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9.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2)
오후 3시, 수원 J 시장 성진순대.
점심시간이 끝난 탓에 식당은 한산했다. 손님은 구석에서 뒤늦은 점심을 먹는 택시 운전사 두 명뿐, 주인 내외와 종업원 아줌마들은 홀에 앉아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속보입니다. 현재 도심 한복판에서 차량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벽에 걸린 TV에서 긴급 뉴스가 나왔다.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었다. 장소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로. 검은색 승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미친 듯이 달리는 가운데, 빨간 오토바이가 앞선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접근했다.
- ……방금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NSA의 이혜성이 범인들을 추격하고 있는 중으로……
뉴스 하단, 검은 정장을 입은 혜성의 사진이 나왔다.
와장창.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저통을 정리하던 주인아줌마가 빈 수저통을 든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급히 부축했지만, 그도 안색이 하얗게 질리긴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혜성아.”
결국 주인아줌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혜성은 눈을 부릅떴다. 약 500m 전방, 승합차의 옆문이 열리고 복면을 쓴 놈이 상체를 빼꼼히 내밀었다. 놈의 손에 들린 총구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더욱더 검게 빛났다.
“젠장. 지원팀은 왜 안 오는 거야?”
혜성은 급히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콰콰쾅, 거의 동시에 도로에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겼다.
그는 사이드미러를 힐끔 돌아봤다.
상공에서는 헬리콥터 두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각각 경찰의 지원팀과 방송국의 촬영팀이었다. 도로는 모두 통제된 상태였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차량이 간혹 보였다.
“발포 허가는 아직이야?”
혜성이 블루투스 헤드셋을 통해 윽박지르듯 외쳤다.
- 아직 민간인이 다수 있다.
상공의 지원팀도 답답한 음성이었다.
콰직!
[인천 방면]이라고 쓰인 교통표지판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더니 그를 향해 날아왔다.
‘제길! 염동력자인가?’
혜성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팽, 머리를 스치는 표지판의 파공음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피하기엔 늦었다.
예전 같으면 영문도 모르고 표지판을 맞아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듭된 전투를 통해, 특히 유수혁과의 혈전을 통해 기본 능력치가 상승한 상태였다. 날아오는 표지판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해 보자.’
혜성은 강기를 만드는 느낌으로 왼손에 EF를 집중했다. 에너지를 구체화해 적을 공격하는 수법은 A급 이상부터 가능한 터. 막내의 화염구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뭔가를 던진다는 느낌으로 왼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콰쾅, 표지판은 뭔가에 부딪힌 것처럼 우그러져 튕겨 나갔다. 성공이었다. 곧이어 다른 교통표지판들이 날아왔지만, 그의 공격에 공중에서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놈들과의 거리가 한창 좁혀지는 찰나, 갑자기 승합차가 거칠게 방향을 틀었다.
- 치익, 도주 차량이 인천공항 방면으로 움직인다. 전 대원은……
상공의 헬리콥터가 놈의 예상 경로를 무전으로 알렸다.
‘인천대교?’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라는 인천대교가 있었다.
외로운 섬처럼 우뚝 솟은 인천 공항이 떠올랐다.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인천공항으로 돌진한다면? 생각만으로 오싹해졌다.
“여기는 이혜성. 인천대교 중앙에서 놈들을 잡겠다. 다리 끝을 봉쇄하고……”
혜성은 대교의 봉쇄를 요청하는 한편, 300m의 거리를 두고 놈들을 뒤따랐다. 승합차의 바퀴를 향해 구체 형태의 강기를 던졌지만, 놈들 중에도 원거리 능력자가 있어 막혔다.
몇 분 후, 푸른 바다를 좌우에 두고 시원하게 뻗은 인천대교가 나타났다. 다리 봉쇄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탓에 아직 차량 몇 대가 위태롭게 오가고 있었다.
‘좋았어! 해 보자!’
혜성은 어금니를 깨물며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최고 속도가 약 300km에 이른다는 괴물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200m, 100m, 50m.
놈들과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마침내 놈들의 왼쪽에 나란히 선 찰나, 놈들이 창문을 열고 총을 난사했다.
‘지금이다!’
혜성은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당겼다.
콰앙,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승합차를 앞질렀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바닥을 짚고 바이크를 눕혔다.
끼이익, 바이크가 비명을 지르며 크게 원을 그렸고, 거의 동시에 놈들이 날린 표지판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승합차와 오토바이가 교차하는 순간.
‘바이크는 포기다!’
혜성은 이를 악물고 오토바이를 승합차 쪽으로 날려버렸다. 승합차의 조수석 쪽 바퀴를 향해.
끼이이익, 쾅!
요란한 타이어 자국을 만들며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혜성은 충돌의 반대 방향으로 나가떨어졌다.
승합차에서 20m 높이의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안에 있던 화기나 아이템이 폭발한 것 같았다. 상공의 헬기들은 비틀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와 헬기의 소음만 들렸다.
***
잠시 후, 연기를 뚫고 승합차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였다. 옷과 머리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혼자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놈들은 충돌하면서 크게 다쳤는지 차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이혜성은?
상공에 떠 있는 지원팀의 카메라는 난간 쪽을 클로즈업했다.
혜성도 가드레일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동안 격전을 치르며 능력치가 A급에 근접한 상태. 부상이 심했지만, 2차 각성의 징후는 없었다. 검은 정장과 가죽 장갑도 먼지만 조금 묻었을 뿐, 해진 곳 하나 없었다.
“제길.”
혜성은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든 뒤 주위를 둘러봤다. 박살이 난 빨간색 오토바이가 제일 먼저 보였다. 언뜻 봐도 수리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저거 어지간한 자동차보다 비쌀 텐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또라이 새끼. 네가 이혜성이냐?”
검은 정장을 입은 냉혹한 사내가 중앙 난간에 기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살기 가득한 눈으로 혜성을 응시한 채. 다만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TV에서만 보던 조선족이나 북한 쪽 억양과 비슷했다.
“청룡의 비늘. 네가 갖고 있나?”
혜성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거 말인가?”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단검. 청룡의 비늘이었다.
“이 개새끼.”
혜성은 대번 눈이 뒤집혀 놈에게 덤벼들려다가 멈칫했다.
인천 대교가 좌우로 흔들렸다. 처음엔 지쳐서 자신이 다리를 후들거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인천 대교가 좌우로 흔들린 것이다.
“뭐지?”
혜성은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게이트의 징후는 없었다.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뭔가를 감지한 듯 소름이 잔뜩 돋아 있었다.
부웅, 스마트워치가 진동했다. 긴급 재난 문자였다.
[인천대교. AA급 게이트 생성]
“설마…… 바닷속에서 게이트가 생긴 건가?”
혜성은 저 멀리, 왼쪽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고오오오, 바다 한가운데서 회색 돌개바람이 불고 있었다. 높이 약 20m. 돌개바람은 주위의 바닷물을 빨아들이며 다리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파팟,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놈이 혜성을 향해 돌진했다. 놈의 수중에 들린 단검이 송곳처럼 혜성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혜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내밀어 단검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왼손으론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잡았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낚아채려는 찰나였다.
파앗, 검은빛이 그를 덮쳤다. 조금 전까지 있던 인천대교 중앙이 아니었다. 그는 시커먼 어둠이 끝없이 펼쳐진 아공간의 중앙에 서 있었다.
“뭐, 뭐야?”
그는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상하좌우. 방향 감각마저 마비된 것 같았다.
- 크아아아!
정면에서 섬뜩한 울음이 들렸다. 얼마 전에 사령의 던전에서 봤던 쌍두 살모사였다. 하지만 흔적만 남아 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그를 덮쳐왔다.
“으악!”
혜성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파앗, 다시 어디선가 빛이 뿜어졌다. 공간이 바뀌었다. 그가 알던 인천대교 한복판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 꿈을 꾼 기분이었다.
“크하하. 잘 있어라!”
놈은 그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대교 아래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혜성은 뒤늦게 청룡의 비늘이 지닌 효과를 떠올렸다. 사용자의 정신력 강화. 그리고 상대에게 환상을 부여하는 것. 조금 전 그가 본 쌍두 살모사는 놈이 만든 환상이었다.
“멈춰!”
혜성은 난간으로 뛰어갔다. 난간 아래, 개조한 것 같은 쾌속정이 언뜻 보였다.
‘이 새끼. 설마 이걸 노리고 이쪽으로 도망친 건가?’
혜성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
‘아주 계획적이었군.’
그제야 혜성은 놈들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먼저 변종 게이트를 서울 곳곳에 만들어 NSA를 바쁘게 만든다. 그다음 경매품을 털어 인천 대교로 도주한다. 인천 대교 근처에는 미리 소환한 몬스터가 바닷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 경찰 등의 추격자들이 몬스터에게 잡힌 틈을 타, 놈들은 중국 쪽으로 유유히 도주한다.
청룡의 비늘 하나만 이백사십억 원이었다. 다른 아이템들까지 합치면, 그 액수는 천억 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조금 무모하긴 하지만, 놈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모험을 걸어볼 만했다.
혜성은 난간 아래와 바다 너머를 번갈아 바라봤다. 놈을 태운 쾌속정은 천천히 중국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상공에 헬리콥터가 있었지만, 놈은 하필 염동력 계통의 능력자였다. 헬리콥터 단독으로 놈을 막았다간 오히려 바다에 처박힐 게 뻔했다.
‘놈을 추격하려면 지금뿐이다!’
문제는 대교를 지나고 있는 다른 차들이었다. 강지영과 다른 요원들이 도착하는 건 앞으로 10분 후. 거대한 A급 몬스터라면 대교는 물론이고 인천공항마저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은 하나. 그리고 지금 여기서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것도 혜성 하나였다.
‘동생이냐? 수천 명의 민간인이냐?’
몇 초 안 되는 찰나의 순간, 혜성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입이 바싹 탔다. 이마에서 흘러나온 식은땀이 콧등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는 것을. 결국 뭘 선택해도 그는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혜성은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다. 때론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원칙을 따지시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대답은 뻔했다.
- 넌 내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정부 요원이다.
아버지의 엄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미안하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혜성은 눈물을 삼키며 대교의 중앙으로 몸을 돌렸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움켜쥔 주먹이 흐느끼듯 부르르 떨렸다.