반장의 맹활약 덕에 협회의 이미지는 급상승의 기류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 * *
헌터 협회 본부 10층 협회장실.
심각한 표정의 세 사람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경찰에선 뭐라고 합니까?”
태운이 동석과 현주에게 물었다.
“근처 CCTV를 모두 뒤져서 기름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잔뜩 가지고 들어갔던 배달원 복장의 남자를 찾았다고 해. 그런데 나오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고…….”
“…옷을 갈아입은 건가요.”
태운의 말에 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하아…….”
푹 ―
태운은 소파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한 불을 끈 태운은 사태를 해결하자마자 협회로 다시 돌아가 경찰과 협력하여 방화범을 찾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지문 같은 흔적도 없고, 증거라곤 배달원 복장으로 기름을 들고 들어가는 CCTV 영상뿐이라 아무래도… 범인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아.”
도저히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키 정도로 보이는 데다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도 가렸으며, 모자까지 깊게 눌러써서 눈조차 노출되지 않았으니까.
너무 특징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방화범을 찾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완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답답했던 동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나 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놈, 반드시 잡아야 해요. 건물 내부 CCTV에도 찍힌 게 없습니까?”
현주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재로 인해 CCTV 메모리까지 모두 타버렸어… 게다가 빌딩 내 중앙 CCTV 관리실에서 소형 EMP 폭탄의 흔적이 있었다고 해. 그러니까… 철저하게 완전 범죄를 계획한 거지.”
으드득 ―
태운의 입 안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새어 나왔다.
부들부들.
심하게 분통해 하는 태운.
그 모습에 동석이 태운을 위로했다.
“설마 자책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 덕분에 1만 5천 명의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는 대참사를 면할 수 있었어. 지금 특임반장은 세간의 영웅일세.”
현주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태운 씨. 안타까운 사고이긴 하지만… 자책하지는 마. 이런 말 하긴 좀 뭐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서 협회의 평판이 엄청나게 좋아졌으니까.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 거 태운 씨도 잘 알잖아? 우린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런 의미에서 태운 씨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애초에 헌터인 태운 씨가 이 사고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부터가 기적이라고?”
“…….”
협회장실 안에 침묵이 흘렀다.
스윽 ―
소파에 앉은 채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머리를 감싸는 태운.
그 어떤 위로에도 생각보다 훨씬 괴로워하는 태운의 모습에 동석은 조금 냉철하게 말을 꺼냈다.
“협회의 입지가 강해지면 우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그래,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성장통…….”
태운은 고개를 숙인 채 동석의 조언을 곱씹어보았다.
무엇이 성장했는가?
협회와 특임반장의 이미지 평판이 크게 성장했다.
이매탈과 동일 인물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천안 브레이크를 해결했을 때의 이매탈 수준으로 영웅적인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500여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7,000여 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평생토록 이어질 수도 있는 갖가지 후유증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방화범은 놓쳤다.
“하하하…….”
태운은 허탈하게 웃음을 털어낸 뒤,
스윽 ―
핸드폰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번 사건에 대해서 이제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다른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델타조에서 인천 쪽에 A급 던전이 발생했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이제 제 일이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겠죠.”
저벅저벅 ―
협회장실 문으로 걸어가는 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협회장 부부의 눈빛엔 걱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자네… 괜찮은 건가?”
멈칫 ―
동석의 목소리에 태운은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스윽 ―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태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가면 뒤 태운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괜찮습니다. 사실, 진짜 괜찮지 않더라도 이제 익숙해져야지요. 다만… 성장통이 조금 많이 아프네요.”
끼익 ―
탁.
그리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태운이 나간 뒤 다시 침묵으로 채워지는 협회장실.
비록 가면에 가려져 표정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협회장 부부는 알 수 있었다.
파르르 ―
미소를 그린 태운의 양쪽 입가가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음을.
* * *
‘대단하군.’
기사와 영상을 보던 김천용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영상 속에는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한 마력을 이렇게나 광범위하게 다뤘음에도 마력감염증 피해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다니…….’
그야말로 마력에 대한 통제력이 절정을 넘어 한계를 초월한 경지였다.
물론 일반적으로 등급이 오를수록 마력에 대한 통제력이 상승한다.
S급 헌터 정도 되는 이가 신중하게 집중을 기울인다면 마력을 사용해도 마력의 잔향을 거의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마치 재채기를 했는데 침방울이 단 하나도 퍼지지 않고 오로지 전방으로 쏘아지는 것과 같았으니까.
‘대참사도 막았고… 희생자가 발생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협회에 대한 평판이 크게 달라졌다. 볼리베어 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전체를 경악하게 한 초대형 사고를 해결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최근 헌터 협회의 화제성은 4대 길드를 전부 합친 것만큼이나 대단했다.
‘…머지않았군.’
끼익 ―
김천용은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왠지 모를 기대감이 김천용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
‘한때 내가 품었던 이상을 대신 실현해줄 남자.’
한때 정의롭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을 꿈꿨던 김천용.
그러나 과거의 그는 그 이상보다는 현실의 욕망을 택했다.
4대 길드장으로서의 지위와 명성, 그리고 부.
하지만 그것들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그의 이상은 종종 고개를 들어 길드장으로서의 김천용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괴물이 되지 않을 순 있었지.’
누군가 대신 이뤄주길 바랐다.
현실을 택하긴 했지만, 이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으니까.
‘특임반장, 당신은 꼭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김천용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영상 속 여의도의 시커먼 하늘과는 달리 강원도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푸르렀다.
그때 김천용의 머릿속에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마력 통제력 진짜 장난 아니던데… 가끔씩이라도 서아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해볼까?’
고민에 빠진 김천용의 미간에 절로 주름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힘들겠지?’
“에휴…….”
잠시 잊고 있던 고민을 마주한 김천용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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