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그 후 (1)
A 신문사 사회 1부 소회의실.
- 대한민국의 쾌거. 블랙 한국지부 일망타진. 다음 목표는 지하 마켓?
- 한국에 자극받은 해외 정보국. 능력자 테러와의 전면전 선포.
탁, 김유진은 다른 신문사의 석간들을 테이블에 던졌다.
신문사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혜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터넷 검색어는 이혜성과 NSA의 관계어로 도배가 된 지 오래. TV에서도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혜성의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혜성뿐만이 아니었다. NSA도 아직 블랙의 실체도 잡지 못한 다른 나라 정보국과 비교돼 주가가 급상승했다.
“뭐, 우리로서는 참 잘됐어요. 땅 짚고 헤엄치기니까.”
김유진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기자는 특종과 조회 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특종이 넘쳐나니 신문사 분위기도 좋았다. 막말로 혜성이 어젯밤에 화장실에 두 번 갔다더라, 라는 황당무계한 기사만 올려도 조회 수가 보장됐다.
“참. 막내 요원의 가정사에 대한 반응은요?”
김유진은 우측의 나이 지긋한 기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막내와 한수호가 돈과 장래성 때문에 NSA를 포기하고 해외로 떠난다는 기사를 쓴 기자였다.
“단결력. 이게 한국인의 저력 아닙니까? 지역감정이니 종교니, 성별이니. 대립해서 싸울 때는 다시 안 볼 것처럼 악착같이 싸우다가, 또 하나로 뭉칠 때는 엄청난 협동심을 발휘하니까요.”
“보도된 다음에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후원 문의가 폭주하고 있으니까요.”
“이 기회에 순직한 능력자에 대한 처우도 대폭 개선하자고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한다던데요. 이혜성 특별법이라나?”
기자들도 웃으며 각계의 반응을 전했다.
국가 소속 능력자와 길드 소속 능력자의 처우가 다른 건 이전부터 문제였다. 사명감과 명예로 포장했지만, 국가 소속 능력자의 수입이나 처우가 사설 길드보다 낮고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막내나 한수호처럼 경력을 쌓고 의무 복무기간만 채운 뒤 사설 길드로 옮기는 사례가 많았다.
“좋았어. 그럼 이 기세를 몰아서 특집 시리즈로 가자고요. 혜성 씨의 활약상이 1부, 화려함 속에 가려진 국가 소속 능력자들의 고충이 2부, 그리고 비전 제시가 마지막 3부. 대충 이런 흐름 말이에요.”
김유진은 화이트보드에 시리즈의 흐름을 간단히 적었다. 회의실에 대번 활기가 돌았다.
“아무튼 이번에도 혜성 씨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셈인데. 혜성 씨는 지금 어디에 있지?”
문득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혜성은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문자를 보내도 감감무소식. 김연우를 통해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부에서도 혜성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블랙의 요인을 막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다고만 막연히 추측할 뿐. NSA 대변인의 브리핑이 늦어지는 것도 이혜성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에이, 그래도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그녀는 불안을 던지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
NSA 국장실.
“……이상입니다. 국내에 잠입한 블랙은 대부분 소탕했습니다. 물론 일부 조무래기가 남아 있겠지만, 놈들은 앞으론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자세한 건 피해 상황이 집계되는 대로 종합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회색 여우의 부팀장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긴 보고를 마쳤다.
“장 팀장은?”
한진영은 장진우를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아직 장진우를 만나지 못한 상황. 다만 다른 팀장의 보고에 따르면, 장진우는 회색 마스터에게 당해 만신창이라고 했다.
“기관 지정 병원에서 긴급 수술 중이십니다.”
“그래? 의사는 뭐래?”
“일단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붙었습니다만, 단전을 다친 탓에 장담은 못 한다고……”
부팀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나머지 말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한진영도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화제를 바꿨다.
“수고했군. 길었던 하루였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한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 년 치 사건을 하루에 다 겪은 기분이었다. 온종일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는데, 딱히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언론 쪽은 어때? 민간의 피해도 컸잖아.”
“블랙 타도라는 큰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우린 위기일수록 뭉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자. 이런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잘 관리해. 언론, 특히 대한민국 언론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야. 사회의 혼란을 수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회의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거든.”
언론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본래 언론은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중립을 지키는 게 불가능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번 사건의 초점을 블랙 소탕이라는 공에 맞추느냐, 민간의 피해라는 과실에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이따가 VIP께 보고 드리러 가야 해. 언론 쪽은 동향을 계속 주시하면서 부팀장이 홍보실과 협의해서 처리하고.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 혜성 씨는 어때?”
한진영은 혜성을 떠올리며 물었다.
블랙은 일망타진했지만, 뒷수습도 만만찮았다. 그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통에 아직 혜성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태호라고 했나요? 혜성 씨의 친구이자 전담의사. 현재 그의 병원에서 수술 중이라고 합니다. 다만 문제가……”
“문제? 몸이 안 좋아?”
“그게 아닙니다. 이제 막 수술에 들어갔기 때문에 경과는 아직 모릅니다. 문제는 혜성 씨가 블랙의 마스터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금지된 행위를 저지른 게 발견됐습니다.”
부팀장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감사실이나 일부에서는 혜성 씨를 안 좋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번 청문회 일도 있었고 말입니다. 국민 대다수의 여론 때문에 혜성 씨의 어지간한 과실은 전부 묻어뒀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혜성 씨를 물어뜯으려는 것 같습니다.”
감사실. 이 한마디에 한진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새끼들. 현장은 모르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그렇게 잘났으면 지들이 직접 드래곤하고 싸우고 마스터를 잡든지.”
하지만 감사실은 같은 NSA면서도 국장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별도의 부서였다. 아무리 국장이라도 감사실의 일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혜성 씨가 뭘 잘못했는데?”
“저……”
부팀장은 재차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혜성 씨가 몬스터의 힘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 지금 의식을 잃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말입니다.”
***
태호의 병원.
“형은?”
막내가 유리창 너머의 특수 치료실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막내 또한 부상이 심했다.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았고, 한 손으로는 수액이 걸려 있는 거치대를 잡고 있었다.
“아직도 반응이 없습니다.”
한수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도 막내와 비슷한 상태였다.
하얀 진료실 중앙, 혜성이 몸에 착 달라붙는 특수 슈트를 입고 누워 있었다. 각종 영약과 아이템, 치료 기기를 전신에 주렁주렁 단 채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수술복을 입은 태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치료하고 있었다.
살을 찢고 직접 치료하는 것과 달랐지만, 응급수술과 비슷했다. 김연우와 남자 간호사 셋도 그 옆에 서서 태호를 보조하고 있었다.
“역시 그 영상을 삭제했어야 했나?”
“그럴 틈이 없었잖습니까? 그리고 증거 영상에 함부로 손을 댔다간 형도 위험해질 테고요.”
“하긴, 그땐 영상이고 나발이고 형을 막는 게 중요했으니까.”
둘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지하 마켓의 시설, 특히 통제탑의 카메라는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었다. 일부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촬영된 자료는 통제탑 외에도 외부 서버에 자동으로 백업 됐다.
몬스터의 힘을 흡수한 혜성의 폭주. 사건이 종결된 후에야 들이닥친 NSA. 그리고 외부 서버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감사실의 요원들.
일련의 소동이 한바탕 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정신없이 일이 돌아간 탓에 일본의 길드와 계약한 건 생각할 틈도 없었다.
“흠! 김성후, 한수호 요원?”
그때 뒤에서 헛기침과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
막내는 대화를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검은 정장을 빼입은 요원 둘이 서 있었다. 그도 얼굴을 아는 사람들. 감사실 소속의 전문 조사관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병원 관계자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입구에서 조사관들을 제지하려고 승강이를 벌이다가 실패한 것 같았다.
막내는 표정이 굳어졌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한수호도 혜성과 조사관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랐다.
“소개는 생략합시다. 왜 왔는지는 알 겁니다.”
수석 조사관은 차갑게 말하며 뒤에 있던 부하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나이와 직급은 조사관 쪽이 훨씬 높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는 탓인지 경어를 썼다.
부하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막내와 한수호의 좌우로 다가갔다. 언뜻 보면 부축하는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행하는 분위기였다.
“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형이 혼자 살겠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수술 중인 사람을 찾아와야 하는 겁니까?”
막내와 한수호가 분한 듯 목에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적과 과실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이런 기본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요?”
수석 조사관이란 놈은 비웃듯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씨발. 내가 더러워서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퉤, 막내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수석 조사관은 부팀장급. 소속은 달라도 막내에게는 하늘 같은 상관이었지만, 지금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럴수록 혜성 씨만 더 불리해지는 거 모릅니까? 이혜성의 강함은 저도 인정합니다. 블랙의 마스터와 드래곤을 잡은 실력자니까. 그가 이번 블랙 소탕 작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수석 조사관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이혜성이 회색 마스터와 드래곤을 상대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몬스터의 힘에 손을 대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건 당신들의 증언과 영상을 토대로 하나씩 따져 봐야 합니다.”
수석 조사관들은 다시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가시죠.”
부하들은 막내와 한수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형.”
막내는 안타까운 눈으로 혜성을 돌아보다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한수호도 혜성을 보고 울먹이다가 그들과 동행했다.
“이혜성. 대한민국을 구한 희대의 영웅인가, 몬스터의 힘에 손을 댄 악인인가? 대체 지하 마켓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수석 조사관은 혜성을 바라보다가 차갑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