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헌터계가 너무 답이 없음
비틀비틀 일어서며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를 얼른 회복하려는 철민.
‘칫!’
그러나 쉽게 돌아오지 않는지 철민은 끝내 자가 회복까지 사용했다.
우웅 ―
‘내상도 회복되는구나?’
자가 회복을 사용하는 철민의 모습에 태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번 대련은 내상도 자가 회복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후우… 후우…….”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철민.
‘분명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순수한 힘이라고?’
철민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좀 전의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2회의 공격에 대응하여 1회의 회피와 1회의 방어.
분명 자신은 얼굴로 날아오는 팔꿈치를 손으로 막았다. 강력한 엘보우였기에 온 힘을 다해서 막았다.
그럼에도 크게 밀려났고 충격은 고스란히 머리로 전해지고 말았다.
‘괴물인가.’
그 재능에 저런 피지컬이라니?
마력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디까지 강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지도 않으니…….’
충격을 전부 떨쳐낸 철민은 살짝 당황한 듯한 태운의 표정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단해. 이거 정말 내가 가르칠 게 없는데? 적어도 격투 실력만큼은 나보다 뛰어나. 혹시 고유능력이 뭔가?”
철민의 질문에 태운은 마른침을 살짝 삼켰다.
‘올 게 왔군.’
어차피 헌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는 정식 헌터증이 발급되며 능력을 선보이고 고유 능력명을 등록해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2차 각성에 도달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유니크형인 걸 들킬 뻔했다.
1차 각성만 한 상태였다면 어쩔 수 없이 중력이라고 말해야 했을 테니까.
그랬다면 전기만큼 눈에 띄기 쉬운 능력도 없었으니 금방 들키게 되어 다중 능력 보유자로 찍혀 유니크형인 것이 드러났을 것이다.
태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전자기력입니다.”
“호오? 자연형인 건가? 근데 전기면 전기지, 전자기력은 또 뭔가?”
평생 몸 쓰는 일만 해온 철민은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도 모를 정도로 과학 분야엔 잼병인 듯했다.
사실 과학 분야라고 하기엔 꽤나 상식적인 단어긴 했지만.
“음… 전기력과 자기력이 합쳐진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기와 자성은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니까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보는 태운.
그러나 철민의 고개는 여전히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능력이군! 크하하! 자네는 일단 들어가서 쉬어. 이제 저 친구도 봐줘야 하니까. 그 뒤에 다시 보자고.”
“넵.”
‘또 뭔가 있는 건가?’
대련 이후에도 무언가 할 것처럼 말을 하는 철민의 말에 태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
태운이 들어가고 강천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사악 ―
서로를 스쳐 가는 가운데 부릅뜬 강천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이긴다……!’
의욕이 충만해진 강천의 표정을 보며 철민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저 친구한테 자극받은 건가? 좋아좋아. 좋은 라이벌 관계가 될 수 있겠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철민의 말을 들으며 강천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체력장에서 1패, 자가 회복에서 1패. 여기서 이겨야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
‘호오?’
자세를 강천의 모습에 철민의 눈빛이 빛났다.
‘저 친구도 그렇고… 요즘 애들은 무술을 여러 개 배워놓는 게 기본인 건가?’
정통 복싱이나 킥복싱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자세.
여러 무술들을 한데 섞어놓은 듯한 기묘한 자세가 철민의 신경을 자극했다.
“들어와 봐!”
타닷!
강천의 신형이 철민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 * *
“크윽…….”
“허억… 허억… 크하하하! 진짜 둘 다 대단하구만!”
무승부.
두 사람의 대련은 그렇게밖에 평을 내릴 수 없었다.
힘에서는 철민이 앞섰으나, 속도에서는 강천이 앞섰다. 체력도 엇비슷하고 실력도 엇비슷하니 쉽게 승부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대자로 뻗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철민과 바닥에 엎어진 채 숨을 몰아쉬는 강천.
비록 태운보다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상급생들의 등골에 전율을 일으키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대체 뭐야, 저놈들…?”
“둘 다 괴물이야…….”
이철민이 누구던가?
헌터 협회 전투부대 중 가장 강한 알파부대의 전 대장이었다.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전 협회의 최강자나 다름없는 이와 동수를 이루고 압도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헌터증조차 받지 못한 사관생들이!
충격을 받은 상급생 4명이 마력호흡은커녕 정상적인 호흡마저 잊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 거칠게 호흡하던 철민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희 둘! 상담실로 따라와라.”
“……?”
‘또 상담실이야?’
태운은 자신도 모르게 엑―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태운은 철민의 표정을 보고 다시 표정을 되돌려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호탕하고 활발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철민.
밝은 동네 아저씨 같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사아아아 ―
차가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으니까.
* * *
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두 번째 상담실로 불려가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뭔가 문제아가 된 기분이네.’
“…….”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철민과 마주한 두 사람은 철민의 입이 열릴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무언가 무겁게 할 말이 있는 듯, 철민의 표정은 한없이 호탕하던 대련장에서와는 다르게 상당히 진중하게 변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이철민의 입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
“너희는 지금 헌터계가 어떤 것 같다고 생각하나?”
“……!”
갑작스레 들어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
그러나 그 질문을 들은 태운과 강천의 눈에는 동시에 동일한 감정이 깃들었다.
분노.
뿌득 ―
피눈물이 흐르고 이가 산산이 부서질 정도로 사무친 분노가 치밀어오르며 두 사람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철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혹시 졸업 후 협회를 지망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리나?”
흠칫.
태운은 정확하게 자신의 계획을 짚어내는 철민의 말에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
그러나 강천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 듯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강천의 질문에 철민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바구니 안에 있는 사탕을 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헌터사관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엔 던전에 휘말려서 오는 사람들과 헌터의 실수나 잘못에 휘말려서 오는 사람들 두 부류로 나뉜다.”
흠칫.
그제서야 강천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후자는 대부분 다른 헌터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사관학교에 막 들어온 이들은 그들을 제압 혹은 관리할 수 있는 협회 소속으로 가길 원해.”
정답이었다.
태운이 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지.”
쯧.
이철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리고 그 말에 태운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모르는 소리라고?’
어느새 신경이 곤두선 태운의 두 눈동자는 이철민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협회는 이미 정치인들의 개가 된 지 오래야. 헌터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항상 뻔뻔하게 구는 이유가 뭐겠어? 협회가, 이 나라가 자신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거다.”
씁쓸한 미소가 철민의 입가에 희미하게 나타났다.
“복수를 꿈꾸던 헌터 지망생들은 그런 협회의 실태를 알아가면서 많이들 실망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나? 혼자선 아무 힘도 없으니 길은 딱 3가지야. 성공을 추구한다면 길드에 들어가고, 안전성을 추구한다면 그냥 협회에 가고, 둘 다 싫으면 용병헌터가 되는 거지. 이마저도 싫으면 그냥 헌터 자체를 포기하고 마력면역자 자격을 이용해서 취업할 수도 있는 거고.”
철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협회가 정치인들의 개가 된 지 오래라니.
“정치인들이 협회를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고위 공직자들이라고 해도 일반인들에게 당하고만 있을 협회 헌터들이 아닐 텐데 말이죠.”
태운은 탁자 밑으로 주먹을 꽉 말아쥐며 물었다.
“뭐겠나? 법으로 구속하는 거지. 물론 길드 헌터들은 법을 자주 어기긴 해. 하지만 웬만한 길드들과 정치인들은 서로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 길드들은 힘을 빌려주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범법 행위를 무마시켜주지. 즉, 아이러니하지만 길드들이 역으로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이 법을 어기는지 감시하는 이상한 관계 역전 현상이 벌어진 거다.”
철민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은 신분상 공무원이다. 다른 길드 헌터들과는 다르게 위법과 여론에 더욱 치명적이지. 더군다나 단순한 계약관계인 길드 헌터들과는 다르게 협회 헌터들은 국가에 채용된 사람들이야. 법을 어긴다? 윗선에 밉보인다? 결국 나중엔 잘리겠지.”
“공무원이 잘린다고요?”
강천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그럼 공무원은 안 잘리는 줄 알았나? 공무원도 잘못하면 잘려. 특히 협회 헌터들은 일반 공무원 신분이 아니고 특수경력직 공무원이라 애초에 철밥통이 보장되는 위치도 아니고.”
까드득 ― 까드득 ―
철민은 본인도 사탕을 하나 입에 넣더니 씹어먹기 시작했다.
“게다가 협회 소속 헌터들은 직무 특성상 법에 저촉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 안 그래도 힘든데, 자꾸만 정치인들이 규제를 강화하겠다느니 특별법을 만들어버리겠다느니 협박을 해대니 협회가 버틸 재간이 있겠나? 힘으로 밀어보려고 해도 정치인들의 뒤에 버티고 있는 길드들이 걸리니 힘으로는 더더욱 할 수 없지.”
철민의 말을 들은 태운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결국 협회가 썩었다기보단 힘이 없을 뿐이네. 그렇다면 아직은 갱생의 여지가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서라. 정치인들 뒤에는 4대 길드 중 일부도 있어. 또 누군가는 해외 길드와도 연줄이 있다고들 하지. 조금 뛰어난 일반 헌터 하나가 어떻게 해볼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마치 태운의 생각을 읽은 듯 태운의 머릿속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철민의 말에 태운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민은 그런 태운을 보며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나는 세 부류 중 안전성을 추구했던 헌터였다. 그래서 협회로 갔지. 전투부대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알파부대의 대장까지 맡으면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잠시 감는 철민.
그의 눈가엔 어느새 습기가 차 있었다.
“협회에서 활동하며 지금의 아내도 만났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도 태어났다. 그런데…….”
철민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재빠르게 훔쳤다.
그의 코끝은 어느새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내 아내는 협회 행정부 소속이었어. 어느 날, 딸아이는 엄마랑 같이 가겠다며 떼를 썼지. 그래서 그날 나와 아내, 그리고 딸아이까지 다 함께 협회 건물 바로 바깥에 있었었다. 큰 사거리가 나 있는 길 말이야. 가본 적은 없어도 TV에서 한 번쯤 본 적은 있겠지?”
끄덕 ―
헌터 관련 뉴스만 나오면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니 태운과 강천 둘 다 알고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하필 그날, 그 사거리 한복판에서 싸움이 일어났지. A급 던전 소유권을 두고 벌어진 주작길드와 백호길드 간의 싸움이었다.”
뉴스로도 꽤 크게 보도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람만 4명, 그리고 마력감염증 환자 수십 명이 발생했다.
다행히 러시아워가 지났던 시간대였기에 그나마 그 정도 수에 그칠 수 있었다. 아마 출근 시간이었다면 수십 배는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을 터.
“그 싸움의 마력 파동으로 인해 딸아이가 감염이 되었고, 이틀째 되던 날 숨을 거뒀다. 겨우 5살짜리였어.”
까드득 ―
철민의 입 속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한 철민의 분노에 공감했는지 태운과 강천의 이마에도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그 사태 직후, 협회는 사건 수습에 들어갔지. 그리고 두 길드한테 내려진 처분은 겨우 공공기물 파손에 대한 배상뿐이었다.”
철민은 다시 한번 눈물을 훔쳤다.
“나는 협회 윗선에 따졌다.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어떻게 이렇게 끝낼 수가 있느냐고.”
콰직!
이철민이 붙잡고 있던 탁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협회가 아닌 외부, 정계 쪽에서 이 정도로 마무리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더군. 어이가 없었지. 딸이 죽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이미 언론까지도 틀어막힌 상태였어.”
철민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나 또한 남들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꿎은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방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철민의 눈빛이 점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패기에 태운과 강천은 자신들도 모르게 목 뒤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바로 아내와 함께 사직서를 냈지. 더 이상 그 역겹고 무능한 곳에 있고 싶지도,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우리 부부는 사관학교 교관이 되기를 자처했다. 적어도 새롭게 헌터가 되는 이들이 망나니 같은 놈들로 성장하는 걸 막기 위해서.”
철민은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은 진중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너희 두 사람은 내가 수년간 가르쳐 온 신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건 장담할 수 있지.”
콱!
철민은 양손으로 태운과 강천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내가 이렇게 꼭 좀 부탁하마.”
철민은 양손으로 각각 두 사람의 한쪽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태운과 강천의 두 눈에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다오.”
두 사람은 그들의 손을 강하게 죄어오는 철민의 악력에서,
부르르 ―
자식을 잃은 부모의 서러움과 슬픔, 그리고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절실함은,
으득 ―
두 사람의 가슴 속 아픔을 다시 한번 저미게 만들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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