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30화 (30/300)

30화. 협회가 변태를 준비함 (2)

“하아… 하아…….”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 10층.

그곳에 위치한 협회장실.

“하아… 하아…….”

협회장 부부만이 있는 협회장실 안에서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 여보…….”

“하아… 하아… 당신 괜찮은 거지?”

“하아… 하아… 나 더는 안 되겠… 크읍!”

“하아… 하아… 나, 나도!”

벌컥 벌컥 ―

매운 떡볶이를 먹고 얼굴이 시뻘게진 두 부부가 미친 듯이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탁!

“크아아아아!”

우유 한 컵을 단번에 위장에 때려 넣은 한동석이 포효했다.

“어으! 이거지! 스트레스가 그냥 쫙 풀리네!”

너무 매운 탓에 입술이 퉁퉁 부은 한동석이 빨갛게 미소를 지었다.

“하아아… 너무 매워…….”

한동석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 지친 양현주는 협회장실 소파에 힘없이 늘어졌다.

“참 신기해… 젊었을 땐, 조금 매운 라면도 못 먹던 양반이…….”

양현주는 소파에 기대어 밝아 보이는 표정의 한동석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뭐, 애들 탓이 크지.”

한동석은 빨간 국물 속에 숨어있는 어묵 하나를 입속에 집어넣으며 협회장 책상 위에 있는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벌써 다 성인이네.”

“그러게… 애들이랑 연락은 해, 당신?”

양현주의 물음에 한동석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음… 해봤는데, 잘 안 받더라고? 허허허!”

그의 말에 양현주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놈 자식들이… 내 전화도 안 받더라고? 이래서 자식 놈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와앙 ―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양현주는 다시 매운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기성이야 워낙 바쁠 거고… 유린이는 모르겠네. 요즘 학교 커리큘럼이 바뀌었나?”

한동석이 어떻게든 자식들 편을 들어주려 했지만,

“바뀌긴 뭘 바뀌어? 바뀌었으면 협회장이랑 부협회장이 모를 리가 있겠어? 그래, 기성이는 뭐 바쁘니까 그렇다 쳐. 이놈의 기집애는 그냥 허구한 날 속만 썩이고…….”

은근히 쌓인 것이 많았는지 양현주는 자식들에 대한 불만을 줄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 아니, 원래 딸은 좀 친구 같고 그런 맛이 있다는데, 얘는 무슨! 어? 왜 부모한테 철벽을 치냐고! 성격이 그러니까 여태까지 남자친구가 없…….”

쏼라쏼라 ―

한동석은 그런 아내의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또 한 시간을 이러고 있어야겠군…….’

그런데 그때,

삘릴리 ~ 삘릴리 ~

구세주(?)처럼 한동석의 벨소리가 울렸다.

“아, 잠시만.”

푸념 지옥에서 벗어난 한동석은 아주 살짝 기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하아… 진짜…….”

어김없이 모르는 번호가 뜬 핸드폰을 확인한 한동석은 이마를 짚었다.

“왜? 또 기자야?”

양현주의 물음에 한동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모르는 번호야. 이것들을 그냥…….”

틱.

척 ―

한동석은 이를 갈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 모른다고! 모른다고 이 새끼들아! 이매탈 알아내면 발표해주겠다고! 한 번만 더 전화하면 그 언론사는 앞으로 협회 블랙리스트에 올려버린다고 당장 당신들 커뮤니티에 올려! 알아내면 내가 진작에 발표했지! 너희들은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 거냐? 어?”

상대가 기자임을 확신하고 전화를 받자마자 냅다 쌍욕을 박아버리는 한동석.

그러나,

{…발표하면 좀 곤란합니다만.}

상대는 기자가 아니었다.

“……!”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은 한동석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쿵 ― 쿵 ― 쿵 ―

무언가를 느낀 협회장으로서의 직감이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 * *

그날 밤.

휘이이이이 ―

헌터 협회 본부 건물 옥상.

거센 바람이 부는 옥상 위에서 한 남자가 홀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후우…….”

거센 바람 때문에 순식간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

그런 연기를 바라보는 한동석의 눈빛이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협회장님.”

흠칫!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한동석의 어깨가 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아무 기척도 못 느꼈는데?’

스윽 ―

최대한 놀란 티를 내지 않으며 한동석은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휘이이이이 ―

어둠이 내려앉은 밤.

인근에선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건물인 탓에 협회 옥상에는 달빛을 제외하곤 빛이 거의 없었다.

그런 희미한 달빛 아래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협회장님.”

턱이 없는 기묘한 탈을 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한동석은 잠시 말을 잇지 않고 그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갸웃 ―

한동석이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이매탈, 태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턱 ―

한동석은 팔짱을 낀 채 옥상 난간에 기대었다.

“당신이 정말로 그 화제의 이매탈인지 내가 어떻게 알지? 그런 탈 정도야 구하려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동석의 말의 의미.

그건 바로 태운이 정말 그 이매탈인지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피식 ―

“뭐, 증명이야 어렵지 않지요.”

치지직!

순간, 태운의 전신에서 푸른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

그러자 푸른 번개를 직접 코앞에서 보게 된 한동석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 이매탈이군. 의심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스윽 ―

난간에서 몸을 떼어내는 한동석.

그러더니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핫! 그나저나 이매탈이 정말 한국인일 줄이야. 당연히 해외 헌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서 뚝 떨어진 누구십니까?”

경계심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태운에게 다가오는 한동석.

그러나,

“…제 정체를 밝히는 건 아직 이르지요.”

우뚝 ―

태운은 명백하게 둘 사이에 선을 그었다.

“…….”

“…….”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흠, 알겠습니다. 그래, 저와 단둘이 보자고 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혹시나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혼자 올라오긴 했지만, 밑에선 협회 전투조가 상시 대기 중이니까. 만약 당신이 그 이상으로 강하다 하더라도 협회 소속 누군가 긴급 소집 명령만 걸면…….”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한동석의 쓸데없는 말을 끊어버리는 태운.

“…뭐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태운의 질문에 살짝 당황한 한동석이 다시 되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은 협회장으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휘이이이이 ―

“모든 이야기에 앞서서.”

저벅 ―

옥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태운은 처음으로 한동석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저는 알아야겠습니다. 당신에 대해.”

파직!

한동석을 바라보는 이매탈의 눈 사이로 푸른 전광이 명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 * *

“저에 대해서라…….”

한동석은 이매탈의 뜬금없는 질문에 말끝을 흐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는 영웅이다.

천안시를 구한 영웅.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믿기 힘든 자이기도 하지.’

신원을 알 수 없다.

모든 헌터들의 정보를 등록한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찾을 수 없는 신원미상의 존재.

막말로 갑자기 저 남자가 협회를 공격한다면 협회는 그를 막을 수 없다.

‘정말로 그 정호백보다도 강한 자라면, 수 분 내에 협회 전체가 몰살을 당할 테지.’

주륵 ―

갑자기 든 생각에 한동석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듯한데.’

밑에 협회 전투조가 대기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마와 델타.

겨우 C급과 D급 헌터들에 불과했다.

그것도 그들 전원이 아니라 그들 중 일부.

A급과 B급으로 이루어진 알파와 베타조는 수가 적기도 하고, 워낙 전국적으로 바쁜 상태였기에 지금 본부에 없었으니까.

‘…이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이매탈이 위험한 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아까 전의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꿀꺽 ―

‘내 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가.’

커다란 덩치답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부조화스러워 보이는 한동석의 모습.

그러나 태운은 그런 한동석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크게 한숨을 쉬며 긴장을 푸는 한동석.

‘나는 협회장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내 감을 믿어보자!’

한동석은 조심스레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못난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을 세운 한동석의 눈빛이 한없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 * *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무력으로도, 명분으로도, 게다가 여론으로도 밀리는 와중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전 예방에 힘을 쓸 뿐이지요. 그래서 전투부서 직원들, 특히 알파조와 베타조 친구들이 매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참 고생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옥상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있는 두 사람.

한동석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풀다 자연스레 협회가 처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소연하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다고 헌터 협회가 돈이 많습니까? 헌터 협회도 결국 정부 산하 기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정계에 밉보이면 바로 다음 해에 예산 삭감을 하겠다며 압박이 들어오지요.”

한동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 직원들은 참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일반인들은 우리를 헌터로 봅니다. 마력을 가지고 다룰 줄 아니까요. 하지만 길드나 용병 헌터들은 우리를 헌터가 아닌 공무원으로 여깁니다. 사실 우리는 헌터이자 공무원인 사람들이니까 다 맞긴 합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겐 공무원이 아닌 헌터라고, 헌터들에겐 헌터가 아닌 공무원이라고 배척을 받습니다. 참 웃프지 않습니까? 우린 둘 다 맞는데 세상은 우리를 이도 저도 아닌 존재로 여깁니다.”

으득 ―

고생하는 직원들 생각에 울컥한 한동석이 이를 갈았다.

“주변인 취급이나 받는 지금의 협회와 협회 직원들은… 그냥 꼭두각시입니다. 기득권들의 편의를 봐주는 꼭두각시 말입니다. 박봉이나 받으면서 말이죠. 사실 우리 직원들 전부 길드에 들어가면 다들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직원들 다 그런 기회를 차버리고 더 나은 세상 만들어 보겠다고 꾸역꾸역 협회로 들어온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아 물론 안전성 보고 들어온 이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적어도 전투부서에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수많은 세부 부서들이 있지만, 커다랗게 보면 전투부와 행정부 2가지 부서로 나뉘어 있는 헌터 협회.

그중 전투부서는 헌터 협회 총 구성원의 약 1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능력이면 전부 전투부서 직원으로 배정함에도 이런 비율.

그만큼 협회가 엄청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협회가 창설될 때만 해도 제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협회가 정말 제대로 기능하여 사회 균형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게 하는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꿈이 있었지요. 협회 직원들 모두 저와 비슷한 꿈을 가지고 들어왔을 겁니다.”

한동석의 눈시울은 어느새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더군요. 이제 저는 그 꿈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우리 협회의 힘만으로는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음을 깨달았으니까요. 아까 저에 대해 물으셨지요? 그럼 다시 한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크게 숨을 고르는 한동석.

“저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입니다.”

자신을 정의하는 한 마디를 내뱉는 일이 그렇게나 힘들었는지 한동석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지금껏 억눌러왔던 협회의 설움을 대신하여 토로하는 자의 목소리였다.

“…….”

한참 동안이나 협회장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태운.

한동석의 마지막 한마디를 듣는 순간,

씨익 ―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