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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03화 (103/150)

# 103. 퍼스트 게이트 (4)

서울춘천고속도로.

“크윽.”

혜성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아이템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암흑의 수호자만 해도 전에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였지만, 지금은 호수의 파동처럼 움직임이 심해졌다.

무릎 위에 놓인 카피캣도 녹색과 파란색이 점점 선명해졌다. 마치 퍼스트 게이트에 자극받아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안 되겠어요. 오늘은 그냥 서울로……”

막내가 그를 돌아보며 말하는 찰나였다.

콰쾅.

멀리 앞에서 큰 폭발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노란빛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았다.

“젠장!”

“뭐야?”

운전석의 막내와 뒷좌석의 한수호는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전쟁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달리던 차들이 지뢰를 밟은 듯 위로 튀어 올라 폭발했다.

막내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댔다. 뒤차들도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했다. 하지만 몇몇 차들은 조금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이는 곧 연쇄 추돌사고로 번졌다.

“씨발, 뭐야?”

막내는 핸들을 붙잡고 한참 동안 심호흡했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백미러를 보니 한수호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혀, 형…… 저기.”

한수호는 왼쪽 1시 방향을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막내는 녀석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 크아아아!

동굴 안에서 울부짖는 것 같은 괴성이 길게 울렸다.

약 1km 전방. 키 10m에 이르는 사람 형체의 그림자가 포효하며 서 있었다. 정전기 같은 노란색 불을 두른 몬스터. 번개의 정령이었다.

- 등급이 높은 몬스터일수록 큰 게이트가 필요하고, 큰 게이트일수록 열리는 시간도 길다.

최근 변종 게이트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이건 모든 몬스터에게 통용되는 절대 법칙이었다. 그런데 게이트도 없이 몬스터가 나타났다?

“뭐야? 정령은 최소 AAA급이잖아. 저게 게이트도 없이 왜 나와?”

막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게이트 경보도 없었습니다.”

한수호도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곤 사색이 됐다.

“으아아! 저게 뭐야?”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아비규환. 몇 명은 놈을 피해 다른 차선이나 갓길 쪽으로 달려나왔다가 도망치는 차에 치였다. 비명횡사였지만, 다들 자기 살기 바빴다. 누구 하나 쓰러진 사람을 돌봐주지 않았다.

콰콰쾅!

놈의 울음에 호응하듯 주위에 연신 날벼락이 떨어졌다. 뇌전의 광견이 일으킨 벼락은 애교 수준이었다. 정령급의 몬스터답게 놈은 몸에 두른 작은 정전기 하나로 1톤 트럭을 날려 버렸다.

“저놈을 이용해서 혜성 선배님의 2차 각성을 유도하는 건 어떨까요?”

한수호가 혜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야. 지금은 형의 아이템들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2차 각성하면, 아이템들이 어디로 튈지 몰라.”

막내는 놈과 혜성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득 두꺼비가 생각났다. 이럴 때 아이템 전문가가 있으면 뭔가 해법이 있을 텐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통신망도 마비돼 있었다.

“젠장!”

그는 문을 거칠게 열고 차에서 내렸다. 한수호도 백팩과 장비를 챙기고 따라 내렸다.

둘은 혜성을 갓길 옆에 눕혔다. 게이트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자, 상태도 더는 나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몸을 가누는 게 힘겨워 보였다.

“일단 우리끼리 어떻게 해 보자.”

막내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굳은 표정으로 몬스터를 노려봤다.

앞에는 AAA급 몬스터가 포효하고 있고, 사방에는 시민들이 아우성치며 도망치고 있었다. 게다가 혜성은 제멋대로 활성화된 아이템들 때문에 자기 몸을 가누는 것도 어려웠다. 최악의 상황. 답이 안 보였다.

***

승합차 안.

“어쩌죠?”

운전석의 선글라스를 낀 요원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연쇄 추돌사고로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1시 방향 5km 전방. 뿌연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차들의 경적, 사람들의 비명,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도 은은하게 들렸다.

“본부는?”

장진우는 신경질적으로 통신 요원을 바라봤다.

“몬스터가 만드는 특수 전파 때문에 통신망이 마비됐습니다.”

옆에 있던 요원은 신형 위성 통신기를 만지며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길.”

장진우는 주먹으로 의자를 내려쳤다.

혜성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앞에는 AAA급 몬스터. 막내와 한수호로는 무리였다.

“할 수 없다. 퍼스트 게이트는 다음 기회에. 지금은 시민 안전이 우선이야.”

장진우는 재킷을 들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팀원 세 명도 기본적인 장비만 챙기고 허겁지겁 뒤따랐다.

“조금만 버텨라.”

그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방향을 응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특유의 순간이동술로 사라졌다.

***

번개의 정령.

AAA급에서 S급에 이르는 거인형 몬스터. 같은 번개의 정령이라도 유형에 따라 크기나 생김새는 제각각이었는데, 공통적으로 물리 타격이 안 통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게다가 놈은 온몸이 전기였다. 일반인들은 놈의 정전기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었다.

“접근하지 마! 에너지 계통의 원거리 딜로 밀어붙여!”

막내가 놈의 큰 몸뚱이 뒤로 돌아가며 외쳤다.

퍼펑, 그의 두 주먹에서 볼링공 같은 화염구가 연신 쏟아졌다.

“알겠습니다!”

한수호도 놈의 왼쪽을 공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위로 뛰어오르며 두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콰쾅, 물의 강기가 놈의 왼쪽 무릎을 강타했다. 번개의 상극은 물. 그의 수 속성 공격은 100%의 증폭을 받았다.

- 끄아아아!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순간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됐어!”

한수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착지한 뒤 물러섰다.

그런데 그가 다시 물의 강기를 날리려는 찰나였다. 놈이 발악하듯 뻗은 거대한 뇌전에 교통 표지판이 부서져 떨어졌다. 하필이면 그가 물러선 지점이었다. 방향을 바꿔 피하기엔 늦었다.

“형!”

한수호는 다급하게 막내를 불렀지만, 막내도 반대 방향에서 놈을 공격하던 참이었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뭐 해?”

어디선가 많이 듣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땀에 흠뻑 젖은 장진우였다. 그는 단숨에 20m를 순간이동하는 한편, 표지판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표지판은 구멍에 빨려가듯 사라졌다가 우측 갓길 밖에 떨어졌다.

“팀장님!”

막내와 한수호는 대번 반색하며 장진우를 불렀다.

회색 여우의 팀원 셋도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왔다. 다만 그들은 장진우와 달리 도로에 널린 차들을 피해 달려온 뒤였다. 다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A3 포메이션 알지? 놈을 압박한다.”

장진우는 놈의 뇌전을 피해 오른쪽으로 순간이동하며 외쳤다.

막내와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놈을 중심으로 12시와 2시 방향으로 물러났다. 거인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유용한 포위 공격이었다. 이어서 장진우와 팀원들까지 포함해 6명이 놈을 둘러쌌다.

퍼퍼펑, 6명이 놈을 향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놈의 크고 육중한 몸은 좋은 타깃이 됐다.

- 끄아아아!

번개의 정령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자, 하늘에서 마구잡이로 뇌전이 떨어졌다. 그들은 그때마다 잠깐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었다.

‘어? 막내하고 수호가 저렇게 강했나?’

장진우는 둘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언뜻 봐도 AA급 이상. 둘은 정령을 상대로도 잘 싸우고 있었다. 치고 빠지는 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특히 한수호의 공격은 속성 버프를 받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하긴, 혜성 씨를 따라다니며 허구한 날 고생만 했으니까. 강제로라도 레벨업을 안 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장진우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쓰게 웃었다.

“팀장님!”

막내가 다른 요원과 위치를 바꾸고 그에게 다가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혜성이 형이 위험합니다. 여기서 지체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요원들이 큰 공격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막내는 그에게 뭔가 작전을 설명했다.

“그걸 자네가 생각한 건가?”

장진우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상대와 나의 속성을 이용한다. 혜성이 형이 자주 써먹는 패턴이죠.”

막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장진우는 그를 따라 가볍게 웃었다. 인제 보니 단지 능력만 올라간 게 아니었다. 무모함과 기발함을 넘나드는 작전도 혜성과 비슷했다.

“좋아. A7로 포메이션을 변경한다. 수호는…….”

장진우는 막내의 작전을 큰 소리로 전달했다.

***

막내와 회색 여우의 팀원 셋이 놈의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타깃은 놈의 무릎과 발목. 처음에는 별 타격이 없었지만, 같은 부위에 데미지가 누적되자 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1시 방향으로 100m 떨어진 지점.

한수호는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물의 강기를 준비했다. 제주도처럼 비가 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대기 중의 수분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게 힘들었다.

“빨리!”

장진우는 그의 옆에 서서 물의 강기와 몬스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재촉했다.

막내의 작전은 한 방의 타이밍 싸움. 두 번은 없었다.

“끄아아!”

녀석은 얼굴이 빨개져 고함을 질렀다.

5분 후, 마침내 1톤 트럭 분량의 거대한 물의 강기가 모였다. 녀석의 전력을 끌어모아 만든 비장의 카드였다.

“지금이야!”

장진우는 놈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으아아!”

한수호는 기합을 길게 내지르며 놈을 향해 양팔을 휘둘렀다. 머리 위의 강기가 진짜 트럭처럼 놈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막내를 비롯한 다른 요원들도 놈의 눈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놈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퍼펑, 장진우는 특유의 순간이동술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놈의 머리 위. 그리곤 오른손으로 한수호의 강기를 낚아채듯 이동시켰다. 쩍 벌린 놈의 입 속으로.

콰쾅, 놈의 내부에서 폭발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졌다.

- 크어어어!

놈의 형상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본래 정령은 에너지로 이뤄진 이형의 존재. 놈은 이내 바람에 날리듯 연기가 돼 사라졌다.

“그렇지!”

막내와 다른 요원들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환호했다.

다른 이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장진우가 한수호의 공격을 놈의 내부로 집어넣는다. 이게 바로 막내가 말한 작전이었다.

“운이 좋았어. 빠르게 움직이거나 좌표를 교란시키는 상대에게는 안 통하거든.”

장진우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수호를 바라봤다. 녀석은 탈진해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어쩌죠?”

막내가 숨을 몰아쉬며 다가와 물었다.

“혜성 씨는 어때?”

“갈수록 안 좋습니다.”

“역시 우민창의 예상대로인가?”

장진우는 혜성과 우민창의 대화를 떠올렸다.

우민창이 노린 건 바로 이것. 퍼스트 게이트에 접근해 아이템을 강제로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네? 우민창의 예상이라뇨?”

“아, 아무것도 아냐.”

장진우는 말을 얼버무리고 몸을 돌렸다.

‘아이템이 혼란스러운 사이 아이템의 기억을 읽고, 나아가 EX급 몬스터의 단서를 찾는다.

그는 이 말을 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EX급은 아직 추측일 뿐. 조금 더 시간과 증거가 필요했다.

“예정대로 퍼스트 게이트로 가지.”

장진우는 혜성이 누워 있는 지점을 향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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