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85화 (85/150)

# 085. 악연 (1)

그날 저녁, H 오피스텔.

혜성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다른 요원들과 대기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피스텔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오피스텔 중앙의 테이블.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LK 로직스의 구조와 재무 자료를 분석했다. 강지영의 말대로였다.

“이 새끼들. 정말 빈틈이 없는데?”

장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보던 서류를 내던졌다. 얼굴이 피로로 절어 있었다.

“역시 현장을 덮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혜성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막내가 조사한 LK 로직스의 중국 쪽 지사도 마찬가지였다. 클리어. 기분 나쁠 정도로 깨끗했다.

“병원은 어떻게 됐을까요?”

구석에 앉아 있던 한수호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TV를 켰다.

9시 뉴스에서는 희망 정신병원의 사건이 소개되고 있었다. 괴한들의 습격, 다수의 사상자, 그리고 사라진 닥터 J까지. 언론이 좋아할 만한 건 전부 갖추고 있었다.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괴한들은 정부의 DB에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

-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의 혼란을 틈타 사라진 다섯 명을 추격하고……

이어서 은근슬쩍 사라진 환자 다섯 명이 화면에 스쳤다. 신상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혜성은 그들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신. 왕. 드래곤. 마법사. 절세 미녀.’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판타지 모험에나 나올 법한 조합이었다.

그는 자칭 신이라는 사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벌써 죽기엔 참 좋은 세상이라는 말. 정신병자의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자꾸 마음에 걸렸다.

‘괴한들은 A급이 아니더라도 B급은 돼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4층에서 식당에 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 4분. 정말 그가 괴한 7명을 해치운 건가?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혜성은 뉴스 화면의 중앙, 모자이크 된 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놈이 진짜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독특한 스킬을 지닌 능력자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난 아직 그의 이름도 모르는군.’

혜성이 한창 신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띵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가에 있던 요원 하나가 문을 열자, 안경을 쓴 두꺼비처럼 생긴 연구원이 웃으며 들어왔다.

송도 K연구소의 책임 연구원.

대수영을 비롯해 혜성의 시그니처 아이템을 만든 자였다. 그는 무거운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끙끙거리며 끌고 들어왔다.

“다들 얼굴은 알지?”

장진우가 연구원을 오피스텔 가운데로 데려와 소개했다.

“이름은 있지만 다들 두꺼비라고 부릅니다. 그냥 편하게 두꺼비라고 부르십시오.”

책임 연구원은 혜성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정확히는 혜성이 아니라 혜성의 정장에 시선이 갔다.

오피스텔 한쪽에 아이템을 측정하는 간단한 장비가 마련돼 있었다. 두꺼비는 가져온 캐리어에서 노트북과 다른 장치들을 꺼내 연결했다. 손바닥을 비비며 웃는 게 벌써 잔뜩 흥분한 눈치였다.

“저분이 혜성이 형의 아이템을 만들었어요?”

“혹시 저희 것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막내와 한수호도 심심했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구경했다. 하긴, 능력자에게 있어 좋은 장비와 아이템을 원하는 건 본능이었으니까.

혜성은 쓰게 웃으며 카피캣을 건넸다.

“카피캣 어때? 잘 만들었지?”

두꺼비가 장갑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그는 혜성과 소속은 달라도 팀장급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혜성보다 열 살 이상 많아 보였다. 존댓말 반, 반말 반이었지만, 혜성은 딱히 상대의 말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네.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녀석은 언젠가 큰 사고를 칠 테니까. 야망이 큰 놈이거든.”

두꺼비는 특수 소켓을 꺼내 장갑과 연결하며 말했다.

‘아이템한테 야망이 있어?’

혜성은 상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닥터 J를 아십니까?”

“물론이지. 이 바닥에서 종사하는 사람치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두꺼비는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혜성을 바라봤다.

“유니크 아이템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사용자와 아이템을 주, 종의 관계로 보는 입장. 동기화란 아이템을 사용자에게 종속시키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이게 주류야.”

말투를 들어보니 두꺼비도 첫 번째 관점인 것 같았다.

“반면 닥터 J를 비롯한 비주류는 사용자와 아이템을 상호협조적인 관계, 일종의 수평적인 관계로 생각하지. 대수영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템은 자의식이 있으며, 동기화란 사용자와 아이템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두꺼비는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최신 아이템 이론을 설명했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막내와 한수호를 돌아봤다. 둘도 멀뚱거리며 눈만 끔뻑거렸다.

“근데 닥터는 왜 정신병원에 있는 겁니까?”

혜성은 쓰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나도 몰라. 본인 스스로 입원한 것만 알고 있어.”

“스스로요? 가족은요?”

“그것도 몰라. 원체 아이템에만 미친 양반이니까.”

두꺼비는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동기화 해제 및 재동기화는 특히 어렵거든. 아무리 닥터 J라도 준비하는 데 며칠은 걸릴 거야. 최소한 3일? 그러니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낚시한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라고.”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 아이템의 장인이라.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혜성은 병원에서 잠깐 봤던 닥터 J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닥터의 얼굴은 흐리멍덩한 게 아니라 허무에 가까웠던 것 같았다.

***

같은 시각, LK 로직스 사무실.

“사연은 무슨. 그냥 아이템에 미친놈이겠지. 아무튼 닥터는 지금 뭐 하고 있어?”

우민창은 닥터 J의 사진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냥 멍하게 있습니다.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맞은편에 서 있는 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닥터를 납치할 때 승합차를 운전했던 자였다.

“닥터는 그대로 두고, 동기화에 필요한 장비들 먼저 준비해. 닥터는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부하는 우민창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이혜성과 NSA?”

“그렇습니다. NSA도 그동안 우리에게 당한 게 많아서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특수팀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고요. 만병쌍수를 재동기화하는 순간을 노려서 우릴 덮칠 수도 있습니다.”

“NSA는 걱정하지 마. 놈들은 증거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데, 일단 우린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리고 놈들이 나타나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대비는 완벽하거든.”

우민창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이혜성은요?”

“이혜성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이혜성이 보면 아주 깜짝 놀라면서 반가워할 친구가 있거든.”

“친구요?”

부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런 놈이 있어. 이혜성과는 인연이 깊은 친구. 이혜성이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민창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며 히죽 웃었다.

***

저녁 무렵, 청송 특수 교도소.

겉만 보면 평범한 교도소였지만, 내부는 여느 교도소와 판이했다.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특수 진법, 몇 겹으로 된 특수 센서, 그리고 능력자 출신에 특수 중화기로 중무장한 교도관들까지. 이곳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능력자들을 수감하는 곳이었다.

“이 새끼들은 왜 사형 안 시키나 몰라? 세금 아깝게 말이야. 이놈들이 이런다고 개과천선할 것 같아?”

“인권 단체다 뭐다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난다잖아.”

“인권을 챙길 때가 있고, 안 챙길 때가 있지. 이 새끼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나?”

교도관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능력자 출신의 범죄자에게 악감정이 많은 것 같았다. 그중 우측에 선 자는 파란 보자기에 싼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이윽고 이중 철문으로 된 A급 구역이 나타났다. 철문 옆에는 다른 교도관 둘이 앉아서 CCTV를 보고 있었다.

“뭐야?”

앉아 있던 교도관 중 하나가 일어나며 물었다.

“사식이 들어왔어. 그 미친 새끼 생일이라던데?”

보자기를 든 교도관이 철문 안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앉아 있던 다른 교도관이 대번 인상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이거 왜 이래? 다 알면서?”

보자기를 든 자는 히죽 웃으며 바지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곤 천장의 CCTV를 한 번 곁눈질한 뒤, 모니터 앞에 서 있는 교도관의 손에 슬쩍 쥐여 줬다.

“뭐 이런 걸 다.”

모니터 앞 교도관은 못 이기는 척 손에 쥔 것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앉아 있던 녀석도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놈도 친구가 있었나? 밖에서 뭔가 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아무튼 확실한 거지?”

앉아 있던 교도관은 고개를 갸웃하며 철문을 열었다.

“물론이지.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보자기를 든 교도관은 웃으며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걷자, 일렬로 늘어선 작은 방들이 나타났다. 교도관은 그중 오른쪽 끝 방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독방. 한 사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이. 생일이라며? 축하해.”

교도관은 작은 창살을 탕탕 두드린 뒤, 쪼그리고 앉아 보자기를 벗겼다. 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신선한 회 한 접시였다.

그는 작은 배식구 틈으로 접시를 집어넣었다. 다만 능력자에게는 평범한 나무젓가락 하나도 흉기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젓가락 대신 일회용 물티슈 하나를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생일이라고?”

독방의 사내는 입술을 달싹거리듯 중얼거리며 천천히 문가로 걸어갔다.

“미안하지만 손으로 먹어.”

교도관은 창살 너머로 사내를 감시하며 키득거렸다.

사내는 물티슈로 손을 닦고 회를 하나 집었다.

“이 느낌. 오랜만이군. 역시 날것이 최고야.”

그는 회 한 점을 조명 아래 이리저리 비추며 한참 동안 감상했다. 초장은 필요 없었다. 그는 날것 그대로의 맛을 좋아했다.

회 아래에 미세한 칼자국이 있었다. 생선을 썰다가 생긴 것이 아닌, 글자처럼 새긴 것이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는 것처럼 눈을 감고 칼자국을 느꼈다.

“뭐 해? 안 먹어?”

교도관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쏘아보며 물었다.

“아, 미안. 너무 오랜만에 먹는 거라.”

사내는 천천히 회를 음미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다른 회를 집었다. 역시나 아래에 칼자국이 있었다.

10분 후, 특식이 끝났다. 교도관은 접시를 챙겨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다음에도 사내는 한참 동안 문가에 앉아 있었다.

“3일 후라. 참 좋은 선물이군. 좋아. 호의를 받아들이지.”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리 죽여 웃었다. 3일이라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희미한 조명 아래, 사내의 얼굴이 슬쩍 드러났다.

수감번호 JU875K.

본명 대신 뇌전의 광견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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