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이매탈이 너무 강함 (1)
샤악 ― !
던전에 입장함과 동시에 주위의 풍경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아우우우우~!”
“이건……!”
던전 안으로 들어왔을 때, 태운은 어떤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거의 태운의 키만 한 연갈색의 갈대로 뒤덮인 작은 언덕과 그 언덕 밑에 펼쳐진 끝없는 갈대밭.
“크르릉!”
살짝 까치발을 들어 언덕 밑을 내려다본 태운의 시야에는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꽉 채운 수많은 웨어울프들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셀 수가 없군.’
수를 어림잡아 세어보려던 태운은 숫자를 세는 걸 포기했다.
‘이 수가 다 빠져나온다면… 천안뿐만이 아니라 전국이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태운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껏 상대했던 놈들은 시작, 아니 맛보기에 불과하다고.
‘이게 A급 브레이크라고? 이건 최소 S급 브레이크야.’
태운이 마력으로 안력을 강화하자 저 멀리 지평선 부근의 웨어울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지금껏 상대한 웨어울프들이 잿빛의 털을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 눈에 들어온 녀석들은 나무와 같은 고동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보스가… 아니야?’
얼핏 보기에도 회색빛 물결 속에서 사이사이에 보이는 고동색의 거대한 생명체.
회색 웨어울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들은 마치 군단장이라도 된 듯, 회색 웨어울프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저것도 보스가 아니라면… 대체 보스는 어디 있는 거지?’
태운의 고개가 급히 돌아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스로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아직도 나올 때가 아닌 건가.’
하긴 왕은 언제나 마지막에 움직이니까.
애초에 지금 보이는 웨어울프들의 행렬도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니, 지평선 너머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었다.
아마 부하 놈들이 전멸할 때쯤 어디선가 천천히 기어 나오겠지.
치직!
‘가능할까?’
태운의 몸에서 푸른 번개가 튀었다.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전자기력/?/?)
마력 : 29,021
웨어울프들을 잡으며 마력이 30,000에 가까워진 태운이었다.
그러나 이젠 회색 웨어울프들을 잡아도 마력이 오르지 않았기에 따로 보충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마력을 아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갈색 놈들이 수치가 좀 높았으면 좋겠는데.’
천천히 몸을 푸는 태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제 모 아니면 도다.’
S급 던전에서 홀로 싸우다가 죽던지, 아니면 홀로 토벌에 성공하고 엄청나게 강해지던지.
두근. 두근.
마치 도망갈 수 없는 링 위에 다시 오른 듯한 기분이 느껴짐과 동시에 실로 오랜만에 고양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데뷔전, 그리고 첫 결승전 이후 처음이군.’
씨익 ―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는 태운의 입가에 잔뜩 달아오른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치지직…….
태운의 양손 위에 푸른 번개로 만들어진 작은 침이 나타났다.
‘너만 믿는다, 청뢰.’
청뢰의 잠식과 전염 성질은 필살의 무기이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일대 다수에 특화되어 대량학살을 가능케 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청뢰침(靑雷針) 2연발]
핏! 피잇!
두 개의 푸른 침이 서로 다른 방향의 웨어울프 떼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케엥!”
“케엑!”
별안간 날아온 얇은 침에 맞아 따끔함을 느낀 웨어울프 두 마리가 깨갱거리고,
파지직!
어김없이 청뢰의 잠식 효과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지지지직!
“깨앵! 끼잉!”
두 웨어울프는 몸 전체를 잠식해나가는 푸른 번개에 휩싸여 갈대밭을 구르기 시작했다.
데굴데굴 ―
퍼덕! 퍼덕!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두 마리의 움직임이 격해졌다.
“크르릉!”
갑자기 동료가 쓰러져 버둥거리자 당황한 웨어울프들이 주위를 마구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덕 위까지 뒤덮은 키가 큰 갈대들이 태운의 모습을 완벽히 감춰주고 있었기에 웨어울프들은 태운의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끼이이잉!”
툭.
바닥을 뒹굴던 웨어울프 한 마리의 몸과 주위를 둘러보던 웨어울프의 발목이 닿았다.
“크릉?”
그 순간,
파지지지직!
바이러스 마냥 곧바로 새로운 숙주의 몸까지 잠식해나가는 청뢰.
“케에에엑!”
별안간 느껴지는 고통에 웨어울프는 발목을 붙잡고 날뛰기 시작했다.
청뢰가 있던 발목을 잡았으니 두 팔을 타고 올라오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
“깨앵! 깨갱!”
새롭게 청뢰에 전염된 웨어울프는 번개를 떨쳐내기 위해 갈대밭 여기저기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푸더더덕 ― 부스럭 ―
툭
그 과정에서 들판을 가득 메운 다른 웨어울프들을 건드리는 건 당연한 수순.
순식간의 연갈색의 갈대들로 인해 연갈빛으로 물들어있던 들판에 푸른 물감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핏! 피빗!
갈대밭에 몸을 숨긴 채 이미 게이트 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에게 청뢰침을 날리던 태운은 그 광경에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청뢰라니까.’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태운이 떨어뜨린 파란색 물감 몇 방울이 어느새 연갈색 들판 대부분을 물들였다.
‘마력 안 오르는 거 진짜 아쉽네.’
푸르러진 들판을 바라보는 태운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한 마리당 10씩만 올라도 이게 다 얼마던가.
못해도 수천 마리는 될 테니, 마력 수치만 가뿐히 수만은 올릴 수 있었는데.
그때,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게이트 앞에 잠복한 채 들판을 바라보던 태운의 표정이 바뀌었다.
파직!
청뢰가 드디어 고동색의 털을 가진 상위 웨어울프에게까지 뇌수를 뻗은 것이다.
파지지지직!
잿빛의 웨어울프들을 집어삼킨 것처럼 순식간에 놈의 다리를 타고 오르는 청뢰.
“크르르릉!”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입을 꽉 다문 채 으르렁거리면서도 몸에 힘을 바짝 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괴로워하며 사방으로 나뒹굴며 난리 치던 회색 웨어울프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이었다.
‘더 강한 녀석이라고 뭔가 다르다는 건가?’
갈대밭에 숨어 놈을 바라보던 태운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봐야 그뿐. 곧 녀석도 쓰러질 터였다.
그러나 그때,
“크아아앙!”
녀석이 하늘 높이 포효함과 동시에,
투우우웅!
녀석은 전신에서 한껏 끌어모은 마력을 단번에 방출했다.
“……!”
태운의 눈빛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치지지직…….
고동색 웨어울프의 몸을 잠식해나가던 청뢰가 무언가에 밀려난 것처럼 몸에서 떨어져나와 허공에서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대단한데?’
역시 상위 개체는 다르다는 것일까.
“케헥… 후욱… 후욱…….”
청뢰에게서 가까스로 벗어난 고동색 웨어울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타버린 다리와 일부 복부 부분의 일부는 돌이킬 수 없었지만, 고동색 웨어울프는 지금 무려 태운의 청뢰지옥에서 벗어난 최초의 개체가 된 것이었다.
이철민조차 벗어나지 못한 청뢰.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본능적으로 방법을 알 수 있는 건가 보군.’
태운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했다.
조금 전 태운의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투우우웅!
투우우웅!
여기저기서 청뢰에 감전되었던 고동색 웨어울프들이 마력을 단번에 방출하며 청뢰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깨애앵!”
여전히 청뢰에 잠식되어 죽어가는 대부분의 잿빛 웨어울프들을 제외하고 남은 고동색 웨어울프들.
“크르르르…….”
번뜩!
그중 한 녀석의 눈이 언덕 위 갈대밭 사이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태운의 눈과 마주쳤다.
“아우우우우우!”
태운을 발견한 놈의 하울링이 일대 전체를 울렸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언덕 위 게이트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응답하듯 들려오는 하울링 소리.
“쯧.”
스윽 ―
어쩌면 힘들이지 않고 이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태운의 입에서 아쉬운 듯 혀를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사사사 ―
한껏 예민해진 태운의 감각에는 어느새 수십 개의 거대한 것들이 언덕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잉 ―
일대에 자기장을 펼치며 전투를 준비하는 태운.
꾸득 ―
꽉 말아쥔 태운의 주먹 안은 어느새 긴장감으로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 * *
한편, 게이트 바깥.
충청남도 천안시.
후우우우 ―
김천용은 거대한 청룡으로 변신해 공중에 떠올라 백호길드를 찾아 천안시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가지 한쪽에서 웨어울프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커다란 백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저기 있군.’
씨익 ―
정호백이 무사함을 확인한 김천용이 빠르게 날아갔다.
“정호백.”
스윽 ―
거대한 청룡의 낮은 목소리가 일대를 울리자, 자신보다 커다란 웨어울프의 목을 물고 있던 백호가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르… 김천용,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죽을 뻔했다 이 뱀X끼야!”
퉤!
쿠웅!
목이 부러진 웨어울프를 뱉어내며 투덜거리는 정호백.
피식 ―
정호백의 투덜거림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 짓는 김천용의 입에서 연기가 피슉 새어 나왔다.
“아주 학살을 해놓고 죽을 뻔하긴 뭘 죽을 뻔해?”
김천용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호백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는 수십 마리의 웨어울프들.
“이 녀석들 A급 최상위급은 되는 것 같던데 대단하군. 그 짧은 사이에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진 건가?”
김천용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자신이더라도 이 정도 수의 웨어울프들이 덤비면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무슨 소리냐. 이 녀석들은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정호백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붉은 게이트를 향했다.
‘그 자식…….’
웨어울프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극도로 발달한 백호의 감각은 푸른 번개를 흩뿌리며 순식간에 게이트로 들어간 자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군. 확실히 네가 죽인 흔적은 아니야.”
잠시 정호백의 말을 부정하려던 김천용은 죽어있는 웨어울프들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카맣게 타버린 수십 마리의 웨어울프들.
녀석들은 정호백이 처리한 것으로 짐작되는 목이 꺾여있거나,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있는 몇몇 웨어울프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우선 중요한 건 브레이크를 끝내야 한다. 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아나?”
김천용의 물음에 정호백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저기.”
“음,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군.”
스윽 ―
정호백의 턱짓에 게이트를 발견한 김천용은 곧바로 그곳으로 날아가려 했다.
“기다려.”
그러나 정호백이 그를 붙잡았다.
“…뭐야? 이 와중에 먼저 발견했다고 우기고 싶은 거냐?”
김천용의 용안이 잔뜩 찌푸려졌다.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이득을 중시하는 자는 김천용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정호백도 마찬가지로 호안을 찌푸리고 있었다.
“뭔 개소리야? 누가 내 거래? 일단은 천안시에 나와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니까 그런 거다. 길드원들만으로는 놈들을 정리하기 힘들어.”
“정호백, 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브레이크를 끝내려면 브레이크 된 던전을 먼저 토벌해야…….”
“커허어어엉!”
속이 답답해진 정호백이 김천용의 말을 끊으며 크게 울음을 토해냈다.
“누가 모르냐? 닥치고 애들 데리고 시가지나 먼저 정리해! 던전은 다른 녀석이 이미 토벌하고 있으니까!”
“다른 녀석?”
김천용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S급에 가까운 A급 최상위 개체들을 잔뜩 토해내는 던전을 누가 단독으로 토벌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국내 한정으로는 김천용을 제외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때,
“……!”
김천용의 눈에 새카맣게 탄 웨어울프의 시체들이 들어왔다.
“설마?”
김천용의 물음에 정호백은 저 멀리 길드원들이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리며 끄덕였다.
“아마 괜찮을 거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강해 보였으니까.”
슬쩍.
정호백은 등 뒤의 게이트를 흘끔 바라보았다.
고요한 게이트.
실제로 계속해서 웨어울프들이 튀어나오던 게이트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 무엇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좀만 버텨라.”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누군지 모를 은인에게 짤막한 한 마디를 남기는 정호백.
파앗 ― !
정호백의 신형이 길거리에 하얗고 길다란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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