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협회가 변태를 준비함 (5)
원래 계획에 따르면 지금 길드의 헌터들을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먼저 여론과 민심을 먼저 휘어잡은 후, 천천히 길드들을 공략하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태운은 길드 헌터, 그것도 4대 길드의 수장을 건드리고 있었다.
‘대체 어쩌려고…….’
태운과 정호백을 번갈아 보는 한동석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정호백이 나름 협회에 대해 온순한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협회에 우호적인 헌터는 김천용 한 명뿐이었다.
정호백은 김천용의 눈치를 보아 대놓고 무시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자였으니까.
꿀꺽 ―
한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
네 사람 사이에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그때,
꾸득 ―
정호백이 주먹을 꽉 쥐었다.
“……!”
전원이 S급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인 나머지 세 사람이 그 행동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르륵 ―
긴장한 한동석의 등줄기로 더 많은 땀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김천용도 마찬가지.
잘은 모르겠지만 태운에게서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을 느낀 김천용은 자신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강하다!’
최소 자신과 대등 혹은 그 이상.
딱히 마력을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김천용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이매탈을 뒤쫓아가기 바빴던 천안 브레이크 때와는 달리, 눈앞에서 제대로 마주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생물의 격이랄까?
특히 동물형 계열의 고유능력을 각성한 김천용은 다른 헌터들보다 상대의 격을 더욱더 잘 느낄 수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정호백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누구보다 정호백이 제일 잘 느끼고 있었다.
쿠우우우우 ―
주먹을 쥔 정호백의 머릿속으로 어떠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수백, 수천 구에 달하는 웨어울프 시신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채 쓰러진 작은 산만 한 크기의 전설형 몬스터, 펜릴.
덜덜덜.
본능적으로 서로 간의 서열과 격차를 명백하게 인지한 정호백의 사지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협회장님.”
“……!!”
예상외로 순수하게 사과를 하는 정호백의 모습에 놀란 한동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건 김천용도 마찬가지였다.
‘정호백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난다고?’
세계급 헌터인 중국의 첸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았던 정호백이었다.
‘너… 대체 안에서 뭘 보고 나온 거냐?’
* * *
천안 던전의 보스였다는 전설형 몬스터, 펜릴.
하지만 정호백에게 말로만 전해 들은 것이었기 때문에 김천용은 그가 느낀 공포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과거 동유럽의 한 던전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전설형 몬스터 ‘케르베로스’를 상대하기 위해 지원에 나섰던 독일의 EX급 헌터, 루카스가 빈사 상태까지 몰렸던 일을 토대로 엄청나게 강했을 것이라고 대강이나마 짐작해볼 뿐.
어쨌든 정호백의 사과에 얼음장 같던 분위기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호백 씨,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약자를 괴롭히거나 핍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더군요.”
정호백이 순순히 사과하자, 태운은 다시 존댓말로 말투를 바꾸었다.
“하지만 동시에 평소 언행 자체가 거칠며 미덥지 못한 이들에겐 다소 무례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시던데…….”
조기 졸업 이후… 아니, 그전에도 틈만 나면 국내 주요 헌터들에 대한 기사와 동영상, 혹은 과거의 기록들을 찾아보며 그들의 성향을 조사했던 태운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7명의 S급 헌터들에 대해선 이미 완벽히 분석 자체가 끝나있었다.
S급 헌터 정호백.
그는 꽤나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시민들에게 일말의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이 발생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동안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냉정했다.
특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더욱 그랬다.
백호길드가 4대 길드 중 유일하게 정계와 연줄을 만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정호백이 협회장 한동석의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해내지 못하는, 즉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이들.
정호백은 그런 이들을 혐오했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협회는 이제부터 다르지.’
이젠 태운이 있으니까.
정호백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자는 협회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자야.’
꿀꺽 ―
한편, 탈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태운의 날카로운 눈빛에 정호백은 전신을 구석구석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의 그런 성향을 굳이 고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더 이상 협회에 대한 무례는 그만두세요. 협회엔 이제 제가 있으니까.”
꽤나 거만한 발언이었다.
자신이 있으니 태도를 바꾸라니.
그동안 보여준 실적이라고는 대단했다고는 하지만, 천안 브레이크에서 활약한 것밖에 없는 태운이 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끄덕 ―
정호백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간신히 태운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호백은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 태운의 강함을 제일 잘 파악하고 있는 건 마력 수치 등급만을 확인한 협회장과 부협회장이 아니라, 던전 안의 그의 흔적을 확인한 정호백일지도 몰랐다.
풀썩 ―
볼 일을 다 마친 태운은 그제야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좋네요. 그래서 두 분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호백을 향하던 태운의 시선이 이젠 김천용을 향했다.
* * *
‘…대단하군.’
이매탈을 쓴 사내와 눈을 마주친 김천용은 속으로 감탄했다.
거칠게 다짜고짜 쳐들어온 것은 이쪽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순간에 분위기는 저쪽으로 넘어가 버린 상태.
이렇다 할 무력조차 쓰지 않고, 그 거친 정호백마저 단번에 기가 꺾여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협회장님께서 하셨던 기자회견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것입니다만.”
스윽 ―
김천용은 한동석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태운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제 보니 저희는 그럴 자격이 없을 것 같군요. 축하드립니다, 협회장님. 이런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계셨을 줄이야.”
김천용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허허허… 고, 고맙네.”
김천용의 갑작스런 축하에 한동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다, 당신은…….”
거대한 맹수 앞에 잔뜩 겁을 먹은 고양이마냥 위축된 정호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의 시선은 이매탈을 쓰고 있는 태운을 향하고 있었다.
“대체… 뭘 할 생각입니까?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협회에 들어가다니… 그것도 정보까지 모조리 숨…기고 말입니다.”
정호백은 긴장했는지 침을 한차례 꿀꺽 삼켰다.
“제 머리가 아무리 나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는 아닙니다. 협회가 당신 정도의 인재를 키울 수 있었을 리 없습니다. 이미 강했거나, 혹은… 혼자서도 강해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상태에서 협회에 들어왔겠지요.”
정호백의 말에 태운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았다.
“헌터계를 정리할 겁니다.”
“……?”
“……?”
김천용과 정호백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정리한다니… 무엇을……?”
“헌터들의 횡포, 범죄, 그리고 지금까지 어이없게 묻혀버린 어두운 과거들까지.”
태운의 말을 듣는 두 사람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밑바닥… 아니, 지하까지 들어내서 모조리 정리할 겁니다. 헌터로서, 협회로서, 그리고…….”
말을 이어나가는 태운의 이마에는 어느새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사람으로서.”
꿀꺽 ―
본의 아니게 태운의 거대한 계획을 들어버린 두 사람의 목 뒤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싱긋 ―
어느새 분위기가 돌변한 태운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두 분이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예?”
“저, 저희가 말입니까?”
대한민국 최강의 집단을 이끄는 두 남자가 당황하여 서로를 쳐다보았다.
“……!”
한편, 말없이 앉아만 있던 한동석은 언제부터인가 단 한 순간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 * *
끼익 ―
두 사람이 조용히 나가고,
탁.
마침내 협회장실 안에는 다시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후우…….”
태운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허허허…….”
넋이 나간 한동석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한동석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한 눈빛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뭐 하나 예상이 빗나가는 법이 없군. 무슨 전생에 제갈공명이라도 되었던가?”
한동석은 며칠 전 태운이 말했던 계획을 떠올렸다.
―아마 청룡길드장과 백호길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할 겁니다.
―왜지?
―그야 그 두 사람은 가장 가까이서 제 힘을 목격했으니까요. 특히 그 둘은 헌터 중의 헌터입니다. 신원불명의 강자가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하겠다고 밝힌다면, 아마 곧장 협회로 쳐들어오겠지요. 드물지만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하는 훌륭한 헌터들이니까요.
―음… 정말 그 두 사람이 협회로 찾아온다고 치자고.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대책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를 찾아온 두 사람을 맞이해주면 됩니다.
―맞이한다고?
―예, 협회는 앞으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청룡길드와 백호길드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겁니다.
그 어떤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육지에서 뚝 떨어진 외로운 섬 마냥 고립되어있던 협회에 ‘청룡길드’와 ‘백호길드’라는 튼튼한 다리를 놓은 태운.
이 모든 건 철저한 사전조사와 태운의 검증된 강력한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맞이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정호백에게 무례하다며 다짜고짜 들이받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말이다.
‘정말… 정말로 기대되는군.’
한동석은 잠시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두근두근.
동석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뛰기 시작한 듯한 생동감 넘치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그려보았다.
‘협회는… 정말로 바뀔 수 있다!’
동석의 시선이 다시 태운을 향했다.
사락 ―
펜을 든 채 무언가 적으며 계획을 검토하는 그의 모습에,
씨익 ―
동석은 어느새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청년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갑갑한 번데기 껍질 안에 무기력하게 갇혀 있던 협회라는 애벌레가,
꿈틀 ―
마침내 변태를 위한 탈피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 * *
저벅저벅 ―
터벅터벅 ―
한편, 협회장실에서 빠져나온 김천용과 정호백은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웅성웅성.
좀처럼 보기 힘든 헌터계의 슈퍼스타 두 사람이 별안간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마구 술렁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영상과 사진을 찍기 바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핸드폰만 꺼내 들뿐,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혹시, 정말 만에 하나 혹시라도 둘 중 하나라도 조금의 마력이라도 뿜어낸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마력감염증에 걸려 쓰러질 수도 있었으니까.
유명하지 않은 헌터라서 그 존재를 몰랐다면 모를까, 사람들은 보통 헌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살기 위해 일정 거리 안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헌터들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이기로 꼽히는 두 사람인데도 말이다.
헌터가 시민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대상임과 동시에 언터처블한 존재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헌터들은 시민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는 강한 존재들.
팬들에겐 그야말로 전설의 영웅이자 신앙 그 자체로 느껴졌으니까.
“꺄악! 천용 오빠!”
“호백이 행님! 사랑합니다!”
멀찍이 떨어져 다가오지도 못하는 팬들이 멀리서나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에 응해주면 더 난리가 난다는 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시종일관 주변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우리 잘한 거 맞는 거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던 정호백이 먼저 말을 꺼냈다.
스윽 ―
둘 다 변신했을 때와는 다르게 김천용은 원래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정호백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잘한 거다.”
“…꽤나 확신하네?”
정호백은 놀랍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신중하고 똑똑한 김천용은 좀처럼 확신하는 듯한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설령 그가 우리의 예상만큼 강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었어. 그 사람은… 그 일을 대신해주겠다고 한 거고.”
김천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히려 너무 늦었지. 다 내가 부족…….”
“개소리하지 마.”
정호백은 자책으로 이어지려던 김천용의 말을 끊어버렸다.
“대한민국 최강이면 뭐 전능하냐? 제일 강하다고 해봤자 너도 같은 S급 헌터야. 그리고 사람이다. 사람이 뭐든 혼자 할 수는 없는 거다.”
정호백은 콧김을 뿜어내며 팔짱을 끼었다.
“애초에 그건 전부 협회의 일이지, 길드 헌터인 우리 일이 아니니까.”
“…내가 협회에 들어갔다면…….”
“하!”
정호백이 코웃음을 터뜨렸다.
“그랬으면 S급은커녕 이제 A급에서 빌빌 기고 있었겠지.”
팡!
정호백은 커다란 손으로 뭔가 침울해진 김천용의 등을 때렸다.
“정 뭐하면 다 때려 치고 지금이라도 들어가던가?”
“…그러기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게 너무 아까운데?”
“푸하하하하!”
정호백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씨익 ―
두 사람은 항상 이랬다.
동갑에다가 같은 시기에 사관학교를 나온 두 사람.
정호백은 김천용의 영리함과 신중함을 믿었고,
김천용은 정호백의 단순함과 화끈함에 위로를 받았다.
사관학교에서도 최고의 콤비로 불렸던 두 사람은,
“웃지 마, 정들어.”
“지가 웃어놓고 무슨…….”
서로 다른 단체의 수장이 된 지금도 그 사이가 변함이 없었다.
다시 시선을 내리며 미소를 지은 김천용은 멀리서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싼 인파를 슬쩍 둘러보았다.
“꺄아아아악!”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몇몇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붉히며 쓰러지고 있었다.
“…일단 자리를 옮겨야겠다. 일대가 마비되겠어.”
“음? 아, 그래야겠네.”
파앗 ― !
말을 마친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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