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73화 (73/150)

# 073. 63스퀘어 (2)

63스퀘어 53층.

건물 통제실은 총괄 매니저와 그 부하들 십여 명에게 점거당한 상태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들은 모두 차가운 시체가 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혜성은?”

지하 마켓의 총괄 매니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벽면의 대형 모니터를 바라봤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니터들에는 63스퀘어의 곳곳이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지옥도.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부상자들이 잔해에 깔려 신음하고 있었다.

“CCTV로 찾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부하 중 하나가 키보드를 두드려 혜성의 영상을 모니터 중앙에 띄웠다.

혜성이 외국인 여학생을 구한 뒤, 높이 점프했다가 천장의 구조물을 맞고 추락하는 장면이었다. 이후의 상황은 폭발 당시의 연기와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그들이 장비를 몰래 반입해서 빌딩에 들어온 게 약 1시간 전.

전망대 위아래에 폭탄을 한창 설치하는 도중, 혜성이 전화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폭탄을 레스토랑 근처로 옮기기도 애매한 상황. 결국 그들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폭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막내나 한수호는? 놈들도 골칫거리다.”

“아무래도 인질들 틈에 숨은 것 같습니다.”

부하는 52층과 54층의 상황을 모니터 좌우에 확대해서 띄웠다. 수백 명이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이래 가지고선 누가 누군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혼란을 틈타 환풍구나 비상구로 진즉에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일단 인질들은 두 곳에 몰아서 감시 철저히 해. NSA 놈들이 2차 진입을 시도할 테니 주요 길목에도 방어진 재설정하고.”

매니저는 부하에게서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화면 속 63스퀘어 3D 모형에는 자신과 부하들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표시돼 있었다. 숫자는 정확히 50.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수백 명의 인질을 관리하는 건 무리였다.

“이혜성. 놈은 거머리처럼 끈질긴 놈이야. 이대로 죽었을 리가 없다. 수색조 편성해서 보내.”

매니저는 이를 부득 갈다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테러와 인질극은 시간을 끌기 위한 미끼. 당장 2단계를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CCTV로 혜성과 동료들을 찾는 자. 층별로 흩어진 동료들에게 무전을 날리는 자. 그리고 장비들을 점검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자들까지. 테러범들은 사전에 정해진 역할에 따라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이혜성. 대회를 망친 빚은 이자까지 쳐서 제대로 받아내 주마.”

총괄 매니저는 재킷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만병귀 새끼. 유수혁을 빼돌려 튄 다음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 놈이 이혜성을 포기할 리는 없고.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

여의도 근처 허름한 모텔.

- 지금 보시는 것처럼 63스퀘어는……

아나운서가 숨 가쁘게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카메라맨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63스퀘어의 전망대 근처를 클로즈업했다.

“붉은 도마뱀이라고 했나? 매니저 녀석, 크게 한 방 터뜨렸군.”

만병귀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굳이 뉴스를 볼 필요는 없었다. 보나 마나 지하 마켓의 매니저라는 놈이 복수한답시고 나선 게 분명했다.

매니저 따위에게 선수를 뺏길 수는 없었다. 혜성을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 블랙이어야만 했다.

“이혜성. 이번엔 정말 제대로 붙어 보자.”

그는 구석에 있는 커다란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방을 나섰다.

같은 시각.

SJ 기획 소회의실.

“또 폭탄인가? 차성진 이후로 이제 심심하면 터지는군.”

박무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정부와 협회가 능력자들과 아이템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이번 63스퀘어의 테러는 이러한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확실히 진압할 필요가 있었다.

“NSA의 반응은 어때?”

그는 옆에 서 있는 한수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용된 폭탄이나 범행 방식 등을 보건대, 이혜성을 노린 지하 마켓의 소행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사동부터 시작해 사령, 지난번의 언리미티드까지. 지하 마켓이 이혜성에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말입니다.”

“역시 또 이혜성인가?”

박무영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하 마켓, 이혜성, 블랙이라는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럼 만병귀라는 놈도 나타나겠군. 이번엔 내가 직접 가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한수은이 대번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실장님이 나설 단계가 아닙니다. 언젠가 있을 마스터들과의 싸움을 위해서라도…… 실장님이 나서는 건 시기상조입니다.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박무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한수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도 한때는 뜨거운 피를 지녔던 능력자. 만병귀가 유수혁을 데리고 도망칠 때, 놈을 따라가지 못한 걸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표정 오랜만이군. 뭐,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테지.”

박무영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한 과장에게 맡기지. 다만 사태가 중요한 만큼 이번엔 강지영도 데려가게.”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63스퀘어로 출발하겠습니다.”

한수은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

천장의 형광등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희미하게 깜빡였다. 조명 아래, 봉분처럼 둥글게 쌓인 파편과 먼지가 들썩였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파편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만신창이가 된 혜성이었다.

“정말 죽다 살아났군.”

혜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장 쪽으로 몸을 뒤집었다. 머리가 깨졌는지 얼얼하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그는 눈알을 좌우로 움직였다.

창고나 설비실로 쓰이는 곳 같았다. 전망대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층마다 튀어나온 장식이나 모서리에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추락하는 와중에 장식 등과 부딪쳐 튕기면서 속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혜성은 억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2차 각성은 안 된 건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청룡의 비늘을 쫓아가던 때와 같이 2차 각성에 진입하지 못했다. 2차 각성은 EF에 의한 데미지에만 반응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끄응.”

그는 백팩에서 힐링 팩터를 꺼냈다. 사건에 휘말리고 다치는 게 일상. 기본적인 치료 도구는 항상 갖고 다녔다. 그는 잠깐 호흡을 고른 뒤, 주사제 형태의 힐링 팩터를 단숨에 왼 손목의 핏줄에 꽂았다.

“씨발.”

고통 때문에 절로 욕이 나왔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깨지고 찢어진 외상이 스르르 아무는 게 느껴졌다.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줄이 돋아나며 힘이 들어갔다.

그는 기둥에 기대앉아 백팩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기기가 아니었다. 요원용으로 특수 제작된 기기. 어지간한 충격이나 열기, 냉기 등에는 끄떡없었다.

“지금쯤이면 본부에서도 난리가 났겠지?”

혜성은 호흡을 고르며 전화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만약 테러범이라면 빌딩의 통신실과 제어실을 제일 먼저 점거했을 것이다. 통화를 하면 자칫 위치가 발각될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구식 방법이 최고였다. 그는 스마트 워치의 통신 앱을 실행시킨 후 검지로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 인식 번호 M877900 이혜성. 반복한다. 인식 번호……

그는 같은 신호를 반복해서 보냈다. 곧 스마트폰에 진동이 왔다.

길게, 길게, 짧게, 길게……

‘오케이.’

그는 패턴을 중얼거리며 암호를 해석했다.

NSA가 긴급 대응팀을 구성해 63스퀘어 주위를 포위한 상황. 다만 특수팀의 1차 진입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감지기에 안 걸리는 몬스터라. 이건 좀 골치 아픈데.’

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아마 프로토타입으로 생산된 게이트 오프너가 유출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의 숫자는 많지 않을 테고, 특수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진입로 근처에 집중적으로 배치됐을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 건 어렵겠지만, 반대로 이미 내부로 진입한 자가 움직이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문제는 빌딩 곳곳에 거미줄처럼 깔린 CCTV들이었다. 폭발 때문에 일부가 망가지긴 했어도 대부분은 아직 작동하고 있을 것 같았다.

‘우선 63스퀘어의 도면을 입수해야 한다.’

혜성이 다시 스마트 워치를 두드리려는 찰나, 스마트 워치 지도 앱에 뭔가 떴다. 암호화된 자료. 외부의 국장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자료를 핸드폰에 연결해 확대했다. 빌딩 도면 및 외부에서 파악한 테러범들의 현황이 나왔다.

63스퀘어는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테러범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63빌딩 전체를 감시하는 건 무리였다.

현재 그의 위치는 57층. 테러범들은 53층의 관리실에 집중돼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인질들은 54층과 52층에 분산돼 수용돼 있었다.

‘막내하고 수호는 무사할까?’

그는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막내와 한수호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다가 무너진 천장의 구조물 때문에 멈칫하는 모습이었다.

곧 전체적인 작전이 전달됐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 본부에선 최대한 간단하게 작전을 구상했다.

우선 해결할 건 특수 소환진에 의해 만들어진 잠복형 몬스터의 제거였다. 그동안의 사례에서 봤듯이 진법이나 던전에는 중심이 되는 핵이 있는바, 빌딩 내부에 있는 혜성이 핵을 제거해야 했다.

혜성은 빌딩의 도면을 3D로 전환해 확대했다. 현재 핵의 위치라고 추정되는 곳은 3곳. 50층, 46층, 40층에서 핵의 에너지 같은 강한 에너지가 감지되고 있었다.

‘셋 중 하나이거나 셋 다일 수도 있는 건가?’

부웅, 다시 암호화된 명령서가 도착했다.

혜성이 핵을 부수는 것과 동시에, 장진우를 중심으로 한 특수팀들이 창문을 깨고 단숨에 52층과 54층으로 진입한다. 그다음 ‘게이트 루프’를 설치하고 인질들을 대피시킨다.

여기서 핵심은 52층과 54층을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었다. 진입해서 인질들을 대피시키는 데까지 소요시간은 최대 5분. 그 이상을 넘어가면 테러범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게이트 루프? 그거 아직 위험한 거 아닌가?’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코드명 게이트 루프.

본래는 송도의 연구소에서 물체 전송을 위해 개발한 아이템이었다. A, B 지점의 좌표를 고정하고 공간을 연 뒤,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물체를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다만 유지 시간이 겨우 10분 남짓이고, 설치 단가가 비쌌다. 또한 이동 중 좌표가 틀어지면 안에 들어간 물체는 원자 단위로 분해돼 사라졌다.

어쨌거나 2차 진입 후의 인질 구출은 NSA에서 알아서 할 일. 혜성의 일은 소환진의 핵을 파괴하는 것까지였다.

‘일단 1차 예상지로 가자.’

혜성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장의 무너진 틈으로 시커먼 환풍구가 보였다.

“근데 이거 옛날 영화 아닌가? 대머리 아저씨가 나오는 영화 속편.”

그는 쓰게 웃은 뒤 환풍구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

10분 후.

50층 남자 화장실.

천장의 플라스틱 타일 몇 장이 덜그럭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이어서 먼지를 뒤집어쓴 혜성이 날렵하게 내려왔다.

이미 환풍구를 통해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상태. 하지만 그는 자세를 낮추고 잠깐 좌우를 두리번거려 적의 기척을 살폈다.

‘10분이 지났는데도 범인들의 요구사항이 없다고? 이 새끼들, 무슨 꿍꿍일까?’

역시 예감이 좋지 않았다.

혜성은 발꿈치를 들고 소리 죽여 화장실을 나왔다.

일반 사무실로 쓰이는 곳 같았다. 형광등이 깜빡이는 가운데 부서진 집기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혜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신호를 확인했다. 핵으로 추정되는 파장은 우측으로 20m쯤 떨어진 회의실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사삭, 혜성은 잔해 사이를 빠르게 움직여 모퉁이에 숨었다. 회의실은 왼쪽으로 꺾이는 복도 너머에 있었다.

‘가볼……’

혜성은 움직이려다가 멈칫했다. 빼꼼히 열린 회의실 문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골렘이었다. 숫자는 셋 이상. 놈들은 사람의 움직임에만 반응하는 듯 석상처럼 서 있었다.

‘골렘하고 섀도 댄서가 같이 있다고 했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마터면 섀도 댄서에게 발목을 잡혀 영문도 모르고 재가 될 뻔했다.

‘이걸 어쩌지?’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리려는 찰나였다.

“이혜성이 정말 여기에 있을까?”

“아마도. 놈이 살아 있다면 올 곳은 핵 근처밖에 없으니까.”

뒤쪽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혜성을 찾기 위해 온 수색조였다.

앞에는 골렘들과 섀도 댄서. 뒤에는 수색조 두 놈.

혜성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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