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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74화 (74/150)

# 074. 63스퀘어 (3)

혜성은 귀를 쫑긋 세우고 놈들의 기척을 살폈다. 발걸음이 제법 가벼워 보였다. 대충 B급 정도. 63 스퀘어가 워낙 높고 넓은 탓에 두 명씩 조를 이뤄 흩어진 것 같았다.

놈들이 모퉁이에 접근한 순간, 잔해 뒤에 숨어 있던 혜성이 번개처럼 나타나 기습했다.

“뭐……”

놈들이 초진동 블레이드를 반도 휘두르기 전, 혜성의 두 주먹이 놈들의 목에 꽂혔다. 그리고 이어진 돌려차기 2회전. 둘은 흰자위를 드러낸 채 반항 한 번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거다!’

혜성은 단검을 챙긴 뒤 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이동했다. 일반인들이 들기엔 묵직했겠지만, 그는 중상급의 각성자였다. 회의실을 향해 돌진한 뒤, 발로 문을 박차고 두 놈을 안으로 던져버렸다.

멍하니 서 있던 골렘들이 일제히 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동시에 바닥에서도 검은 손들이 둘을 향해 경쟁적으로 솟아 나왔다.

몬스터들의 관심이 두 놈에게 집중된 상태.

그게 바로 혜성의 노림수였다.

파팟, 그는 옆으로 내달려 벽을 타고 회의실 안으로 진입했다. 양손에는 어느새 놈들에게 뺏은 초진동 블레이드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회의실 중앙,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보라색 수정이 보였다.

‘어차피 핵만 부수면 된다!’

혜성은 수정을 향해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끄륵.”

기분 나쁜 울음과 함께 뒤늦게 뒤에서 뭔가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섀도 댄서들의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져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혜성은 뒤에서 오는 공격을 무시, 단검을 수직으로 휘둘러 수정을 베었다.

파직, 수정이 유리 알갱이처럼 부서졌다. 동시에 혜성은 몸을 날리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겨 나갔다.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어깨가 뻐근했다.

‘놈들은?’

혜성은 신음을 삼키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파스스, 골렘과 섀도 댄서들이 서서히 바스러지고 있었다. 기계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 여느 몬스터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절규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군.’

혜성은 옷을 털고 일어나 스마트 워치를 두드렸다.

- 50층 핵 제거.

외부의 임시 본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의 연락을 못 받아서가 아니었다. 아마 만세를 부르며 난리가 났을 터.

그런데 혜성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문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무너진 천장의 더미에서 작은 백팩이 보였다.

회사원이 쓰는 평범한 가방이 아니었다. 회색 뿔난 곰과 강철 두꺼비의 껍질로 내구성을 극대화한 특수 백팩. 위험한 물건이나 아이템을 운반할 때 쓰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 무기라도 들어 있나?’

혜성은 가방을 열곤 깜짝 놀랐다.

야구공만 한 검은 구체 다섯 개가 반투명한 상자에 들어 있었다. 던전에서 핵을 폭파할 때 쓰는 특수 폭탄. 백팩 덕분인지 상자에는 작은 실금만 가 있었다.

그는 폭탄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살폈다. 에너지 부족으로 활성화에 실패한 불발탄이었다. 그가 EF를 주입하면 다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거 오랜만인데?’

혜성은 폭탄을 자신의 백팩에 옮기며 씨익 웃었다.

테러. 요원의 고군분투. 인질구출. 그리고 테러범과 자폭하며 장렬한 산화. 오랜만에 영화 시나리오가 짜였다.

***

63 스퀘어, 통제실.

“3조 연락 두절. 이혜성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매니저 하나가 무전기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와 보고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총괄 매니저는 CCTV를 살피던 다른 부하들을 향해 짜증스럽게 외쳤다. 생각 같아선 부하들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CCTV는 이상 무. 계속 같은 화면만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놈이 CCTV의 사각지대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NSA 놈들도 외부에서 CCTV를 해킹한 것 같습니다.”

CCTV를 살피던 놈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젠장. 이혜성이 한 짓인가?”

총괄 매니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능력자에 의한 테러들이 발생한 후, 정부는 주요 건물의 보안과 통신을 대폭 강화한 상태였다. 그들도 보안팀을 데려갔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보안요원들이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이래선 애써 통제실을 장악한 의미가 없었다.

“3조가 몇 층에 있었지?”

총괄 매니저는 무전기를 들고 뛰어온 놈을 홱 돌아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게 50층입니다.”

“젠장! 역시 핵을 노리고 있었군. 끈질긴 새끼.”

총괄 매니저는 가래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어차피 46층의 핵은 가짜였다. 진짜 핵이 있는 곳은 40층.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남은 몬스터랑 수색조 애들 다 40층으로 보내. 아니, 내가 직접 가지.”

총괄 매니저는 비상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하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그를 따라 이동했다.

“이혜성. 인간과 몬스터의 융합 수술을 받은 게 사령 혼자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총괄 매니저는 이를 부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

63 스퀘어는 오래된 건물답게 환풍구가 미로처럼 복잡했다. 혜성은 몇 번 헤맨 끝에 겨우 46층에 도착했다.

사무실로 쓰이던 곳이었다. 50층과 비슷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여긴 버린 건가?’

혜성은 천장의 환풍구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너진 천장에 깔려 죽은 회사원만 몇 명 보일 뿐, 테러범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천장의 타일을 들어내고 착지했다. 핵의 파장이 감지되는 곳은 서쪽으로 10m쯤 떨어진 밀폐된 창고. 그는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여 창고의 문가에 붙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내부가 보였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더미 핵으로 추정되는 갈색 핵만 특수 삼각대에 고정돼 있었다.

- 46층 클리어.

혜성은 모스 부호를 보낸 뒤 더미의 유형을 파악했다.

NSA의 자료에 없는 형태. 지하 마켓의 소행이라는 의심이 굳어졌다. 놈들은 더미를 여럿 만들어 핵의 위치를 감추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하나만 겨우 만든 것 같았다.

‘남은 건 40층 하난가?’

예상대로라면 놈들은 그쪽에 대부분의 인원을 투입했을 것이다. 어쩌면 두목이 직접 가 있을 수도.

‘가자!’

혜성은 창고 밖으로 나와 다시 천장의 환풍구로 들어갔다.

이젠 환풍구의 미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낮은 포복으로 이동했지만 걷는 것처럼 빨랐다. 5분 후, 그는 40층 천장에 도착했다.

부웅, 바지의 핸드폰이 작게 진동했다. 잠깐 대기. 혜성은 핸드폰을 꺼내 내부 상황을 확인했다. 외부에서 열감지기 및 각종 기기를 사용해 40층을 투시한 사진이었다. 적의 구체적인 대형은 몰라도 대략적인 숫자나 분위기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잔뜩 몰려왔네.’

혜성은 40층의 3D 사진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쓰게 웃었다.

B급으로 추정되는 능력자가 스물, 골렘이 여섯, 그리고 측정 불가의 섀도 댄서가 다수 숨어 있었다. 특히 적의 두목으로 추정되는 자는 최소 A급 이상이니 조심하라는 단서가 붙었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가보자!’

***

63 스퀘어 52층, 동편.

인질들 틈에 손을 꼭 잡은 남녀 한 쌍이 보였다. 태호와 김연우였다. 좁은 공간에 이백여 명이 머리를 숙이고 밀집한 상황이었다. 언뜻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됐다.

김연우는 양손에 힘을 주었다. 태호와 막내의 손길이 든든했다.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가 잽싸게 도로 숙였다.

테러범들은 인질들을 몰아넣고 맞은편에 서서 감시하고 있었다. 다른 층에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급한 무전이 들리더니 테러범들이 어디론가 우르르 달려갔다.

현재 남은 건 테러범 넷에 골렘 넷. 테러범은 총을 든 놈과 초진동 블레이드를 든 놈이 둘씩 짝을 이뤄 좌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골렘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입구와 창가를 지켰다.

“쉿.”

막내가 검지를 입가에 갖다 대고 김연우의 어깨를 툭 쳤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김연우는 울상이 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막내는 오른쪽을 돌아봤다. 한수호가 다른 인질들처럼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둘은 시선을 짧게 교환한 후 서로의 손등에 뭔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김연우는 폭발이 난 직후를 떠올렸다.

막내와 한수호는 혜성을 따라 아래로 뛰어내리려다가 멈칫했다. 김연우와 태호는 물론, 인질이 될 수많은 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마침 혼란한 가운데 누군가가 재킷과 점퍼를 흘렸다. 막내와 한수호는 옷을 갈아입은 뒤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틈에 숨었다.

김연우는 다시 막내와 한수호를 돌아봤다. 아까부터 둘은 테러범들을 힐끔거리며 뭔가 작전을 짜고 있었다.

- 이상하다. 놈들이 다 어디로 몰려가는 거지?

- 글쎄요. 특수팀이 진입한 거 아닐까요? 아니면 혜성 선배가 영화처럼 날뛰고 있거나.

- 우리도 움직이자. 놈들은 기껏해야 B급. 소리 안 나게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 한다.

- 골렘은 덩치가 큰 만큼 반응도 조금 느릴 겁니다. 테러범들을 먼저 제압하고 골렘을 상대하면 될 거 같습니다.

막내와 한수호는 테러범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폭발이 있고 벌써 30분째. 테러범들도 긴장이 슬슬 풀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래층에서는 뭔가 난리가 난 상황. 인질들에 대한 경계는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둘은 사람들을 헤치고 슬금슬금 앞으로 나갔다. 1m 전진, 잠깐 정지. 다시 1m 전진하고 정지. 생각처럼 쉽진 않았지만, 곧 테러범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 3, 2, 1.

속으로 셋을 센 뒤, 둘은 동시에 좌우로 튀어 나갔다.

화륵, 막내가 먼저 테러범과 인질들 사이에 불의 장막을 만들었다.

“뭐야?”

뜨겁고 눈부신 화염 너머, 테러범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였다. 타앙, 오른쪽 구석에서 총성이 울렸다. 인제 보니 한 놈이 모퉁이 근처에 더 있었다. 막내와 한수호는 총을 반사적으로 피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평범한 인질들이었다.

“다 죽여!”

놈이 총을 갈기려는 찰나, 누군가가 인질들 사이에서 일어나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태호였다. 놈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태호가 상체를 숙이고 놈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놈의 턱을 어퍼컷으로 강타했다.

쾅, 놈은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벽에 처박혔다.

‘다른 놈들은?’

태호는 급히 화염의 장막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화르륵, 비디오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화염이 사그라들었다. 막내와 한수호도 순식간에 테러범을 제압, 골렘까지 소멸시킨 상태였다.

- 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려다가 멈칫했다.

막내와 한수호가 동시에 입에 검지를 붙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외부에서 특수팀이 들어올 때까지 나갈 방법도 없었다.

사람들은 급히 두 손으로 각자의 입을 막고 소리 죽여 환호했다.

“혜성이 형은?”

막내는 핸드폰으로 외부의 통제본부에서 보낸 자료를 확인했다.

현재 테러범들의 주력은 40층에서 진을 친 상태. 그리고 혜성은 환풍구를 따라 놈들이 기다리고 있는 40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언제 거기까지 간 거야?”

“선배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막내와 한수호는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를 바라는 것 같은 광기. 테러범보다 혜성의 막무가내 직진이 더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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