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체력장이 너무 쉬움
헌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그간 신체단련 시간이 대폭 줄어든 대신 마력호흡 단련 시간이 소폭 늘어난 결과, 태운은 기어이 홀로 2차 각성을 이룰 수 있었다.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전자기력/?/?)
마력 : 5007
어젯밤 기숙사 방 안에서 2차 각성을 이룬 후, 태건은 의외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그러고 보니 전기력이 아니라 전자기력이었지…….’
전기력은 그야말로 전기만을 의미했지만, 전자기력은 전기력과 자기력이 합쳐진 말이었다.
두 힘이 완전히 별개의 힘은 아니었기에 전기력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자기력도 다뤄볼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주어진 것과 활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즉, 태운은 2차 각성 한 번에 2가지 능력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대박이네?’
티딕!
살짝 흥분한 태운의 손이 의자 손잡이 가까이에 붙자, 약한 정전기가 튀어 올랐다.
‘이크! 조심조심…….’
마력 하나 갈무리 못 해서야 어떻게 헌터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학교 바깥에 널리고 널린 반푼이 헌터들과 같은 꼴이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심호흡하며 태운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자 다들 모이셨습니까? 하나, 둘, 셋… 스물여섯, 스물일곱. 전원 모이셨군요.”
교관은 출석은 부르지도 않은 채 머릿수를 대충 세더니 그것으로 출석 확인을 대신했다.
“크흠! 커험!”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 교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걸걸하고 잠겨있었다.
아니, 머리도 부스스하고 얼굴도 살짝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분명 어제 거하게 술을 마신 듯했다.
‘저것도 교관이라고…….’
태운은 목을 매만지고 있는 교관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흘겨보았다. 목을 가다듬은 교관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3반 인원 전부를 둘러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마력호흡이 아닌 새로운 지도 수업을 시작합니다.”
한 달간 단조롭고도 지루한 루틴에 찌들어있던 생도들.
흠칫!
교관의 말을 들은 생도들의 눈빛에 변화가 일어났다.
* * *
새로운 지도 훈련.
별건 아니었다. 그저 몸을 단련시키는 체력 훈련이었으니까. 태운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건 오직 태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커헉…….”
“끄으으으!”
“아악!”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들.
헌터가 된다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운동조차 해놓지 않은 듯했다.
‘겨우 팔굽혀펴기 20개 하는데 뭐 이리 많이 떨어져?’
체력 훈련 첫날인 오늘.
1반부터 4반까지 모두 대강당에 모여 대규모 체력장이 진행되었다.
이론 수업을 제외하면 아직 마력을 느끼고 마력호흡을 하는 법만을 배웠을 뿐,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은 태운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사관생들은 정말 맨몸으로 체력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근력, 지구력, 순발력, 유연성 총 4가지 시험이 3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1단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하네.’
근력 테스트 1단계는 팔굽혀펴기 20회였다.
태운은 당연히 이 정도는 거의 대부분 통과할 줄 알았기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으으으…….”
“팔, 구, 구, 구.”
“아니…! 왜, 허억… 안 세요!”
“끝까지 내려가야만 카운트됩니다. 어설픈 건 카운트 안 됩니다.”
“이런 씨X……!”
부들부들 팔을 떨고 있는 사람들, 이미 엎어져 헥헥 대는 사람들, 창피한지 엎드린 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사람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나 어린 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 대부분이 탈락했고, 태운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도 의외로 많이 떨어져 나갔다.
‘하긴 다들 자의로 온 건 아니니까.’
대부분 자신이 헌터가 될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쉽게 부와 명예를 얻기는 하지만, 전 세계 사망률 1위 직업인 헌터를 처음부터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즉, 이들은 헌터 지망생이라기보단 헌터가 되어야만 했기에 끌려온 일반인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튀기 싫은데…….’
이렇게나 수준이 차이가 나면 태운이 너무 튀어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태운의 입장에선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운은 잠시 2단계에서 떨어져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이번 체력장을 토대로 실력별 수업이 진행된다고 하니, 최고반은 절대로 놓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마석……!’
최고반에 오른 이들에게는 마석을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마저 들은 상태였기에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마석이란,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일정 확률로 나오는 마력이 고체화된 결정이었다.
던전 내에 분포해있는 마정석과는 다르게, 마석은 몬스터의 몸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성질이 전혀 달랐다.
마정석은 에너지 대용, 무기 강화 등에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단지 그뿐.
반면 마석은,
‘헌터가 흡수할 수 있지.’
마정석 또한 던전의 마력이 모여 만들어진 결정이긴 했지만 헌터가 흡수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은 자연의 마나가 한번 몬스터의 몸속에서 정제되면서 생명체가 바로 흡수할 수 있게 성질이 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원래 헌터가 강해지는 방법은 마력호흡을 단련하는 것과 자신과 최소 동수에 이르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뿐.
그러나 마력호흡은 효율이 낮고, 몬스터 사냥을 통한 성장은 리스크를 꽤나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마석의 등장은 성장이 정체된 헌터들에게 메마른 땅에 내리는 소나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석의 드랍 확률은 거의 1,000분의 1.
심지어 A급 던전 이상에서만 나왔다.
때문에 마석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싼 걸 사관생들한테?’
국가가 헌터 양성에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
“삐익!”
마침내 마지막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면서 체력장이 종료되었다.
“이상태! 근력 B, 지구력 B, 순발력 B, 유연성 C. 강화반입니다.”
“김하영! 근력 D, 지구력 C, 순발력 D, 유연성 B. 기초반입니다.”
“박호진! 근력 D, 지구력 D, 순발력 D, 유연성 C. 기초반입니다.”
교관이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테스트 결과와 함께 교관 지도 수업반을 배정해주었다.
실격 D.
1단계 통과 C.
2단계 통과 B.
3단계 통과 A.
태운이 크게 놀랐던 점은 거의 대부분의 사관생들이 기초반에 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유미영! 근력 D, 지구력 D, 순발력 D, 유연성 C. 기초반입니다.”
“조필영! 근력 B, 지구력 C, 순발력 D, 유연성 D. 기초반입니다.”
계속해서 발표되는 처참한 성적들.
거의 다 기초반으로 가다 보니 강화반만 가더라도 오오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성동혁! 근력 A, 지구력 B, 순발력 B, 유연성 B. 강화반입니다.”
“헐, 저 성적이 강화반? 그럼 실전반은 대체 누가 갈 수 있는 거야?”
“저 정도면 벌써 거의 인외종 아니냐?”
참고로 근력 시험 3단계는 팔굽혀펴기 60회를 연속으로 하는 것이었다. 인외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아직 한 명도 불리지 않은 실전반.
벌써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배정을 받았음에도 실전반은커녕 강화반도 6명밖에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한유린! 근력 C, 지구력 B, 순발력 B, 유연성 A. 강화반입니다.”
오오오!
강화반에 배정된 첫 여자 사관생이 나왔다.
한 명 한 명 지목하며 부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가 한유린이라는 여자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대단하네.’
이 체력장은 남녀별로 기준이 나뉜 것이 아니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진행되었으니까.
생물학적인 신체적 차이를 극복해낸 것이었다.
살짝 둘러보니 기초반을 배정받은 몇몇 남자들이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쪽 팔린가 보지?’
뭐 굳이 그렇다고 쪽팔릴 필요까지 있을까? 남자라고 다 강한 것도 아닌데 뭐.
애초에 지금까지 남자들 중에서도 겨우 6명만이 강화반을 배정받았을 뿐이니까.
‘너희들이 못난 게 아니라, 방금 불린 그 여자분이 대단한 거니까 고개 들어라.’
아무도 듣지는 못했겠지만, 태운은 고개 숙인 남자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보냈다.
“자자 조용! 조용하세요!”
교관은 첫 여성 강화반 멤버가 나타나자 소란스러워진 강당을 파일을 탁탁치며 진정시켰다.
‘얼마 안 남았네.’
교관이 들고 있는 파일의 두께를 보고 태운은 곧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것임을 예견했다. 보아하니 대충 두세 장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먼저 호명된 이름은 태운의 이름이 아니었다.
“유강천! 근력 A, 지구력 A, 순발력 A, 유연성 B. 실전반입니다.”
“……!”
갑작스런 정적이 강당 안을 가득 채웠다.
* * *
강천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등급은 잘 나왔네…….’
분명 강천은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점수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건,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꽤 열심히 했지.’
강천이 소문난 운동 마니아였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각종 운동대회를 가리지 않고 출전했던 강천.
5km 마라톤부터 씨름 대회, 아마추어 복싱 대회 등등… 심지어 철인 3종 경기 우승이라는 경력도 지니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강천이 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
하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가세가 기울었기에 강천은 그동안 운동에 쏟아부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에 쏟아야 했다.
강천의 몸은 겉보기에 우락부락한 근육이 아니었고, 오밀조밀하게 균형 잡힌 몸이었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좀 많이 열심히 하는 정도의 청년이라고 착각하기 쉬웠다.
‘아직 안 죽었네.’
입학식 때부터 항상 굳어있던 강천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살짝 그려졌다.
그러나 강천은 이내 곧바로 미소를 지워버렸다.
‘네가 지금 웃을 처지냐.’
푹 고개를 숙이는 강천.
아직도 눈만 감으면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마력감염증에서 벗어나자마자 가족들의 사망 판정 소식에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이곳에 들어왔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강천은 이번 체력장을 통해 중고교 시절의 감각을 다시 되찾으며 서서히 제정신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럼 나만 실전반이군.’
자신이 유니크형이라는 굉장히 희귀한 유형의 고유능력을 각성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강천은 자신이 체력장 1위임을 확신했다.
‘마석은 나만 받는 건가.’
유일한 실전반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게 좋기도 했지만,
‘또 혼자가 되는 거네.’
한편으로는 또다시 혼자가 됐다는 사실에 뭔가 우울한, 참으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피식 ―
강천은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권태운! 근력 A, 지구력 A, 순발력 A, 유연성 A. 실전반입니다. 이상 전원 반 배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강천은 혼자가 아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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