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일과가 너무 간단함
유강천. 올해로 22세.
3일 전, 마력감염증에서 깨어나며 기사회생했다.
까득 ―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를 받고 있는 강천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너희들한테는 그저 가십거리겠지.’
강천의 눈빛에 울분이 가득 차올랐다.
‘남의 사정은 생각도 안 하는 놈들.’
유강천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일상. 그것이 그의 전부였고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쿠궁 ―
강천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 구석에서 운이 좋지 않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던전의 입구가 개방되었다.
일명 던전 브레이크.
던전이 생성되고 60일, 그러니까 2달 정도 지나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나올 수 있게 입구가 개방되는 현상이었다.
던전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던전은 협회의 수색이나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어 신고되어야 관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던전은 워낙 구석진 곳에 입구가 생기다 보니 나타난 지 두 달 동안이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던전 입구는 작았고, 그 던전의 몬스터는 그중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알려진 곤충형 몬스터들이었다.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출동해 초기에 진압이 성공하는 듯했으나,
―뭐 그걸 일일이 하나씩 잡고 있습니까? 한 번에 쓸어버리면 되지!
나름 슈퍼 루키라 불리던 한 신입 헌터가 미친 짓거리를 시작하면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아파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출동한 헌터들과 헌터 협회의 말만 믿고 평범하게 집에서 생활하던 수많은 주민들은 당연히 마력감염증에 걸리고 말았다.
몬스터들이 워낙 약했던 데다가 수도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진압될 것으로 보았던 헌터 협회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과 마력을 뿜어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
단순한 신체 강화 정도로도 잡을 수 있는 곤충형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일이었기에 헌터 협회 입장에선 혼란을 최소화하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하하하하!
―이런 미친놈이! 무슨 짓이야!
다른 선배 헌터들이 말리기도 전에 저질러버린 신입.
하필 그날은 주말이었고, 강천과 그의 가족들도 모두 집 안에 있었다.
―윽…….
―머리가…….
아파트 주민 총 87명이 마력감염증에 걸렸고, 이 중에는 강천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로부터 6일째 되는 날.
스륵 ―
87명 중 오직 강천만이 살아남아 눈을 뜰 수 있었다.
* * *
입학식은 금방 끝이 났다.
꽤나 엄숙한 분위기.
아무래도 일반적인 학교라기보다는 훈련기관인 이상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관생들은 오늘 기숙사 배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바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니 시간에 늦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다소 딱딱한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입학식이 마무리되고,
“오…….”
태운은 곧바로 배정받은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기숙사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헌터의 힘은 곧 나라의 힘과 마찬가지로 인식되는 시대이다 보니, 헌터 육성에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시설도 이렇게 좋은데 전부 1인실이라니…….”
올해 헌터사관학교 입학생들은 총 108명.
매년 전국에서 100명 전후의 사람들이 입학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딱히 그리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수였다.
‘많으면 안 되지… 그만큼 피해자들이 많다는 거니까.’
치사율 95%.
즉 마력감염증에 걸린 사람들 중 5% 정도만이 살아남아 헌터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지난 3월부터 어제까지 마력감염증에 걸린 사람 숫자가…….’
약 2,000여 명.
상당히 큰 숫자였다.
평균으로 따져봐도 한 해 평균 1,800여 명이 마력감염증으로 사망한다는 것. 그러나 가장 씁쓸한 현실은 감염 환자들 중 거의 절반이 몇몇 헌터들의 부주의로 인해 감염된다는 것이었다.
태운은 그 사실을 상기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딱히 처벌이 강력한 것도 아니니…….’
대부분 유야무야 넘어갔다.
헌터는 국가에게 있어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재인, 재원들이니까.
오죽하면 세계적으로 국방비를 삭감하고 헌터 육성에 더욱 열을 올리는 추세가 되겠는가? 심지어 헌터 하나의 탄생은 곧 국민 19명이 희생되었다는 의미와 동일했다.
그런 마당에 결과를 떠나서 마력 운용 좀 잘못했다고 벌을 주기도 애매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벌금 정도?
더군다나 헌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이미 TV, 너튜브 등 헌터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으니까.
심지어 마력감염증을 야기한 헌터들의 실수는 던전 브레이크라는 좋은 핑계로 덮기도 쉬웠으니 헌터들의 이미지는 거의 언제나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헌터들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는 건 극소수.
바로 직접 당한 피해자들과 헌터 협회뿐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대부분 마력감염증으로 사망하기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 겨우 살아남아 헌터가 되더라도, 헌터 업계의 뒷면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다른 고위 헌터들에 의해 입막음 당하는 것이 현 실태.
그나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곳은 헌터 협회뿐이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도 힘이 없지.’
헌터 협회는 헌터들을 통솔하고 길드 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기관으로, 헌터들에 대한 유일한 억제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공무원.’
그건 바로 그들의 신분이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헌터 협회는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렸다. 지원자가 터무니없이 적었으니까.
웬만한 중소 길드에만 들어가더라도 헌터 협회장만큼 벌 수 있는 것이 헌터 업계였다. 그러니 누가 헌터 협회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일각에서는 오히려 더 정의로운 헌터들만이 지원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것이 인력난을 해결할 방도가 되지는 않았다.
그나마 협회에 지원해서 활동하던 헌터들도 길드 헌터들과의 수입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판국이었으니까.
고유능력이 좋고 강한 헌터들은 대부분 길드를 택하니 실력 쪽으로도 협회 헌터들이 밀리는 건 당연한 일.
이미 헌터 협회에 대한 헌터들의 인식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쓸데없는 정의감에 찬 이상론자들.’
‘길드들이 싼 똥이나 치우는 보조 기관.’
헌터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수습하고 길드들이 선호하지 않는 던전들을 클리어하는 등, 여러모로 길드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
그게 협회의 실태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협회는 몇 년 전, 협회 소속 헌터들의 공중파 혹은 SNS 서비스를 통한 방송 출연을 허가하며 적은 수입에 대한 협회 소속 헌터들의 불만과 협회에 대한 인식 개선을 꾀했다.
다행히 협회의 전투부대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부대의 채널들이 마치 아이돌인 마냥 떠오르며 소속 헌터들의 수입 증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시민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가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지원자는 여전히 매년 평균 1~2명꼴이지만.’
수입 증진이 이루어졌음에도 길드 헌터들의 수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태운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태운의 목표가 협회에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나는 돈이 목적이 아니니까…….’
태운은 푹 한숨을 내쉬며 짐을 간단히 풀었다.
‘강해지자.’
널찍한 침대에 앉아 마력호흡을 단련하기 시작하는 태운.
혹시 누가 알겠는가?
세계 최강의 헌터가 협회에 소속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후읍… 푸우…….”
태운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사관생들은 대강당에 모여 각자 반을 배정받았다.
1반부터 4반까지. 각반에 27명씩 나뉘어진 것이다.
태운은 3반에 배정받아 3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저 사람은…….’
입학식 날 학교 앞에서 플래쉬 세례를 받던 남자가 자신과 같은 교실에 앉아있었다.
‘한 반에 유니크형만 2명이라…….’
태운은 턱을 괸 채 살짝 그를 바라보았다.
눈썹까지 내려온 회색빛의 긴 앞머리. 꽤나 잘생긴 미남형 얼굴과 탄탄한 몸.
하지만 건강미 넘치는 그의 외관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어제부터 계속 우울해 보였다.
자신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사람인데다가 왜인지 모를 동병상련이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태운은 자꾸 그가 신경 쓰였다.
‘뭐 친해질 기회가 있겠지.’
태운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안쓰러워 보이긴 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코가 석 자였으니까. 1년간 많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목표를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탓이었다.
정원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에게까지 마력을 사용해 죽일 뻔한 쓰레기.
하지만 그는 무려 4대 길드 중 하나인 주작길드의 A급 헌터였다.
‘A급이면 마력이 1만 이상인가. 쓰레기 새끼가 더럽게 세네.’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
마력 : 4397
태운은 작게 속삭여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전보다도 조금 더 성장한 상태.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정원준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자, 다들 출석했나?”
그때, 교관이 교실로 들어왔다.
‘2년 안에 따라잡는다. 아니, 뛰어넘는다.’
교실로 들어오는 교관을 바라보며 태운은 상태창을 슥 지워냈다.
파르르 ―
책상 밑으로 내린 그의 두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 * *
헌터사관학교의 일과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했다.
오전 시간에는 헌터학개론, 던전학개론 수강.
오후 시간에는 교관 지도 시간.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에는 자유시간.
이렇게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후읍… 푸우… 후읍… 후우…….’
이미 1년간 2년 과정의 예습을 끝마친 태운은 헷갈렸던 내용이 나오는 부분 외에는 대부분의 수업 시간을 마력호흡 단련 시간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교관 지도 시간.
이제 막 각성했기에 마력을 다룰 줄도… 아니, 느낄 줄도 모르는 사관생들을 위해 교관이 직접 마력을 주입하며 마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이런 과정만 앞으로 한 달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이걸 뭘 한 달씩이나…….’
처음부터 마력을 느낄 수 있었던 태운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
그러나 태운은 교관 지도 시간만 되면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혹여나 이미 마력을 다룰 줄 알고 마력량 또한 상당히 쌓여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쓸데없이 주목받게 될 테고,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이 생기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졸업과 동시에… 아니, 당장 오늘부터라도 자신을 스카우트하려는 길드들에게 시달리게 될 것이 뻔했다.
‘그건 절대 사절이다!’
체육관 안에서 일정 거리를 떨어져 앉아 가부좌를 튼 학생들을 3명의 교관이 돌아다니며 봐주고 있었다.
흘끔.
태운은 계속해서 교관들의 눈치를 살폈다.
‘후읍… 푸우… 후읍… 푸우…….’
태운은 마력을 느끼려고 애쓰는 척하며 교관이 지나가면 마력호흡을 하고,
후욱―
가까이 다가오면 즉시 마력을 눌러 숨기는 것을 반복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태운의 마력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온전히 집중하여 마력호흡을 하는 것보다는 효율이 상당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아 피곤해…….”
쉬는 시간도 없이 무려 5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지도 시간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관생도들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력감염증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지만, 연령대가 워낙 다양한 탓에 어린아이들이나 중장년층도 간혹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중장년층들이 특히 이 지도 시간을 힘들어했다.
“힘들어… 힘들다아~~”
그중 한 꼬마 남자아이가 드디어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투덜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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