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5. 부활 (2)
1층 로비.
“야, 이 새끼들아!”
인질 가운데서 막내와 한수호가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손은 뒤로 결박당한 채였다. 하지만 몰래 서로의 다리를 풀어줬기 때문에 하체는 자유로웠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둘에게 집중됐다.
“뭐야?”
근처에 있던 조무래기 하나가 고함을 치며 다가오려는 찰나였다.
파팟, 한수호가 인질들의 어깨를 밟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깃은 놈의 턱.
퍽, 그는 가벼운 날아 차기로 놈의 턱을 걷어찼다.
“씨발!”
이어서 다른 조무래기가 주먹을 휘둘렀다.
“흥!”
한수호는 상체를 숙여 주먹을 흘리고 놈의 턱을 오른발로 걷어찼다. 아무리 부상을 입고 능력을 제한당했어도 기본 체술이 있었다. 조무래기 둘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뭐야?”
두 명의 우민창은 인상을 찌푸리며 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뭐긴. 반격이지.”
막내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히죽 웃었다.
“좀 쉬었더니 입만 살아났군. 그래 봤자 능력이 봉인된 놈들 아닌가? 이혜성도 없는데 둘이 뭘 어쩌려고?”
능력자 우민창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물었다.
“우릴 이혜성과 기타 등등으로 여기는 거냐?”
한수호가 발끈하고 나서려는 찰나, 막내가 녀석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맞아. 우린 능력이 봉인됐지. 그런데 능력 봉인이라는 게 뭐야? 능력과 스킬을 몸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거 아니야? 그걸 바꿔 말하면 스킬을 내 몸 안에서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는 뜻이고.”
“뭐?”
사업가 우민창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내 능력이 물인 거 알지? 사람 몸의 대부분은 물이고. 그럼 내 몸의 물을 분해하면 뭐가 되는지 알아?”
다시 한수호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다만 하나, 막내와 한수호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게 확실했다.
“이놈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우민창과 부하들은 둘을 공격하려다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멈췄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안 배웠어? 산소하고 수소잖아.”
한수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비아냥거렸다.
“내 능력이 불인 건 알지? 그럼 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지. 수호가 만든 순수한 산소와 수소에 내가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막내가 한수호와 시선을 교환하며 물었다.
“이런 개새끼들.”
그제야 우민창과 부하들, 근처에 있던 인질들 모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자폭.
둘이 따로 있었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민창의 능력이라면 바람과 물의 장벽으로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둘이 같이 있는 지금, 그들은 각각 수소와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죽여 봐. 이 새끼들아. 너희가 날 죽이는 게 빠를까, 내가 자폭하는 게 빠를까?”
막내는 목을 길게 빼고 약 올리듯 말했다.
“흥! 누구 앞에서 허세냐?”
사업가 우민창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큰소리쳤다. 하지만 말과 달리 녀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허세라니. 너도 혜성이 형하고 두 달만 같이 다녀 봐. 남는 건 악하고 깡, 미친 짓밖에 없으니까?”
“맞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막내와 한수호는 섭섭하다는 투로 되물었다.
“자, 우리 협상 좀 다시 해볼까?”
막내는 놈들을 둘러보다가 혜성이 사령을 협박하던 걸 떠올렸다.
지금 두 우민창의 표정은 그때 사령의 표정과 똑같았다.
***
로비 천장.
- 자, 우리 협상 좀 다시 해볼까?
막내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장진우는 환풍구 틈으로 로비를 내려다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이혜성과 팀을 이루더니, 막내와 한수호는 막무가내로 덤비는 것도 혜성과 똑같았다.
그는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잔해가 쌓인 것을 보니 혜성이 묻혀 있는 곳 같았다.
‘역시 방심했군. 이혜성의 시체를 저렇게 방치하다니. 하긴 혜성이 죽는 순간의 감각이 놈에게 확실히 전달됐을 테니까.’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힐링 팩터를 두 개 꺼냈다. 언뜻 보면 작은 손난로 같았다.
세 꼬리 도마뱀처럼 살아남긴 했지만, 아직 상당한 충격이 남아 있었다. 솔직히 지금 체력으론 놈을 당해낼 수 없었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장진우는 소리 죽여 웃으며 힐링 팩터를 터뜨렸다. 곧 푸르스름한 빛이 그를 감쌌다.
그는 힐링 팩터 하나를 더미 속으로 전송했다. 쌍두 살모사의 던전에서 혜성에게 힐링팩터를 전송한 것과 동일한 기술이었다.
다만 이번엔 그때처럼 주사제 형태가 아니라 그의 주위에 힐링 존을 만드는 형태였다. 치료 속도는 주사제보다 느리지만, 지금처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때 효과적이었다.
‘조금만 버텨라. 진짜는 나와 이혜성이 부활하는 다음. 그때부터 본격적인 반격이다.’
그는 막내와 한수호를 힐끔 내려다본 뒤, 눈을 지그시 감고 치료에 집중했다.
같은 시각, 로비.
화장실 등에 숨어 있던 다섯 명이 우민창의 부하들에게 끌려왔다. 다들 어깨를 움츠리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강지영도 그중의 하나였다.
“다녀…… 어라?”
부하들은 웃으며 들어오다가 뒤늦게 로비의 분위기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막내와 한수호가 우민창을 노려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뭐지?’
강지영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챘다.
‘설마 혜성 씨가 죽은 게 아니었나? 그럼 내가 보고 느낀 건 뭐였지?’
그녀는 더미를 힐끔 쳐다봤다.
더미 안에서 혜성의 기운이 느껴졌다. 곧 죽을 것처럼 미약하긴 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힐링 팩터라도 맞고 있는지 혜성의 체력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녀가 능력자의 기척을 잘못 느낄 리는 없는 터.
‘천장에 숨은 건 또 누구야?’
강지영의 혼란은 더 커졌다. 다만 몬스터의 기척은 없는 것으로 볼 때, 천장의 능력자도 혜성의 편인 것 같았다. 문득 뭔가 떠올랐다.
‘이혜성이 놈을 끌어내기 위해 함정을 판 건가?’
위장 사망.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가를 씰룩거렸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인질 구출 작전은 잠시 정지다. 어디, 이혜성이 어떻게 반격하는지 볼까?’
강지영은 슬그머니 인질들 틈에 쪼그려 앉았다.
지금 그녀는 평범한 아줌마 스타일이었다. 우민창의 부하 하나가 그녀를 곁눈질했지만, 특별히 신경 쓰진 않았다.
‘나도 뭔가 해야겠지?’
그녀는 혜성 쪽을 바라보며 의식을 집중했다.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버프였다.
***
막내는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놈의 부하들은 둘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죽고 싶어?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 같아?”
그가 눈을 부라리며 외치자, 부하들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부하들은 실실거리며 다시 다가왔다.
어느 순간, 뒤에 있던 부하 셋이 일제히 둘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좌우로 물러서 간단히 피했다. 하지만 그건 미끼. 그때를 놓치지 않고 능력자 우민창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둘의 가운데에 나타났다.
“쾅.”
다음 순간, 막내와 한수호는 좌우로 튕겨 나갔다.
“이 자식이……”
막내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멈칫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무형의 바람이 그의 사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마치 족쇄를 찬 것처럼. 게다가 물이 그의 주위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폭이 불가능. 설사 자폭한다 해도 물의 보호막 때문에 혼자만 죽고 끝날 게 뻔했다.
“젠장.”
막내는 나직이 욕을 내뱉으며 한수호를 돌아봤다. 녀석도 같은 처지. 울상이 돼 막내만 쳐다보고 있었다.
듀얼 능력자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히 속성만 2배가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개수도 2배였다.
예를 들어, 막내는 좌우에 하나씩 동시에 2개의 화염만 사용 가능했다. 가끔 화염을 산탄총처럼 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자세히 보면 짧고 빠르게 끊어친다는 느낌으로 스킬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병신들. 죽으려면 빨리 죽을 것이지. 왜 시간을 끌어?”
둘의 가운데, 능력자 우민창이 혀를 차며 비아냥거렸다. 그리곤 양팔을 좌우로 쭉 뻗은 채, 둘의 목을 쥔 것처럼 손을 오므렸다.
“크윽!”
둘은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힌 것처럼 멱살이 잡혀 허공에 떠올랐다.
“원래는 실험체로 데려가려 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후환이 될 만한 건 빨리 싹을 잘라야지.”
뒤에 있던 사업가 우민창이 히죽 웃으며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부하들은 단검을 빼 들고 둘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제길. 이렇게 끝인가?”
자포자기. 막내는 놈을 노려보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형.”
한수호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아직 끝은 아니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막내와 한수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장진우였다. 그는 우민창 뒤쪽의 천장 환풍구를 걷어차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곤 순간이동으로 움직여 단숨에 우민창의 품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놈의 우측, 인질 중에서도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늘씬한 여자. 가면을 쓴 강지영이었다. 오른손에는 흐느적거리는 검을 들고 있었다.
둘이 기습적으로 나타난 지점은 우민창의 사각지대였다. 게다가 우민창의 의식은 막내와 한수호에게 집중된 상태. 둘의 자폭소동은 본의 아니게 양동작전이 된 셈이었다.
사람들이 어, 하는 찰나 강지영의 검이 우민창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날아갔다.
‘누구지?’
장진우는 그녀를 보고 당황했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는 거의 동시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자신의 고유 스킬을 펼쳤다.
번쩍!
눈부신 섬광이 그들 셋을 휘감았다.
“크윽!”
막내를 비롯한 모두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몇 초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우민창, 강지영, 장진우. 로비에는 그들 셋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막내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쌍두 살모사의 던전에서 사령이 했던 스킬. 바로 공간 전이술이었다.
***
콰쾅!
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뭐야?”
우민창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ICC 정문 앞 공원. 시커먼 하늘에서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젠장. 너무 급하게 펼쳤나? 겨우 여기밖에 못 왔군.”
그의 정면, 비에 흠뻑 젖은 장진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놈을 인질들과 떼어낸 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놈이 밖에 있는 한, 안에 있는 부하들도 게이트를 다시 열 수 없을 거예요. 몬스터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저놈뿐이니까.”
옆에 있던 강지영이 늘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으며 말했다.
“계산하기 쉽게 됐군. 저놈만 잡으면 된다는 거지?”
장진우는 강지영을 힐끔 쳐다보며 웃었다. 그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단 같은 편인 건 확실했다.
“네가 왜 살아있는 거지? 분명 죽은 걸 확인했는데?”
우민창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설마 죽은 척한 거냐? 나를 끌어내기 위해?”
“맞아. 덕분에 정말 죽는 줄 알았지만.”
장진우는 단전을 힐끔 내려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처는 거의 아문 상태. 하지만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아직도 생생했다. 정말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작전은 좋은데. 너희 둘이서 뭘 어쩔 생각이지? 너희 둘로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
우민창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강풍과 폭우. 놈의 홈그라운드였다.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시너지 효과가 날지는 자신도 가늠할 수 없었다.
“널 죽이는 건 우리가 아니야. 우리는 그저 전초전이지.”
장진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강지영을 바라봤다.
“널 죽이는 건 이혜성. 그는…… 반드시 돌아온다.”
강지영도 권총과 연검을 고쳐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