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02화 (102/150)

# 102. 퍼스트 게이트 (3)

서울춘천고속도로.

평일 오전이었지만, 오가는 차들이 제법 많았다. 일부 구간에서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놈이 왜 퍼스트 게이트를 언급했을까요? 형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혹시 놈이 함정을 판 거 아닐까요?”

막내가 운전대를 잡은 채 조수석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나도 몰라. 숨겨진 진실이 뭐기에?”

혜성은 핸드폰으로 퍼스트 게이트를 검색하며 대답했다.

퍼스트 게이트에 관한 자료는 인터넷에 넘쳐났다. 약 20년 전에 춘천시 외곽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균열. 가로 3m, 세로 10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였다.

“저도 그거 기억해요. 평행 차원이 열린 거다. 외계인이 만든 웜홀이다. 심령 현상이다. 한국의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에서도 난리가 났었잖아요. 심지어 각종 음모론과 종말론이 판을 쳤죠.”

막내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정부에서 춘천시 일대를 봉쇄한 가운데, 한미 연합군이 직접 게이트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몇 달이 지나도 게이트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드론과 특수팀을 균열 사이로 투입했지만, 순식간에 연락이 끊겼다.

여긴 지옥이다.

비명처럼 이 말만 남기고.

“20년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는 게이트. 이거 죽은 게이트 아니었습니까?”

뒤에 앉은 한수호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거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게이트와 던전이 쏟아지는 시대였다. 지금도 특수부대가 퍼스트 게이트의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옛날만큼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게이트와 던전 시대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나 종종 언급되는 정도였다.

“죽은 건 아닐 거야.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 것도 퍼스트 게이트가 나타난 직후니까. 혹시 퍼스트 게이트에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이 몇몇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혜성은 생수를 따서 한 모금 들이켜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20년이나 지났지만, 게이트와 던전에 대해 알려진 건 극히 일부였다. 게이트 너머에 귀한 아이템과 자원이 많이 있다고 막연히 추측할 뿐. 지금의 기술로는 게이트 오프너를 이용해 게이트를 여는 게 한계였다. 게이트 탐사와 게이트가 발생한 원인 규명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몬스터의 정체는 뭘까? 게이트와 던전은 왜 생긴 걸까? 솔직히 이런 의문을 안 가져본 사람은 없잖아? 우민창이 말하는 숨겨진 진실은 아무래도 이것과 관련된 것 같다.”

혜성은 핸드폰 위치 추적 앱을 확인하며 덧붙였다.

약 3km 후방. 장진우와 회색 여우팀이 탄 승합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전방 800m에서……

내비게이션에서 안내가 나왔다.

퍼스트 게이트까지 남은 거리는 약 10km. 이대로 계속 가면 20분 안에 도착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혜성은 생수를 중앙의 홀더에 내려놓다가 놓쳤다. 퍽, 병이 조수석 쪽으로 튕기며 물이 쏟아졌다.

“괜찮……”

막내는 혜성을 힐끔 돌아보다가 멈칫했다.

언제부턴가 혜성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몸살에 걸린 것처럼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거리가 줄어들수록 혜성의 떨림도 커졌다.

“끄으.”

그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형!”

“선배님!”

막내와 한수호는 깜짝 놀라며 동시에 외쳤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정장이었다. 암흑의 수호자가 일렁이는 그림자의 형태로 활성화된 것이다. 2차 각성을 하지 않았는데도.

끼이익, 막내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갓길에 세웠다.

***

포인트 AB-001, 일명 퍼스트 게이트.

“흐아아암!”

김 대위는 소파에 앉아 팔다리를 길게 뻗으며 하품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퍼스트 게이트 앞에 설치된 캠프였다. 허공에 떠 있는 게이트를 중심으로 중대급 병력이 포위하듯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아, 뭐 재미있는 거 없나?”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오늘도 무료했다. 명색이 군에 특채된 A급 능력자인데 온종일 감시나 하고 있으라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계속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그렇다고 자리를 이탈할 수는 없었다. 20년째 활동이 없었지만, 언제 불시에 높은 분이 내려올지 몰랐다. 게다가 요즘은 시청률에 목숨을 건 기자나 BJ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접근을 시도해 골칫거리였다.

“근데 저건 왜 죽은 걸까?”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정면의 모니터들을 바라봤다.

수십 대의 대형 모니터에는 퍼스트 게이트의 각종 파장과 수치가 나오고 있었다. 맥박이 뛰듯 규칙적이고 느린 그래프들. 모니터를 한참 보고 있자니 더 좀이 쑤셨다.

“안 되겠다. 애들 데리고……”

김 대위는 어깨를 두드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모니터 앞에는 군기가 바짝 든 일병들이 헤드셋을 쓴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수칙에 따라 그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여기에 앉아 있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였다.

“어? 게이트 파장이 이상합니다.”

안경 쓴 일병 하나가 비명처럼 외치며 그를 돌아봤다.

“뭐가 문젠데?”

김 대위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일병을 바라봤다. ‘만약 문제가 없으면 오늘 네가 문제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이걸 좀 보십시오.”

일병은 뭔가를 프린트해 그에게 건넸다.

무슨 수치가 복잡하게 쓰여 있었는데, 김 대위는 봐도 잘 이해가 안 됐다.

“이게 무슨 뜻이야?”

“게이트의 파장이 상호 간섭에 의해서……”

일병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말이 장황했다.

“내가 지금 네 설명이나 들어야겠어? 핵심이 뭐야, 핵심이?”

김 대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설명을 들으니 더 어려웠다.

“쉽게 말하면 뭔가에 호응하는 것처럼 게이트가 활동을 재개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에 호응하는 것 같은 에너지원이 서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일병은 쉽게 대답했다. 활동 재개. 이건 이해할 수 있었다.

“뭐?”

김 대위는 비명처럼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보고하는 일병과 표정이 똑같았다.

“저게 왜 움직인 거야? 그것도 20년 만에? 호응이니 에너지원은 또 뭐고?”

그의 입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그건 저도 잘……”

잘난 척쟁이 일병도 이 질문엔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김 대위는 감시하는 사람이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씨발. 애들 다 대기시켜.”

그는 신경질적으로 명령한 뒤, 몇 년 동안 쓴 적이 없는 직통 전화를 들었다.

***

서울춘천고속도로 갓길.

“형, 이것 좀 마셔 봐요.”

막내가 백팩에서 포션을 꺼내 뚜껑을 따서 건넸다.

“고맙…….”

혜성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포션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소용없었다.

“왜 그런 겁니까? 지금이라도 태호 형님께 전화할까요?”

뒷좌석의 한수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혜성을 살피며 물었다.

“아니야.”

혜성은 왼손을 살짝 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대수영을 마음속으로 불러봤지만,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혜성처럼 잔뜩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시그니처 아이템…… 활성화…… 에너지…… 각성 전…… 부족……”

그는 옹알이처럼 더듬거리며 키워드 몇 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막내와 한수호는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남긴 말을 한참 동안 되뇌다가 겨우 뭔가를 떠올렸다.

시그니처 아이템들은 혜성의 에너지를 통해 활성화되었다. 평소 2차 각성 전에 잠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차 각성 전. 따라서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그나마 격전을 치르면서 전보다 강해진 덕분에 버티고 있었다.

막내가 혜성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열은 없었다.

“그럼 강제로 2차 각성을 시켜야 하나?”

막내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짧은 단검을 꺼냈다.

“아무래도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수호도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먹에 푸른 기운을 맺었다.

“미안!”

막내는 단검으로 혜성의 배를 찌르려다가 직전에 멈췄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차마 혜성을 공격할 수 없었다. 게다가 활성화된 암흑의 수호자를 뚫을 자신도 없었다.

암흑의 수호자를 뚫기 위해서는 위력이 강한 공격이 필요한 터.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펼치기엔 너무 위험했다.

한수호도 마찬가지. 녀석은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뻗으려다가 결국 울상이 돼 도로 내려놓았다.

“씨발. 평소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지더니. 오늘은 왜 그것도 없어?”

막내는 주먹으로 핸들을 내려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퍼스트 게이트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그냥 돌아가죠.”

막내는 한숨을 내쉬며 내비게이션을 만졌다.

“안 돼. 더 빨리.”

혜성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서도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문득 우민창의 말이 떠올랐다. 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퍼스트 게이트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젠장. 하여튼 똥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막내는 고민하다가 퍼스트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혜성의 안색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

같은 시각, 춘천행 고속도로.

“흐음.”

회색 마스터는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명상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지만, 감은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경호원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용.”

회색 마스터는 손을 살짝 들어 경호원의 입을 막았다. 감각에 잡음이 섞였다.

“퍼스트 게이트가 감응하다니. 우리 외에 몬스터와 교감한 녀석이 또 있는 건가? 설마 몬스터나 아이템의 기억을 본 건 아니겠지?”

그는 왼쪽 손목을 쓰다듬으며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금색 팔찌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퍼스트 게이트와의 감응.

그건 단순히 능력이 강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몇몇 특수한 아이템을 가져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선택받은 소수가 특수한 아이템을 만나 완벽한 교감을 거쳤을 때, 비로소 퍼스트 게이트를 깨울 수 있었다.

“혹시 이혜성인가?”

놈은 선택받은 능력자. 그리고 놈이 우민창을 제압할 때 쓴 기술은 아이템과의 교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혜성. 운이 좋군.”

그는 쓰게 웃었다.

물론 그의 타깃은 이혜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속도로 한가운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놈이 퍼스트 게이트에 진입하는 것도 문제였다. 세상은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계획을 바꾼다. 이혜성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놈이 퍼스트 게이트에 접근하는 걸 막는다.”

이윽고 그는 눈을 뜨고 경호원을 바라봤다.

“어떻게 말입니까?”

경호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신형 게이트 오프너.”

회색 마스터는 짧게 대답하며 차창 너머 동쪽을 바라봤다.

저 멀리에 퍼스트 게이트의 기운이 느껴졌다. 현재 그의 위치는 이혜성보다 앞. 게이트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이혜성. 오랜만에 만나는데 인사 대신이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재킷에서 아이템 케이스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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