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성장통이 너무 아픔 (2)
삐익 ― ! 삐익 ― !
교통경찰들이 호루라기를 연신 불어대며 도로에서 분주하게 경광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차 빼세요! 도로 통제입니다!”
“뒤로 돌려요! 거기 아저씨! 차 빼세요! 소방차 못 들어오잖아!”
여의도 일대가 붉고 검은 혼돈으로 물들었다.
화르르륵 ― ! 타닥!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 163빌딩.
그 빌딩에서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으니까.
심지어 한 층도 아니고 띄엄띄엄 떨어진 여러 층에서 일제히 불이 나고 있었다.
마치 누가 일부러 한 것처럼.
“흐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1층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콰아아아아아 ―
그 외의 층들은 그렇지 못했다.
“연기가 너무 심합니다!”
“일단 잡을 수 있는 불부터 잡아!”
삐용 삐용 삐용 ―
말도 안 되는 초대형 화재에 여의도 인근 소방서 20여 곳이 화재 진압에 동원되었다.
콰아아아아아 ―
연신 뿜어지는 물줄기.
워낙 높은 건물이다 보니 물줄기가 건물 전체를 커버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많아!’
물대포를 잡고 쏘는 소방대원의 두 눈에 경악스러움이 깃들었다.
불이 난 층은 총 18곳.
지하 1층, 2층, 8층, 15층, 28층, 36층, 44층, 50층, 59층, 63층, 70층, 85층, 91층, 100층, 110층, 123층, 138층, 150층.
인접한 여러 층도 아닌 따로 떨어진 층에서 한꺼번에 불이 난다? 명백한 방화였다.
방화범을 잡아야 하지만,
웨에에에에엥 ― !
콰아아아아아 ― !
화르르르륵 ― !
삐용 삐용 삐용 ―
상황이 너무 혼잡했다.
화르르르륵 ― !
쿠우우우우 ―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으며 뿜어낸 연기로 인해 여의도 하늘은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화산이 터진 후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은 것만 같았다.
“혹시 못 빠져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한 소방대원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층에서 빠져나온 직원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1, 1층… 1층 말고는 아무도 못 빠져나왔어요…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고 계, 계단에서도 불이 나고 있어서…….”
덜덜덜.
충격이 컸는지 온몸을 덜덜 떠는 직원들.
소방대원은 직원들의 말을 듣고 이를 빠득 갈았다.
한국의 관광지 중 하나이자 여의도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163빌딩.
163빌딩을 방문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 요즘 같은 방학이나 휴가철일 때는 3만 명에서 5만 명 정도 된다.
안에 들어선 음식점도 상당히 많았기에 지금이 점심시간인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건물에 남아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1층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겨우 수십 명.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2층과 지하부터 잡는다! 최대한 구해야 해!”
지하로도 10층에 달하는 163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도 고장 나고 계단마저 불타고 있는 지금, 지하 1층에 불이 났다는 말은 그 밑의 10층이 완전히 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의미였다.
타다다다닷 ―
소방 호스를 든 소방대원들이 지하로 가는 비상계단으로 접근했다.
후욱 ― !
비상구를 열자 어마어마한 연기와 불이 훅 뿜어져 나오며 검고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크으윽!”
생각보다 더 크게 뿜어져 나온 불과 연기, 그리고 열기에 소방대원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콰아아아아 ―
호스로 물을 뿜어보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불.
아니 그 무엇보다도 연기가 너무 심해 전등이 나가버린 비상계단은 너무나 깜깜했다.
“시야 확보가 안 되니까 조심해!”
물로 어느 정도 열기만 대충 식힌 소방대원들이 휴대용 라이트를 켠 채 계단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진입이었다.
대한민국의 동맥인 한강 옆에 위치한 여의도.
웨에에에에엥 ― !
웬만한 던전 브레이크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인재로 인해 재현되고 있었다.
* * *
부아아아아앙 ― !
거칠게 악셀을 밟는 태운.
부릅뜬 그의 눈이 얼마나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끼익 ― ! 끽 ― !
“크윽!”
차량들 사이를 지나가며 살짝 방향을 틀 때마다 차 안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운의 차에는 태운 외에 다른 3명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알파조였다.
“대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어차피 가봐야 우리는 마력을 쓰지 못합니다!”
태운의 옆자리에 앉은 이태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난 상황엔 그 어느 때보다 초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헌터들은 그런 재난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헌터가 다른 인간들에 비해 강한 초인인 이유는 그들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일반인들은 마력에 닿으면 95%의 확률로 사망한다.
일반인들을 구출하는 데 마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적어도 구조 현장에서만큼은 헌터도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 브리핑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은 태운은 그저 계속해서 악셀을 밟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태성이 다시 뭐라고 하려는 찰나,
“빨리!”
태운의 진지한 호통이 이태성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래,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알파조는 재난 현장 생중계 영상과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을 모니터하며 시시각각 현장 정보를 태운에게 알려주었다.
“지상 163층, 지하 10층 중에서 총 18개 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일대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안에 갇힌 피해자들의 가족과 기타 유동 인구들이 엉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통경찰들이 외곽에서부터 도로를 정리하고 있지만,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 들어서면 빌딩까지 상당 거리를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기가 너무 심해 소방헬기나 구조헬기 등 공중접근도 불가하다고 하네요.”
상황 브리핑을 하는 알파조 3인의 얼굴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했으니까.
“지하 진입을 시도했던 소방대원 2명이 부상당했답니다. 연기 때문에 휴대용 라이트도 무용지물인 것 같네요. 지하 진입을 포기했어요.”
“소방 호스 물줄기가 닿는 범위가 50층까진데 닿지 않는 범위의 화재 스팟이 10곳이나 돼요. 근데 사람들은 거의 고층인 60층 이상에 몰려있다는데…….”
“가장 가까운 2층 화재 진압도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1층에 있던 생존자 74명을 제외하면 아직 다른 층은… 하, 한 명도 못 빠져나왔어요!”
끼이이익 ― ! 끼이이익 ― !
태운의 SUV가 차들 사이를 헤집고 마구 나아갔다.
상황 설명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 태운의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차칵!
부아아아아아앙 ― !
부스터 모드까지 켠 태운.
주륵 ―
운전에 온 신경을 집중한 태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불길 속에 갇혀있을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부르르 ―
가면 뒤 태운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력을 사용하여 달려갈 수 없음이 한없이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 * *
다시 현장.
여의도 163빌딩 앞.
구현수 소방정이 화염에 휩싸인 163빌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본래 소방정이라 하면 4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으로 웬만한 소방서의 서장을 맡을 정도의 꽤 고위급 간부 인사였다.
본래 현장 출동보다는 서에 남아 지휘를 담당하지만, 이번엔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직접 현장으로 출동한 구현수 소방정이었다.
“…….”
불타고 있는 163빌딩을 올려다보는 구현수의 두 눈에 울분과 원망스러움, 그리고 무력함이 깃들어 있었다.
“…씨X!”
현장 총지휘를 맡은 구현수 소방정이 결국 참았던 욕설을 내뱉었다.
“쓸데없이 높이 지어 가지고! 이렇게 불났을 때 대책도 없는데!”
물론 기술이 발전하며 물줄기를 쏘아 올릴 수 있는 사거리가 늘어나긴 했다.
2000년대 초반에 해도 100m 남짓 정도였지만 지금은 최대 200m까지 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뿐.
건축 기술은 더욱 발전되어 100층 이상의 건물들이 십수 개나 들어선 상황이었다.
200m라고 해봐야 층고가 높은 대형 건물의 경우 보통 50층 정도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층고가 낮아도 최대 60층 정도가 한계.
그 위의 층들은 화재 진압이 사실상 힘든 비안전지대인 것이다.
물론 고층 건물들엔 화재를 대비해 수많은 스프링쿨러와 소화기, 소화전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웬만한 불은 잡히겠지만 만약 스프링쿨러로도 막기 힘든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면?
그런 대형 화재 앞에서 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침착하게 소화기와 소화전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결국 화재가 일어나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소방대원과 구조대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으니, 일단 대형 화재가 나게 되면 고층에 위치한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99% 이상이 되는 것이었다.
“구 서장님!”
부상당한 소방대원들을 구조대에 인계한 대원이 헉헉대며 달려왔다.
“대원들은 어때?”
“다행히 화상은 경미합니다. 근데 둘 다 팔이랑 갈비뼈에 손상이 갔어요.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로 진입을 시도하다 계단에서 구르고 만 소방대원 2명.
연기에 가려져 있던 불에 닿긴 했지만, 다행히 곧바로 물로 진압해 화상 자체는 경미한 듯했다.
“일단 목숨엔 지장 없다는 거지. 좋아, 지하는 포기해. 다른 층에 쏟아붓던 물대포 전부 2층 진압을 돌린다.”
“하, 하지만…….”
조금이라도 반박해보려던 대원은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도저도 아닌 지금 상태로 상황이 조금만 더 길어진다면,
‘정말로 아무도 구하지 못하게 될 거야.’
던전 브레이크도,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 현대 사회에서 화재로 인해 1만 명 이상이 불타 죽는 대참사가 벌어질 터였다.
그때,
덥석 ―
“정신 차려!”
구 서장이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인해 잠시 멍을 때리는 대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2층이라도 진압해야 3층부터 7층까지의 사람들이라도 살릴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할 때야!”
치익 ―
덜덜덜.
그러나 정작 무전기를 꺼내는 구 서장의 손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한마디로 8층 이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결정되는 것과 다름없는 순간이었으니까.
‘정작 이렇게 초인이 필요한 순간에 초인들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니.’
순간 구 서장은 자신이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부들부들.
문득 옆을 바라보니 자신의 동료들을 구조대에 인계한 대원이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차라리 치열한 진압, 구조 현장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임에도 손조차 제대로 대볼 수 없다는 무력함과 절망감이 대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치이이익… 치익…….
“아아, 전 소방대원들에게 알린다. 모든 호스를 2층 화재 진압에 돌리도록. 다시 한번 알린다. 모든 호스를 2층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돌리도록.”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무전을 마친 구 서장과 대원의 눈이 마주쳤다.
구 서장은 애써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린… 신이 아니야.”
스윽 ―
콰아아아아아 ―
건물 여기저기에 뿌려지던 소방 물줄기들이 2층에 집중적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구 서장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를 원망하십시오.”
꽈악 ―
무전기를 쥔 구 서장의 손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쥐어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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