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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7화 (17/300)

17화. 직장인들 너무 리스펙함

“조기 졸어업?”

태운의 말에 강천이 헛숨을 들이키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이미 교관님이랑 이야기는 끝났어. 가능하다는데?”

태운은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던져본 말인데 진짜 될 줄이야.’

여태껏 헌터사관학교에서 조기졸업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 상식을 모두 배우는 시점인 1학기가 끝나면 남은 1년 반 동안은 강해지기 위한 훈련들만이 반복될 뿐이니까.

하지만 사관생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안전 보장이 되면서도 꾸준히 빠르게 기초를 탄탄히 다지며 강해질 수 있으니 굳이 빨리 졸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각성자 모두가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까.’

일명 포기자들.

헌터가 되기를 포기하고 약간의 마력만을 지닌 채, 일반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걸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마력을 가진 존재들이었기에 문제 발생 시 빠른 신원 확인과 조치를 위해 형식상 헌터증을 발급해주었다.

‘나야 헌터증만 받으면 되니까.’

포기자들이 받는 헌터증은 정상적으로 졸업하는 사관생들이 받는 헌터증과 똑같았다.

다만 약해서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치사하게 먼저 가냐.”

강천은 적잖이 아쉬운 듯 툴툴댔다.

학교에서 가장 친하고 가장 먼저 마음을 연 사람이 태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하하, 열심히 해. 얼른 강해져서 따라오라고.”

태운은 강천의 뒤통수를 거칠게 쓰다듬어주었다.

강천은 심통이 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렇게 빨리 나가서 뭐 하려고?”

강천의 물음에 태운은 크게 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우…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썩은 헌터업계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

그 말에 강천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형 대체 뭘…….”

쉿 ―

태운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졸업하면 연락해. 판은 어떻게든 만들어놓을 테니까.”

그 말에 강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형은 다 계획이 있구나?’

강천은 역시 자신의 우상답다고 생각했다.

태운을 바라보는 강천의 눈빛에 존경심이 한 스푼 추가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일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청 빠르시네요.”

“뭐 전부 겉치레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넌 여기 있는 것보다 확실히 얼른 나가는 게 좋을 테고.”

조기졸업은 굉장히 간단했다.

정식 졸업식이 [학교장 훈화, 졸업장 전달식, 시험의 장] 이렇게 3단계로 진행되는 데에 반해 조기졸업은 그냥 졸업장 하나만 받으면 끝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냥 별다른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고 빨리 포기자들을 내보내기 위한 사관학교에 꼼수 같기도 했지만, 그것이 태운에게는 오히려 좋게 작용했다.

“옛다.”

팔락.

태운의 손에 쥐어지는 빳빳한 종이 한 장.

졸업장이었다.

“이걸 들고 측정실에 가라. 그러면 간단한 테스트 후에 헌터증이 나올 거야. 원래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지만 조기졸업자는 뭐… 워낙 소수니까. 각자 나가는 시기가 다르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태운은 철민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짧았지만 교관님께 신세 많이 졌습니다.”

째릿.

철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한테 거하게 빚진 거다.”

“하하하… 넵, 나중에 청산하러 오겠습니다.”

“됐어. 내가 받으러 갈 거니까 기다려.”

“네?”

태운의 되물음에도 철민의 몸은 이미 태운을 등지고 있었다.

“수고했다! 잘 지내라!”

척.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 손을 들어 올리는 철민.

씨익 ―

태운은 한결같이 상남자 같은 그의 쿨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 * *

측정 작업도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여기요~”

측정실 담당 직원은 수치 같은 건 확인도 하지 않고 발급된 헌터증을 툭 내려놓았다. 꼭두새벽부터 생긴 일거리 때문인지 직원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측정된 결과가 네트워크에 자동으로 연동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조기 졸업자들은 전부 F급 미만의 포기자들이니까.’

피식 ―

헌터증을 받아든 태운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오히려 이쪽에서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헌터증]

이름 : 권태운

고유능력 : 전자기력(자연형)

등급 : B

‘심플하네.’

이제 앞으로는 등급을 갱신할 수 있는 마력 수치가 되었을 때 협회에 가서 헌터증을 갱신하면 되었다.

다행히 고유능력도 측정실 담당 직원 앞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었고.

‘깊게 파고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담당 직원의 직무유기(?) 덕에 수월하게 일을 마친 태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관학교를 나섰다.

“후아!”

반년 만에 맡아보는 사회의 아침 공기.

태운은 가슴을 쭉 편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제 시작이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태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길고도 짧았던 헌터사관학교 생활.

마침내 쌍룡 중 한 마리가 먼저 둥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아, 나 집 없지?’

정문을 나서 버스를 타려던 태운은 아― 하며 짧게 탄식했다.

뒤늦게 사관학교에 입학하며 전부 정리했었던 걸 기억해낸 것이었다.

‘싸게 월세방이라도 구해야겠다.’

애초에 사치와는 거리가 먼 태운이었기에 원룸 같은 집도 전혀 마다하지 않았다.

딱히 큰 집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었고.

‘지금 돈이…….’

약정이 훨씬 지난 구닥다리 핸드폰으로 모바일 뱅킹을 열어 확인하자,

― 잔액 : 7,208,070 원

‘720만 원이라…….’

“풉.”

새삼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며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돈이 이렇게 없을 리가 없었다. 비인기 종목이라고는 해도 챔피언 출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이 번 모든 돈을 집안에 투자했고, 이렇다 할 친인척도 없었던 태운은 부모님 장례비용으로 거의 대부분의 돈을 사용하고 말았다.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그거라도 잘해드려야지…….’

조문객도 몇 없었던 초라한 장례식이었지만, 그 질만큼은 나름 대단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얼마 깨졌더라…….’

잠시 돈을 가늠하던 태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말자.’

태운은 마음을 다잡고 근처 부동산으로 향했다.

“방 좀 구하러 왔는데요. 오늘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 있을까요?”

“어이구! 잘 오셨어! 근데 엄청 일찍 오셨네?”

다행히 월세방은 금방 구할 수 있었다.

“여기가 500에 30이여. 전기세랑 수도세 포함이니까 이 정도면 엄청 괜찮은 거지. 리모델링도 최근에 싹~ 해서 벌레도 안 나올 거고!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자네는 뭐… 딱 봐도 튼튼해 보이는구먼!”

중개업자의 소개를 통해 만난 주인 할아버지의 침 튀기는 설명을 들으며 태운은 집 안을 둘러보았다.

반지하긴 하지만 방도 꽤 넓었고 작은 화장실에는 나름 욕조도 있었다.

‘어차피 오래 살진 않을 테니까.’

“바로 입주 가능하죠?”

“어어! 그럼 그럼!”

그 자리에서 계약을 완료한 태운은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짐을 푸는 태운의 눈빛 속에 뜨거운 불길이 활활 솟구치고 있었다.

* * *

간단히 짐을 푼 태운은 아침 단련도 간단하게 마친 뒤, 곧장 협회로 향했다.

‘얼른 돈 벌어서 자가용 하나는 마련해야겠다.’

항상 집 앞 체육관이나 관장님 차를 타고 대회장이나 가던 태운에게 대중교통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경호원으로 일할 때도 업무용 차량을 빌릴 수 있었기에 차를 타고 다녔었던 태운이었다.

‘직장인들 다들 리스펙…….’

새삼 예전에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일상을 매일 견디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잉 ―

자동문이 열리고 협회 안으로 들어서자 빵빵한 에어컨 바람이 태운을 맞아주었다.

“후우…….”

여름이라 그런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오게 하는 날씨 덕에 찬바람이 어느 때보다 반갑게 느껴졌다.

“음…….”

태운은 가만히 협회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협회 1층에는 여러 개의 창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태운이 찾는 것은,

‘저기 있다.’

던전 배정 창구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협회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던전 배정 좀 받으려고요.”

“네~ 헌터증 제시해주시고 원하시는 등급 말씀해주세요.”

헌터 개인이 신청할 수 있는 등급은 자신의 등급까지가 한계.

맡은 이상 토벌까지 책임져야 했고, 책임지지 못할 경우 신청금의 100배와 그에 따른 피해액을 전부 물어내야 했다.

“B급이요.”

태운의 말에 직원은 컴퓨터를 타다닥 두드렸다.

“네, 파주에 있는 B급 던전 배정해드렸어요. 브레이크까지는 대략 53일 정도 남았고요. 최소 브레이크 한 달 전부터는 토벌 시작하셔야 하는 거 아시죠?”

“네.”

“네, 그럼 권태운 헌터님 이름으로 배정 끝나셨구요. 신청금 100만 원 되시겠습니다.”

‘토벌에 실패하면 최소 1억원인가.’

어마어마한 금액.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관련된 일에 대한 것 치고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패널티였던 것이다.

100만 원을 바로 결제하고 던전 조사서를 받아든 태운은 곧바로 협회를 나섰다.

‘다음으로 할 건…….’

핸드폰 메모장을 확인하던 태운은 곧바로 근처 헌터샵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태운이 헌터샵에 들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공간 수납 가방이 어디 있으려나…….’

헌터샵은 헌터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파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무기와 방어구들을 마정석에서 추출한 마력으로 강화한 장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 편의 물품도 있었다.

특히 길드처럼 대규모 인력이 없는 용병들에게는 아공간 수납 가방은 필수품이었다.

‘진짜 이거 개발자는 돈방석에 앉았겠네.’

마력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보통 마법과도 같은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특이한 능력은 있기 마련.

아공간 수납 가방은 인도 출신의 두 헌터가 가진 능력 ‘아공간’과 ‘고유능력 부여’가 합쳐져 탄생한 기적의 산물 중 하나였다.

이 두 헌터는 이미 던전과는 연을 끊고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 일정 수량의 아공간 수납 가방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두 사람이 워낙 가난하게 자랐고 배우지 못해 무지했다는 점……?’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경제적인 지식과 상식이 전무했다.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인도 카스트 제도,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수드라에도 들어가지 못한 불가촉 천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초기 가격 형성이 낮게 책정되었고, 한번 정해진 가격은 쉽게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올리려다가 고위층에게 암살 위협도 당했다지?’

결국 싼 가격에 대량으로 유통하는 것이 그들도 좋고 헌터들도 좋은 상부상조의 관계가 된 것이다.

태운은 아공간 수납 가방 진열대로 가 100kg짜리 용량의 가방을 집었다.

가장 싼 모델이었다.

{999,000}

‘그래도 비싸긴 하다.’

이것까지 사면 이제 태운의 재산은 20만 원 정도만이 남게 된다.

그래도 태운은 과감하게 투자했다.

딸랑!

계산을 마치고 나온 태운은 바로 택시를 불렀다.

‘이왕 얼마 안 남은 거 던전까지 편하게 가지 뭐.’

서울에서 파주까지.

택시비가 몇만 원 정도 깨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마정석만 가져다 팔면 바로 복구할 수 있을 테니까.

끼익!

“어서 오세요~”

“여기로 가주세요.”

던전이 위치한 곳의 주소를 부른 태운은 푹신한 택시 시트에 몸을 뉘었다.

“후우…….”

몸을 누인 태운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던전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피곤한 것 같지…….’

생각보다 많은 할 일에 살짝 진이 빠진 태운.

이른 아침부터 반나절 만에 조기졸업, 헌터증 발급, 이사, 단련, 던전 배정, 가방 쇼핑까지 단번에 마쳤으니 상당히 피곤할 만도 했다.

“후우…….”

태운은 택시 안에서 한숨을 돌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부우웅 ―

부드러운 택시 엔진의 진동이 태운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던 태운은 서서히 의식이 꺼져감을 느꼈다.

“쿠우…….”

어느새 잠이 든 태운.

“허허, 젊은 친구가 피곤했나 보네.”

뒷자리에서 잠든 태운을 확인한 택시 기사는 차를 조금 더 부드럽게 몰기 시작했다.

우우웅 ―

택시 기사의 배려 덕분에,

“쿠우…….”

태운은 파주까지 가는 동안 편히 쉴 수 있었다.

졸업 첫날부터 참 바쁘게 움직이는 태운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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